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5
15화
* * *
―아아. 마이크 테스트.
강당을 가득 채우는 목소리.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무대가 꾸며지고 있었다.
“야. 저기 봐봐.”
“왜?”
“일단 봐봐. 쟤 한성태 맞지?”
“한성태 맞는 거 같은데? 그런데 쟤 원래 저런 느낌이었었나.”
무대 밑, 아이들이 한성태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그러게, 뭔가 느낌이 달라진 것 같아.”
“전에는 좀 평범해 보였는데……. 지금은 왜 잘생겨 보이냐?”
“그러니까. 나, 한성태가 저렇게까지 잘생겼는지 몰랐어.”
“옷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이보리색 조거 팬츠와 회색 티셔츠, 옅은 녹색과 갈색이 겹친 체크 무늬 카디건.
데일리로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김미소가 선물해 준 옷을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직접 골라준 모습이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자신이 봐도 잘 어울린다며 만족스럽게 웃습니다.]옷을 골라준 당사자도 만족한 모습.
한성태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슬쩍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입는 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뭔가 다른 건가?’
패션에 대해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반응이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저, 아 괜찮게 보이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 뿐.
“야, 진작에 그렇게 입고 다니지 그랬냐. 애들 봐라. 다들 너 옷 잘 입었다고 난리야.”
“음……. 나는 솔직히 뭐가 다른 건지 말 모르겠어서.”
“다르지. 엄청 다르지. 네가 예전에 있었던 건 거지들이 아무렇게나 껴입은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지 비하를 하는 건 아닌데. 어쨌든 앞으로도 그렇게 입고 다녀. 사람이 달라 보이네.”
“앞으로 그렇게 될 것 같기는 한데.”
한성태는 슬쩍 허공에 뜬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저 반응을 보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꾸미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준비는 이쯤하고, 이제 슬슬 연기 시작하자.”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이네.”
“교수님이 오늘 세 시쯤 오신다고 했지?”
“어, 그렇게 알고 있어.”
박창식의 말과 함께 아이들이 연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쟤는 자기가 대장인 줄 아나 봐?”
“뭐……. 우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딱히 신경 안 써.”
박창식의 모습에 김민석이 불만을 보였지만, 한성태는 무덤덤했다.
저런 모습을 보일 거라는 걸 예상했었으니까.
“연기만 잘하면 되지, 연기만.”
한성태는 연극만 잘할 수 있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무너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그걸 왜 못해!”
무대에 올라선 박창식이 자신과 함께 연기하는 학생을 노려봤다.
“도대체 왜 이걸 이해 못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어렵게 말했나?”
“아니…….”
“뭐가 아니야. 그냥 내가 하는 대로 잘 따라오면 되는 거잖아. 그거 그렇게 어려워? 어?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답답한 듯이 말하는 박창식의 모습에, 그는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박창식의 지적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상당히 불쌍해 보이는 모습.
같은 나이고, 같은 학생이었지만 갑과 을이 나뉘어 있었다.
“제발 좀 잘 따라오자? 어?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알았어.”
“후……. 흐름 끊어서 미안해. 다시 시작하자.”
박창식으로 인해 멈췄던 연기가.
박창식으로 인해 다시 재개되었다.
처음에는 잘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었다.
“이걸 왜 못 따라와!”
잘하는 것 같았는데.
박창식은 그새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무대에 올라서려고 했던 학생들과 무대 밑에서 준비 중이던 학생들 모두 멈칫거렸다.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도 박창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어떻게 말해야 이해할 수 있는 거야? 거기서는 그냥 나를 따라오라니까?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들을까.”
“…….”
“내가 아무리 커버하려고 해도……. 계속 이러면 답이 없는 거 다들 잘 알잖아. 어?”
박창식의 말에 강당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모욕적인 말들.
그 말을 들으면서 학생들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모두가 기분 나빠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서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박창식이 연기를 잘하고 있으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창식에게는 발언권이 생긴다.
적어도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천의 얼굴’이 연기도 못하는 놈이 말은 더럽게 많다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저런 놈들에게 정권을 날려주었다고 말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답답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그런데, 저렇게 성격 보여도 괜찮은 건가?’
박창식을 바라보며 한성태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박창식이 만들어낸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기에.
이제와 자신의 이미지를 포기하는 박창식의 모습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제발 이거 한번 해주는 게 그렇게 힘드냐!”
음…….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 *
“여기가 최 감독님 모교에요?”
한국대학교 주차장.
조연출의 말에 최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제가 감독님 모교에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영광입니다!”
“움직이지.”
“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조연출을 뒤로한 채 최예찬은 익숙한 길을 걸어갔다.
―아, 제발!
한참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을 붙잡는 하나의 목소리.
“감독님?”
자리에 멈춘 그를 조연출이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의아한 모습에도 최예찬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파트에서는 조금 더 감정을 끌어올려야 한다니까?
그는 천천히 강당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강당 내부의 풍경.
