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 * *
찌이익.
한성태가 캐리어의 지퍼를 올렸다.
후, 하고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김민석을 보며 멈칫거렸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없지.”
“그런데 왜 그렇게 봐?”
한성태의 물음에 김민석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물건은 다 챙긴 거 맞지?”
“응.”
“충전기는?”
“챙겼어.”
“속옷이랑 옷은?”
“몇 벌 챙기기는 했는데, 필요하면 거기서 사려고.”
“그래도 되지. 여권은 챙겼어?”
“응. 주머니… 야. 근데 네가 내 엄마냐?”
“뭐가.”
“아니, 무슨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네가 더 걱정이 많아.”
김민석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던 한성태가 황당함에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김민석은 표정 한 번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라면 걱정 안 되겠냐? 다른 곳도 아니고 오스카에 간다는데?”
“….”
“네가 나라도 똑같았을 거면서 불만은 뭐 이리 많아.”
“그래도 너처럼 하나하나 다 꼬집지는 않아.”
한성태가 한숨을 푹 내쉬듯이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민석의 잔소리가 많아지는 게 점점 정두식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하여튼, 조심히 갔다 와. 어차피 상은 네가 받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못 받아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그건 응원이야, 아님 저주야?”
“당연히 응원이지! 내가 아니면 누가 너한테 이런 말을 해주겠냐!”
“그래, 없지.”
여러 의미로.
한성태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갔다 올게.”
“그래. 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고. 나는 크리스털이 그렇게 좋더라.”
“알았어. 내가 꼭 받아올게.”
상을 타오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 웃음을 흘린 한성태가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배웅하는 김민석에게 손을 흔들며 그가 정두식의 차에 탔다.
“준비 다 했지?”
“네. 형.”
“좋아. 가자. 오스카로.”
정두식이 핸들을 꽉 잡으며 힘차게 말했다.
그 말에 한성태도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바라보았다.
뒤에서 김민석이 상을 꼭 타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저희 비행기는 곧….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한성태가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어두웠던 객실이 환해져 있었다.
‘깜빡 잠들었나.’
한성태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위해 움직이는 한성태에게 다가온 정두식이 말했다.
“잘 자더라?”
“네. 푹 잤어요. 개운하네요.”
한성태가 위로 팔을 쭉 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에서 이렇게 오래 잔 건 처음이다.
개운한 기분에 만족스럽게 웃던 한성태가 정두식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 이쪽이에요!”
조시가 ‘한성태,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판을 높이 들어 흔드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린 한성태가 조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어서 와요, 한! 당신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차를 준비해뒀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네.”
“숙소에 가면서 일정에 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조시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태의 숙소는 시상식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이었다.
주로 영화 관계자들이 묶는 곳인 만큼,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곳이다.
“한, 두 영화에서 시상 후보에 든 거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거 때문에 아카데미에서 골치 아팠답니다. 자리 배치부터 걸려서요. 오늘도 한을 데리러 가는 일에도 그쪽 영화사와 논쟁이 있었고요.”
“아.”
“다행히 제가 이겼습니다. 폭주의 영화사도 대단한 곳이지만, 그래도 저희 데니안을 이길 수는 없죠.”
조시의 말에 한성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라이벌 관계인 두 영화사에 관해 말하는 건 무척 예민한 일이었다.
“숙소에 가시면 짐부터 푸시고, 시상식 있기 전까지 푹 쉬시면 될 겁니다.”
“네.”
“아는 얼굴도 많이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배우 대부분이 그 숙소에 들어왔거든요.”
“아.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차가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주변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힘드네.”
숙소에 도착한 한성태가 바로 침대에 누운 채 중얼거렸다.
비행기에서 쉬기는 했지만, 장거리 이동은 체력이 좋은 그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조금만 자자.’
한성태는 몰려오는 졸음을 막지 않았다.
촬영하는 것도 아닌데 자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
그는 금세 잠을 자기 시작했다.
성좌들의 메시지가 그의 숙면을 위해 조용해졌다.
* * *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린다며 박수를 칩니다.]성좌의 메시지를 본 한성태가 웃음을 흘리며, 전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살펴봤다.
시상식이라고 몽띠끄에서 정장을 선물해줬다.
청색 바탕에 회색 체크무늬가 그려진 정장이었다.
‘괜찮네.’
한성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시상식이 있는 날이다.
“이야. 오늘 진짜 멋있다? 네가 주인공 같아.”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감탄하는 정두식의 모습에 한성태가 웃음을 흘렸다.
한성태는 매니저와 함께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아. 한!”
“이쪽이에요, 한!”
자리를 찾아 움직이던 한성태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거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는 멈칫거렸다.
‘Underground King’의 동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폭주’의 동료들도 함께였다.
