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여권 사진 잘 나왔네.”
김민석이 한성태의 여권 사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한성태는 옅게 웃음을 흘리며 대본을 한 장 넘겼다.
계약하고 난 이후로 한성태는 ‘폭주’의 대본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연예인이면 뭐, 버프를 받는 건가? 왜 나랑 이렇게까지 차이 나지?”
자신의 여권 사진과 한성태의 여권 사진을 비교해보는 김민석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너랑 비교하면, 나는 그냥 오징어잖아. 나도 어디 가서 못났다는 말을 듣지 않는데.”
“대신 잘생긴다는 말도 안 듣잖아.”
한성태는 단 한마디만 꺼냈을 뿐이었다.
김민석이 잘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한마디.
그의 한마디에 김민석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와, 씨, 미쳤나. 너무한 거 아니야? 나도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거든!”
“언제?”
한성태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김민석, 그의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
목숨 빼고 다 줄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김민석은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았다.
듬직하다.
그래, 김민석은 잘생겼다는 말보다는 듬직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음……. 우리 할머니가.”
“가족은 빼야지.”
“그럼…….”
김민석이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는 모습에 한성태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장난으로 말한 건데, 김민석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재미있어 자꾸 놀리고 싶어지는 거겠지.
“바로 안 나오면 없는 거야.”
“……짜증 나. 그래 너 잘났다. 잘생겨서 아주 좋겠어요.”
“응, 좋아.”
“아, 씨!”
역시, 김민석은 반응이 좋다.
한성태는 웃음을 흘리며 김민석이 떨어뜨린 대본을 주워들었다.
“후우…….”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김민석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김민석은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고, 한성태는 대본에 집중했다.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고.
집안을 가득 채우던 정적을 깬 건 김민석이었다.
“야.”
“어.”
“너 학교는 어떻게 할 거냐?”
“학교?”
“어, 너 이제 해외도 가야 한다며. 그럼 학교도 못 나올 거 아니야.”
“휴학해야지.”
김민석의 물음에 한성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휴학은,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다.
지금도 바쁜데, ‘폭주’를 찍게 되면 해외에 있어야 하기에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으니까.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나? 나도 휴학해야지.”
“휴학하고 뭐 하려고.”
“감독님 밑에서 연출 배울 거야.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기는 한데. 지금은 감독님 밑에서 일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하고. 내 작품 만들려면 열심히 해야지.”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태가 촬영에 집중하고 있을 때, 김민석도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연재훈의 밑에서 연출을 배우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나가고 있는 중.
한성태는 그런 친구의 노력을 응원하고 있었다.
전생에는 항상 도움만 받아왔으니까.
뒤늦게 꿈을 찾고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을 봤으니까.
김민석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한성태, 그 자신이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제는 김민석이 자신의 꿈을 찾아 달려가며, 행복하기를 바랐다.
“잘 생각했네. 요즘 너 열심히 하고 있어서 보기 좋거든.”
“와……. 어떻게 우리 엄마랑 똑같이 말하냐. 순간 엄마가 빙의한 듯.”
김민석이 몸서리치며 팔을 슥슥 문질렀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가끔 보면, 김민석은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고는 한다.
그런데도 연출할 때는 진지해지는 게 신기할 때도 있다.
“너는 철 좀 들어야겠다.”
“이미 들었거든?”
“그래그래. 착하네.”
“……와, 왜 이렇게 짜증 나지? 너 진짜…….”
“왜. 그래서 싫어?”
“싫은 건 아닌데, 그냥 짜증 나. 너, 너무 능글맞아졌어.”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인생을 다시 살아봐라. 안 이럴 수 있나.’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그만큼 행동이나 말투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한성태는 그 사실을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좋은 내용도 아니었을뿐더러, 믿어주지도 못할 테니까.
“야, 그런데 너 이번에 ‘폭주’ 찍으면 천만 배우 되는 거 아니야?”
“천만 배우는 무슨…….”
“아, 왜, 가능성 있잖아. 본능의 질주 봐봐. 시리즈 전부 천만 넘겼잖아. 외전이라고 다를 거 없을 거 같은데?”
그 말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
‘천만이라…….’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전생의 ‘폭주’는 천만을 찍었으니까.
아니, 조금 부족했나?
한성태는 불가능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 혼자였다면, 꿈도 꾸기 힘들 테지만.
[‘절권도의 창시자’가 오늘은 전완근을 키우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바벨을 듭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대본의 내용이 너무 좋다며 작게 중얼거립니다.] [‘천의 얼굴’이 그러지 말고 한 번 대사라도 연습해보는 게 어떤지 제안합니다.]그에게는 연기의 신들이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친구가 천만 배우라. 너 나중에 내가 작품 만들 때 나와줄 거지?”
“작품?”
“응, 나도 작품 하나 만들어야지. 내 이름으로. 하루도 내가 만든 거기는 한데, 좀 애매하잖아. 제대로 된 영화 하나 만들고 싶어.”
“좋지. 불러.”
