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시간이 흐르고, 출국하는 날이 되었다.
‘폭주’의 촬영을 위해 움직이며, 한성태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외에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건 아닌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더 긴장되는 거 같았다.
‘장소가 보스턴이네.’
정두식이 준 공항 티켓에는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이라는 장소가 적혀져 있었다.
한성태가 지낼 숙소와 촬영장이 있는 곳.
그는 여권과 티켓을 꽉 쥐었다.
현재, 그가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폭주’의 촬영을 하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 우리다. 가자.”
“네, 형.”
정두식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한성태는 바로 게이트로 향했다.
그 앞에서 직원들이 여권과 티켓을 확인하는 게 보였다.
“우리는 저쪽.”
한성태는 정두식을 따라 비행기로 걸음을 옮겼다.
비행기로 향하는 복도 유리 너머, 여러 대의 비행기들이 보였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비행기는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맛이 있다며 입맛을 다십니다.]‘비행기에서 왜 뛰어내려요?’
메시지를 보며 한성태는 황당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연기의 신들이 웃음을 흘렸다.
그들의 반응을 보며 한성태는 순간적으로 멈칫거렸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요, 형.”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정두식의 시선을 보며, 한성태는 옅게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한성태의 좌석은 비즈니스석이었다.
전생에는 너무 비싸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등급의 좌석.
“이야, 내가 비즈니스석에 다 타보네. 고맙다, 야.”
“제가 뭘 했다고요.”
“너니까 회사에서 비즈니스 끊어준 거지. 다른 배우였으면 바로 이코노미였어. 이게 비즈니스가 상당히 비싸거든. 나도 처음 해외 출장 갔을 때 이코노미 탔어.”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타고 있는 이 자리는 PAN 엔터테인먼트에서 마련해준 것이었다.
배우 가는 길, 불편하게 가면 안 된다면서.
“숙소는 그쪽에서 마련해주기로 했어. 원래 숙소도 우리가 잡으려고 했는데. 제작사 쪽에서 배우들을 위해 아예 호텔을 빌렸다고 하네.”
“아…….”
“아마, 가면 다른 배우들 만날 수도 있을 거야.”
“네.”
같은 호텔을 쓰면 만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지.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두식은 침을 한 번 삼켰다가 말을 이었다.
“일정 내가 저번에 알려줬지? 지금 가면 3주 동안 있다가 한국 잠깐 올 거야. 한국에서는 대략 일주일 안 되게 있을 것 같아. 그냥 쉬다 다시 일하러 간다고 생각해. 다음 촬영은 4주 정도 있을 것 같고.”
“네.”
“그다음에 추가 촬영이 있을 수도 있다고는 하는데……. 이건 그때 상황 봐야 할 듯. 그때 말해주는 거 들어보니까. 추가 촬영하면 2주 정도 걸린다고 했거든.”
“네, 알고 있어요.”
한성태는 조연이었다.
그렇다 보니 주연보다는 촬영 시간이 적었다.
추가 촬영도 안 할 수도 있다.
“대충 일정은 이렇고 그때그때 상황이 바뀔 수 있어서 3개월 정도 한다고 보면 돼.”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매니저가 말해주는 내용은 전에 한 번 들었던 일정이었다.
일정을 잡기 전에 먼저 상의를 했었으니까.
“아, 맞다. 그리고 제작사에서 사람 한 명 붙여준다고 하네. 이따가 도착할 때 마중 나온다고 하니까. 그 사람 따라 움직이면 될 것 같아.”
“네, 형.”
“도착까지 12시간 넘게 걸리니까, 좀 자둬.”
“네, 형도 쉬세요.”
“응, 역시 돈이 좋기는 좋아. 편한 게 잠도 잘 오고.”
담요를 덮고 안대까지 쓰는 정두식의 모습에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12시간이면…… 대본을 다 볼 수 있겠다.’
한성태는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들었다.
비행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한성태는 대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간을 신경 쓰지 않았다.
여유롭게 대본을 살펴볼 수 있는 거였으니까.
