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6
16화
* * *
“떴다!”
연극영화과의 1학년이 황급히 강당 안으로 뛰어오며 소리쳤다.
“이미 왔다.”
그 목소리에 이어 이혜윤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인 것 같은데?”
“굳이 여기까지 따라와야겠어?”
“왜. 얼굴 한번 보고 좋잖아. 나한테 연극 보라고 한 사람은 너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온 거 다 알게 될 텐데. 순서가 무슨 상관이야.”
이혜윤은 혼자 있지 않았다.
외지인 두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어……. 저 사람은.’
한성태는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뚜벅뚜벅.
일정한 간격으로 걷는 모습과 근엄함 얼굴.
매우 익숙한 그 얼굴은 한성태의 기억 속 모습보다 많이 젊어져 있었다.
“연극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네,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오늘은 간단하게 리허설만 하는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해요, 편하게.”
이혜윤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의 옆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아, 여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지 않아?”
“응, 뭔가 익숙해.”
이혜윤과 함께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인물.
“신경 쓰지 말라니,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래도 소개는 해줘야지.”
“널 소개해봤자 긴장밖에 더 해?”
“겨우 이런 거에 긴장해서 못할 거면, 연기를 안 하는 게 나.”
그의 말에 이혜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쪽은 최예찬 감독님. 오늘 리허설을 봐주실 거예요.”
“……최예찬?”
“최예찬 감독님이라면, 사랑의 덧니 연출하신 분이잖아?”
최예찬이라고 소개를 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학생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최예찬 감독.
그는 최근에 누적 관객 수, 320만을 달성한 사랑의 덧니라는 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서.
현재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영화감독 중 하나다.
‘나중에 800만 작품을 하나 더 연출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최예찬의 등장은 배우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을 술렁이게 만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와……. 박창식 눈빛 봐라. 엄청 살벌한데.”
“최예찬 감독님이 오셨으니까. 저런 반응도 이해되지.”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결의에 찬 박창식의 모습은 조금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서 남을 깔아뭉개던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아이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박창식을 바라보기도 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을 위한 판이 생겼다며 만족스러워합니다.] [‘천의 얼굴’이 영향력 있는 감독의 눈에 들 좋은 기회라고 말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이라면 어렵지 않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한성태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면 된다.
‘벌써부터 기대되네.’
자신의 연기를 보며 최예찬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가 되었다.
“여기서 페이드인하고…….”
서커스 사회자 역을 맡은 학생이 무대에 올라가자, 무대가 차츰 밝아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그들의 이야기’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 * *
―지금부터 지상 최대의 쇼가 펼쳐집니다!
서커스의 사회자 역을 맡은 학생이 두 팔을 벌리며 연기한다.
그의 모습에 관객 역을 맡은 학생들이 환호성을 보이며 박수 친다.
‘조금 긴장한 것 같은데.’
무대 밑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성태는 연기하는 사회자의 모습이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무대에 조용히 퍼져나갔다.
방금까지 무대에 있던 학생들이 한성태의 옆을 지나치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끝났다는 생각에 나오는 안도의 한숨.
한성태는 그들을 슬쩍 바라보고는 무대 위, 미리 정해두었던 자리로 갔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제대로 한번 보여주자고 말합니다.]그럴 생각이다.
―나는야 어릿광대.
사람들에게 웃음을 팔기 위해 움직인다네.
모두가 나를 보며 웃고 있지.
한성태는 피에로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
또각또각.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에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흥, 흥흥. 흥흥흥.”
또각이는 구두 소리와 함께 피에로는 조명 아래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환하게 웃고 있는 피에로.
“어잇쿠!”
쿵.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그가 넘어졌다.
의도적인 행동.
―하하하!
그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탁, 타다닥!
요란하게 발로 무대를 두드리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과 함께 춤을 춥니다.]피에로는 춤을 춘다.
우스꽝스러운 춤이었고 비웃음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모습이었다.
「피에로는 비웃음을 받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마구 굴린다.」
대본에서 나오는 피에로의 설명은 간단했다.
비웃음을 받기 위해 몸을 굴린다.
한성태는 그 지문을 보고 피에로가 어째서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지 고민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피에로는 서커스단장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단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을 망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까지 만든 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피에로에게는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는 입양 딸이 있다.]
혈육이 아니지만, 마음으로 기른 딸이 있었다.
유나.
그녀는 피에로를 따라 서커스단원이 되었다.
하지만, 딸이 서커스단원이라고 해서 그가 어릿광대가 될 이유는 없었다.
이유가 필요했지만…….
문제는 피에로에 대한 설명이 더 없다는 것.
그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천의 얼굴’이 서사가 부여 됨으로서 배역이 살아나는 것이라 말합니다.]과거, 피에로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그 가족들이 죽었다는 내용.
자존심이 강한 그였기에 가족들이 죽었으며, 그렇기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한성태는 피에로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쿠당탕.
한성태의 발이 꼬였고 그는 넘어졌다.
아프지 않았다.
