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Underground King’은 러시아 배경의 작품이다.
러시아의 마피아들을 주제라 한 작품이었고, 그렇다 보니 대본에 나오는 도시나 거리도 러시아에서 따온 게 많았다.
벤자민은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이다.
그래서 대본 리딩장부터 촬영장까지.
전부 러시아에 마련되었다.
지금 한성태가 가는 곳이 바로 모스크바였다.
“성태야.”
“네, 형.”
“나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어떡하지? 나 죽는 거 아니겠지?”
“……형, 아까 청심환 먹지 않았어요?”
“먹었는데도 이러네.”
손을 파르르 떠는 정두식을 보며 한성태가 헛웃음을 흘렸다.
‘Underground King’의 대본 리딩을 하러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 정두식이 떨기 시작했다.
대본 리딩을 하는 건 한성태인데, 정작 떠는 건 매니저라니.
‘예전부터 이건 변하지 않네.’
예전에 한성태가 영화를 찍을 때도, 유명 감독과 드라마를 찍을 때도 정두식은 떨었다.
그만큼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다는 거겠지.
“형, 그만 떨고 가서 지켜보고 있어요. 내가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너야 언제나 믿지. 응원하고 있을게.”
“네.”
한성태는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Underground King’의 대본 리딩장은 벤자민의 명성에 비교하면 작은 크기였다.
다섯 명의 배우와 몇 명의 감독 그리고 데미안의 직원들까지.
영화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무척이나 초라한 숫자였지만.
모인 사람들을 본다면, 누구도 그들을 향해 초라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거장들이 모였고,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들이 모였다.
‘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어.’
영화에 참가하는 한성태조차 그들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들 나라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대단하다며 뻗대지 않았다.
겸손한 것을 떠나서, 살아있는 전설, 알 루에노가 앞에 있었으니까.
세계의 거장들도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최고의 배우들이 그의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자리에 앉은 알 루에노가 한성태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한.”
“네, 알.”
“이쪽으로 와서 앉게.”
전설의 제안에 한성태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래대로였다면, 한성태의 자리는 알 루에노의 앞이다.
그리고, 알 루에노의 옆에는 다른 배우가 앉게 되는데.
“자네가 내 옆에 앉는 게 좋을 거 같아.”
알 루에노의 말에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의 말에 오히려 배우들이 먼저 빨리 가서 앉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들의 행동에 한성태는 어색하게 웃으며 알 루에노의 옆에 앉았다.
“저번에 연기를 보지 못해서 아쉬웠네.”
알 루에노의 말에 한성태가 멈칫거렸다.
전설은 그에게 연기를 보여주길 원했고, 한성태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저번에 보여주지 못한 것까지, 이번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쿨럭. 기대하고 있겠네.”
기침하며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한성태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딱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게, 촬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알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알 루에노를 말릴 수 없었다.
“자, 그럼 시작하는 게 어떤가. 빨리 대사를 맞추면 좋을 것 같은데.”
알 루에노가 고개를 돌려 배우들을 향해 말했다.
“네, 그럼, 대본 리딩을 시작하죠.”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들의 앞에 놓여 있는 마이크에 전원이 들어왔다.
한성태는 알 루에노를 힐끔 바라보다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한 걱정은 알 루에노에게 무례가 될 수도 있었다.
―1신…….
벤자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진행을 따라 배우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들을 바라보며 한성태가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최고의 배우와 전설이 있는 자리에서 하는 연기.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한성태도 긴장하고 있었다.
그 긴장을 풀어내며 한성태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당신의 어깨에 손은 얹으며 말합니다.] [“부탁하네.”]주제도 주어도 없는 말이었지만,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어떤 걸 부탁하는 건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배우는 연기로서 통하는 법이다.
삑.
한성태가 자신의 앞에 있는 마이크의 버튼을 눌렀다.
―하아…….
그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토해지는 순간, 사방이 고요해졌다.
―……하. 하하.
한성태가 웃기 시작한 순간, 대본 리딩장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의 목소리는 광활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죽어 있었다.
―어떻게 죽이지? 어떻게 하면 전부 죽일 수 있을까.
연신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살인자를 눈앞에 둔 사람들처럼, 그를 바라보는 배우들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는 배우들도 있었다.
연기에 몰입한 한성태는 그들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눈알을 뽑을까, 혀를 잘라? 창자를 다 끄집어내는 게 좋을까…….
그의 입에서 잔인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을 때.
―큼.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헛기침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한성태는 볼 수 있었다.
알 루에노가 그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을.
지팡이 두 손을 얹고 있는 그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포스를 물씬 풍겼다.
평범한 배우였다면, 그 기세에 짓눌렸겠지만.
한성태는 아니었다.
