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화려한 조명이 한성태를 감싼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조명이 따라왔고, 그 뒤로 로저스가 걸어왔다.
한성태는 소파 안쪽에 앉았고, 그 옆으로 로저스가 자리를 잡았다.
“한과 로저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네요.”
그들의 앞에는 덕 캐리가 있었다.
더 라이트 쇼의 10년 차 MC이며, 재치 있는 말과 유머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회자.
그는 현란한 말로 연예인들에게 민감한 질문의 답을 받아내기로 유명하다.
특히 배우들에게는 스포일러를 매우 잘 끌어내, 배우들이 가장 경계하는 사회자이기도 했다.
‘덕 캐리가 사회자니, 그렇게 걱정한 거겠지.’
데이비드가 스포일러를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는 모습이 생각난 한성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충분히 걱정할 수 있는 상황.
한성태는 그의 걱정을 현실로 만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로저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좋아 보이네요.”
덕 캐리의 질문에 로저스가 편안하게 앉은 채 입을 열었다.
“잘 지내고 있었죠. ‘폭주’의 촬영도 즐거웠고, 이렇게 더 라이트 쇼에 다시 한번 나올 수 있게 되었는데. 어떻게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하하하. 그렇죠. 저희도 로저스가 다시 한번 나와줘서 기뻐요.”
덕 캐리의 질문에 로저스는 웃으며, 여유 있게 대답했다.
토크쇼에 많이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베테랑의 모습이다.
그의 재치 있는 대답에 방청객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만족하는 대답을 하는 게스트, 그게 로저스였다.
로저스에게 질문하던 덕 캐리의 시선이 한성태에게 돌아갔다.
“너무 저희끼리만 이야기했네요. 로저스 옆에 있는 분을 소개시켜 줄 수 있나요?”
“한이요?”
“네. 아, 오해할까 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말을 하게 되면 팬심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요. 하하. 로저스, 대신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덕 캐리의 말에 로저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한성태에게 향했고, 한성태도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 제 옆에 앉은 배우는 한성태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넘어온 대단한 배우죠. 제가 사귄 몇 안 되는 좋은 친구입니다.”
“로저스, 대단하다는 말을 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
“저는 대단한 정도가 아니잖아요. 저랑 같이 연기했으면 알 텐데.”
“아.”
한성태의 말에 로저스가 한 방 먹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성태는 카메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방금 로저스가 설명해준 것처럼, 한성태라고 합니다. 편하게 한이라고 불러주세요.”
“이야. 한, 말을 엄청 잘하시네요. 저보다 더 발음이 좋은 거 같아요.”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더 많은 팬을 만나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필수니까요.”
“팬심이 대단하네요.”
“그만큼 팬들도 저를 사랑해주시잖아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어눌한 대사를 치면 얼마나 실망하시겠어요.”
한성태의 대답을 들은 덕 캐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한성태가 토크쇼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성태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도 상상했는데.
한성태는 그런 걱정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기뻐요. 팬분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더 라이트 쇼에 나올 수 있게 되었잖아요.”
“좋네요. 여기서 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가시면 되겠어요.”
“네, 그럴 생각이에요.”
덕 캐리가 웃으며, 한성태와 대화를 이어갔다.
한성태는 여유롭게 덕 캐리의 질문을 받았다.
‘연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어렵지는 않네.’
미리 대본을 받은 상태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성태에게 있어서 토크쇼는 연기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도 연기였으니까.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아무리 봐도 당신은 무대 체질이라며 웃음을 흘립니다.] [‘천의 얼굴’은 토크쇼도 결국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며,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당신이 자신보다 더 인터뷰를 잘하는 것 같다며, 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봅니다.]신들이 응원하는 가운데, 토크는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질문을 했을까.
“이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게 있죠.”
덕 캐리의 말에 방청석에서 반응이 나왔다.
그들이 이번 토크쇼에서 방청객의 자리를 얻어낸 이유.
“자, 폭주의 예고편을 먼저 보고 가시죠.”
그들의 시야에 ‘폭주’의 예고편이 재생되었다.
거대한 스크린을 바라보는 방청객들의 모습.
한성태도 그들처럼, ‘폭주’의 예고편을 보고 있었다.
부아아앙!
침묵 속에서 차가 달려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대의 차가 도심을 질주하고 있었고, 그들의 뒤로 경찰차 십여 대가 따라붙었다.
웨에엥!
사이렌 소리가 도시를 가득 채우는 가운데, 선두에 선 차의 운전석이 클로즈업되었다.
운전석에는 ‘유’가 있었다.
사나운 미소를 지은 채, 핸들을 꽉 붙잡고 있는 그의 모습은 광기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연출 잘했네.’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속으로 감탄했다.
촬영장에서 모니터로 봤을 때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대사가 한 마디도 없었는데, 유는 어느새 스튜디오를 분위기로 압도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이 침묵한다.
