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부우웅.
한성태가 탄 택시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뒷좌석에 앉아 대본을 살펴보고 있었고, 그런 한성태를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힐끔힐끔 돌아봤다.
‘아까부터 자꾸 쳐다보시네.’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안경까지 쓰고 왔는데.
자꾸만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에 한성태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두식이 형 차 타고 올걸.’
그가 정두식도 없이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건, 알 루에노의 약속 장소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 루에노는 한성태만 보기 원했고, 그 말에 한성태는 혼자서 움직이겠다고 했다.
러시아에 있다고 해도 정두식에게는 일이 많았고, 괜히 자신을 데려다준다며 시간을 잡아먹히는 걸 원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자신의 판단이 참 멍청했던 것 같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도착했습니다.”
한성태가 돈을 꺼내 택시기사에게 주려고 했는데.
“받을 수 없습니다.”
“……네?”
“팬입니다. 폭주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앞으로도 그런 화끈한 영화 많이 만들어줘요.”
“아.”
끝까지 자신의 돈을 받지 않으려는 택시기사의 모습에 한성태가 볼을 긁적였다.
어차피, 이렇게 계속 준다고 해도 거절할 거.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한성태는 돈을 더 권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한성태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한 택시기사는 차를 몰려던 것도 잠시.
자신의 뒤를 힐끔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까지 한성태가 앉아 있던 자리에 돈뭉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며 택시기사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택시비보다 더 많잖아요.”
그가 돈다발을 소중하게 품에 안은 채 핸들을 돌렸다.
부우웅.
택시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한성태가 자신의 텅 빈 지갑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돌아갈 차비는 남길걸.’
타국에서 팬을 만났다는 생각에 지갑에 있는 지폐를 전부 꺼내 남겨두고 왔다.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뭐 어떻냐며 웃음을 흘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좋은 일 했다고 치면 되지.’
지금은 택시기사에게 준 돈보다 더 중요한 일이 코앞에 닥쳐 있었다.
“알 루에노로 예약되어 있을 겁니다.”
“아,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한성태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식당 안쪽으로 안내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며 한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이쪽으로 와서 앉게.”
자신에게 손짓하는 알 루에노를 보며 그의 표정이 묘해졌다.
약속 시각보다 삼십 분 일찍 온 그가 늦은 게 절대 아닌데.
자신보다 일찍 온 알 루에노의 모습에, 괜히 지각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리에 앉는 한성태의 행동도 조심스러워졌다.
벤자민도 정두식도 없이 단둘만이 있는 자리.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먹게 되네요.”
그의 말에 알 루에노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연습은 계속하고 있나?”
“네,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하군. 그런 연기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지.”
한성태의 대답을 들은 알 루에노가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연기를 보면,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네.”
“아.”
“메소드 연기는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배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
“자네처럼 인물과 동화되어, 현실과 가상의 인물이 헷갈리게 만드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 지금까지 그런 연기를 한 배우도 몇 없고.”
그래서 더 신기하다며, 알 루에노가 말을 이었고, 한성태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배우는 연기로서 통한다고 하지. 자네에게는 친구가 있나.”
“친구 말인가요?”
한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고, 알 루에노가 웃으며 말한다.
“Underground King에서 데릭과 델은 친구가 되지. 서로 국적도, 나이도 다른 데 말이야.”
“네.”
“두 사람의 우정은 서로에게 모든 걸 줄 수 있을 정도로 진해져. 자네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나.”
“…….”
“난 있었네. 내 인생의 절반을 가져간 친구 말일세.”
자신은 그 친구를 존경했다며, 알 루에노가 한성태와 눈을 마주쳤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알 루에노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습니다.]성좌의 메시지가 보인다.
한성태는 그 메시지를 힐끔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습니다.”
“그래?”
“제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친구입니다.”
인생을 포기했던 자신을 끝까지 붙잡아준 친구를 생각하며, 한성태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알 루에노가 말했다.
