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 * *
우웅, 웅.
진동이 느껴진다.
한성태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 옆에 스마트폰이 있었고, 화면에 시계 표시가 생겨나 있었다.
그 표시를 바라보던 한성태가 손을 뻗었다.
우웅….
진동이 꺼지고.
한성태가 상체를 일으키면서 손을 위로 쭉 뻗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신음을 흘렸다.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눈을 깜빡거렸다.
집이 아니다.
‘아… 맞다. 러시아에 왔었지.’
낯선 풍경에 당황하던 한성태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생각하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알 루에노는 자신의 집에서 지내는 사람에게 허름한 방을 줄 수 없다면서, 저택에서 가장 좋은 밥을 내주었다.
“무슨 방 하나가 월룸보다 크냐.”
한성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을 나섰다.
욕실에 들어가서 씻고 나온 한성태가 개운한 얼굴로 방에 돌아왔다.
똑똑똑.
러시아에 올 때 가져왔던 책을 보고 있는데, 사용인이 방문을 두드렸다.
“네. 무슨 일이세요?”
“아침이 준비되었습니다.”
“아. 바로 나가겠습니다.”
사용인의 말에 한성태가 방을 나왔다.
그를 따라서 1층까지 내려간 한성태는 식탁에 가득한 진수성찬을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알께서도 같이 드시나요?”
“아쉽게도 현재 알은 죽 외에 다른 걸 드실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한성태 혼자서 먹는데 이렇게까지 많이 차렸다는 건가.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음식은 너무 많은데, 먹는 건 자신 혼자라서 맛보다는 부담만 들었다.
“저기요.”
“네.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한성태의 부름에 사용인이 고개를 돌렸다.
“같이 드실래요?”
“아닙니다.”
“저 혼자 먹기 좀 그래서요. 다른 분들도 같이 불러서 먹고 싶네요.”
“하지만.”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한성태의 부탁에 사용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샌가 식탁 주위가 사용인들로 가득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성태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래야 밥을 먹는 거라고 할 수 있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은 한성태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인사에 사용인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성태는 그대로 알 루에노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알 루에노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성태의 표정이 묘해졌다.
“알.”
“아. 왔는가. 밥은 먹었나?”
“네. 방금 먹고 왔습니다. 주방장의 요리 솜씨가 대단하던데요?”
“그렇지? 내가 직접 데려온 사람이야. 요리 실력 하나만큼은 일품이지.”
알 루에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한성태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알과 함께 먹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네. 음식도 누군가와 먹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들 하잖아요.”
“그렇지. 나도 아쉽네.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거든.”
말을 하면서 알 루에노가 기침한다.
숨조차 쉬는 게 무척 힘들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성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같이 촬영할 때만 해도 힘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 힘을 느낄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
“네. 들려드리겠습니다.”
알 루에노의 부탁에 한성태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성태는 차분하게 자신의 시간을 그에게 말했다.
알 루에노는 그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흘렸다.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한성태만 말했다.
“…이제는 여행만 남았죠.”
한성태가 잠시 말을 멈췄다.
쉬지 않고 말해서 그런지 입이 텁텁했다.
목도 아픈 것 같다.
한성태가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일 때, 줄곧 듣고만 있던 알 루에노가 입을 열었다.
“한. 자네는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나?”
“…죽음이요?”
“그래. 죽음. 자네의 생각이 궁금하네.”
알 루에노의 물음에 한성태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에게 죽음은 아픈 기억이며, 또 하나의 기회였다.
죽음을 겪어봤기에, 말을 하는데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말을 해주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걸, 뭐 하러 고민한단 말인가.
“미련인 거 같습니다.”
“…미련?”
“네. 삶에 대한 미련이 남을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해볼 걸, 그때 내가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한성태는 자신이 죽었을 때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참 많은 미련이 남았더랬다.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걸 하지 못한 게 미련으로 남았다.
“저는 미련이 남을 것 같네요.”
“마치, 죽어본 사람처럼 말하는군.”
그 말에 한성태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실제로 죽어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한성태의 말을 다 들은 알 루에노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가. 미련이라… 맞는 말이야. 예전의 나였다면, 죽음이 두렵고 미련이 남았겠지.”
“….”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네. 내 미련은 하나였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죽으면 화가 날 것 같았는데. 자네를 만나고 그 미련이 사라졌네.”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큰 도움이 되었다며, 알 루에노가 말을 이었다.