작품마다 테이블이 떨어져 있는 것과 별개로 ‘Underground King’과 ‘폭주’는 둥그런 테이블을 붙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고민한 게 이런 거였어?’
한성태가 각 영화의 주연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작품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한성태가 두 개의 테이블을 번갈아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특단의 조처를 내린 게 바로 저 모습이었다.
‘참… 대단하다.’
한성태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자신의 자리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조시가 설명해줄 때, 왠지 느낌이 묘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그게 이런 결과로 나타날 줄은 몰랐기에, 한성태는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한. 오늘 진짜 멋있는데? 나보다 더 멋있는 것 같아.”
자리에 앉은 그에게 로저스가 말을 걸었다.
“지금 한의 모습을 알 루에노가 봤으면 엄청 좋아하셨겠는데요.”
벤자민이 말을 걸어왔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각 영화의 배우들이 한성태에게 말을 붙였다.
[‘천의 얼굴’이 쓸데없이 불이 붙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성좌의 말에 한성태도 크게 공감하며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들을 말려야 하는 감독들도 별반 다를 게 없으니 더 답답하다.
‘그래도 즐겁기는 하네.’
함께 영화를 찍었던 사람들과 시상식장에 있으니 기분이 새롭다.
열심히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미소를 짓던 한성태가 옆을 돌아봤다.
‘Underground King’ 자리 중 빈 곳이 있었다.
알 루에노, 그의 자리였다.
빈자리를 바라보는 한성태의 얼굴에 슬픔이 맴돈다.
―자. 그럼 그토록 고대하던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슬픔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가 말했다.
한성태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야, 이렇게 전 세계 영화를 책임지는 분들을 앞에 두고 있으니, 긴장되어서 심장이 마구 뛰네요. 이거 청심환 먹은 게 효과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회자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다.
특히, 토크쇼에서 그가 보여주는 입담은 많은 이를 웃게 했다.
―자. 어디 한 번 둘러볼까요. 크… 제가 아는 얼굴들이 많네요. 그런데… 거기, 미스터 한?
자신을 부르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한성태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왜 부르는 거지.
―당신은 왜 그사이에 끼어 있는 건가요? ‘Underground King’과 폭주의 가운데라니. 너무 어중간한 거 아닌가요?
“아.”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성태에게 쏟아졌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한성태가 볼을 긁적였다.
―아. 맞다. 당신, ‘Underground King’이랑 폭주 모두 주연으로 나왔죠. 이야, 명작 두 개 모두 주연으로 나온 배우라니, 그래서 이런 귀한 장면이 나온 거군요.
사회자가 웃으며 말을 돌렸다.
―잡설은 그만하고. 다들 따분할 텐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변한다.
한성태도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쥐며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어디 보자. 영화… 어? 이게 말이 되는 건가요? 저기 관계자분들. 이거 제대로 온 거 맞아요?
사회자가 한쪽을 향해 말을 걸더니 묘한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대박이네요. 이런 걸 제가 직접 발표할 줄은 몰랐는데. 하긴, 저런 모습도 보이는데 더 이상할 게 뭐가 있을까 싶기는 하네요.
툭툭.
사회자가 손에 들고 있던 카드로 손등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영화상 후보를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이 영화는 레이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바로, 폭주입니다!
폭주를 시작으로 여러 작품이 나왔다.
‘Underground King’의 이름도 불렸다.
―저는 말을 길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축하합니다, 폭주와 ‘Underground King’!
그 말에 시상식장이 잠시 정지했다.
―놀랍죠? 저도 놀랐어요. 아카데미에서 영화상을 두 개 주다니.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아직 놀랄 일 남아 있어요.
사회자가 말했고, 한성태는 폭주와 ‘Underground King’의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갔다.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정진하겠습니다.”
감독부터 배우들까지.
정해진 시간 내에서 소감을 말해야 하다 보니 말을 하는 게 담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상 소감을 다 말하고 한성태는 자신의 일행들과 함께 밑으로 내려왔다.
한성태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사회자가 말린다.
―미스터 한. 아직 앉지 말아요.
“…?”
―바로 남우주연상을 말하죠. 제가 말했죠. 가장 놀랄 일이 있을 거라고! 폭주의 한성태 씨. 그리고….
그리고?
―‘Underground King’의 한성태 씨. 축하드립니다!
“하.”
어디선가 헛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성태도 순간 멍해졌다.
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설마 같은 상을 두 번 받을 줄은 몰랐다.
한성태가 무대에 올라갔다.
그의 품에 각 작품의 이름이 담긴 트로피 두 개가 안겨졌다.
―수상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에 한성태가 마이크 앞에 섰다.
―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놀라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요.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형식적인 수상 소감이다.
자신과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나서, 그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상을 알 루에노에게 바칩니다.
그의 수상 소감에 시상식장 전체가 다시 한번 들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