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 * *
우우웅, 웅!
아까부터 느껴지는 진동에, 침대에 누워 있던 한성태가 몸을 뒤척였다.
알람은 아니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그는 알람을 맞추지 않았으니까.
“…누구야.”
스마트폰을 잡기 무섭게 전화가 뚝, 하고 끊어졌다.
방금 막,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성태가 비척거리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쏴아아.
물소리가 숙소 전체를 채웠다.
우웅!
그 소리에 맞춰 다시 한번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이번에는 전화가 아닌 문자였다.
“좋다.”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어내며 나온 한성태가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루나?’
화면 상단에 생겨난 부재중 전화를 본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전화와 문자의 주인이 루나였다.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이름에 한성태는 묘한 얼굴로 수건을 한쪽에 던졌다.
―루나: 시간 날 때 전화해 줘요.
그녀가 보낸 문자를 보던 한성태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갔을까.
―여보세요?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루나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두 달, 아니 세 달 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조금은 그리웠던 목소리에 한성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네. 루나.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나요?”
침대에 걸터앉은 한성태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네. 저야 언제나 잘 지내죠.
루나의 목소리 너머로 공구를 사용하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지금 일이라도 하는 걸까.
의아함에 한성태가 바로 물었고.
―어제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요. 뭐가 문제인지 보고 있었어요.
그녀의 대답에 이해했다는 듯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하고 나서 한성태는 여유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일은 좀 어때요?”
―한가해요. 가볍게 지인들 차를 보는 게 전부라서요. 지금 일을 안 받고 있거든요.
그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국에서 배우들이 자신의 차를 정비 맡기는 사람이 바로 루나였다.
그녀의 실력은 인정받았고.
배우들은 루나가 아닌 다른 정비소에 차를 맡기지 않았다.
미국에 얼마나 많은 배우가 있던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차를 맡긴다면 최소 10년은 일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일을 안 받는다고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전화를 받으며 옷을 갈아입은 한성태가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건강이 안 좋아진 건지 걱정도 되었다.
그의 걱정이 좋았던 걸까, 루나의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제 있죠. 한이 제가 한 제안은 홀라당 잊고, 혼자서 여행을 갔다는 거요.
“아….”
―제 몸은 멀쩡해요. 너무 건강하죠. 다만, 한이랑 여행 가지 못한 게 조금 아쉽네요.
아쉬움이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걸음을 옮기던 한성태의 몸도 제자리에 멈췄다.
‘잊고 있었다.’
단순히 여행을 가보자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루나가 자신에게 함께 여행 가보자고 했던 제안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제야 서운함이 가득한 루나의 행동도 이해가 된다.
“미안해요. 제가 너무 제 일만 생각하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괜찮아요. 같이 여행 가자고 했던 것도 아니고, 제안이었잖아요.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하죠. 루나,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으세요? 여기 태국인데, 원하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주세요.”
한성태가 시장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러다 물건들이 가득 쌓인 노점상을 발견하고는, 그가 바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가지고 싶은 게 딱 하나 있는데.
“뭐에요? 무엇이든 말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사다 줄게요.”
―이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네?”
물건을 살펴보던 한성태가 멈칫거리며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돈으로 살 수 없는데 가지고 싶은 게 있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 걸까.
“그게 뭐죠?”
―당신의 시간이요.
“….”
한성태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지금, 이 사람이 뭐라고 한 걸까.
시간?
―한에게 했던 제안은 아직 유효하거든요. 여행을 가고 싶은데, 해줄 수 있나요?
“여행….”
한성태가 물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어차피 여행을 다니고 있고, 일행이 한 명 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지 않은가.
“좋아요. 안 그래도 미국에 가려고 했거든요. 제가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갈게요.”
―정말이죠? 약속했어요!
“네.”
―언제 올 거예요?
“지금 바로 출발하려고요. 내일 봐요. 오전 10시까지 갈게요.”
―네!
그녀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며 한성태가 미소를 지었다.
혼자였던 여행이 둘이 되는 것.
왠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여기도 진짜 오랜만이네.”
한성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가 있는 곳은 텍사스에 있는 정비소 앞이었다.
한성태는 정비소 입구에 달린 간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LUNA.’
그녀의 이름이 보였다.
너무나도 담백한 이름이 딱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했다.
한성태가 정비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보닛이 열린 트럭이었다.
그 옆으로 공구가 가득한 카트가 있었다.
달그락.
그 앞에서 루나가 차를 정비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했던 그였지만.
차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차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일하는 모습이 엄청 아름답네.’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를 정비하는 그녀의 모습이 멋있었다.
한참이나 루나를 바라보던 그는, 보닛에서 시선을 돌리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한?”
“루나. 오랜만이에요.”
한성태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의 모습에 루나가 당황하며 물었다.