“자네는 참 신기한 사람이야.”
“제가요?”
“전혀 그 나이 대로 보이지 않아. 이십 대 초반? 그걸 누가 믿겠어. 보이는 모습만 보면, 이미 한 번의 인생을 더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아.”
“칭찬이네. 그만큼 자네가 성숙해 보인다는 거야.”
“……감사합니다.”
한성태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대화는 식사를 마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거의 한 시간이 넘게 쉬지 않고 떠든 것 같다.
슬슬 가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한성태는, 알 루에노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대하고 있겠네.”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알 루에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성태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기대를 한다면,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며 당신을 바라봅니다.]한성태는 단 한 번도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친 적이 없었다.
* * *
알 루에노와 만나고 나서 이틀이 지났다.
한성태는 그날 이후로 더 열심히 대본을 보며 연습했다.
영화계의 전설이 자신에게 기대한다고 말했고, 한성태는 그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야, 밥 먹으러 가자.”
“……형, 요즘에 저만 보면 밥 먹자는 말밖에 안 하는 거 알아요?”
“무슨 소리야.”
“밥 먹자는 말 말고 다른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거 같은데.”
“그건 네가 밥때가 아니면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아서 그런 거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치는 정두식을 보며 한성태가 턱을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 자신이 방에서 나온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온다고 해도 전부 정두식이 밥 먹자고 불러서였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가자. 내가 맛집 알아 왔어.”
“알았어요. 가요, 형.”
한성태가 웃으며 정두식을 따라 숙소를 나왔다.
차를 타고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을 때까지.
한성태의 손에서 대본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우물우물.
대본을 보면서 음식을 먹고 있던 한성태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정두식의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왜요?”
“너, 예능이나 광고 같은 거 따로 찍을 생각 없어?”
“네, 없어요.”
“돈 벌고 싶지 않아?”
“작품만 찍어도 돈은 많이 벌어요.”
청춘 마이웨이가 천만을 넘으면서, 그로 인해 벌어들인 금액은 그가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정도였다.
“하긴. 찍었다 하면 기본 오백만에서 천만이니까.”
“지금은 작품에 집중하고 싶기도 하고요.”
정두식에게 대답한 그는 다시 대본을 읽는 데 집중했다.
이번에 찍기로 한 작품은 벤자민이 연출하고, 알 루에노가 출연하는 영화다.
어설프게 준비해서 갔다가는 망신당할 거라는 걸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긴. 괜히 다른 데 시선 팔리는 것보다는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낫기는 하지.”
정두식이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태가 웃으며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를 바라볼 때였다.
“…….”
우연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정장을 입은 사내가 시가를 피우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한성태가 정두식에게 말을 걸었다.
“형.”
“어?”
“여기 시가 카페 같은 곳이 있는지 찾아줄 수 있어요?”
“시가? 시가는 갑자기 왜. 뭐 힘든 일이라도 있어?”
걱정스럽게 말하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맡은 배역 때문에요.”
그가 맡은 데릭 클라우드는 시가를 즐겨 피우는 캐릭터였다.
영화를 찍게 되면 시가를 펴야 하는 일도 생겨날 터.
한성태는 그때가 오기 전,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 음……. 알았어. 찾아볼게.”
정두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 일을 하다 보면, 작품을 위해 담배를 배우거나 술을 마시기 시작한 배우를 만나게 된다.
그게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도 하고, ‘Underground King’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알기에 정두식은 더 묻지 않았다.
“아, 찾았다.”
음식을 다 먹어갈 때쯤, 정두식이 한성태에게 스마트폰을 불쑥 내밀었다.
화면에 시가 카페의 정보가 담겨 있다.
한성태가 빠르게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여기로 가요.”
결정은 빨랐다.
식당에서 나와 시가 카페에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뿌연 거 봐라. 정말 괜찮겠어?”
정두식의 물음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카페의 문을 열었다.