그는 더욱 사납게 눈을 뜨며 알 루에노를 노려봤다.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지?
알 루에노가 델 하만이 되어 말한다.
―세상이 나를 죽이려고 하니까.
그의 물음에 한성태가 데릭 클라우드의 시선으로 델 하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서, 그렇게 애꿎은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려는 건가?
―내 앞에서 거슬리게 구는 놈들을 치웠을 뿐이야.
―아니지. 저들은 평범하게 자신의 길을 갔을 뿐이야. 그걸 자네가 붙잡고 피해를 준 거지.
―……할아범, 나는 노인 공경 따위 하지 않아. 죽고 싶지 않으면 그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지금 기분이 참견쟁이를 패 죽이고 싶은 느낌이거든.
데릭 클라우드의 말에 델 하만이 허허 웃었다.
―미친놈.
―뭐?
―분노의 대상자를 잘못 고르고 있는 놈이 미친놈이지, 미친놈이 아니면 뭔가.
델 하만은 데릭 클라우드의 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데릭 클라우드의 살기가 가라앉았다.
그가 보기에도 델 하만은 범상치 않은 노인네였다.
―김새는군. 나는 자살 희망자의 소원 따위 들어주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린 그는.
―복수하고 싶지 않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멈칫거렸다.
―데릭 클라우드.
―……!
―내가 도와주겠네, 자네의 복수를.
알 루에노의 형형한 눈빛을 마주한 한성태가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괜히 전설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알 루에노의 연기는 경악을 자아낼 정도로 대단했고.
‘재미있을 것 같아.’
그래서 한성태는 더 기대하게 되었다.
대본 리딩이 아닌, 실제 촬영장에서 하는 연기가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가 되어서.
그와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니까.
―컷.
벤자민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짝짝짝.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그들을 돌아보는 한성태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 * *
“잠시 쉬었다 갑시다.”
벤자민의 말을 들은 한성태가 탄식을 흘리며 몸을 뒤로 당겼다.
두 시간 내내 대사를 내뱉었더니, 목이 칼칼하다.
생수를 마시던 한성태가 자신의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알이 보이지 않았다.
대본 리딩을 하던 중, 알의 상태가 나빠져 돌아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며, 배우들까지 얼마나 놀랐던가.
알 루에노가 없는 자리를 바라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이 이쪽이라고 했었는데.’
직원이 알려준 방향으로 걸어가던 한성태는.
“걔 도대체 뭐야?”
“이름이 한이라고 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하던데, 뭐 그런 놈이 다 있어.”
자신의 이름이 들려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비상계단이 있는 곳에서 두 명의 배우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어딜 가나 질투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무시하고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합니다.]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한성태도 지나치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 작은 나라에서 그런 대단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아까 눈빛 봤나? 그냥 미쳤던데.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어.”
그들의 말은 들은 한성태의 행동이 정지했다.
뭐지, 욕을 하던 게 아니었나.
그의 얼굴이 혼란스러워졌다.
“벤자민이 그렇게까지 데리고 오려고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지.”
“그의 연기를 보고 있는데, 내가 다 창피해지더군. 나는 지금까지 뭘 했던 건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되지. 어린애한테 질 건 아니잖나.”
“그렇지.”
한성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서렸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란 걸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의욕을 불태우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성태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 작품은 확실히 즐거울 것 같다.
* * *
대본 리딩이 있고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한성태는 계속해서 연기 연습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떠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연습을 하다가 저녁을 먹자는 정두식의 말에 함께 이동하는 중이었다.
“준비는 잘되고 있어?”
“네, 연습 잘하고 있어요.”
“그래, 너라면 뭐든 잘하겠지. 걱정은 안 된다.”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웃음을 흘렸다.
“아, 너 이번에 협찬사가 어디인지 들었냐?”
“아니요. 어딘데요?”
“몽띠그라고 하더라. 거기 요즘 망하고 있던데, 맞나 모르겠어.”
몽띠끄라.
한성태는 브랜드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은 명품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뭐, 이건 데미안에서 알아서 하겠지. 우리 저녁 뭐 먹을까? 아직 못 정했잖아.”
“글쎄요. 딱히 막 먹고 싶은 거 없어서. 형은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연기 연습할 때는 에너지 바나,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하게 때우던 한성태였기에.
연습하다가 나온 지금, 딱히 먹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었다.
한성태의 말에 정두식이 핸들을 툭툭 두드렸다.
“흠, 그러게. 뭐가 좋으려나.”
그렇게 한참 고민하며 이동할 때였다.
“아, 이건 어때.”
우웅.
그의 말과 함께 한성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그걸 본 정두식이 전화를 받으라고 말한다.
한성태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한, 오늘 시간 되나? 같이 저녁을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알 루에노에게서 온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