[‘천의 얼굴’이 당신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습니다.]피에로가 되기 위해 집중할수록.
한성태로서의 감각이 지워졌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그들의 메시지가 점점 희미해지며, 한성태는 피에로의 세상을 엿보았다.
‘나는 아프지 않아.’
광대는 항상 웃고 있다.
얼굴에 한 분장은 언제나 감정을 숨겨주었다.
치욕스러움, 슬픔, 힘듦.
그 모든 게 분장 하나로 감춰졌고, 언제나 웃는 피에로가 남아 있게 되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을 향해 묘한 미소를 짓습니다.]묘한 기분.
한성태로서 연기하고 있는데, 광대가 된 것만 같았다.
―저 사람 봐, 너무 웃겨!
관객들의 웃음소리.
―엄마,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있는 거예요?
―못 배워서 그래. 너도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네!
그를 향해 멸시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피에로는 한 가지 메시지를 보았다.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온 존재가 보내오는 메시지를.
―하하하!
사람들이 웃고 있지만, 기쁘지 않았다.
광대였으니까.
저 웃음이 곧 그를 향한 비웃음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탁, 타다닥!
그래서 그는 춤을 추었다.
일부로 넘어지고, 동물을 흉내 냈다.
그의 모습이 망가질수록 사람들의 환호는 깊어졌고.
환호가 깊어질수록 어둠도 짙어졌다.
파앗!
그때 빛이 들어왔다.
파르륵!
리듬 체조를 하듯이 리본을 화려하게 휘두르며 등장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피에로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내 딸.’
무대에 올라온 유나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와아아아!
그녀가 휘두르는 리본에 사람들이 감탄을 보였다.
조롱거리가 되는 피에로와 다르게 유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피에로가 자신을 낮출수록, 그의 딸은 높아진다.
“후우…….”
무대에서 내려온 피에로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피에로는 웃고 있었다.
“야. 너, 뭐냐?”
김민석의 목소리에 피에로가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던 피에로의 모습은 어느새 한성태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 뭐였지?’
조금 멍한 느낌.
“민속촌 갔다 온 게 효과가 있기는 했나 봐? 너 진짜 광대 같았어.”
“……그래?”
“그냥, 장난 아니었어.”
김민석의 칭찬에 한성태는 미소를 지었다.
방금 자신이 한 연기가 괜찮았다는 사실을 그도 인지하고 있었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천의 얼굴’이 나름 준수한 연기였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이 순간이지만, ‘그’를 보는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괜찮았지만, 조금 더 경박하게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좋은 연기였다고, 연기의 신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느낌 좋았는데.’
그래서일까.
무대를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이, 자신의 차례가 끝났다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기회가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야. 쟤가 아까부터 너 노려보고 있는데?”
김민석과 함께 의자에 앉던 한성태는 자신을 빤히 노려보고 있는 박창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한성태의 시선에도 박창식은 계속해서 노려봤고, 이내 무대에 올라갈 차례가 되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뭐야?”
한성태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박창식이 자신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쳐다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관심이 없기도 하고.’
뭐, 박창식이 나쁘게 생각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한성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유나 역을 맡은 민예림과 연기하는 박창식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저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작에 성공하는 거였는데.’
박창식의 연기를 보며 생각하던 한성태는 이내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이런 생각이 의미 없게도, 그는 세상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재능을 얻은 상태였다.
* * *
‘미치겠네.’
박창식은 조급한 기분이 들었다.
‘왜 저런 새끼를 보고 있는 거지?’
그는 최예찬을 보고 있었고, 최예찬은 한성태를 보고 있었다.
한성태가 올라간 후로, 최예찬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더 연기를 잘하는데.’
연기는 자신이 훨씬 잘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성태가 아닌 자신을 보는 게 정상인데.
“내가 이상한 건가? 나는 왜 박창식보다 한성태가 연기를 더 잘하는 거 같지?”
“잘하는 건 잘 모르겠고. 훨씬 더 안정감이 있다는 건 인정.”
“그러니까, 쟤가 원래 저렇게 연기를 잘했나? 저번에 연습했을 때보다 더 발전한 느낌임.”
“뭐……. 한성태가 열심히 하는 건 다들 알고 있긴 하잖아. 나는 그렇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친구들의 시선까지 바뀌었다.
‘저 연기가 나보다 더 안정감이 있다고?’
박창식은 한성태의 연기를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연기가 모든 부면에서 더 나았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한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박창식이 가진 자만심은 그에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들었다.
“예림아, 너는 어때? 너는 같이 연기하잖아.”
“아……. 나는……. 연기는 당연히 창식이가 더 잘하는데.”
‘그래 저게 정상이…….’
“그래도 편한 건 성태가 더 편하기는 해. 나를 배려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뭐? 눈이 삐었나.’
이제는 아이들의 말조차 좋게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연기가 뛰어나니, 질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거야.’
아무리 연기를 공부한다고 해도 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애들이 뭘 알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최예찬은 그를 봐주고 있지 않은 걸까.
박창식은 한성태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대책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