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0
20화
* * *
‘여기서 서하린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한성태는 김미소와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무명 아이돌로 결국 망하고 배우로서 데뷔한 사람.
‘배우가 돼서도 상당히 다사다난하다고는 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니.’
한성태라고 해서 그녀에 대해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아이돌로 데뷔했던 소속사가 PAN 엔터테인먼트라는 것뿐.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매력이 있는 사람 같다고 말합니다.] [‘천의 얼굴’이 상대가 연기해도 좋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눈을 반짝입니다.]신들의 반응을 보며 한성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서하린이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괜히 신이 아니라는 거였다.
“안녕하세요.”
“성태 오랜만.”
“안녕하세요.”
김미소와 서하린이 그의 인사를 받았다.
화보를 찍고 난 이후로 그녀는 한성태가 편해졌는지 상당히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민석이는 왜 같이 온 거야?”
“누나,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경멸의 눈빛은 심한 거 아니야?”
“아, 느껴졌어? 미안.”
“전혀 미안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데?”
김미소가 어깨를 으쓱이며 한성태에게 다가왔다.
“성태하고 하린 씨는 초면이죠? 여기는 남자 모델이 되어줄 한성태.”
“한성태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서하린 씨.”
“안녕하세요.”
김미소의 소개에 서하린이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눈을 깜빡거렸다.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한성태가 기억하는 서하린의 모습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며, 허리를 당당히 펴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서하린은 이상하리만치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내가 신경 쓸 건 아니긴 한데.’
한성태는 그녀를 힐끔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무명 아이돌로 실패.
그 사실만 알고 있어도 그녀가 자신감이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우리 밥부터 먹으러 갈까요? 이 근처에 맛있는 김치찌개 집이 있다는데.”
“김치찌개 좋죠.”
“……저도 좋아요.”
“누나 아침에도 김치찌개 먹지 않았어?”
“조용히 해, 짜식아.”
김민석의 말을 가볍게 묵살한 그녀는 힘찬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Smile’ 사무실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식당.
“성태야, 먼저 먹어봐. 여기 내가 예전에 한 번 왔었는데, 국물이 기가 막히더라고. 하린 씨도 어서 드세요.”
“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김미소의 말에 한성태와 서하린이 숟가락을 들었다.
나쁘지 않은 맛.
엄청나게 맛있다고 할 수 없지만, 자극적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촬영은 나흘 뒤에 찍으려고 하는데, 괜찮죠?”
“나흘 뒤면……. 네, 그날은 시간 비울 수 있어요.”
“저도 가능해요.”
전화를 통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촬영과 관련된 부분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자, 그럼 이건 이 정도만 이야기하고. 성태하고 하린 씨 너무 딱딱한 거 아니야? 대화 좀 하면서 어색한 것도 풀고 그러지.”
어색한 걸 풀라고 해봤자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당장은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은 아직 멀었다며 한숨을 내쉽니다.]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툭, 투욱.
박창식의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사락.
한 손으로는 책상을, 다른 한 손으로는 대본을 넘겼다.
탁.
그런 그의 앞에 커피잔이 놓였다.
“자기야, 뭘 그렇게 봐?”
“대본.”
연인의 물음에 박창식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딱딱한 반응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가 주연 맡은 그거?”
“잘 마실게.”
“응. 나도 한번 봐도 돼?”
여자친구의 물음에 박창식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박창식의 시선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읽는 걸 방해하지 않으면 상관없어.”
“응!”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박창식의 옆에 자리를 옮겼다.
사락사락.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기는 이러고 있는 거 안 지루해?”
“…….”
“갑자기 왜 이렇게 진지한 거야. 우리, 그러지 말고 놀러 가자. 이번에 영화 재미있는 거 나왔다고 하던데.”
“조용히 해줄래? 집중이 안 되잖아.”
최대한 진중하게 말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속에 뼈가 담겨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알았어…….”
그녀는 박창식에게 떨어진 채 스마트폰을 들었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박창식은 대본에 시선을 돌렸다.
지문 옆으로 빼곡하게 쓰여 있는 메모들.
‘놀지만 않았어도 그 관심은 내가 받는 거였는데.’
하루 네 시간도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박창식은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재능을 너무 믿고 있었다.
그 덕분에 최예찬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야.”
박창식은 볼펜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연극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보이기 위해 노력을 시작했다.
* * *
“외투를 하나 사야 하나.”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한성태는 팔을 문질렀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쇼핑은 언제나 환영이라며 환한 미소를 보입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운동을 하면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며 근육을 뽐냅니다.]“조금 더 생각해 보고요.”