사락.
정두식이 잠을 청하고, 그의 주위로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숨소리조차 매우 작게 들려오는 지금, 한성태는 대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폭주’에서 한성태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주인공의 라이벌이며, 스승이자 가족 같은 친구가 바로 그가 맡은 배역이었다.
그 배역의 이름은 ‘유’.
어렸을 때부터 다리 밑에서 자랐고 다리 위를 달리는 스포츠카를 보며 레이서의 꿈을 품게 되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연기를 하냐에 따라 배역의 성격과 같은 캐릭터 성이 달라질 수 있는 캐릭터.
한성태는 그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생각이었다.
보스턴까지 12시간, 한성태는 대본에 깊게 빠져들었다.
* * *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에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보스턴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한성태는 계속 보고 있던 대본을 탁, 덮고는 가방을 챙겼다.
짐을 얼마나 챙겼을까.
옆에서 정두식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성태의 시선 속에서 그가 기지개를 쭉 켰다.
“끄윽!”
“잘 잤어요?”
“잘 자기는 했는데, 허리가 좀 아프네. 너무 오래 앉았나. 너는 좀 잤어?”
“네……. 뭐, 좀 쉬었어요.”
정두식의 물음에 한성태는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출발하고 도착할 때까지 대본을 보고 있었다고 말하면 걱정할 게 분명했다.
한성태는 그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짐 다 챙겼지?”
“네, 형은요?”
“나도. 가자.”
한성태는 정두식과 함께 걸음을 옮겼고, 출입구에 서 있는 스튜어디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저희 항공기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리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한성태가 그녀와 가까워지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찍어주세요.”
내리는 길, 뒤에서 들려온 그녀의 말에 멈칫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툭툭.
그녀를 향해 한성태가 고개를 살짝 숙일 때, 옆에서 정두식이 팔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이야. 미국에서도 너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다 있네?”
“형, 저 사람도 한국인이에요.”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잖아.”
태연한 그의 말에 한성태는 황당함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렸다.
가끔 보면 뜬금없는 말을 많이 한단 말이야.
한성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두식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마중 나올 거라고 했는데. 네 이름 적힌 팻말 들고 있을 거라고 했거든? 한번 찾아볼래.”
“형, 저거 아니에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한 곳을 가리켰다.
입구로 나오면서 보이는 팻말이 하나 있었다.
‘한성태 무사 입국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팻말 하나.
한국어로 적혀 있는 그 팻말은 누가 봐도 그를 가리키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맞네.”
그 팻말을 발견한 정두식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팻말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에밀리 씨?”
“네!”
팻말이 옆으로 넘어가며, 팻말에 줄곧 가려져 있던 작은 얼굴이 드러난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더니 한성태와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활짝 밝아지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한성태 배우님을 환영합니다!”
어눌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말을 끝낸 그녀가 뿌듯하게 웃으며 한성태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와 정두식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사람이 붙은 것 같다.
“에밀리 씨 맞죠? 반가워요. 한성태입니다.”
“아! 영어를 잘하시네요?”
“연기하려고 공부했거든요.”
“대단해요!”
한성태가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걸까.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던 것도 잠시, 해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한성태가 그 손을 잡기 무섭게 그녀가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환영해요, 미스터 한!”
“네, 환영해줘서 고마워요.”
한성태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한이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제가 한국어를 공부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엄청 잘하는 게 아니라서요. 회사에는 자신 있다고 말했는데, 막상 나오니 얼마나 떨리는지…….”
그녀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공항에서 나와 차를 타기까지.
지치지도 않는지 그녀의 입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뭐라고 하는 거야?”
“만나서 반갑다고 하네요.”
정두식의 물음에 한성태는 바로 대답했다.
그의 말을 들은 정두식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스마트폰에 무언가를 적는 정두식.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두식은 영어를 잘 몰랐다.
생활에 필요한 영어 지식은 있어도 유창하게 할 수는 없었다.