천장을 가득 채우는 뿌연 연기.
소나무 향이 카페를 뒤덮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한성태는 시가를 둘러봤다.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천지 차이다.
싼 건 몇만 원에서 비싼 건 몇십만 원도 한다.
한성태가 시가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을 때, 연기의 신들도 앞다투어 다가와 한마디씩 건넸다.
[‘천의 얼굴’이 로미트가 맛이 좋을 거라며, 당신에게 피우는 걸 권합니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뭘 모르는 소리라며, 오파스가 진짜라고 말합니다.]신들마다 선호하는 시가가 달랐다.
그들의 메시지를 보던 한성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다 피워보면 되겠네요.”
그중에서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걸 피우면 되겠지.
한성태는 직원이 순하다고 알려준 시가를 먼저 들었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커터를 시가와 직각으로 맞추라고 말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한 번에 잘라야 한다며, 당신의 손을 빤히 바라봅니다.]피우는 건 한성태인데, 신들이 더 난리였다.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성좌들이 알려준 대로 시가를 피웠다.
연기를 입에 머금고 맛을 음미한다.
‘나쁘지 않네.’
그는 담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시가는 가끔 피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문하신 위스키입니다.”
한성태가 잔을 잡았다.
데릭은 시가와 함께 마시는 위스키를 즐겼다.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한성태가 시가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가 여유롭게 시가를 즐기고 있을 때, 한성태의 앞에 앉은 정두식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있다가 기자들한테 사진 찍히는 거 아니야?”
“뭐, 어때요. 저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배역 때문에 온 건데. 상관없어요.”
“…….”
“사진 좀 찍어줄래요? 온스타에 올려보게요.”
“어, 어어. 찍어줄게.”
찰칵찰칵.
여러 자세를 잡으며 시가를 피우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사진을 다 찍고 나서 배역을 연기했다.
데릭 클라우드가 되어 세상을 바라봤다.
시가 한 대와 위스키 한 잔의 여유.
이 시간만큼은 데릭이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순식간에 나른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그가 연기를 내뱉었다.
“…….”
한참 시가를 피우던 한성태는 문득 느껴진 시선에 고개를 돌렸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한성태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모델 일 해볼 생각 없으신가요.”
남자가 명함을 내민다.
데릭을 연기하고 있던 한성태는 따분한 얼굴로 명함을 살펴봤다.
‘MON’이라는 로고가 박힌 명함과 프레지던트, 올리버라고 적힌 글자를 볼 수 있었다.
* * *
몽띠끄는 유서가 깊은 브랜드 회사였다.
1800년대부터 양복 사업을 해왔고, 그 사업은 2000년대인 지금까지 쭉 이어졌다.
몽띠끄의 현 사장인 올리버는 5대째였다.
프레지던트, 올리버.
유명 브랜드의 주인이었지만,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회사가 망해가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오래가지 못하고 그냥 무너질 것 같았다.
올리버는 어떻게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속이 썩는 건 어쩔 수 없어서.
“후우…….”
지금처럼 시가 카페를 찾아 시가를 피운다.
이때만큼은 마음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시가를 피우고 있던 그는.
“……!”
저 멀리 소파에 앉아 시가를 피는 한 사람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청바지에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 그의 눈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시가를 물고 연기를 내뱉는 그 모든 행동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른한 그 표정까지 올리버의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든다.
사람이 시가를 피우는 게 이렇게까지 고풍스러울 수가 있는 거구나.
‘아쉽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일상복이 아니라 양복이었다면.
그것도 몽띠끄의 양복이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다가간 올리버는 그에게 명함을 주었다.
“…….”
사내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그래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올리버는 사내의 모습을 통해서 영감을 받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우웅.
스마트폰이 울리지 않았다면, 더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 또 만나게 되겠지.’
올리버는 작게 중얼거리며 시가 카페를 빠져나왔다.
문을 열고 나가던 그는 보지 못했다.
명함을 받은 사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