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PAN 엔터테인먼트 배우 2팀의 회의실은 지금 한창 열띤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회의실에는 둥근 책상을 기준으로 한성태와 정두식, 민나정이 앉았다.
그들의 회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한성태의 첫 사인회를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가’였다.
“지금 우리 성태 인기를 생각하면 잠실을 빌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두식 씨, 그곳 좌석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하는 거죠?”
“당연하죠. 그래도 성태라면 다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식 사랑도 정도껏 해야 하는 겁니다.”
정두식의 의견을 들은 민나정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금 정두식이 말한 잠실은 잠실실내체육관으로 이만 명이나 되는 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체육관이다.
인기 있는 아이돌이나 겨우 채울 수 있는 장소를 말하고 있으니, 민나정이 답답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두식 씨가 지금 우리 한 배우 첫 사인회라 들뜬 거 같은데, 좀 진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하는 건 사인회를 열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거지, 무작정 규모를 크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부장님 말이 맞는 거 같아요. 괜히 잠실 빌렸다고 삼 분의 일도 채우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한성태는 현실적으로 상황을 바라보았다.
‘백년초’, ‘하루’, ‘폭주’ 등으로 인지도를 얻은 건 사실이다.
그게 이만 석의 자리를 채울 거라는 보장은 되지 않았다.
배우가 아이돌보다 파워가 부족한 것도 사실인데, 아이돌 중에서도 상위에나 있는 그룹이나 겨우 채울 장소를 빌리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천 석이나 채워지면 다행인 거겠지.
‘그런데, 내가 사인회를 해도 되는 걸까?’
한성태는 그러한 것들보다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작품 활동이 바쁘다는 이유로 사인회와 같은 대외적인 행사를 잘 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건 핑계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촬영하면서도 예능이나, 다른 방송에 나간 적도 있으니까.
그가 사인회를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팬들을 마주할 자격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자신에게 팬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믿기지도 않았다.
어쩌면, 정두식과 민나정이 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이 아닐까.
[‘천의 얼굴’이 당신은 너무 생각이 많은 게 문제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감사해야 한다며, 당신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자신감이 없을 때는 운동이라며, 당장 나가 체육관으로 가자고 제안합니다.]상념은 성좌들의 메시지와 함께 깨져버렸다.
고민 따위는 의미 없다고 하는 그들의 메시지를 보며, 한성태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한 배우?”
“뭐 재밌는 거라도 생각났어?”
그의 반응에 옆에 있던 두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한성태는 그들을 마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뭐든 말하세요. 저희는 준비되었으니까.”
그의 말을 들은 민나정이 자세를 바로 한다.
옆에 있던 정두식도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굿즈를 만들고 싶어요.”
자신의 연기를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선물을 말이다.
* * *
회의는 1시간이나 더 이어졌다.
한성태가 굿즈에 대해 말을 꺼내고, 어떤 굿즈를 만들 건지.
제작은 어떻게 할 것이며, 비용 처리는 어떻게 할 건지도.
회의 속에서 한성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걸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을 말했고, 그렇게 꺼내진 아이디어만 수십 개.
아마, 민나정에게 미팅 약속이 없었다면, 회의는 몇 시간이고 더 이어졌겠지.
“조심히 들어가요.”
“네, 부장님. 오늘 감사했습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네.”
한성태가 고개를 숙이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그를 배웅하고 돌아온 민나정이 의자에 털썩, 소리 나게 앉았다.
툭.
그녀가 자신의 앞에 있는 태블릿 PC를 건드렸다.
태블릿 PC 화면에는 한성태가 직접 적고 그린 메모들이 가득하다.
가면의 형태를 닮은 그림과 그 옆에 적힌 메모들을 보며 민나정이 실소를 흘렸다.
‘사비로 굿즈를 만들겠다라.’
사인회의 이야기가 나오고 한성태는 자신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말했다.
태블릿 PC에 적어가면서까지 말하는 그의 모습에 정두식과 그녀도 진지하게 집중하고 들었다.
그렇게 나온 것 중 하나가 바로 굿즈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한성태는 자신이 직접 팬들에게 선물하기를 바랐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굿즈였다.
그것도 자신의 사비로 제작하는 굿즈.
그런데 그 굿즈의 형태가 상당히 묘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
“확실히 나쁘지 않단 말이지.”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나정이 태블릿 PC에 적힌 것들을 전부 저장하고 있을 때였다.
우웅.
그녀의 스마트폰이 진동이 토해내며 하나의 이름이 생겨났다.
[이승현]그 이름을 본 민나정의 표정이 묘해졌다.
1년간 잠수를 탔던 PAN 엔터테인먼트의 간판 배우이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는 인간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드라마를 찍고 나서 바로 1년 동안 잠수를 타더니,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항상, 이렇게 잠수를 타고 연락할 때면 일을 몰고 올 사람이니까.
―누나, 나 이제 한국 가려고 하는데, 비행기 표 좀 보내줄 수 있지?
여전히 제멋대로인 말투를 보며 민나정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벌써 걱정이 되는 그녀다.
* * *
사인회의 회의가 끝나고, 한성태는 시간이 지나 청춘 마이웨이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주, 조연 배우들을 모아 연습하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다.
