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
2화
* * *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을 바라봅니다.]게임에서나 볼 법한 반투명한 푸른색 창이 보였다.
게임도 아니고 현실에서도 보기 힘든 메시지.
하지만, 한성태의 눈에는 그 메시지가 들어오지 않았다.
“야, 나 어제 승급했다? 엄청 빡세게 구름.”
“오! 그럼 지금 티어가 어딘데?”
“실버!”
“에라이, 실딱이 새끼.”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대학생 시절 강의를 들었던 강의실의 풍경이 보였다.
주마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감각.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 차에 치여 죽었는데.’
그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죽었어야 할 자신이 버젓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에 치이고 도로를 뒹굴던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죽었어야 정상이고, 저승이 있다면 저승에 갔어야 정상인 상황.
‘아, 설마 여기가 저승인 건가?’
저승에 가본 적도 없었고, 죽어본 경험도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이 왜 여기 있는 것인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인지.
그 무엇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알 수 있는 거라고는, 그가 있는 장소가 대학생 때 다니던 학교의 강의실이라는 것뿐.
“과제 준비는 좀 했냐?”
“했긴 했는데…… 잘 모르겠다. 교수님이 너무 어려운 과제를 내주셔서. 준비해도 뭐, 제대로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네.”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독백 연기를 해본 적이 있어야지. 혼자서 연습하는데, 와, 상당히 힘들더라.”
앞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제와 독백 연기.
그들의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대화의 주제가 상당히 익숙했다.
과거, 1학년이었던 그에게 주어졌던 교수님의 과제.
어쩌면 그의 인생에 기회가 될 수 있는 과제였지만, 한성태는 그 기회를 제대로 붙잡지 못했었다.
‘이때…… 한창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버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었지.’
가뜩이나 부족한 수면 시간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었지만.
그 덕분에 교수님이 준 과제를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덕분에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지.
드르륵.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을 때, 강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혜윤 교수님.’
단상에 올라서는 그녀를 바라보는 한성태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가장 친한 친구인 김민석의 어머니이자, 한국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는 한 사람.
대학교 시절, 한성태를 바른길로 갈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분.
은사님이란 말을 쓴다면, 이혜윤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없겠지.
“출석 체크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름 불린 사람부터 천천히 대답하는 겁니다. 김나연…….”
그녀의 말에 학생들이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한성태 역시 얼떨떨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몸에 남아 있는 감각이 그가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오늘은 저번 주에 얘기했다시피 독백 연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 독백 연기는 학점에 영향을 준다는 걸 그때 말했죠? 다들 열심히 준비해왔을 거라고 믿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순서를 먼저 정해야겠죠.”
이혜윤의 말에 학생들이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학생에게 학점만큼 중요한 건 없었고.
그녀는 독백 연기가 학점에 영향을 준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혜윤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한성태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죽었더니 과거로 돌아온 상황.
그 누가 이런 상황에서 멀쩡히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과거로 왔다는 건 알겠어.’
느리기는 해도 조금씩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아, 진짜 박창식만 피했으면 좋겠네.”
“나도. 박창식 걔랑 붙으면 항상 끝이 좋지 않더라.”
“박창식하고 붙으면 괜히 비교당하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창식.
익숙한 이름을 거론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한성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네. 박창식 그놈이 있었지.’
연극영화과의 박창식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꽤 유명했다.
“순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순서면 되겠네요.”
“아아!”
이혜윤의 말에 아이들의 모습에 희비가 교차했다.
박창식을 피한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차례를 확인하고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까지.
그들의 반응 속에서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박창식의 뒤였지.’
과거의 기억처럼.
한성태는 박창식의 바로 다음 차례가 되었다.
“와, 박창식 피했다. 엄청 다행이네.”
“쟤, 한성태 맞지? 진짜 운도 없네.”
“그러게. 우리야 다행이기는 한데. 불쌍해 보이기는 하네.”
뒤를 슬쩍슬쩍 돌아보고, 옆을 돌아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의 시선은 매우 복합적이었다.
걱정도 했고 안도하기도 했다.
“…….”
한성태는 조용히 옆을 돌아보았고.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박창식을 볼 수 있었다.
박창식은 자신의 다음 차례가 누가 되었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는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앞에 있는 책상 위.
