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툭.
알 루에노가 지팡이를 버팀대 삼아 움직였다.
오늘은 손님이 오는 날이다.
그것도 귀한 손님이.
알 루에노는 손님들의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힘든 몸을 이끌고 소파까지 움직였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가 후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는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힘이 든다니. 세월의 야속함은 어쩔 수 없구나.’
알 루에노는 과거의 자신을 기억하며 웃었다.
씁쓸한 그의 미소는 오직 연기에만 매달리던 건강한 자신을 추억했다.
“배우랑 같이 온다고 했는데.”
알 루에노가 어떤 걸 대접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똑똑똑.
사용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는 자신의 부름이 없으면 문도 두드리지 못하게 했던 알 루에노다.
사용인이 그의 방을 노크하는 이유는 단 하나.
“들여보내게.”
손님이 왔을 때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끼익하고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벤자민의 뒤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온다.
그를 본 순간, 알 루에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말론?’
오래전에 죽은 자신의 친구가 젊었을 적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아서 깨졌다.
‘아니군.’
눈을 감았다가 뜨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보인다.
알 루에노는 자신이 너무 늙었다는 생각을 하며, 허허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적부터가 다른 두 사람을 헷갈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한성태와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바뀌게 되었다.
“알 루에노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성태는 여유로웠다.
보통 자신과 같은 대선배를 만나게 되면 긴장하는 게 당연한데, 한성태는 긴장할지언정 떨지는 않았다.
대화의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재치 있는 말을 하는 그 모습은 딱 말론, 그 사람과 닮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너무 비슷하네.’
오랜 친구와 분위기가 비슷한 사람이다.
십몇 년 만의 느끼는 그리운 감각에 알 루에노의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졌다.
“한.”
“네, 알.”
“자네에게는 연기가 뭔가?”
알 루에노의 물음에 한성태가 잠시 멈칫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알은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다렸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은데.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삶?”
“네, 연기는 삶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게 사람에게 너무 당연한 일인 것처럼.”
“…….”
“제게는 연기가 그렇습니다.”
알 루에노는 한성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은 결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말론과 똑같은 말을 하네. 연기가 삶이라.’
대화하면 할수록, 한성태라는 인물이 마음에 든다.
그와 동시에 든 하나의 생각.
“한.”
“네, 알.”
“벤자민에게 들었네. 자네의 연기가 대단하다고.”
“아.”
“한, 자네의 연기가 보고 싶네.”
알 루에노는 한성태의 연기를 직접 보고 싶었다.
* * *
“아쉽네요. 보여주고 싶은 연기가 많았는데.”
저택을 나서며, 한성태가 작게 중얼거렸다.
알 루에노가 연기를 보고 싶다며, 자신의 앞에서 아무 연기나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누구의 부탁인데 들어주지 않을 수 있을까.
한성태는 그의 앞에서 바로 연기하려고 했었다.
“그분의 몸이 좋지 않아요. 방금 그렇게까지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요.”
옆에서 함께 움직이던 벤자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벤자민은 알 루에노의 건강을 말했고, 한성태도 오늘 그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걸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기침하는데 피가 나왔지.’
연기하려고 하는 그의 앞에서 알 루에노가 갑자기 기침했고.
그가 입을 가릴 때 사용한 하얀색 손수건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그 자리에서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미친 행동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분이 과연 제대로 촬영을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네요.”
“아.”
“지금 그분의 몸 상태를 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데.”
벤자민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다.
자신이 보기에도, 알 루에노는 연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 보였으니까.
‘내가 아는 미래라면, 앞으로 2년도 못 산다.’
미래를 알고 있는 한성태라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건 명백하게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건강이다.
알 루에노는 그가 존경하는 배우이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지만.
한성태는 의사가 아니었고, 의사라고 해도 알 루에노의 병을 고칠 수는 없었다.
알 루에노는 현존하는 최고의 의사들이 달라붙어도 치료할 수 없는 상태니까.
그렇다고 알 루에노에게 찍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열심히…… 해야겠네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한성태가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이번 작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벤자민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새로운 별이 생기겠다며 작게 중얼거립니다.]무거운 공기 속에서 한성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 *
쏴아아.
한성태가 바라보는 창문 너머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툭, 투두둑.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보며 그가 침대에서 뒤척였다.
―거기 지금 비 많이 와?
누워 있는 그의 옆으로 스마트폰이 있었고, 스마트폰 화면에는 김민석의 이름이 보였다.
―여기는 먹구름 하나 없거든. 확실히 너랑 나랑 다른 나라에 있긴 하네.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가 웃음을 흘렸다.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정겹기까지 하다.