“한. 자네 덕분에 나는 지금 후련하네. 내가 할 수 있는 거 다 했고, 자네라는 친구를 얻었지.”
“….”
“나는 이걸로도 충분하네.”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알 루에노를 보며, 한성태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알.”
“말하게.”
“같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좋겠네요. 함께 찍은 영화를요.”
“…나도 그렇네.”
알 루에노가 웃었다.
한성태도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 * *
알 루에노의 집에서 생활하기로 한 이후로 한성태의 일과 중 하나는 알 루에노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한성태가 알 루에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주치의가 찾아왔다.
주치의의 모습에 한성태는 바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한성태가 방을 나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후우….”
주치의가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섰다.
한성태는 바로 그를 붙잡았다.
“좀 어떻습니까?”
그의 물음에 고개를 돌린 주치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상황이 마냥 좋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로요?”
“지금 저렇게 웃으며 말하고 계시기는 하지만. 그 속은 최악입니다. 지금 당장 돌아가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아.”
기사에게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의사에게 직접 들은 건 느낌부터가 달랐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성태의 표정이 멍해졌다.
“나을 방법은 없는 거겠죠?”
한성태의 물음에 주치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알 루에노의 몸은 병도 병이지만, 너무 늙었다.
그래서 치료를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낫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알께서 많이 밝아지셨습니다. 전부 한 덕분이겠죠.”
“…네?”
“한을 만나기 전, 알은 어두웠습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 밝아지는 게 이상한 일인 거죠.”
“….”
“그런데, 그런 알이 한을 만나고 밝아졌습니다. 항상 말할 때면 한을 이야기하더군요. 한을 만나서 행복하다고.”
“아….”
“알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 행복하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래야죠.”
“알이 부탁하는 게 있으면 들어주시면 됩니다.”
주치의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도움이 된다면, 한성태는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알에게는 받은 도움이 많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한성태가 주치의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알이 누워 있었다.
그를 보며, 한성태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알.”
“왔나. 주치의가 오늘은 상태가 괜찮다고 하더군.”
“다행이네요.”
“그래서, 그런데 산책을 하고 싶네.”
“산책 말인가요?”
한성태가 되묻자 알 루에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책이라.
지금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아는데, 산책을 하게 둬도 되는 걸까.
지금 바깥 공기도 아주 차가운데.
잠시 고민하던 한성태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고민 자체가 의미 없었다.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으면, 바로 들어주라고 했지.’
한성태는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요, 알.”
그에게 남은 시간 동안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
사용인이 가져온 의자에 알 루에노가 앉았다.
한성태는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알 루에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한성태는 목적지가 정해진 것처럼 움직였다.
그가 향한 곳은 ‘Underground King’의 촬영장으로 쓰였던 호수 공원이다.
알과 함께 이곳에서 연기했을 때 재미있었는데.
“….”
한성태가 데려온 곳을 보는 그녀의 표정이 묘해졌다.
마치,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한 반응이다.
한성태는 그의 모습을 보며 계속 걸어가, 촬영했던 그 자리에 도착했다.
“알. 여기 기억납니까?”
“나지. 아주 즐거웠었는데.”
한성태의 물음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저희가 했던 연기도 기억하시나요?”
“기억하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알 루에노가 웃는다.
한성태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에요. 데릭과 델 하만이 이곳에서 대화를 나눴다면.”
“….”
“데릭이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한성태의 물음에 알 루에노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성태가 미소를 지었다.
영화에서 데릭과 델 하만은 호수 공원에서 만나지 못한다.
결국, 델 하만이 죽었으니까.
하지만, 촬영이 끝난 지금이라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잘 모르겠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요?”
“….”
알 루에노의 시선 속에서 한성태가 호수를 바라보았다.
꽝꽝 얼어버린 호수의 표면을 보며 한성태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저도 데릭과 비슷한 대답을 했을 거 같아요.”
“…저도?”
“다음에 세대에 넘기겠죠.”
한성태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비볐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요? 날씨가 많이 쌀쌀하네요.”
“…그러세.”
한성태가 휠체어를 끌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한성태가 말했다.
“다음에 또 나와요.”
“…좋지.”
알 루에노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누구도 지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는 약속을 하며.
한성태와 알 루에노는 그렇게 호수 공원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