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한성태가 의뢰한 굿즈도 제작에 들어갔고, ‘청춘 마이웨이’의 촬영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천의 얼굴’이 좋은 연기였다며, 당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빠른 성장을 보며 감탄을 흘립니다.]시간이 흐르고, 촬영하면 할수록 한성태의 연기도 좋아졌다.
촬영장에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한성태,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연기의 퀄리티가 좋아지고 있었다.
이걸 단순히 적응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당신이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해합니다.]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
한성태는 시야를 간지럽히는 메시지를 뒤로 한 채 몸을 돌렸다.
뭐가 어찌 되었든, 연기의 성장은 좋은 일이었다.
그만큼 훨씬 좋은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인간이 어찌 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성태는 성장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하는 만큼 이뤄낼 수 있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다.
무척이나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한성태의 표정은 마냥 좋지 않았다.
터벅터벅.
무겁게 걸음을 옮기던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서 한 사람이 쫓아오고 있었다.
“……언제까지 따라다니실 거예요?”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승현이라는 배우였다.
같은 소속사의 선배라서 따라다니지 말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한성태의 물음에 이승현은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
이승현이 촬영장에 찾아온 이후로, 매일 전화가 걸려왔다.
밖으로 나갈 때면 어디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도망도 치고, 그만 좀 쫓아오라고 말했지만.
이승현은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회사 선배를 스토커라며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정두식: 성태야, 굿즈 시제품 나왔다고 하는데 내가 따로 받아올까?
정두식에게서 온 문자를 보며 한성태는 슬쩍 이승현을 돌아보았다.
어슬렁거리듯 따라오는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아니요. 같이 가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싶네요.
이승현이 따라오지 못할 상황을 만들면 된다.
한성태의 답장을 본 정두식이 알겠다며, 업체에 전화하겠다고 대답을 보냈다.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을 끈 한성태는 화면의 상단을 가리는 달력을 살펴보았다.
오늘 오후부터 있을 촬영 일정과 미국 친구들이 오는 날짜가 보인다.
답답한 마음은 잠시 사라지고, 그리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뒤에서 빤히 느껴지는 시선을 뒤로한 채 한성태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 * *
이번 촬영 장면은 박세준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조금이라도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가면을 쓰고 길거리를 찾은 상황.
그의 손에는 기타와 음향 기기 몇 개가 들려 있다.
―준비하시고. 들어가겠습니다!
김민석의 목소리에 한성태는 카메라 바깥에서 숨을 내쉬었다.
앞에 단역과 엑스트라 배우들이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레디, 액션!
감독의 목소리와 함께 박세준이 앞으로 나아갔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가운데 박세준이 걸음을 옮겼다.
카메라가 그의 모습을 담는다.
박세준은 길거리 광장에 선 채 주섬주섬 장비를 세팅했다.
사람들이 그를 힐끔 바라보던 것도 잠시, 그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박세준은 자신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서 굴하지 않았다.
그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거지, 관심을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관심이란 건 부가적인 요소였다.
“후우…….”
장비를 전부 세팅하고 의자에 앉은 박세준이 옅게 숨을 내쉬었다.
무릎에 얹은 기타가 떨리는 건지, 아니면 긴장으로 몸이 떨리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투욱, 툭.
마이크를 두드린다.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팅이 잘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세준이 기타 줄에 손을 얹었다.
―매일매일 달려가!
―그대는 떠나가고 있죠, 우워!
―나는 사랑을 원했어. 호우!
그의 주변에서 길거리 버스킹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밴드가 있었고 혼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무대를 세상에 보였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박세준이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디리링.
기타에서 선율이 나온다.
그의 손가락을 타고 울려 퍼진 선율은 잔잔하게 박세준의 무대를 채웠다.
박세준은 눈을 감은 채 자신이 만들어내는 선율 속에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헤매고 있어요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몰라
그대가 필요해, 내 길을 알려줘
박세준의 목소리가 광장에 퍼져나가는 순간,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멈춰섰다.
“와, 목소리 좋다.”
“오빠, 우리 잠깐만 듣고 가자.”
“음색이 장난 아니네. 가수야?”
사람들이 그를 바라본다.
어느샌가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감상한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박세준은 그들을 보지 못했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는 자신만의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주변 소리도 잊은 채 음악과 한 몸이 되었다.
두근두근.