최근에 해외 나온다고 공부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인터내셔널은 직원을 뽑을 때 얼굴 보고 뽑나 봐.”
“네?”
“저 정도면 연예인 해도 될 것 같은데.”
정두식의 말대로 에밀리는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작은 얼굴과 큰 눈동자, 잡티하는 없는 깨끗한 피부.
한성태는 정두식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했는지 에밀리는 입을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원래 통역사가 함께 붙어야 했는데, 오기로 했던 분이 갑자기 아파서 저 혼자 나왔거든요.”
“그렇군요.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아까 제 한국어 괜찮지 않았어요? 저 그래도 한국어 자격증이 있다고요?”
“대단하네요. 공부하기 힘들었을 텐데.”
“아니에요.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요. 배우님이 더 대단하죠. 연기는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녀의 말에 한성태는 옅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한성태의 전생을 알아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하겠지.
에밀리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스턴 호텔 중에서도 가장 크고 좋은 호텔.
‘폭주’의 제작사인 international film에서 제대로 힘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와……. 대박이네. 확실히 인터내셔널이 돈이 많긴 한가 봐.”
“그러게요.”
한성태도 숙소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좋은 숙소를 잡아줄 줄 몰랐으니까.
“미스터 한과 같은 층에는 다른 주조연 배우들도 있으니까, 미리 알아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네, 에밀리. 오늘 숙소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걸요.”
한성태의 말에 그녀가 방긋 웃었다.
“나중에 제가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 주시면 돼요.”
“네.”
“매니저님은 미스터 한의 바로 밑층이에요. 여기 열쇠예요.”
한성태와 정두식은 그녀에게서 열쇠를 받아들고 숙소로 향했다.
“올라가 있어. 짐 내려놓고 올라갈게.”
“네.”
정두식이 먼저 내리고 한성태는 그 위층에 내렸다.
한 층에 여섯 개의 방밖에 없었다.
저 방이 전부 다른 배우들이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다음에 만날 수 있겠지.’
한성태는 문들을 천천히 살펴보다 자신의 숙소로 걸어갔다.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간 한성태는 숙소의 내부의 모습을 보고는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한 사람이 쓰는 방이라고?
그에게 배정된 방이 상상 이상으로 컸으니까.
방만 세 개였고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나뉘어 있었다.
거실만 해도 한성태가 한국에서 지내는 원룸보다 두 배는 크다.
“와…….”
거실에 짐을 내려놓으며, 한성태는 천천히 숙소를 살펴보았다.
방 하나하나가 원룸만 하다.
그렇게 숙소를 전부 살펴본 한성태는 유리로 된 한쪽 벽면을 바라보았다.
유리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이래서 사람이 뷰, 뷰 하는 거구나.’
딩동.
한참을 멍하니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정두식, 그가 안으로 들어오며 숙소를 살펴보더니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좋은데? 내 방이랑 너무 달라. 확실히 여기가 배우 대우가 좋아.”
정두식의 방은 거실과 방이 합쳐져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도 어지간한 2, 3성 호텔보다 좋았다.
“배 안 고파? 여기 지하에 레스토랑 있다고 하는데. 가자. 숙박하는 사람은 무료래.”
“가요. 안 그래도 배고팠어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 오기까지, 한성태가 먹은 건 비행기에서 먹은 스테이크 몇 조각이 전부였다.
정두식과 함께 이동한 지하 1층 레스토랑은 숙소와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한성태는 정두식과 함께 자리를 하나 잡았다.
“이런 곳에는 처음 와요.”
“나도 그래. 사람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정두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한성태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어?’
정두식의 뒤로 한 사람이 보였다.
그의 모습에 한성태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저기…….”
정두식이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한성태의 시선은 온전히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한성태의 시선을 느낀 걸까.
사내도 한성태를 돌아보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옆에 있는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그에게 무어라 속삭이는 게 보였다.
“……!”
매니저의 말에 사내가 눈을 크게 뜨더니 한성태가 있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반가워요.”
한성태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그는 ‘폭주’의 주인공, 로저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