“당연히 불러야지. 내 하나뿐인 인맥인데.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쓰냐.”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김민석의 모습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보이콧이나 하지 마.”
“내가 그런 걸 왜 해. 안 해.”
“그렇지?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써먹어야지.”
“그래. 마음껏 부려먹어라. 임금만 제대로 챙겨줘.”
“당연하지. 우리 천만 배우님인데. 확실하게 챙겨줘야지.”
천만 배우는 무슨.
한성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락사락.
대본을 넘기는 소리가 거실을 채우고 있는 가운데.
“야.”
“왜?”
“예고편 내일 공개한다고 했나?”
“응.”
김민석의 물음에 한성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내일.
‘하루’의 예고편이 공개된다.
두 사람의 변화의 시작은 ‘하루’가 될 것이다.
* * *
툭, 투욱.
김철민이 손가락을 들어 느릿하게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의 앞에 있는 대형 TV에서 ‘하루’의 예고편이 재생되고 있었다.
―허억! 허억!
한 여인이 숲을 달리고 있었다.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핏물이 땅에 길게 늘어진다.
―귀찮게 하고 있어.
그런 그녀의 뒤를 사내가 쫓고 있었다.
도끼를 들어 시야를 거슬리게 만드는 방해물들을 잘라내며.
도망치는 여인을 노리고 달려가고 있었다.
―살고 싶어.
여인의, 서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살 수 없어.
한성태의 목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를 지웠다.
―도망쳐. 계속 도망쳐.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난 살 거야.
―하지만, 알지? 이 술래잡기가 끝나면.
―죽기 싫어.
―내가 널 죽일 거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려왔고.
마지막에 도끼를 든 한성태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섬뜩한 분장 속, 그의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살의가 가득 담긴 눈빛.
그 눈이 재미있다는 듯이 반달로 희어졌다.
―이제 시작하자. 너와 나만의 술래잡기를.
한성태가 도끼를 높이 들어 카메라를 향해 휘둘렀다.
―하하하하하!
그와 동시에 숲을 가득 채우는 한성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
화면이 검게 물드는 걸 보며 김철민이 참고 있던 숨을 토해냈다.
그는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미쳤군.’
고작 예고편이었다.
겨우 2, 3분 남짓한 짧은 영상.
그런데, 그 시간 동안 김철민은 사로 잡혀버렸다.
어느샌가 영상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의 오감이 전부 영상에 붙잡혀 있었다.
연재훈이 자신 있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적당히 괜찮은 작품이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상상 이상인데?’
직접 영상을 보고 나니, 연재훈의 자신감이 이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철민은 꽉 쥐고 있던 주먹에 땀이 흥건한 걸 느끼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딸을 살펴보았다.
김리나가 예고편이 끝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부른 뜬 그녀의 눈이 지금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알려준다.
“한 배우가 연기를 잘하네.”
그의 말에 김리나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김철민이 고개를 돌렸다.
예고편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백만볼트: 지렸다. 예고편이 이래도 되는 거야? 와……. 나 팬티 갈아입고 온다.
―용기의빤스: 시바, 무슨 놈의 연기를 이렇게 잘하냐? 이게 1년 차라고? 말이 안 되는데. 장난 아니네.
―금색무늬: 이거 진짜 대박 나겠다. 예고편도 이런데, 본편은 도대체 뭐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야.
―뚜껑: 제발,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예고편이 나오기 무섭게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고.
댓글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대다수가 우호적이다.
이 정도면, 본편의 반응도 상당히 긍정적일 거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한성태를 쓰기 잘한 거 같아.’
김철민은 예고편에서 보았던 한성태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최덕수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력.
그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과연 ‘하루’가 이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김철민은 바로 ‘아니’라고 확답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제는 브리튼 리와 함께하기로 했고.’
한성태는 여러모로 대단한 배우였다.
“앞으로가 기대되네.”
“기대되는 배우가 아니죠.”
“……?”
작게 중얼거리던 김철민은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도 김리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기대되는 배우가 아니지. 넷플렉스에서 붙잡아야 하는 배우니까.’
김리나가 주먹을 꽉 쥐고 있을 때.
“리나야.”
“네, 아빠.”
“이번에 ‘하루’ 배우들을 데리고 특집 하나 찍으려고 하거든. 어떤 것 같아?”
“너무 좋아요!”
“그래?”
“네, 팬들이 엄청 좋아할 것 같아요.”
김철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리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 ‘하루’의 비하인드를 담은 영상을 하나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미튜브에서 하는 거 말하는 거 맞죠?”
“응.”
넷플렉스에서는 이미 그 전에 작품을 찍었던 배우들을 데리고 메이킹 영상과도 같은 것들을 찍어 미튜브에 올린 게 있었다.
최근에 올린 영상의 조회 수가 70만 명인 것으로 기억한다.
“하면 인기 엄청 많은 것 같아요.”
김리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고, 김철민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겠다.’
아버지의 확답을 들은 그녀가 한층 밝아질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팬들의 바람.
어쩌면, 그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