―천천히. 제대로 집중해서 다시 한번 가보자.
한 사람의 지시와 함께 연극이 시작되는 게 보였다.
―유나, 저는 당신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쁘지 않네.’
연기자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연기를 시작했다.
매끄러운 연기.
‘그런데…… 저건 너무 힘을 줬어.’
나쁘지 않은 연기였지만, 문제는 그 연기로 인해 연극 전체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이 너무 힘을 주니, 합을 맞추는 연기자들이 버거워 한다.
“감독님 후배라서 그런지, 확실히 연기를 잘하네요. 감독님은 어떠세요?”
조연출의 물음에도 최예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하하하. 모두 저를 바라봐요. 여기 당신들의 광대가 있어요. 하하하.
광대가 보였다.
―하하하!
환하게 웃고 있는 광대.
최예찬은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저런 배우가 있었나?’
뭐라고 해야 할까.
광대 역을 맡은 학생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괜스레 마음을 간질거리게 만드는 이상한 느낌.
탁, 타닥!
경박스럽게 뛰어다니며 나는 발소리, 손짓과 몸짓.
“음……. 저 광대를 맡은 애는 뭔가 어색해 보여요. 광대 역이 처음인가?”
“자네는 좀 더 눈을 키울 필요가 있겠어.”
“……네?”
아무 생각도 없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조연출의 모습에 최예찬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광대 연기를 보면서 어색하다라…….
도대체 얼마나 더 가르쳐야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저 윌리엄이라는 놈이 속이 텅 비어 있는데, 광대는 꽉 찬 느낌이란 말이지.’
단순히 연기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연기력만 놓고 본다면 윌리엄을 맡은 사람이 좀 더 잘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최예찬은 단순히 연기를 잘하고 말고가 아닌, 배역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보고 있었다.
윌리엄은 겉으로 봤을 때 괜찮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무대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윌리엄으로 인해 무대 전체의 연기가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연으로 무너지는 균형이 조연으로 인해 버틸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네.’
무대를 보던 최예찬은 실소를 흘리고는 몸을 돌렸다.
“가지.”
“더 안 보시게요?”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약속이 있으니까.”
최예찬은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렇게 무대를 보고 있는 것도 본래의 그였다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
그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강당을 나갔다.
“더 보고 싶은데.”
조연출의 미련 가득한 목소리가 그들이 서 있던 자리를 맴돌았다.
* * *
달그락.
최예찬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
옆에 앉아 있던 이혜윤이 말을 걸어왔다.
“적당히 잘 되고 있어. 애초에 제작사 쪽에서 준비를 전부 도맡아 하고 있어서 내가 뭐 신경 쓸 것도 없어. 지금 준비하는 거 보면 내년 초에 크랭크인 할 것 같기는 하네.”
“네 영환데 너무 무심한 거 아니야?”
“시나리오 수정하느라 바빠.”
이혜윤의 걱정 어린 시선에 최예찬은 딱 잘라 말했다.
시나리오는 전부 나온 상태였지만, 여전히 그가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지금 캐스팅이 잘 안 되고 있어서 감독님이 조금 예민하세요.”
“아……. 그래요?”
“네, 오디션을 봐도 좋은 배우가 없기도 하고. 생각하고 있던 배우들은 전부 계약을 한 상태라.”
조연출, 유미례의 말에 이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고생이 많다.”
“고생은. 나는 그냥 연출만 하면 되는데. 나보다는 제작사들이 고생 많은 거지.”
“그래도 너도 신경 쓰이는 게 많잖아.”
“익숙해져서 괜찮아. 나는 뭐, 내가 알아서 하면 되니까 그렇다 쳐도. 너는 어때? 이번에도 연극할 거 아니야?”
이혜윤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지금 애들 연습하고 있는데. 같이 구경하러 갈래?”
“내가 그런데 가서 뭐 해.”
최예찬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영화 준비하기도 바쁜데, 학생들 연극을 구경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갈 거면 같이 나가자. 나도 슬슬 돌아가야지.”
“음……. 그래도 같이 보러 가는 거 어때? 혹시 모르잖아. 영감을 얻을 수도 있는 거고.”
“애들 소꿉장난에 영감은 무슨.”
“그리고 괜찮은 애들 있으면 단역이나 보조 출연자로 써도 되고. 보조 출연자 같은 경우에는 너도 아르바이트 구인할 거 아니야.”
최예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목적은 따로 있었구만.”
이혜윤이 어깨를 으쓱였다.
교수가 제자를 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혜윤은 특히 자기 제자들을 위해서 뭐라도 해주려고 하는 편이긴 하다.
“됐어. 한창 배워야 할 놈들을 무…….”
거절하려던 그는 문득 강당에서 보았던 연극이 생각났다.
“그 연습이라는 거…… 강당에서 하나?”
“어? 어떻게 알았어?”
그런 거였나.
“잠깐 정도는 괜찮을 것 같네.”
잠깐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흥미가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
최예찬은 이혜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