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어서 오세요.”
PAN 엔터테인먼트의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그를 향해 웃으며 말한다.
한성태도 미소로 인사를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사인회와 관련해서 의논하기 위해 회사를 찾았다.
웅성웅성.
복도는 배우 2팀의 사무실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로 시끄러워져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이러면 안 된다니까요.”
“여기 와서 고집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누가 왔길래 이렇게까지 소란스러운 걸까.
한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럽게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사내가 정두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익숙한 사내의 뒷모습을 보는 한성태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 성태 씨 오셨어요?”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직원에게 한성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터벅터벅.
인사를 채 끝내기도 전에 정두식과 대화를 나누던 사내가 다가왔다.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온 사내가 한성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짝다리를 짚은 채 껌을 씹고 있는 사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승현이잖아.’
국내 최고의 배우 중 하나이자, PAN 엔터테인먼트의 간판 배우. 한성태에게는 대선배 격인 사람이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배우, 한성태입니다!”
“…….”
한성태의 인사에도 이승현은 반응이 없었다.
그를 뚫어지라 바라보던 이승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얘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하는 그 모습에 한성태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승현의 평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
이승현에게는 두 개의 별명이 있다.
너무 연기를 잘해 ‘신들린 연기자’라는 별명이 붙었고, 방랑 기질과 미친놈 기질이 있어 ‘방랑하는 별종’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이승현이란 사람은 생각을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작품을 찍다가도 사라지고, 1년이 넘게 잠적을 하다 나타난 적도 있다.
야생을 느껴보고 싶다며 무인도에서 반년 동안 야생인처럼 생활한 건 십 년이 지난 미래에도 두고두고 화자가 되었을 정도다.
“재미없어 보이는데.”
이승현과의 첫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성태는 그가 사무실을 나가는 걸 보며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상상 그 이상이다.
“성태야, 미안하다. 먼저 연락을 줬어야 했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정신이 없었어.”
“아니에요, 형. 괜찮아요.”
이승현을 상대해야 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걸 뻔히 아는 상황이다.
한성태는 정두식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 *
“부장님은 미팅이 있으셔서 못 오실 거야.”
회의실에 앉자마자 정두식이 말을 걸어왔다.
민나정은 너무 바빠 시간을 내지 못했고, 결정권을 정두식에게 주었다는 말까지.
한성태는 부장이 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인회 장소와 날짜가 정해졌고, 그 이후의 일은 그녀가 없어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
“저번에 문자로 알려준 거 기억하지? 소극장 빌린 거. 딱 백 명만 받을 거야.”
“백 명이면 딱 적당하겠네요.”
“응, 무대도 상당히 괜찮아. 날짜도 잡았고. 그날 경호해줄 업체와도 이야기가 끝났어.”
“고생했네요. 고마워요, 형. 신경 써줘서.”
“내 배우 내가 신경 써야지 누가 신경 쓰냐. 아, 그래서 너 사비로 제작한다는 거 말이야. 업체 알아봤는데, 문자로 링크 보냈으니까 확인해 봐.”
“네, 고마워요. 지금 확인해 볼게요.”
정두식이 보내준 링크는 소품을 제작하는 업체의 홈페이지가 담겨 있었다.
가면을 제작하고 렌티큘러를 제작할 수 있는 업체였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퀄리티를 확인한 한성태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서렸다.
“여기 괜찮네요.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여러 군데 찾아보기는 했는데. 거기가 가장 나았어. 다른 곳은 다 비싸기만 비싸지, 제대로 만드는 것 같지가 않았거든.”
“여기만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기는 해요. 가격도 나쁘지 않고.”
한성태는 가면과 렌티큘러를 각각 100개씩 만들 생각이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퀄리티로 만들려면 금액이 상당하지만, 정두식이 알려준 업체는 상당히 저렴했다.
더군다나 대량 주문 시 할인해주는 것도 있어 더 괜찮게 느껴졌다.
“미리 알아봤는데, 가면은 개당 1만 원, 카드는 3만 원이야.”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요. 천만 원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나가지도 않고.”
“자세한 건 다시 전화를 해봐야 알겠지만, 나도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을 찾기는 힘들 것 같아.”
굿즈 거래처는 순식간에 정해졌다.
정두식이 방금 나온 내용을 메모하고 있을 때, 한성태는 왠지 모를 부족함에 미간을 찡그렸다.
가면과 렌티큘러 말고도 하나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형. 키링도 하나 제작하죠.”
“키링? 어떤 거로?”
“백년초의 산신 캐릭터 있잖아요. 그걸로 키링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좋아하겠지. 안 좋아할 팬이 어디 있냐.”
한성태의 의견은 바로 채택되었다.
그렇게 사인회의 굿즈가 확실하게 결정되었다.
회의는 순식간에 끝이 나고, 이제는 돌아갈 일만 남았다.
