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휴학 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한성태는 모니터 화면에 뜬 메시지를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하셨죠?”
“네, 고마워요.”
접수처에는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한국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교수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한성태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어려운 것도 아닌걸요.”
덕분에 눈 호강도 했고.
그녀는 한성태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한성태는 그녀의 입 모양을 보며 의아해했다.
“뭐라 하셨나요. 제가 듣지 못해서요.”
“혼잣말이었어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아, 네.”
그녀의 말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겠네.’
그는 다니던 대학교에 휴학 신청을 냈다.
방금 접수를 끝내면서, 한성태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 가지 줄어들 수 있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외국에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다.
“아. 저, 그리고 여기에 사인 좀 부탁드려요. 펜 여기 있어요.”
“네, 물론이죠.”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건네준 펜을 잡았다.
그의 앞에 종이가 하나 내밀어졌다.
한성태가 종이에 사인하려고 할 때였다.
“제 이름 김연제예요.”
“네……. 네?”
사인하려던 그는 김연제의 목소리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이름을 왜 말하는 거지.
한성태는 지금 하는 사인이 휴학 신청을 위한 작업 중 하나라 알고 있었다.
김연제의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가 성태 씨, 팬이거든요.”
“아.”
자신이 잘못 알았다는 사실에 한성태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슥, 스윽.
한성태는 김연제의 이름이 포함된 사인을 그렸다.
“밑에, 행복하세요. 적어주실 수 있나요.”
“당연하죠.”
겨우 글자 하나 몇 개 더 추가하는 건데, 못 해줄 게 뭐 있단 말인가.
한성태는 바로 그녀가 말하는 ‘행복하세요’ 문구를 추가했고.
그에게 사인을 받을 받은 김연제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이건 제가 액자로 걸어놓을게요!”
“하하. 그럼 저는 이제 가봐도 되는 걸까요?”
“네! 다 끝나셨어요. 조심히 가세요!”
“네.”
“언제나 파이팅이에요!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좋은 작품 많이 만들어주세요!”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열심히 할게요. 수고해요.”
그녀의 응원 속에서 한성태는 행정실을 나올 수 있었다.
“후우…….”
앞으로 1년 동안, 학교에 찾아올 일이 없어졌다.
한국대학교의 정문으로 나가는 길.
“야야, 저기 한성태.”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안 찍어주겠지?”
“와, 핏이 그냥 남다르네. 부럽다, 부러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에 한성태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지어졌다.
‘백년초’와 ‘하루’ 예고편으로 인해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이제는 학교를 돌아다니는 것조차 편하게 움직이기 힘들겠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한참, 걸음을 옮기던 한성태는 시간을 확인했고, 꽤 많이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느긋하게 집으로 가거나 운동을 하러 갔겠지만, 오늘은 회사와 미팅이 있는 날이다.
사흘 전.
정두식이 전화를 걸어 넷플렉스와 관련된 일로 상의를 해야 하니 회사에 찾아오라고 했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한성태는 바로 회사를 향해 걸음을 놀렸다.
* * *
“두식 씨하고 팀장님은 저기 회의실 안에 계세요. 넷플렉스에서 사람이 왔더라고요.”
한성태가 사무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성태는 자신에게 정보를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전하고는 회의실로 향했다.
똑똑.
천천히 숨을 내쉰 그는 바로 문을 두드렸고.
“들어오세요.”
안에서 민나정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팀장님.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
한성태가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약속 시간과 아슬아슬하게 맞닿아 있었다.
“일이 있어서 대학교에 갔다 왔는데. 이렇게까지 늦어질 줄 몰랐어요.”
“괜찮아요. 한 배우가 엄청 늦은 것도 아니고. 제시간에 왔잖아요. 그러고 서 있지 말고, 와서 앉아요.”
“이쪽으로 와, 성태야.”
민나정의 말에 정두식이 자리 하나를 내주었다.
한성태는 그들을 따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학교, 그거 휴학 낸 거지?”
“네.”
“접수됐어?”
“그 자리에서 바로 접수하고 왔어요. 오늘부터 저 휴학이에요.”
“잘했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정두식이 말을 걸어왔고, 한성태는 차분하게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한성태는 자신이 휴학 신청을 할 거라는 사실을 회사에도 알렸다.
배우에게는 이미지가 매우 중요했기에.
휴학과도 같이 남들에게 알려지거나 소문이 나기 쉬운 일들은 회사에 올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 작품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네요.”
“네.”
민나정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안 그래도 한 배우, 대학교와 일 병행하느라 힘들 것 같아서 걱정했거든요.”
“신경 써주셔서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뭐 얼마나 신경 썼다고요. 한 배우가 알아서 잘하는데.”
회의실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한성태는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한 배우, 두식 씨한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넷플렉스에서 ‘하루’의 배우들을 데리고 영상을 하나 제작한다고 하더라고요.”
“영상이요?”
“네. 미튜브에 올라가는 건데, 이거거든요.”
민나정이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바로 한성태에게 보여주었다.
