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천막을 나온 한성태를 향해 이승현이 대뜸 말을 걸었다.
누군가 들었을 때 시비를 거는 게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말투였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던 한성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좋죠. 사람들 반응이 좋거든요.”
“……아, 최근에 찍은 거?”
“네.”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천막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광장에 설치되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한성태는 주변에 있는 사람이 열 명도 되지 않는 걸 보며 입맛을 다셨다.
‘사람이 많지는 않네.’
그가 밟고 서 있는 땅의 지역은 퀘벡이다.
그것도 예술의 거리라고 불리는 광장.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른 상황에 아쉬움을 느끼며 입맛을 다시던 것도 잠시.
한성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자리까지 움직였다.
팔에 걸친 지팡이가 자유롭게 움직인다.
사람들이 그를 힐끔, 보더니 멈춰섰다.
“어? 저기 봐봐!”
“분장한 거 봐. 대박인데?”
놀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한성태는 지팡이를 양손으로 잡았다.
지팡이의 끝과 끝을 붙잡은 채, 그가 사람들을 향해 몸을 숙였다.
상당히 정중한 행동인데.
“하하하.”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한성태는 숙였던 몸을 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이쪽을 바라보는 이승현이 보인다.
오늘, 이승현은 배우가 아닌 구경꾼이다.
사전에 나온 이야기라 한성태는 당황하지 않고 지팡이를 바로 잡았다.
이승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성태는 차렷 자세를 하며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한성태는 신경 쓰지 않고 머리에 쓴 중절모를 한 번 쓰윽, 만졌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어디 한번 놀아보자며, 지팡이를 듭니다.]성좌와 함께 하는 한성태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 * *
무성 영화하면 항상 거론되는 인물이 있었다.
찰리.
그는 무성 영화의 집시였으며, 위대한 배우다.
한성태가 존경해 마지않는 위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 찰리를 연기하는 중이었다.
탁, 타악!
손에 든 지팡이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쳤다.
“하핫!”
한성태는 경박하게 웃으며 점프했다.
찰칵, 찰칵!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지만, 한성태가 망설이는 일은 없었다.
연기하는데 창피하고 쪽팔릴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한성태는 오히려, 지금 마음이 들떠 있었다.
연기하면 할수록,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세상 그 누구도 당신보다 더 자신을 이해하고 연기할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합니다.]예전 같았으면, 한성태는 자신보다 연기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보기에도, 그의 연기는 대단했다.
찰리, 그 자체가 된 기분.
채플린처럼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보다 더 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애초에, 찰리, 그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그의 연기는 자신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고.
한성태는 벅찬 감정을 억누르며 연기를 이어갔다.
찰리를 연기한다.
짝짝짝.
그의 연기가 끝나면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한성태는 박수를 받을 때 옷을 갈아입었고.
[‘천의 얼굴’이 당신을 향해 미친놈이라며, 헛웃음을 흘립니다.]히스를 연기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연기를 멍하니 바라봅니다.]먼로를 연기했고.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당신의 연기를 보며 주먹을 꽉 쥡니다.]브라이언을 연기했다.
한 사람, 두 사람…….
그의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하는 모든 존재의 연기를 할 것처럼.
“아뵤오옷!”
한성태가 엄지로 코를 쓸며 자세를 취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당신이라면, 후속작을 찍어도 인정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감탄의 연속이었다.
신들은 그의 연기를 보며 박수 보내기를 머뭇거리지 않았다.
한성태는 그 누가 보기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게 성좌들의 모습을 연기했다.
‘기분이 이상해.’
노란색 츄리닝을 벗던 한성태는 후 하고 숨을 내쉬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는 자신이 비치고 있었다.
분명 자신밖에 없었는데.
‘잘못 봤나?’
아주 잠깐이지만, 그가 연기했던 위인들의 형체가 보이는 듯했다.
그들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았다가 뜰 때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건 분명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제 마지막인가.’
한성태는 자신이 곧 사용할 소품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자신의 연기 인생을 함께했던 존재들을 연기했다.
그들이 자신을 관찰하듯이, 한성태도 그들을 관찰하고 공부했다.
그래서 연기하는 건 어렵지만, 어렵지 않았다.
만족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좋은 연기를 했지만.
한성태는 아직도 느껴지는 갈증에 고개를 들었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당신을 가만히 바라봅니다.]최근에 자신을 찾아온 성좌를 바라보며 한성태는 주먹에 힘을 줬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를 연기할 수 없었다.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요.”