한성태는 짐을 챙기며, 아까부터 계속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정두식을 향해 말했다.
“형,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응?”
“아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길래요.”
“아, 대표님이야. 너 회사 온 거 알고 저녁 같이 먹자고 하시네.”
“먹어요.”
“그래도 돼? 안 힘들겠어?”
“괜찮아요. 저 체력 좋은 거 알잖아요. 형을 위해서라도 대표님하고 친하게 지내는 게 낫죠.”
“내가 동생 하나는 진짜 잘 뒀네.”
정두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바로 가지는 못하겠네. 한성태는 정두식과 함께 회의실을 나왔다.
저녁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휴게실에서 좀 쉬려던 그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 이승현 씨도 같이 먹을 거야. 그거 때문에 망설였는데, 괜찮다고 해서 다행이다.”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한성태의 표정이 조금 멍해졌다.
* * *
민나정이 자신의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이승현을 바라보았다.
이승현은 바로 앞에 그녀가 있다는 것도 잊었는지 태평하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끼이이익!
―밟아, 밟으라고!
최대로 소리를 키운 스마트폰에서는 폭주의 예고편 정리 영상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
민나정은 이승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제멋대로인 이승현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이승현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그래서 1년 동안 뭐 하고 지냈어?”
“…….”
“또 어디 돌아다닐 생각은 아니지?”
민나정이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의 물음에 이승현이 입을 열었다.
“재미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거 같네.”
질문과는 다른 대답이 들려왔지만, 민나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승현과의 정상적이지 않은 대화 방식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으니까.
“야, 언제까지 그렇게 나돌아다닐 거야. 너는 일 년 동안 연락 한 번 안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너 때문에 내가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아. 간판 배우면 좀 간판 배우답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잖아.”
“뭐?”
“…….”
“하아.”
다시 침묵을 지키는 이승현을 보며 민나정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답답하지만, 어쩌겠는가.
저렇게 멋대로 행동해도 이승현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
연기할 때만큼은 모두가 기겁할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니, 믿음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를 그 누가 미워할 수 있을까.
“그래서 뭐 하고 지냈어. 그건 말해줄 수 있잖아.”
“여행. 친구들도 만났고. 그게 전부야.”
“그게 지금……. 하아, 그래. 그렇다 쳐.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그녀의 질문에 이승현은 자신이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민나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민나정의 반응에도 이승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얘, 뭐 하는 놈이야?”
이승현이 화면 속 한성태의 모습을 가리켰다.
호기심을 잔뜩 품은 두 눈을 보며 민나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궁금한 것만 중요한 저 철없는 행동이 언제쯤 고쳐질까 걱정이 된다.
‘나중에 성태 씨한테 한약이라도 하나 지어 줘야겠네.’
이승현의 집착이 얼마나 심한지 알고 있는 그녀는 멀리서나마 한성태를 응원할 뿐이었다.
* * *
치이익.
불편한 침묵 속에서 식당 직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기를 뒤집었다.
장판석과 이승현 그리고 한성태가 있는 자리다.
직원들끼리 서로 가겠다며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그때 이기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인을 받을 수나 있을지 걱정을 하던 그녀에게 장판석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제가 구울 테니까, 그만 나가세요.”
“네, 네!”
대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직원이 후다닥 룸을 빠져나갔다.
세 사람만 남은 자리에는 여전히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다.
신들조차 불만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장판석이 먼저 침묵을 깼다.
“한 배우님, 이번에 새로 들어가는 작품은 준비 잘되고 있습니까?”
“네. 촬영 준비도 잘 되고 있다고 들었고, 지금은 배우들끼리 모여 연습하고 있습니다.”
“한 배우님이야 제가 따로 말을 안 해도 너무 잘해주시니 걱정이 없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정 팀장을 통해서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한성태는 장판석과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청춘 마이웨이’부터 사인회까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이승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기만 먹고 있었다.
그래도, 소속사 대표를 두고 있는데 저건 너무 무례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물론, 굳이 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을 보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스마트폰을 보고만 있는 이승현의 모습에 한성태는 장판석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행동은 회사 대표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한성태의 걱정과는 별개로 장판석은 이승현의 행동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우웅.
어색한 공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을 때, 장판석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아, 이거 어떻게 하죠.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난처한 얼굴로 말하는 대표의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장판석이 가면, 한성태도 마음 놓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계산은 해놓고 갈 테니까, 편하게 드시고 오시면 됩니다. 두 분이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시고요. 같은 소속사 배우들끼리 서로 친해지면 도움도 줄 수 있고 좋잖아요.”
“네, 감사합니다.”
장판석이 나가고 한성태도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아직 고기가 많이 남기는 했지만, 여기서 더 먹어도 속이 얹히기만 더할까.
한성태가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너, 뭐 하는 놈이야?”
갑작스러운 이승현의 말에 한성태의 몸이 멈칫거렸다.
그는 고개를 돌렸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이승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