심장의 박동과 맞춰 그의 손은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었다.
―우와아아아!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았던 눈을 뜬 박세준의 눈에는 학교 강당의 풍경이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희가 알려준 축제에 나가 노래를 불렀었다.
백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그는 즐겁게 무대를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낸 선율에 아이들이 환호를 질렀고, 선율에 맞춰 퍼지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영상을 찍었다.
‘좋았는데.’
박세준은 교복을 입은 채 무대를 만들어내는 자신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음악만을 할 수 있었으니까.
순진하게 꿈을 품고, 순수하게 노래를 불렀던 나날들.
그때가 그리웠다.
나는 지금 달려가고 있네
어디로 가는 걸까
아무도 나의 길을 말해주지 않지
그가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더 이상 학교 강당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던 학생들은 사라지고, 길거리의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
현실로 돌아온 박세준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왜 다 모여 있는 거지?’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사람들의 뒤 풍경이 보이지도 않았다.
언제 이렇게 모인 걸까.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던 박세준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달려가고 있지.
그게 나였으니까.
노래가 끝나고, 줄을 튕기던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가 얼떨떨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박세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이렇게 많은 분이 제 노래를 들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노래를 놓은 지 몇 년이 지났고, 연습하지 않은 그의 목은 예전만 못하다.
“오빠, 너무 잘 불러요!”
“한 곡 더 불러주실 거죠?”
“방금 부른 노래는 뭐예요? 검색해도 안 나오던데.”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던졌다.
박세준은 그들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했다.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제가 부른 노래는 제 자작곡이었어요. ‘희망’이라는 제목이고요.”
그의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말을 토해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하나의 음악처럼 들려왔다.
박세준은 자신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제가 이제 부를 노래는요.
꿈을 포기했다.
가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음악을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즐거운데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의 ‘의문’입니다.
그 노래는 자신에게 하는 노래다.
다시 가수를 해보는 게 어떤지 던지는 질문이다.
지금 이렇게 행복해하는데, 정말로 포기할 수 있겠어?
포기 안 하고 있었잖아.
박세준이 다시 기타를 연주하려 움직일 때였다.
“……!”
카메라를 따라 고개를 돌리던 한성태가 멈칫거렸다.
1초, 2초…….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컷!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한성태의 감정이 무너져 있었다.
김민석은 그 사실을 놓치지 않고 바로 촬영을 멈췄다.
한성태가 NG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라, 사람들도 그를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들이 느껴지는 데도 한성태는 조금도 신경 쓸 수 없었다.
“어……. 당신들이 왜 거기 있습니까?”
한성태는 스태프들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외모의 사람들.
그들이 한성태와 눈이 마주치더니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Hello, Han.”
로저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미국 친구들이 찾아왔다.
* * *
―잠시 쉬었다 갈게요!
‘폭주’ 멤버들의 등장에 촬영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두식이 가져다준 물을 마신 한성태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로저스 일행이 한성태의 주위에 선 채 웃고 있었다.
한성태의 놀란 반응을 보며 즐거워하는 듯한 모습들.
그는 친구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오늘 온다는 말은 없었잖아.”
“서프라이즈!”
“놀랐죠, 한?”
놀랐냐고?
한성태는 그 말에 엄청 크게 놀랐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 오겠다고 한 날은 앞으로 사흘은 남았었으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얼굴을 보고 싶었어. 한, 너는 쉽게 놀라지도 않잖아. 내 서프라이즈 선물이 어때?”
“고맙다, 고마워. 너무 고마워서 한 대 먹여주고 싶은 기분이야.”
“오우. 한, 그러지는 말아줘. 네 주먹이 얼마나 아픈데. 격투 선수들도 놀랄 정도잖아.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장난스럽게 말하는 로저스를 보며 한성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경을 써야 할 건 이승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로저스, 그도 상당히 장난기 가득한 사람이니까.
“한, 이따가 시간 돼?”
“이따가면 언제를 말하는 거야?”
“오늘 새벽 말이야. 같이 영화 보러 가자. 내가 표도 다 사 놨어.”
주머니에서 표 여러 장을 꺼내는 로저스를 보며 한성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는 건, 그만큼 로저스가 자신을 신경 써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성태는 웃으며 로저스의 옆구리를 툭 쳤다.
“억! 너, 지금 나한테 원 인치 펀치 날렸지!”
그래도 얄미운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