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더 그로브(The Drove).
로스앤젤레스에서 유명한 대형 쇼핑몰 중 하나.
명성에 맞게, 더 그로브는 입구에서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한성태는 입구에 서서 안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한국이랑은 느낌이 조금 다르네.’
그는 한국에서도 쇼핑몰을 많이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대략 한국과 미국의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한국에 백화점이 있다면, 미국에는 백화점 대신 쇼핑몰이 있다…… 이 정도는 알았다.
‘쇼핑몰의 건물이 높지는 않구나.’
한성태는 안으로 들어가 쇼핑몰을 살펴보았다.
기본 6, 7층 이상 시작하는 한국의 백화점과 다르게.
미국의 쇼핑몰은 아무로 높아 봐야 5층이 한계였다.
대신 무척이나 넓었다.
이 정도면 동묘시장과 비슷하거나 더 넓겠지.
넓은 만큼 명품의 종류도 많았고, 다양한 것들을 팔았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이제야 제대로 된 쇼핑을 해볼 수 있겠다며 미소를 짓습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관심 가는 곳이 많다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오늘 하루, 약속을 안 잡기를 잘했네.’
쇼핑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일부로 약속을 잡지 않았다.
하루 종일 쇼핑몰을 돌아다녀도 상관없는 상황.
한성태는 연기의 신이 가자는 데로 걸음을 옮겼다.
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손님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안에서 종업원의 환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한성태는 그들을 지나쳐 자신이 입을 만한 옷을 살펴보았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이번 파티에는 환한 것보다는 적당히 무게감이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쿨톤으로 맞추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영원한 젊음의 배우’와 상의합니다.]한성태는 구경만 했고, 그의 옷을 정해준 건 연기의 신들이었다.
“결제되셨습니다.”
그렇게 파티에 가기 위해 사용된 금액만 자그마치 삼백만 원이 넘었다.
계산할 때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는 했지만.
배우에게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눈물을 머금고 결제했다.
그렇게 조금은 가슴 아프지만, 만족스러운 쇼핑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천의 얼굴’이 가야 할 곳이 있다며, 당신의 옷깃을 붙잡습니다.]한성태의 발걸음이 숙소가 아닌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천의 얼굴’이 가자는 방향으로 따라 도착한 곳은.
‘여기는 그냥, 집이잖아.’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주택이었다.
식당도, 박물관도, 그 어떤 무엇도 아닌 일반 가정집이다.
도대체 이곳에는 왜 오자고 한 건지.
한성태는 ‘천의 얼굴’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천의 얼굴’이 안으로 들어가자며 당신을 재촉합니다.]“여기를 들어가자고요? 안 돼요. 이거 주거침입이잖아요.”
[‘천의 얼굴’은 괜찮다며, 그런 거 아니니 들어가도 좋다고 말합니다.]천의 얼굴이 하는 말을 한성태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데 이렇게까지 들어가라고 하는 건지.
신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 한성태는 한숨을 푹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저기, 누구 계시나요?”
아무도 없다.
마치, 예전부터 비어있던 것처럼.
주택은 냉랭하기만 하다.
[‘천의 얼굴’은 비밀번호가 ‘1028’일 거라고 말합니다.]“생에 살던 곳이었어요?”
[‘천의 얼굴’이 침묵한 채, 당신을 기다립니다.]한성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비밀번호를 눌렀고.
철컥.
문이 열리는 걸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곳이 ‘천의 얼굴’과 깊게 연관된 곳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간 한성태는 생각보다 깔끔한 주택의 내부에 눈을 깜빡거렸다.
누군가 청소라도 하고 간처럼,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집안.
그는 ‘천의 얼굴’의 말에 따라 걸음을 옮겼고.
“아…….”
한 사람의 사진과 함께, 그 옆에 늘어서 작품 활동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가, 그의 파티 하우스였구나.’
예전에 영화를 하나 본 적이 있었다.
한 배우가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 나온 장소.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고.
이곳의 주인은 히스 레저였다.
“하…….”
한성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히스 레저가 누구인가.
그가 연기한 다크 히어로 영화는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그의 연기를 본 사람들은, 히스 레저의 강렬한 인상을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대단한 배우이자, 너무 젊은 나이에 죽어 안타까운 인물.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파티 하우스.
히스 레저의 연기 성장을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자주 찾아와 연기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는 했다.
오직 연기의 성장만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
곳곳에, 히스 레저가 연기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보며 한성태는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열망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나도 이런 곳을 만들고 싶다.’
오직 연기를 위한 장소.
연기에 진심이 사람들을 모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연기만을 위해 살아간, 그를.
한성태는 닮고 싶어졌다.
[‘천의 얼굴’이 당신이라면 불가능할 게 없다며, 미소를 짓습니다.]더 열심히 연기해야 하는 이유가 늘어났다.
