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자리에 앉은 한성태가 손을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했다.
대본 없이 애드리브로 가자는 알 루에노의 말을 생각하며, 한성태가 옅게 숨을 내쉬었다.
‘대본이 있는데, 애드리브로 가자고?’
생각이 복잡해져서 한성태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시하고 하던 대로 하기에는 알 루에노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너라면 그렇게 해줄 거지?’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그 눈빛을 무시할 수 없었던 한성태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감독님이 그걸 동의할 줄은 몰랐는데.’
한성태는 볼을 긁적이다가 멈칫거렸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 지워진다고 촬영할 때 외에는 볼을 긁지 말라고 했었다.
“성태야, 촬영 시작한다고 올라오라네.”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 루에노가 세트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성태는 후 하고 숨을 내쉬며 세트장에 올라갔다.
알 루에노가 앉아 있는 의자 앞으로 둥그런 책상이 있고.
그 책상 위에는 위스키 몇 병과 시가, 그리고 유리잔 두 개가 놓여 있다.
이번에 찍을 장면은 데릭과 델 하만이 대작하는 장면.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조직 하나를 부수고 온 데릭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델 하만을 찾아가는 신이다.
―레디.
뒤에서 벤자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성태가 붉은색으로 축축하게 젖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액션!
데릭이 움직였다.
그는 델 하만이 있는 곳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델 하만의 방 앞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조직원 하나가 서 있었다.
“열어.”
그의 말에 조직원이 문을 두드려 데릭이 왔다는 걸 알린다.
방금 막, 전쟁을 벌이고 온 데릭의 몸에서는 숨 막히는 기세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그의 앞에 선 조직원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들여보내게.”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조직원의 얼굴도 밝아졌다.
끼익.
문이 부드럽게 열렸고, 데릭이 그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데릭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더니, 천천히 조직원을 돌아보았다.
그 시선에 조직원이 몸을 움찔 떤다.
데릭이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옷 내놔.”
“네, 네!”
그 말에 조직원이 황급히 옷을 벗어 그에게 건네준다.
데릭은 옷을 받아 손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정장 가슴팍에 달린 몽띠끄의 로고가 보인다.
한성태는 그 로고를 카메라에 조금 더 잘 비치게 몸을 틀었다.
“남의 옷에 닦지 말고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건 어떤가? 손수건이야말로 신사가 가까이 둬야 할 물건이지.”
델 하만이 데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데릭이 코웃음을 친다.
“신사는 얼어 죽을. 그냥 편하면 되는 거지. 뭐 이렇게 복잡하게 굴어.”
데릭이 퉁명하게 말하며, 델 하만의 앞에 앉았다.
쪼르륵.
위스키를 들어 잔에 따른 그가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
델 하만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 차례 위스키를 마시고 나서야 술병으로 향하는 데릭의 손도 멈췄다.
치익.
시가에 불을 붙인 그가 델 하만을 바라본다.
그때까지 델 하만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오늘은 빨리 끝났군. 두 시간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합지졸이더라고.”
“서부의 일부를 주름잡고 있던 마피아를 상대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자네밖에 없을 걸세.”
델 하만의 말에 데릭이 어깨를 으쓱이며, 연기를 내뿜었다.
역시, 시가와 위스키의 조합은 최고다.
“이제 남은 건 몇 개 안 남았군.”
“응.”
“복수에 마침표를 찍는 것도 이제 곧인가.”
“종지부를 찍을……. 아.”
델 하만의 말에 한성태가 멈칫거렸다.
그는 말을 버벅거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가겠습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NG.
그것들 전부 한성태가 낸 실수 때문이었다.
―한, 무슨 일 있어요? 오늘 도통 집중하지를 못하네.
확성기를 든 벤자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에 한성태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알 루에노를 돌아보았다.
“나는 괜찮으니까, 마음 편하게 가져.”
알 루에노가 하는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깊게 숨을 내쉰 그가 다시 연기에 돌입했다.
―침착하게 갑시다. 액션!
벤자민의 목소리에 데릭이 입을 열었다.
“기분이 묘하기는 하네. 정말로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위스키를 한잔 마신 데릭은 델 하만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복수할 수 있게 해준 사람.
그가 없었다면, 데릭은 복수를 꿈도 꾸지 못한 채 길거리에 죽어갔을 것이다.
“이젠 이 시가도 마지막이겠어.”
복수를 다짐한 그때부터 피우던 시가다.
자신의 복수를 끝내면, 그는 지금 피우는 시가를 더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추천해주는 시가를 피워보는 건 어떤가?”
“글쎄, 그건 너무 연해서 별로던데.”
“그게 문제라면 다른 걸 추천해주고.”
“그건 그때 봐서.”
데릭이 웃으며 재떨이에 시가를 문댔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데릭.”
“응?”
“자네를 보고 있으면, 내 벗이 생각나네.”
그 말에 한성태가 대사를 내뱉으려고 할 때였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당신의 얼굴을 건드립니다.]성좌의 메시지와 함께 그의 표정이 묘해졌다.