물론, 아직은 외투를 살 생각이 없었다.
돈이 없었으니까.
팔을 문지르며 이동한 끝에 도착한 ‘Smile’ 사무실.
“반사판은 조금 더 왼쪽으로 옮겨주시고요. 아, 역시 자연광이 좋기는 한데. 미소야, 오늘 외부 촬영 있다고 했지?”
“어, 내가 기가 막힌 곳 하나 찾아놨어.”
김미소와 유선빈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으로 서하린이 어색하게 서 있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성태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오는데 불편한 건 없었지?”
김미소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고.
“오늘도 잘 부탁해요.”
유선빈이 기대에 찬 얼굴로 한성태를 바라보았다.
한성태가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서하린은 그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린 씨.”
“아, 네……. 안녕하세요.”
한성태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서하린에게 다가갔다.
그녀와 커플 화보를 찍기 위해서는 미리 어느 정도 얼굴을 익힐 필요가 있었다.
‘내가 서하린이랑 화보를 찍는다라……. 다른 사람들이 알면 깜짝 놀라겠어.’
배우, 서하린.
그녀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단역에만 머물러 있던 한성태가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녀와 이런 식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옷 갈아입어야지. 이거 입으면 돼.”
“네, 바로 갈아입고 나올게요.”
“오케이. 아, 나오면 간단하게 얼굴도 만질 거니까, 알아두고.”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챙겨 탈의실에 들어갔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김미소의 안목이 좋다며 작게 감탄합니다.]“와……. 확실히 성태가 핏이 좋기는 하네.”
“그러게. 옷 하나 다른 거 입었다고 느낌이 이렇게까지 달라지냐.”
옷을 갈아입고 나온 한성태를 본 사람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색이 바랜 청바지와 회색 티셔츠는 일상 속에서 흔히 입고 다닐 옷이었지만, 그 위로 무스탕 점퍼를 입어 포인트를 살렸다.
머리까지 살짝 올려준 그의 모습은 지나가다가 고개를 돌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엄청 멋있어요.”
“감사합니다. 하린 씨도 옷이 엄청 잘 어울리네요.”
아무리 분위기가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본래의 매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한성태와 비슷하게 입었지만, 머리끈으로 포인트를 준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매력 있었다.
“오늘 열심히 잘해 봐요.”
한성태는 그녀와 함께 포토존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자신의 앞에 놓인 참담한 광경에 한숨을 내쉽니다.]한성태는 연기의 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삼십 분.
‘이 사람…… 많이 긴장했구나.’
긴장해서 그런가.
서하린의 자세는 무척이나 뻣뻣했다.
[‘천의 얼굴’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고 말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합을 맞추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며 고개를 젓습니다.]서하린이라고 해서 크게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네.’
생각해 보면, 그녀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모델 일이 처음이라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자신이었다면, 앉아서 찍었을 거라고 말합니다.]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 * *
“……성태, 쟤. 진짜 뭐 하는 애야?”
유선빈이 한성태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한성태가 모델에도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성태는 가끔 보면 신기하다니까.’
한성태는 긴장해서 본 실력을 내지 못하고 있는 서하린을 도와주고 있었다.
“성태한테 저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쟤, 막 업계에서 일 한 적 없는 거 맞지?”
“응. 애초에 이제 스무 살 된 애가 모델을 해도 얼마나 했겠어.”
“음…….”
김미소의 말에 유선빈은 묘한 표정으로 한성태를 바라보았다.
“하린 씨, 지금 너무 긴장하신 거 같은데.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해보세요.”
“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한성태가 서하린을 챙기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그게 무척이나 능숙하다는 거였다.
‘현장에서 십 년 이상은 구른 것 같은데.’
찰칵찰칵.
유선빈은 한성태를 바라보며 셔터를 눌렀다.
지금 두 사람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기는 중이었다.
포토존에 들어선 이상, 그들의 모든 모습이 사진을 남을 수밖에 없었다.
“저를 한번 따라 해보시겠어요? 손을 이렇게 모으시고.”
“이, 이렇게요?”
“네, 너무 좋아요. 거기에서 살짝 고개를 내린 다음에.”
한성태의 말에 서하린이 움직였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턱을 내렸다.
“거기서 오른쪽 다리를 살짝 올리시면.”
“자, 잠시만요!”
한성태를 따라 다리를 올렸던 그녀가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알았는지 황급히 자세를 풀었다.
“하하하!”
그 모습에 유선빈이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의 자세를 통해 서하린의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된 놈은 된 놈이라니까.’
사람들의 웃음 속에서 촬영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