“…….”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운전하고 있는 유의 압도적인 모습에 시선을 사로잡힌다.
부아앙!
유가 모는 차 옆으로 또 다른 차 한 대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다니엘이 있었다.
호승심 가득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유와 함께 도로를 전력으로 달렸다.
그들의 차가 스크린을 향해 정면으로 달리고.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예고편이 끝이 났다.
스튜디오에 탄식이 머문다.
그제야 한성태는 예고편에서 아무런 대사도 들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후시 녹음하려고 온 게 아니었나?’
문득 든 의문 하나.
한성태가 미국을 다시 찾은 이유는 더 라이트 쇼 때문도 있지만, 원래의 목적은 후시 녹음을 하기 위해서였다.
촬영장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인해 묻히게 된 대사를 다시 한번 확실하게 녹음하기 위해서.
그런데, 예고편이 먼저 완성되어 있다니.
보통, 예고편이라 하면 후시 녹음까지 끝내고 나와야 정상인데.
‘그때 물어봤어야 했는데.’
워낙 정신이 없어, 데이비드에게 묻지 않은 게 아주 조금 후회가 든다.
그때 물었다면, 제대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왔을 텐데.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해도 늦었지.’
이미 예고편은 공개되었고, 일정은 일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의문은 나중에 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지금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야, 대박이네요. 연출이 무슨…….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아요.”
“감독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죠.”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모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덕 캐리의 말에 로저스와 한성태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조금 설명해주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비하인드가 있었는지.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들은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재미있었겠네요.”
그들의 말을 듣는 덕 캐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방청객 쪽에서도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로저스와 함께 작업하면서 힘들었던 건 없나요?”
“로저스요?”
“네, 그가 좀 독특한 행동을 하기로 유명하잖아요.”
“아.”
그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촬영장에서나, 평상시에 로저스는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을 자주 벌이고는 했으니까.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로저스가 다 좋은데 집착이 조금 심해요.”
“집착이요?”
“네, 그와 친해지고 거의 매일 같이 붙어 다녀야 했거든요. 화장실까지 따라오지 않은 게 다행이죠.”
“귀찮으셨겠네요. 가끔 짜증도 났을 것 같은데. 그 집착 때문에 생긴 비하인드는 없나요?”
덕 캐리의 말에 한성태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슬쩍, 로저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딱히 그런 건 없었네요. 친구니까요. 친구끼리 그런 사소한 일로 다투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한성태의 말에 로저스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성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로저스는 친구다.
미국에서 구한 소중한 친구.
* * *
“너무 잘하는데?”
“그러니까요. 토크쇼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전혀 처음 하는 사람 같지가 않네.”
“로저스보다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성태의 모습을 보며 PD들이 감탄하고 있었다.
토크쇼가 처음이라고 했던 한성태.
그들은 한성태가 실수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실수는커녕 능숙하게 대화를 주도하는 그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모습이 어딜 봐서 토크쇼를 처음 하는 모습이란 말인가.
한성태는 토크쇼에 매우 능숙한 사람이었다.
마치, 토크쇼를 수십 번이고 한 사람처럼.
그가 하는 말은 유머스러웠고 재치있었다.
“덕 캐리의 질문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사람도 처음 보는 거 같아요.”
덕 캐리는 배우에게 곤란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많이 했지만, 한성태는 그때마다 여유 있게 대답했다.
분명 사회자는 덕 캐린데, 주도하고 있는 건 한성태다.
그렇게 토크쇼는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한, 할리우드에 온 기분이 어때요? 한국에서 할리우드로 넘어오는 배우가 많지 않잖아요. 좋으신가요?”
“너무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짜릿해요. 역시 물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죠.”
“할리우드가 큰물이라는 건 한국은 작은 물이다? 마치, 바다와 연못처럼?”
“한국이 할리우드보다 작다는 건 부정할 수 없죠. 하지만, 비유가 잘못된 거 같아요. 굳이 비유하자면 바다와 강이죠. 언제든지 바다로 갈 수 있는 강이요. 당장 K―POP만 하더라도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잖아요. 배우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덕 캐리의 여러 곤란한 질문에도 한성태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에 덕 캐리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짓궂은 질문을 해도 한성태가 넘어올 것 같지 않았으니까.
“어느새 마지막 질문이네요. 본능의 질주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로저스부터 이야기해주실래요.”
“팬분들에게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그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저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로저스의 진심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의 말을 듣는 덕 캐리의 입가에도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로저스의 말이 끝나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성태에게 향했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한성태는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저 질문을 질문지로 봤을 때부터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이 대답 말고는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아요.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인 거 같네요.”
한성태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숨을 쉬었다.
그의 입이 다시 열리고.
“It’s been a long day without you my friend.”
어, 어어!
방청객이 소란스러워졌다.
‘본능의 질주’의 팬이라면, 결코 모를 수가 없는 노래가 있다.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한 사람을 기리는 노래.
그 노래가 지금 한성태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촬영장이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