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 * *
이른 아침이었다.
신나율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으로 손을 옮긴 그녀가 멈칫거렸다.
[미친, 이거 실화냐?]학교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와 있었다.
평소에도 하루 다섯 개 이상씩 게시글이 달리는 커뮤니티다.
[이혜윤 교수님이 우리 학교 교수님이라는 게 너무 감사하다!] [그분이 오신다니, 오늘 복권 사는 거 킹정?] [내가 살아생전 그분을 영접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전설이 왔다!]그런데, 오늘따라 커뮤니티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평소보다 다섯 배는 많은 게시글이 올라왔고.
그 게시글의 주제가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성태가 우리 학교에 온다고?”
커뮤니티의 게시글들을 살피던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난리가 난 이유는 하나.
그건 바로, 오늘 한성태가 강의하러 오기 때문이었다.
외부인을 초청해서 강의한다는 말도 있었고, 한성태가 오면 좋겠다는 말도 있었지만.
실제로 한성태가 온다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한성태가 누구인가.
한국대학교에 다니던 사람이며, 현재 대한민국을 자랑하는 최고의 배우다.
그가 연기한 모든 작품이 수업에서 다루고 있을 정도.
특히 폭주와 ‘Underground King’은 수업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작품이다.
그 정도로 한국대학교에서 한성태의 위상은 대단했다.
그런 사람이 온다고 하니 학교 전체가 난리가 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익명1: 지금 타 부에서 강의 들으러 오겠다고 난리도 아님.
―익명2: 그놈들이 왜 옴. 우리 연극영화과에 강의하러 오는 건데. 우리 자리도 없겠고만.
―익명3: 그러니까. 우리만 성태 선배님 보려고 하니까 부러운 거지.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어? 한성태가 직접 강의 온다고.
―익명4: 와. 진짜 잘 됐다. 저번에 음악 놈들이 자기들 100cm 왔다고 엄청 자랑하던데. 나 간만에 입 한 번 제대로 풀어야겠네.
연극영화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웃음을 흘린 그녀가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성태가 온다는데 이렇게 뭉그적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 엄청 잘생겼지.’
그녀는 한성태의 온스타를 팔로워 중 하나였다.
그의 연기를 존경하고 배우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한성태란 사람 그 자체에는 푹 빠져 있었다.
어떤 옷을 입든 잘 소화해내는 그 모습은 너무 멋있었다.
강의실로 향한 그녀가 문 앞에서 멈칫거렸다.
연극영화과가 아닌 사람들이 가득 보였다.
그녀가 겨우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니, 강의실의 자리가 꽉 차 있는 게 보였다.
“나율아, 여기!”
다행히 그녀의 친구가 자리를 맡아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일어서서 강의를 들어야 할 뻔했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한성태가 강의를 다 오고.”
“…아. 너, 한성태 팬이었지.”
“응. 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사인해주시려나? 같이 사진도 찍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옆에서 재잘거리는 친구의 모습에 신나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친구는 한성태 덕후였다.
신나율이 한성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야. 그런데 한성태, 걔가 와서 뭘 가르친다는 거야?”
“글쎄. 뭐, 성공 신화 같은 거 말해주지 않을까? 성공 제대로 했잖아.”
“그런데, 솔직히 연기 막 엄청 잘하는 건 아니잖아.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그럼. 외모는 모르겠는데, 연기만 놓고 보면 운이 좋았던 게 맞는 것 같아.”
뒤에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성태의 연기를 의심하는 사람들이다.
거슬리는 소리였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엄청 잘하는 건 아닌 건 사실이니까.’
그녀가 보기에도 한성태는 타이밍이 잘 따라줘 성공한 사례였다.
배울 수 있는 게 있을까.
드르륵.
강의실의 문이 열리고 한성태가 안으로 들어왔다.
와아아아!
사방에서 환호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생겼어요!”
옆에서 그녀의 친구가 한성태를 향해 열혈한 덕심을 드러냈다.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살짝살짝 숙이고는 단상에 섰다.
탁탁.
마이크를 두드리는 한성태의 모습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안녕하세요, 한성태입니다.
와아아!
그 말에 다시 한번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까지 크게 환영해줘서 너무 감사하네요. 제가 처음 하는 강의라서 많이 떨리거든요. 잘못해도 이해 좀 부탁드릴게요.
사람들의 대답을 들으며 한성태가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이 자리에 제가 있어도 되는 게 맞는지 의문이에요. 제가 연기를 잘하나 질문을 한다면, 잘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애매하다고 말할 수도 있죠. 때로는 못한다고 할 때도 있고요.
‘말 잘하네.’
한성태의 말을 들으며 신나율이 작게 감탄했다.
―결국, 이것도 상대적인 거잖아요. 다만, 그 간격을 줄이기 위해 저희가 노력하는 거고요. 그러면 잘하는 연기란 뭘까요? 여기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연기를 잘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거잖아요. 다만, 누가 먼저 기회를 접하냐의 차이고요.
