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 * *
정두식이 자신의 앞에 앉은 민나정을 바라보았다.
한성태와 함께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정두식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일을 끝날 때쯤, 민나정이 그를 불렀다.
“부장님도 이런 곳에 오시는군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던 정두식이 말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칵테일 바였다.
술을 마시러 온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 대상자가 민나정이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저는 이런 곳에 오면 안 됩니까?”
“안 되는 건 아닌데. 부장님이 워낙 바쁘셔야죠. 매일 회사에만 계셨잖아요, 회사에 안 계시면 미팅이나 출장을 가시고.”
정두식의 말에 민나정이 볼을 긁적였다.
민나정은 매일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깝다며, 끼니를 때우거나 과일 몇 조각으로 배를 채우고 일을 시작했고.
남들 다 잠자는 시간에도 쪽잠을 자가면서 일을 하는 사람.
그게 바로 민나정이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정두식이었기에.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에 칵테일 바로 불러낸 그녀의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부장님이 술 마실 때는 항상 큰 사고가 일어날 때잖아요.”
“…정 팀장한테 제 이미지가 어떤지 알 것 같네요.”
민나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술을 마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정두식도 잔을 들었다.
한동안 술만 마시던 중, 민나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 팀장.”
“네. 부장님.”
“정 팀장이 제 밑에서 일한 지 얼마나 지났죠?”
“올해로 십 년이 넘었을 겁니다. 제, 첫 상사가 부장님이셨죠.”
“그랬죠. 제가 대리일 때 정 팀장이 들어왔었죠.”
민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정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어요. 제 성격 받아주기 힘들 텐데, 제 밑에서 오래 버틴 사람은 정 팀장밖에 없을 거예요.”
“….”
“고마워요.”
“저도 감사하죠. 부장님이 저 챙겨주지 않았으면, 제가 여기까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죠.”
정두식이 그렇게 말하면서 민나정의 얼굴을 살펴봤다.
민나정의 성격상 수다를 떨자고 부를 사람은 아니고,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한데.
정두식이 생각했을 때 따로 생겨날 만한 일이 없었다.
최근에 일이 전부 잘 되고 있었고 한성태도 계속 대박을 터뜨리고 있지 않았던가.
“부장님. 무슨 일 있으시죠? 무슨 일인데요.”
“….”
“자꾸 그러시니까, 더 겁나잖아요. 무슨 일인데요.”
정두식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대화를 질질 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건 민나정도 마찬가지였다.
“정 팀장. 정 팀장은 지금 일하는 거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뭐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픙로도 그럴 거고요.”
정두식의 말에 민나정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녀가 조용히 잔을 매만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정두식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 태도를 보고 확실히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 팀장.”
“네. 부장님.”
“저, 회사 나오려고 해요.”
“…네?”
“회사 나간다고요. 저 이제 정 팀장 상사도 아니고 부장도 아니에요.”
“…예?”
정두식의 표정이 멍해졌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앞으로 탄탄대로를 달릴 게 분명한 민나정이 회사를 그만둔다 말하고 있었다.
민나정은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고, 대표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니.”
“그렇게 됐어요.”
“…회사 그만두고 뭐 하시게요?”
정두식의 물음에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방금까지 어두웠던 그녀의 표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회사 차리려고요.”
“…네?”
“대표님하고 이야기는 다 끝냈어요. 지원도 받기로 했고,”
“지금 그게 무슨….”
“회사 이름은 ‘LEON’이에요. 괜찮죠?”
민나정의 말을 듣는 정두식의 표정이 혼란스러웠다.
대화를 제대로 따라가기 힘들어 보였다.
“자, 잠시만요. 생각 좀….”
그가 민나정이 말해준 내용을 정리하며 술잔을 꽉 잡았다.
“그러니까. 부장님게서 레온의 대표가 되신다… 이거인가요? 레온은 PAN의 자회사인 거고요.”
“네. 정확하게 이해했어요.”
웃으며 말하는 민나정의 모습에 정두식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들어서 머리가 아프다.
“정 팀장.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저랑 같이 일할 생각 없어요?”
“…네?”“우리 호흡도 잘 맞고. 정 팀장이 나랑 함께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
“천천히 생각해 봐요. 나랑 하면 바로 상무부터 시작하는 거다?”
민나정의 말에 정두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지금의 선택이 그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어쩌면 평생직장을 얻거나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걸 민나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촉하지 않았다.
정두식이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우웅.
―장판석: 정 팀장님. 내일 출근하시는 대로 저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회사 대표에게서 온 문자를 보며 정두식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날이 밝기 무섭게 정두식은 회사를 찾아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걷던 길인데,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차라리 병가를 낼까.