순간 알 루에노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야, 너는 죽지 말고 오래 살아라.”
―……이 미친놈이 갑자기 왜 이래. 뭐 잘못 먹었냐?
“그런 거 아니야.”
친구의 거친 반응에 웃음을 터뜨린 한성태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너는 미국 올 생각 없냐?”
―가고 싶지. 가고는 싶은데, 지금은 무리야.
“하긴…….”
한성태가 자기 일로 바쁘다면, 김민석에게도 그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움직여야 하는 건 너야. 한국 언제 올 거야?
“한국?”
―그래! 이제 천만도 찍었는데, 와서 감사 인사 한번 해야지!
“음.”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친구의 목소리에 한성태는 턱을 긁적였다.
한국에 내려가기는 해야 한다.
‘청춘 마이웨이’가 천만을 찍고 감사 인사를 한다는데, 그 영화의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갈게. 가야지. 그래서, 언제까지 가면 되는데?”
―내일.
“뭐?”
―농담이고. 내일모레 점심까지만 와. 저녁에 영화관 하나 가서 인사하고 올 거니까.
“내일모레……. 오케이. 비행기 알아볼게.”
―꼭 와라.
“알았다고. 지금 두식이 형한테 표 끊어달라고 문자 보냈어.”
한성태가 그렇게 말하면서 정두식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웅.
―정두식: 아침 6시에 출발하는 거 있다. 이걸로 예매한다?
―네, 형, 고마워요.
답장을 보낸 한성태는 다시 김민석과의 전화에 집중했다.
비행기 표를 끊었다는 사실을 전하니, 김민석이 좋아한다.
―아, 너 요즘에는 뭐 하고 지내냐?
“나? 그냥 뭐, 벤자민도 만나고, 영화 계약도 하고, 알 루에노도 만나고. 평범하게 지내.”
―……그게 평범하게 지내는 거라고? 나 놀리는 거야?
“히.”
―웃지 마. 와, 나도 천만 찍고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나가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너는 그냥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내가 연기를 좀 잘하잖냐.”
한성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에 김민석이 너무 뻔뻔하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의 말에 한성태가 한 차례 더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이렇게까지 편하게 말하지 못한다.
김민석이니까, 한성태도 편안해질 수 있는 거다.
“너도 미국 오면 할 수 있어.”
―지랄도 풍년이다. 됐어. 내가 너도 아니고. 한국 오면 각오나 해. 내가 너 제대로 굴릴 테니까.
“굴릴 수는 있고?”
―……와, 진짜 재수 없다. 끊어!
김민석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전화를 끊었다.
한성태는 한순간에 어두워진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이제 연습이나 좀 할까.’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한성태는 침대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대본을 잡은 그가 창가에 걸터앉고는 페이지를 한 장 넘겼다.
한국에 가기 전, 한성태는 연습에 매진할 생각이다.
* * *
“그게 마지막 짐이지?”
“네.”
이승현의 물음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아쉽네. 조금 더 같이 연기하고 싶었는데.”
“다음에는 같이 촬영해야죠.”
한성태의 말에 이승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캐나다에서 지내는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꽤 가까워졌다.
한성태도 이승현에게 가끔 농담도 할 정도로.
“한국에 내려갔다가 바로 러시아 가는 건가?”
“네, 이 짐은 두식이 형 통해서 먼저 보내놓고요.”
한성태가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갔다.
그를 따라 이승현도 함께 움직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도 한국 같이 가고 싶기는 한데. 여기 일정이 남아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네.”
“어쩔 수 없죠.”
정두식이 한성태에게 다가와 짐을 가져갔다.
이게 끝이냐고 묻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라도 언제든지 와. 너라면 그 어느 때든 환영이니까.”
“감사해요. 한국 가서 연락드릴게요.”
한성태의 말에 이승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승현과 헤어진 한성태는 정두식을 따라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도착하면 바로 움직여야 하니까. 미리 푹 자둬. 도착하면 깨워줄게.”
“네, 형. 고마워요.”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헤드셋을 썼다.
모차르트의 선율이 귀를 부드럽게 감싼다.
한성태는 그 상태로 대본을 펼쳤다.
‘Underground King’을 보며 한성태가 대사를 중얼거렸다.
“그래. 네가 쉬는 게 이상하지.”
그 모습을 보면서 정두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성태와 함께 움직이던 정두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성태가 자신의 말에 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연예인이라면 건강을 걱정했겠지만.
한성태에게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정두식은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바로 이동할 거지?”
“네, 바로 가야죠.”
한국에 도착한 한성태는 잠시 쉴 틈도 없이 바로 움직였다.
“가요, 영화관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한성태는 걸음을 바삐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