사무실에는 연재훈과 박예은, 김소율과 김현대 등이 미리 와서 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성태 씨,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며 인사하는 한성태의 모습에 사람들이 웃으며 다가왔다.
한성태는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김민석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민석이 의자를 당겨 앉는 한성태의 팔을 툭, 치며 말을 건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뭘 늦게 와. 이십 분이나 일찍 왔는데.”
“한 시간은 더 일찍 왔어야 할 거 아니야. 나 혼자 뻘쭘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힘들기는, 무슨. 다들 좋은 사람들이야.”
“나도 알지. 그래도 어색한 걸 어떻게 하라고.”
“야, 감독이란 놈이 왜 이렇게 숫기가 없어. 정신 차려. 이제 네가 저 사람들을 책임져야 해.”
한성태는 김민석과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간단하게 대사 한번 맞춰볼까요?”
연재훈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연습을 위해 모인 장소다. 수다를 떨기 위해서 모인 장소가 아닌 만큼, 본래 생각했던 취지대로 움직여야 한다.
한성태는 자신의 앞에 놓인 대본을 펼쳤다.
청춘 마이웨이는 가수로서 꿈을 품은 사내와 친구들의 모습을 담아낸 이야기다.
그 작품에서 한성태는 주연인 ‘박세준’ 역을 맡았다.
“가볍게 연습하는 거니까, 다들 긴장하지 마시고요.”
“챕터 1부터 연습해봐요.”
연재훈의 말을 김민석이 이어받았다.
그의 행동에 연재훈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청춘 마이웨이의 연출은 김민석이지, 연재훈이 주도해서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김민석의 진행 속에서 한성태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연습했던 박세준의 모습이 그를 통해서 나왔다.
달칵.
박세준이 마우스의 버튼을 눌렀다.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춰 헤드셋을 낀 그의 귀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말했어요. 당신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박세준은 학교 컴퓨터실에서 미튜브를 보는 중이었다.
열창하는 가수의 모습이 담긴 그 영상은, 박세준이 하루에도 대 여섯 번은 본 동영상이다.
벌써 수백 번은 본 영상이지만, 박세준은 단 한 번도 질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질리기는커녕,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우리는 항상 이런 걸까요. 이제는 나아가고 싶습니다.
노래를 들으면 저절로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와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나도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얼마나 영상을 봤을까.
드드륵.
컴퓨터실의 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타깝게도 박세준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터벅터벅.
가까이서 인기척이 느껴질 때까지도 박세준은 온전히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탁.
그런 그의 머리를 한 사람이 소리 나게 때렸다.
“악!”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박세준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뭔데.”
“뭐가 뭔데야. 점심시간 끝난 거 몰라? 선생님이 너 찾아오랬다고!”
“아, 미안해. 영상 보느라 점심시간 끝난 것도 몰랐어.”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박세준의 소꿉친구, 이미희가 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녀의 불만 가득한 시선에 박세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재생되는 영상을 바라보는 그의 손길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컴퓨터를 끄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미희가 툭 하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렇게 노래가 좋냐?”
“좋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인데.”
“그러면 부르면 되잖아.”
“그러고 싶기는 한데. 노래 부를 만한 장소가 없어서. 거리공연을 하기에는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가수는 할 수 있겠어?”
“하하. 그래도 이왕이면 제대로 된 무대에서 하고 싶은걸.”
박세준의 말에 이미희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박세준이 걸음을 옮겼다.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교실이 있는 사무실로 가야 한다.
2층을 올라갔을 무렵, 이미희가 그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받아.”
“이게 뭔데?”
박세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꼬깃한 종이를 펼쳤다.
그건 포스터였다.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 축제 때 무대를 채워줄 학생을 모집한다는 포스터.
“…….”
“교무실에 있는 거 하나 가져왔어. 노래 부르고 싶으면, 거기 나가면 되잖아. 설마 학교 무대라서 싫다는 건 아니지?”
“아니야. 절대, 아니야. 고마워.”
그의 감사 인사에 이미희가 고개를 휙 돌린다.
“고마우면, 나중에 성공해서 갚아.”
“응.”
고개를 끄덕이는 박세준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한다.
포스터를 쥔 그의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우웅.
한참 이어지던 집중이, 바지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깨져버렸다.
한성태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전화가 와서 그런데 받고 와도 될까요?”
“그러세요. 어차피 슬슬 쉬기는 해야 했으니까.”
“편하게 받고 와요.”
한성태는 사람들에게 사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급한 연락이 아니라면, 연습을 계속 이어갔을 것이다.
[로저스]하지만, 스마트폰에 생겨난 이름은 연습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의 전화였고, 아무 이유 없이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성태는 사무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로저스, 무슨 일이야?”
―어, 한, 잠시 전화 괜찮아?
“응, 잠깐은 괜찮아.”
―한, 우리가 한국 내려가는 거 알고 있어?
“어, 리한테 들었어.”
―다행이네. 그래서, 그런데 혹시 너희 집에서 신세 좀 질 수 있을까?
“……응?”
너무 갑작스러운 말에 한성태가 멈칫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전화를 받으며 한성태가 눈을 깜빡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