한성태가 연기할 독백 연기의 대본이 놓여 있었고.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의 연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천의 얼굴’이 당신의 연기를 보고 싶어 합니다.]알 수 없는 존재들이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 * *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그대를 향한 제 마음을.
단상 위에 올라온 학생의 목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연기하고 있는 학생.
강의실에 있는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찬의 얼굴’이 너무 형편없는 연기라며 한숨을 푹 내쉽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하품을 내쉬며 눈을 감습니다.]모두에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존재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학생의 연기를 보며 평가하는 메시지들.
한성태는 그 모든 걸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메시지.
회귀도 회귀지만, 메시지도 처음 보는 것이기에.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어색했고 이상했다.
현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강의실의 냄새, 식은땀이 식으면서 느껴지는 서늘함까지.
‘이런 게 현실이 아닐 수가 없겠지.’
저승을 한 번도 체험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서 지금 있는 곳이 저승이라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신기할 것 같았다.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한번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저승이라니.
“다음 차례가…… 박창식 학생?”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중에도 순서는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어느새 한성태의 바로 앞인, 박창식의 차례가 되었다.
박창식은 연극영화과 내에서도 나름 기대를 받고 있는 학생.
그가 단상을 올라오는 모습에 이혜운이 관심을 보이는 게 보였다.
지금까지 단상에 올라온 학생들이 연기를 못한 게 아니었지만.
이혜윤의 마음에 드는 연기를 보인 사람은 없었다.
“연기 시작하겠습니다.”
박창식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옅게 심호흡을 하는 박창식.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하고는 하죠. 인생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잔잔한 목소리.
박창식은 차분하게 연기를 보였다.
조용한 연기를 하기에, 이따금 움직임을 보여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능숙했다.
이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기를 해온 한성태가 보기에도, 박창식의 연기는 느낌이 있었다.
‘학생치고는 나쁘지 않아.’
학생 중에서 저런 연기를 보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박창식의 재능을 알 수 있었다.
[‘천의 얼굴’이 얼굴을 일그러뜨립니다. 그는 저런 형편 없는 연기는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자신의 눈을 가립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멀리서 본 연기는 형편없는데 가까이서 본 연기도 형편없다 말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단순히 흉내만 잘 내는 건 연기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그런데 그런 생각은 한성태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메시지의 주인들은 박창식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한성태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요.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겠습니다.
잔잔하게 시작해서 잔잔하게 끝나는 박창식의 연기.
짝짝짝.
그의 연기가 끝나고 학생들이 박수 치는 게 보였다.
학생들이 보기에 감탄이 나올 수 있는 연기.
박수를 받는 박창식의 표정도, 그들의 반응이 당연하게 여기는 느낌이었다.
‘잘하기는 하는데, 그냥 딱 학생 수준이네.’
한성태는 박창식의 연기가 마냥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워낙 많은 배우를 만나와서 그럴까.
그중에는 박창식이 감히 비빌 수조차 없는 대단한 배우들도 있었다.
그들을 마주했고.
같이 연기를 했었던 적이 있었던 한성태였기 때문에.
박창식의 연기를 보면서 크게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전에야 저걸 보면서 대단하다 했겠지만.’
한성태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뭔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연기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얼굴이 기대로 물들었다.
죽으면 어떻고, 저승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연기할 수 있다면, 꿈이나 저승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잘해 봐.”
자리로 돌아오던 박창식이 말을 걸어왔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힐끔 옆을 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창식을 지나치던 그는,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 얼마나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한성태가 좋은 연기를 보일 수 없을 거라는 목소리.
그를 무시하는 박창식의 중얼거림이었다.
무시를 받았지만, 한성태의 기분은 나빠지지 않았다.
박창식이 누군가를 무시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금 그에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도 않았다.
오직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성태는 온 신경에 쏠려 있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자신의 눈을 정화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천의 얼굴’ 당신의 연기를 기다립니다.]단상에 오르기 무섭게 보이는 메시지들.
한성태는 눈을 깜빡이며 메시지를 뒤로했다.
내려오기 전 대본을 살폈다.
대학생 시절, 수도 없이 많이 본 대본.
그 내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었으니까.
―하아…….
짙게 뱉어내는 숨소리.
그의 연기가 시작되고, 줄곧 턱을 괴고 있던 이혜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