‘아, 이거.’
한성태는 그녀가 보여주는 영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넷플렉스에서 제작한 작품들의 배우들을 데리고 그들의 평상시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의 영상이다.
작품과는 다른 배우들의 모습에 사람들에게 꽤 좋은 반응을 받았다.
‘아직 초기라 그런지 최대가 70만이네.’
한성태가 기억하는 넷플렉스의 미튜브 영상들의 최대 조회수는 600만이었다.
100만 이상 하는 영상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영상을 올리는 초기라서 그런지 조회수가 별로 높지 않았다.
“이게 최근 조회수가 70만이기는 하지만. 사람들 반응도 좋고 해서 네가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
“네, 그런 것 같네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초기라서 그렇지, 1년.
아니 반년만 지나도 이 영상들은 100만 이상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어때, 해볼래? 너 해외 나가라면 아직 시간도 걸리고. 휴학도 내서 당장 할 일도 없잖아.”
“그렇죠.”
“네가 연습하는 거 알고 있기는 한데. 이런 거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너만 오케이 하면 바로 촬영 들어갈 수 있어.”
“할게요.”
“정말?”
“네, 형 말대로 당장 일정도 없으니까요. 팬들이랑 소통도 하고 좋네요.”
한정우는 거절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한다고 해서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걸 하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좋은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기에 거절하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좋네요. 그럼 바로 넷플렉스에 연락할게요.”
한성태의 대답에 민나정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밑에 먼저 내려가 있을래? 나 짐 좀 챙겨서 갈게.”
“네, 천천히 와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평소였다면 혼자서 집으로 향했겠지만, 정두식이 데려다주겠다는데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한성태는 걸음을 옮겨 사무실을 나왔다.
‘아, 온 김에 커피라도 한 잔 마실까.’
PAN 엔터테인먼트 휴게실에 있는 커피의 맛이 나쁘지 않다.
한성태는 생각난 김에 바로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휴게실에는 그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두식이 형, 저 휴게실에서 커피 좀 마시고 갈게요. 천천히 오세요.
―정두식: ㅇㅋㅇㅋ. 한 10분 걸릴 듯.
―네.
정두식에게 문자를 보내놓고 한성태는 사색에 잠겼다.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며, ‘폭주’를 촬영할 때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상상할 때였다.
“어? 한 배우, 여기 있었군요.”
익숙하지만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최기덕이 반갑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커피 마시고 있었나 보네요.”
“네.”
“그런데 왜 여기서 마시고 있어요. 민 팀장이 안 챙겨줘요? 민 팀장 안 되겠네. 우리 귀한 배우한테 싸구려나 마시게 하고. 그거 버리고 저랑 같이 커피 마시러 가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아니요. 저는 이 싸구려 맛이 좋아서요.”
“아.”
한성태의 말에 최기덕이 잠시 멈칫거리는 게 보였다.
그는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은근슬쩍 한성태의 옆에 앉았다.
“한 배우, 가만 보면 아쉽단 말이야. 우리 팀에 왔으면, 내가 훨씬 잘해줄 수 있을 텐데. 2팀보다 더 말이야.”
“아, 네.”
“2팀에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요? 거기, 지금 정신없어서 한 배우 제대로 챙기지도 못할 텐데.”
“…….”
“이번에 해외도 가야 하잖아요. 그거 팀장급은 가야 할 텐데. 민 팀장, 요즘 프로젝트 하는 거 있어서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
“2팀은 항상 이런 부분이 아쉬워요. 전부 못 챙겨주잖아. 나는 그런 것도 다 챙겨줄 수 있는데.”
한성태는 쉬지 않고 입을 여는 최기덕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민나정과 2팀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띄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좋게 보려고 해도 좋게 보기가 힘들었다.
“민 팀장 못 움직이면 움직일 수 있는 팀장이 나밖에 없기는 한데. 한 배우가 원하면 내가 같이 가줄 수 있어요.”
“아니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팀장이 안 가면 성태 씨 많이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최기덕의 말에 한성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최기덕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고 있었다.
능력은 있지만, 대단하지 못해 높이 올라갈 수 없는 사람.
배우를 볼 때 사람이 아닌 실적으로 보는 인물.
전생에 최기덕은 만년 팀장이었다.
딱,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게 전부인 사람이란 것이다.
능력부터 인성까지.
한성태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옆에 있으면 거슬리기만 하지.
지금도 좀 그만 말하고 가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팀장님께서 그러지 않으셔도 저희끼리 잘할 수 있습니다.”
최기덕의 욕심을 알고 있기에, 한성태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로 최기덕이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뒤로 한 채 한성태는 머뭇거리는 거 없이 바로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두식이 형, 가는 길에 엽떡 어때요? 간만에 매운 거 먹고 싶은데.”
“나쁘지 않지. 왜, 스트레스받는 일 생겼어?”
“아니요. 그냥 매운 게 먹고 싶어서요.”
정두식을 바라보는 한성태의 미소에 조금의 가식도 들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