“…아직 오전 7시인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한성태가 하하,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10시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막상 움직이고 보니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되었다.
“한답네요. 금방 준비하고 나올게요. 짐은 다 챙겨서 씻고 옷만 갈아입으면 돼요.”
“천천히 하고 나와요. 저는 루나가 일하는 곳을 둘러보고 싶어서요.”
한성태의 루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무섭게 한성태가 발을 뗐다.
‘확실히 전에 있던 곳보다 훨씬 전문적인 느낌이 드네.’
한성태가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때, 루나는 도미닉의 차고에서 일했다.
주로 출장을 가서 차를 정비했기에, 개인 작업실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고객들이 폭주하는 지금은 다르다.
덜컹.
그때, 정비소 안쪽에 있던 문이 나오면서 루나가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두 손에 캐리어를 들고나오다가, 한성태를 보고는 멈칫거렸다.
“왜 그래요?”
자신을 보는 눈이 어딘가 묘해, 한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말에 루나가 캐리어를 놓고는 한성태의 손목을 붙잡았다.
“한. 잠시만 여기 앉아 있어 봐요.”
“루나?”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금방 올 테니까.”
루나가 자기가 나왔던 문을 통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한성태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덜컹.
다시 한번 문이 열리고 루나가 밖으로 나오는데, 그 손에 작은 손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그거 뭐예요?”
“한을 사람으로 바꿔줄 도구들이요.”
“…네?”
그녀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을 사람으로 바꿔줄 도구라니.
‘내 모습이 이상한가.’
한성태가 볼을 긁적이려다가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멈칫거렸다.
털이 만져졌다.
‘아. 그러고 보니 여행 시작한 이후로 면도를 안 했구나.’
면도만이 아니다.
머리카락도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잘라주게요?”
“돔 삼촌도 제가 깎아주는걸요. 걱정하지 마요.”
그녀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한성태가 도미닉의 머리카락이 없다는 걸 생각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머리카락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관리해준다는 거지?
잠시 불안해하던 것도 잠시.
‘뭐, 어때. 망하면 그냥 밀어버리면 되지.’
머리카락 그거 하나 잘못 깎는다고 인생이 말하는 것도 아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어릴 때 자신을 면도해주겠다며 면도칼을 들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난다며 웃습니다.]한성태가 성좌의 메시지를 보며 눈을 감았다.
푸화악.
턱에 거품이 닿는다.
그리고 사각,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칼날이 부드럽게 턱을 긁었다.
사각, 사각.
면도칼을 망설임 없이 털을 잘라냈다.
도미닉의 털을 잘라준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그녀의 손은 상당히 능숙해 보였다.
“루….”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본 한성태가 입을 다물었다.
면도하는 루나의 얼굴이 불안했다.
한껏 집중하고 있는데 자꾸만 눈동자가 흔들린다.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거야.’
한성태는 다시 눈을 감았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는가.
사각.
정비소 안은 한동안 사각 하는 소리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후우… 다 됐어요.”
그녀의 말에 한성태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살펴봤다.
“괜찮은데요?”
“그렇죠? 삼촌도 항상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한성태의 말에 그녀가 뿌듯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가 웃음을 흘렸다.
“고마워요. 오늘 저녁은 제가 살게요.”
“와. 그럼 저 엄청 비싼 거 얻어먹어야겠어요.”
“네. 얼마든지요.”
한성태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통장을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번다.
루나에게 비싼 밥 하나 사주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가요. 한과 가고 싶은 곳이 많아요.”
“네.”
그녀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비소를 나온 한성태는 루나와 함께 식당에 갔다.
1인당은 오백 달러나 하는 곳이었지만, 그녀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식당 다음으로 간 곳은 극장이었다.
“와.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렇게 슬픈 연극인지 몰랐어요. 예전에 봤을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역시, 누구랑 보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네요.”
그녀가 한성태의 팔에 달라붙으며 말했다.
루나를 보며 한성태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함께 본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성태에게도 상당히 감명 깊었다.
“이제 어디 갈까요?”
그녀의 물음에 한성태가 바로 말했다.
“루나는 어디에 가고 싶어요?”
“저는 한이 가고 싶은 곳이요.”
“저도 그런데. 그럼 같이 정해보죠.”
한성태가 그녀와 함께 일정을 정했다.
당장 언제까지 한국으로 가야 하는 계획은 없었다.
여유롭게 계획을 짜도 된다.
그렇게 그녀와 보낸 시간이 일주일이 넘었다.
“아쉽네요. 한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요.”
“저도요. 그래도 우리한테는 시간이 많잖아요.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죠.”
한성태의 말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떠나 한성태가 걸음을 옮길 때였다.
“한.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와요.”
“네. 고마워요.”
루나의 말에 한성태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한성태가 미국을 떠나 다시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