반짝이는 성좌의 메시지를 보며 한성태가 작게 중얼거렸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기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연기의 신이 하는 말을 보며 한성태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실망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언젠가 성좌를 연기할 날이 올 테니까.
그때가 너무 기다려지고 기대가 되어서, 오히려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가자.”
작게 읊조린 한성태가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를 연기할 그 날을 위해서, 한성태는 계속 연기해야 했다.
옷을 갈아입은 그가 천막을 나섰다.
* * *
“미친놈.”
사람들 가운데서 연기하는 한성태를 보며 이승현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 속에서, 한성태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세상은 이승현도 알고 있는 것이다.
찰리, 히스, 브라이언 등…….
한성태가 연기하는 그 모든 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들의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연기를 공부한 사람들이 본다면, 매우 건방지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이승현은 그의 연기를 보며 감히 건방지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한성태는 그들이 되어 있었으니까.
‘나보고 신들린 연기자라고? 쟤를 두고?’
지금 자신의 앞에서 그런 망발을 지껄이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다.
웅성웅성.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와 이승현은 고개를 돌렸고.
어느새 한성태의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수십 명.
그 뒤로 늘어선 사람들까지 합치면 백 명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이승현은 그들을 돌아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분명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문 채 한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가까이 갈 수 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한성태에게서 일정한 간격 밖으로 떨어졌다.
침묵 속에서 사람들이 한성태의 연기를 감상한다.
이승현은 그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폈다.
경악, 환희, 멍함 등…….
온갖 감정이 그들의 얼굴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살펴보던 이승현이 다시 고개를 돌려 한성태를 바라보았다.
한성태는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승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건…… 그냥, 내가 배우는 거잖아.’
한성태를 데려올 때만 하더라도 그에게 도움을 많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도움을 받고 배우는 건 자신이었다.
배우라면, 한성태의 연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한성태의 연기는 교과서 그 자체와도 같았으니까.
“미친놈이야, 정말. 도대체 얼마나 연습한 거야?”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이승현은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노력 없이는 재능을 꽃피울 수 없다.
한성태가 지금 보여주는 연기는 더더욱 그렇다.
매일 피나는 노력을 해야 나올 수 있을까 말까 한 연기.
‘이제 연기한 지 4년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4년 만에 저런 연기를 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잡념에 이승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한성태의 연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봐야 한다.
다른 곳에 시선을 팔 시간이 없는데…….
‘저놈들은 뭐야?’
한성태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을 발견한 이승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 * *
―언제까지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거야!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다루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볼에서 뗀 채로 전화를 이어갔다.
―너한테 나가는 돈이 얼마인지 알아? 일 좀 해, 일 좀!
“아, 알았어요.”
―알기만 하지 말고 움직이란 말이야! 어휴, 내가 왜 얘를 받아서.
답답한 듯이 소리치는 상대의 목소리에 다루아가 이를 갈았다.
‘국장만 아니었으면, 진짜 한 대 때리는 건데.’
다루아는 ‘Hot Rush’의 기자다.
연예부인 그녀는 배우들의 스캔들을 찾아 움직인다.
예전에는 특종을 많이 물어왔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너 또 이 갈았지?
“아닙니다.”
귀신 같은 인간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다루아를 향해 국장이 소리쳤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못 물어오면 들어올 생각 자체를 하지 마!
뚝 하고 전화가 끊어지는 스마트폰을 보며 다루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전에야 특종 거리가 넘쳐났지만, 경쟁자들이 넘쳐나는 지금 특종을 찾는 건 베테랑인 그녀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찾긴 찾아야 하는데.’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동하던 다루아는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상당하다.
“행크스라도 왔나? 뭘 저렇게 모여 있지?”
혼잣말하며, 다루아가 사람들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다루아는 자꾸만 드는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조용하다고?’
마치 영화를 보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숨조차 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다루아는 특종의 예감이 들었다.
강렬한 촉에 다루아가 사람들 틈새를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서 연기하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그녀도 아는 인물이었다.
‘유잖아?’
폭주의 한성태, 그가 퀘벡까지 와서 연기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연기가 넋을 잃게 만든다.
다루아는 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영상을 찍었다.
이 영상을 푼다면 세상 전체가 난리 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다루아는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 슬금슬금 한성태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자신처럼 한성태에게 다가가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저 사람이 왜 저기서 나와?”
세계 최고의 영화사 데미안의 디렉터, 조시가 한성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