한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착각일까.
신나율은 그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몸을 움찔, 떨었다.
“야. 아까 우리 이야기 들은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애초에 밖에 있었잖아.”
뒤에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한성태의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 것 같다.
―…제 이야기는 결국 간단해요.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겁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는 순간 끝이니까.
한성태가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제 연기를 보여드릴게요. 뭐든지 말로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요. 여러분들의 추천을 받겠습니다.
그 말에 신나율이 반사적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연기를 잘한다고 알려진 한성태가 해줬으면 하는 연기가 하나 있었다.
―네. 거기 하늘색 원피스 입으신 분? 제가 뭘 해주기를 원하십니까.
한성태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고.
“울고 웃는 연기를 해주세요.”
그녀의 말에 한성태가 멈칫거렸다.
그녀가 말한 주제는 추상적이었다.
―울고 웃는 연기라….
“힘드시면 안….”
―좋네요. 그걸로 하죠.
흔쾌히 수락하는 그의 모습에 되려 신나율이 놀랐다.
이렇게 쉽게 수락할 줄은 몰랐다.
두 가지의 감정 연기를 한 번에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감정 연기니까. 그 내용은 제가 정해도 될까요?
“네? 네!”
신나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한성태가 미소를 지으며 연기를 시작했고.
‘아… 이래서 한성태구나.’
한성태는 그녀의 롤모델이 되었다.
* * *
‘울고 웃는 연기라.’
한성태가 묘한 표정으로 숨을 내쉬었다.
감정 연기는 많이 해봤지만, 한 번에 두 가지 감정을 표출하는 건 처음 해본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가 손을 들었다.
얼굴을 매만지는 그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는 없었다.
손으로 가린 얼굴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숨소리와 어깨의 들썩거림, 그리고 점점 생겨나는 온몸의 떨림까지.
한성태는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을 생각한다.
최덕수부터 시작해서 데릭까지.
그들의 슬픔을 담아낸다.
‘그런데 울면서 웃는 건… 사이코패스를 연기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든 한성태의 몸이 들썩이는 게 멈췄다.
강의실이 적막에 휩싸인다.
그 속에서 한성태가 한쪽 손을 내렸다.
손이 축축하게 젖어있다.
“흐….”
울음이 흐릿한 웃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들썩이던 그의 몸이 더욱 격렬해진다.
“흐흐흑.”
한성태는 자신이 웃고 있는 건 울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웃고 있었다.
다만, 그 웃음이 우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후우….”
그렇게 한참을 연기하던 한성태가 숨을 내쉬었다.
그 숨에 감정도 쓸려내러 간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가 말을 하는데도 강의실은 조용하다.
뭐지.
한성태가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천의 얼굴’이 당신의 연기는 이제 완벽에 가깝다며 박수를 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이제는 자신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고 작게 중얼거립니다.]신들의 메시지가 보인다.
그와 동시에.
우와아아!
미쳤다!
어떻게 연기를 저렇게 하지?
강의실이 사람들의 목소리고 가득 채워졌다.
그들을 보며 한성태가 흐릿하게 웃었다.
강의는 성공적이었다.
“수고 많았어.”
“아니에요. 다들 잘 들어주던걸요.”
한성태는 이혜윤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혜윤은 한성태에게 고맙다며,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그때마다 한성태도 그녀에게 괜찮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혜윤의 교수실까지 이동하던 한성태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창식.”
덥수룩하게 머리를 기른 박창식이었다.
도저히 배우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없는 그 모습에 한성태가 놀라워하고 있을 때.
“오랜만이네. 영화 잘 봤어.”
“어, 어어.”
“나. 배우 그만뒀어. 나랑 안 맞더라고. 지금은 대학원생이야.”
“…배우를 그만뒀다고?”
박창식의 말에 한성태가 크게 말했다.
그는 박창식의 미래를 안다.
엄청난 성공은 아니어도, 이름을 말하면 열 명 중 네 명 이상은 알 정도로 입지를 다진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배우를 그만뒀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
“너를 보고 알겠더라고. 나는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고민하다가 더 늦기 전에 방향을 틀었어.”
“아.”
“내가 너랑은 다르게 재능이 없잖아.”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때 자신이 동경했던 상대였기에.
그런 사람의 비참해진 모습은 받아들이기 묘했다.
“잘… 지내는 것 같네.”
“아.”
순간적으로 박창식이 주먹을 꽉 쥔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박창식이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갈게. 해야 할 게 있어서.”
“응. 수고해.”
터덜터덜 걸어가는 박창식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성태가 눈을 깜빡거렸다.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마치….
한성태는 침묵했다.
“가자. 성태야. 밥 사줄게.”
“감사합니다.”
이혜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한성태와 박창식의 길은 달라졌다.
시간이 흐르고.
“한. 보고 싶었습니다!”
올리버가 한국을 찾았다.
한성태도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준비되셨나요, 한?”
“네. 준비는 언제든 되어 있죠.”
화보를 찍을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