순간적으로 그런 충동도 들 정도였다.
정두식이 머리를 긁적이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어제는 시간이 너무 늦어 한성태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가 전화를 걸고 얼마 안 지나, 한성태가 전화를 받았다.
“성태야. 만약에 내가 회사를 옮긴다고 하면 너는 어떨 것 같아?”
―당연히 형 따라가야죠.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한성태의 목소리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나를 발견한 것도 형이고, 옆에서 보조한 것도 형인데. 내가 형 안 따라가면 누구랑 가요. 우리 끝까지 함께 가기로 한 거 아니에요?
“함께해야죠. 당연히 함께해야지!”
―그럼 된 거죠. 뭐 때문인지 몰라도. 형하고 싶은 대로 해요. 형 결정을 따라갈 테니까.
“…고맙다.”
한 사람의 말이 이렇게까지 힘이 될 수 있구나.
정두식은 주먹을 꽉 쥐며 회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대표실에는 장판석이 웃으며 앉아 있었다.
“어서 와요, 정 팀장. 아니지, 이제는 정 부장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을 향해 말을 꺼내는 장판석을 보며 정두식이 숨을 후 내쉬었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다.
* * *
―그래서 민 부장… 아니, 민 대표님이랑 함께하기로 했어.
정두식의 전화를 받은 한성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고생 많았어요, 형.”
―고생은. 네가 아니었으면, 이런 기회도 없었을 텐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해요. 아, 제가 뭐 따로 해야 하는 거 있어요?”
―없어. 있어도 없게 할 거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거에만 집중해.
“고마워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미소를 지었다.
한성태는 정두식과 전화를 끊고 앞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캐리어가 보였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짐을 싸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 여행을 가면 최소 두, 세 달은 나가 있을 예정이다.
아마,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계속 나가 있겠지.
한성태는 숨을 깊게 내쉬며 캐리어로 손을 뻗었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성태는 캐리어를 끌며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올라타 좌석에 앉던 한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김민석: 이제 가냐?
―지금 비행기 탔어.
―김민석: 러시아부터 가는 거지? 알 루에노 만나러.
―응.
여행을 준비하던 중, 한성태는 알 루에노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몸 상태가 전보다 더 안 좋아졌다는 연락이었다.
자연스럽게 한성태의 일정도 바뀌게 되었다.
―김민석: 이번에 가면 언제 돌아와?
―글쎄. 가봐야 알 것 같아. 러시아에만 있을 것도 아니니까.
―김민석: 알았어. 나중에 한국 올 때나 연락 줘.
―ㅇㅋㅇㅋ.
김민석에게 답장을 보내놓고 한성태는 눈을 감았다.
러시아까지 열 시간이 넘게 걸린다.
―저희 비행기는….
얼마나 지났을까.
도착했다는 안내음에 한성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항에 나오니, 알 루에노의 기사가 그를 마중 나왔다.
“알께서는 좀 어떠신가요?”
“솔직히 그리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다들 불안해하고 있거든요.”
“아.”
“한을 많이 찾으셨습니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몰라, 친구를 보고 싶다고요.”
기사의 말에 한성태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한성태가 한국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누군가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의사는 뭐라고 합니까?”
“매일 같은 말을 하죠. 내일 돌아가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요.”
“그렇군요.”
“알께서도 지금 주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
저 말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한성태는 기사의 슬픈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사는 자신의 슬픈 감정과는 별개로 현재 상황을 차분하게 알려줬다.
“아마, 가셔도 오래 함께하기는 힘드실 겁니다. 지금도 겨우 말 몇 마디만 하실 수 있거든요.”
“…네.”
“그래도 한이 와주셔서 다행이네요. 적어도 가는 시간 외로우시지는 않을 것 같아요.”
슬픈 말이었다.
자신이 따르는 사람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은.
한성태는 손을 뻗어 창문을 내렸다.
찬바람이 얼굴을 따갑게 했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속이 너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
끼이익.
차가 멈췄다.
한참을 이동한 끝에, 한성태는 알 루에노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짐은 제가 옮겨놓겠습니다. 먼저 안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한성태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한. 안녕하세요.”
“알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사용인들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성태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알 루에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그가 멈칫거렸다.
알 루에노가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정말로 끝을 앞둔 사람처럼.
“왔나.”
“네. 알. 많이 힘들어 보이시네요.”
“자네가 와서 이제 괜찮네. 콜록콜록. 앞으로 잘 지내보세.”
“네. 알. 잘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