* * *
이틀이란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고.
한성태는 파티장의 입구에 서 있었다.
도미닉의 집 옆으로 배우들이 끌고 온 차가 나열되어 있었다.
유명 브랜드의 차들을 보며 한성태는 ‘나도 언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뚜벅이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매니저가 있다고는 해도, 그를 항상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거고.
무엇보다 ‘폭주’를 찍으면서 자신의 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성태야, 긴장하지 마. 어차피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니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한성태의 감상도 깨졌다.
잔뜩 긴장한 채 자신을 걱정하는 정두식의 모습에 한성태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보다는 형이 더 긴장한 거 같은데요.”
“그래? 이게 청심환을 먹었는데도 가라앉지가 않네.”
“너무 긴장하지 마요. 형 말대로, 결국 같은 사람들이니까.”
한성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파티장 안으로 향했다.
만일의 상황을 위해, 매니저도 한 명 동행할 수 있는 파티였기에, 한성태는 두말없이 바로 정두식을 데려왔다.
그렇게 도착한 파티장의 안.
‘생각보다 평범하네.’
도미닉의 파티는 호화스럽지 않았다.
일반 가정집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고, 그 사이를 유명인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게 전부.
한성태가 생각하는 그런, 호화스러운 파티가 아니었다.
평범하게 아는 사람들을 불러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듯한 광경.
그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민소매 셔츠를 입은 도미닉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한,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환영해줘서 고마워요, 돔. 제가 돔의 파티도 다 오고 너무 영광이네요.”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요. 가볍게 대화하고, 편하게 쉬고 가면 되니까요.”
“네,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도미닉이 즐기라고 말하며 한성태의 팔을 툭툭 두드리고는, 다른 사람 마중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등은,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게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 그쪽이 돔이 말한 한인가 보네요.”
한성태는 걸음을 옮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도미닉이 만들어준 인맥을 쌓을 기회.
한성태는 그 기회를 놓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정두식은 다른 배우들의 매니저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들고 있던 맥주도 절반 정도 비워졌을 무렵.
사람들과 대화를 끝내고 잠시 쉬기 위해 창가에 앉은 한성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도미닉과 레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티는 잘 즐기고 있어요?”
“네. 덕분에 재미있게 잘 즐기고 있어요. 레티도 반가워요. 오늘 진짜 예쁘네요.”
“고마워요. 한도 멋있어요.”
도미닉의 말에 답하고, 레티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성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호의가 깃들어 있었다.
도미닉이 한성태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손에는 방금 막 꺼냈는지 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혀 있는 맥주가 들려 있었다.
“사실 오늘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상황이 따라주지 않네요.”
“소개요?”
“네, 저처럼 차를 좋아하는 아이인데. 한과도 마음이 잘 맞을 것 같았거든요.”
도미닉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본능의 질주’에 나온 배우들은 이곳에서 다 만났으니까.
더 만날 사람이 없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겠죠. 우리가 오늘만 만날 것도 아니고.”
“……그렇네요.”
도미닉의 말에 한성태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그는 도미닉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모르지 않았다.
오늘만 만날 게 아니라는 건, 도미닉이 그와 언제든 만날 의향이 있다는 걸 밝히는 거였으니까.
‘좋네.’
파티에 온 목적을 달성한 듯한 느낌.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그리운 얼굴들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좋다며 미소 짓습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아직 보지 못한 얼굴에 조금 아쉬워합니다.]신의 메시지를 보며 맥주를 홀짝이던 한성태는 도미닉과 대화를 이어갔다.
“한의 연기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거 같아요.”
“제 연기가요?”
“매번 볼 때마다 새로워지거든요. 마치,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몸에 담겨 있는 것처럼요.”
“아…….”
도미닉은 전 세계적으로 대배우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만큼 경험도 많고, 연륜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의 시선, 말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배우니까요. 그들 모두가 제 스승인 셈이니까,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돔도 제 스승 중 하나예요.”
“하하하. 재미있는 말이네요. 모든 배우가 스승이라……. 나쁘지 않아요. 맞죠. 다른 이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게 있으니.”
도미닉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부아아앙!
어디선가 배기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절로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드는 소리.
“아, 왔네요.”
도미닉의 말에, 한성태는 반사적으로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도로에 스포츠카 한 대가 나타났다.
하늘색의 늘씬한 차.
집 앞에 주차된 그 차에서 한 사람이 내리는 게 보였다.
긴 생머리가 상당히 인상적인 그녀의 모습에, 한성태의 표정이 묘해졌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그녀의 모습을 보며 탄식을 흘립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그녀를 보며 많이 컸다며, 작게 중얼거립니다.]신 하나의 격렬한 반응과 함께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
한성태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