분명, 자신의 얼굴로 짓는 표정인데.
그게 정말 내 얼굴인지 의심이 되어, 한성태가 살짝 당황했다.
“당신의 벗이란 그 사람은…… 아직도 당신의 벗인가?”
지금 대사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입술이 알아서 움직였다.
한성태는 그 기묘한 감각에 집중했다.
성좌로 인해 생겨난 현상이라는 걸 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그의 표정은 ‘한성태’가 지을 수 없는 표정이다.
이 감각을 익힌다면, 한성태의 연기도 더 다양해질 수 있었다.
“당연하지. 그는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네. 그래서 더 그리운 사람이지.”
“그러면…….”
그때, 알 루에노가 기침했다.
그의 손수건에 묻은 피를 보며 한성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벤자민이 있는 방향이 순간 소란스러워진다.
“뭘 그리 놀라지? 내 몸이 좋지 않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던 사실이 아닌가.”
알 루에노는 한성태의 놀람과 별개로, 계속 연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델 하만의 웃음을 마주한 한성태가 주먹을 꽉 쥐었다.
“델, 당신은…….”
“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네. 억울한 일이지. 아직 해야 할 게 많은데 말이야.”
“…….”
“그래도 자네의 복수를 보고 갈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어째서 나한테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당신을 위해서 살 수도 있는 거였잖아.”
데릭의 말에 델 하만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너무 멋이 없지 않은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내 마지막 순간이 자네를 위해서 쓰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지.”
“…….”
“약속했네. 나의 벗에게. 자네를 책임지겠다고.”
웃으며 말하는 델 하만을 보며 데릭이 푸우, 숨을 내쉬었다.
“……나도 당신의 벗이 될 수 있을까?”
그의 말에 알 루에노가 눈을 크게 떴다.
대본에는 지금 한 대사와 비슷한 느낌의 문장도 없었다.
하지만, 한성태의 대사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자네는 이미 내 벗이었네.”
그의 대사와 함께 촬영이 끝이 났다.
벤자민이 다가와 알 루에노를 살펴본다.
“한.”
“네, 알.”
“나는 이 작품이 완성되기를 원해.”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말하는 그의 모습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을 완성하겠다고.
그 모습을 본 알 루에노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사라졌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세월의 흐름이 너무 야속하다며 한숨을 내쉽니다.]성좌의 메시지를 보며 한성태가 입을 열었다.
“갑시다, 촬영하러.”
* * *
“당장 급한 조치는 다 끝냈습니다.”
주치의가 알 루에노에게 다가와 말했다.
알 루에노는 자신의 팔에 꽂힌 링거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얼마나 남았나?”
“길면 반년, 짧으면 이 개월입니다.”
주치의의 말에 알 루에노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시 한번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옆에서 주치의가 말한다.
“잘하면 이번 작품이 끝날 때까지 살 수 있겠군.”
알 루에노의 말에 주치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말에도 알 루에노는 여전히 연기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 아쉽기는 하네. 이제야 마음이 맞는 친구를 사귄 것 같았는데.”
그는 한성태와 연기했던 장면을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대본에는 없던 대사 하나.
―당신의 벗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데릭이 말한 걸까, 한성태가 말한 걸까.
뭐가 되었든, 그 말은 알 루에노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어쩌면 그 연기가 그의 벗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일 수도 있었다.
‘이상하지, 말론. 한의 연기를 보면서 자네를 떠올린다는 게 말이야.’
알 루에노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가서 변호사를 부르게.”
“변호사 말입니까?”
“나도 슬슬 준비해야지.”
그의 말에 주치의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 * *
한성태가 차에 올라탔다.
알 루에나가 돌아가고, 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촬영이 끝났다.
쉬지 않고 연기해서일까.
차에 탄 한성태의 얼굴이 지쳐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지.’
차에 있던 대본을 만지작거리며, 한성태가 묘한 표정으로 성좌들의 메시지를 살펴봤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수고 많았다며 당신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볼 수 있어 좋았다며 미소를 짓습니다.]그들을 바라보던 한성태의 시선이 한 성좌에게서 멈췄다.
[‘메소드 연기의 선구자’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그에게 신비한 경험을 안겨주었던 성좌다.
마치, 성좌가 빙의한 듯한 연기를 했다.
그 연기는 한성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까 그 감각을 익힌다면, 더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겠지.’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성태가 고개를 돌려 스마트폰을 들었다.
촬영을 위해 잠시 꺼두었던 전원을 켠다.
웅.
스마트폰에 불이 들어오고.
우우웅!
엄청나게 많은 알림이 쏟아졌다.
평소에도 연락은 많이 왔지만, 지금처럼 몇 분간 쉬지 않고 울린 적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한성태가 의아해하며 알림을 살펴보려고 할 때였다.
“성태야, 일 터진 거 같은데?”
정두식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 스마트폰에는 기사가 하나 떠 있었다.
[한성태, 알 루에노와 연기하는 장면 찍혀…….]그건 ‘Underground King’의 촬영장 유출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