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25
25화
* * *
[‘천의 얼굴’은 당신이 너무 의미 없는 곳에 시간을 쏟는다고 지적합니다.]한성태는 자신이 너무 생각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잡생각이 너무 많고 결단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을 보며 답답해합니다.]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톡, 토옥.
의자에 걸터앉은 채 그는 책상을 두드렸다.
한성태의 앞에는 두 개의 명함이 놓여 있었다.
최예찬의 명함과 정두식의 명함.
그는 손을 뻗어 정두식의 명함을 위로 올렸다.
‘아직은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갈 때가 아니야.’
단순히 PAN 엔터테인먼트가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성태에게 있어 PAN 엔터테인먼트는 들어갈 수 있다면 매우 감사한 곳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들어가 봤자 조건도 좋지 않아.’
정두식이 명함을 주며 오디션을 보라 제안하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오디션을 보면 바로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답을 받지 못했다.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간다고 해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천의 얼굴’은 소속사는 어디까지나 연기를 하기 위해 조금 편리해질 수단이라고 말합니다.]그래, 엔터테인먼트는 결국 연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왕 들어가는 건,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들어가야지.’
한성태가 지금 당장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최예찬 감독님의 제안을 받는 게 가장 좋은데.”
한성태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는 당신이 뭘 고민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천의 얼굴’이 연기를 하는 데에 있어 망설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그래, 고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최예찬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한성태에게도 이득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필모그래피에 한 줄 올릴 수 있고, 최예찬과 촬영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맥을 다질 수 있다.
무엇보다, 촬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 필모그래피 한 줄이 결국 엔터테인먼트에서 받는 대우의 차이로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좋은 기회라고 말합니다.]연기의 신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기회.
그 말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은 짧았다.
한성태는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천의 얼굴’이 당신을 바라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립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선택을 응원합니다.]―여보세요.
스마트폰 수화기로 들려오는 목소리.
한성태는 명함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 * *
“날씨 좋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
휘이잉.
바람이 불어왔다.
‘아직 좀 춥나.’
겉옷을 꽉 잡아매며 그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11월이 되어서 그런지 바람이 상당히 차가웠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옷을 사러 가야 할 타이밍이라며 당신을 설득합니다.]한성태는 고개를 저었다.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옷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너무 쫌팽이 같다며 입술을 삐죽 내밉니다.]“그래도 이번 일당 받으면 한 벌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좀팽이 같다는 말을 취소하겠다고 말합니다.]한성태는 메시지를 살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연기의 신들과 수다 떨기를 한참.
“여기쯤인데…….”
스마트폰을 통해 지도를 살피던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러 개의 매장과 오피스텔이 보였다.
‘주소는 여긴데.’
최예찬이 알려준 주소를 찾아 움직인 끝에 도착한 건물의 앞.
바로 밑에 카페가 있고 그 위로 여러 매장이 보였다.
‘3층……. 아, 여기다.’
계단을 타고 올라간 한성태는 입구를 굳게 가로막고 있는 철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딩동딩동.
짧은 심호흡과 함께 한성태는 바로 초인종을 눌렀다.
여기까지 와서 망설이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드드득.
녹슨 경첩의 문이 열리고 최예찬이 모습을 보였다.
“아, 성태 씨. 들어오세요.”
그는 한성태를 발견하고는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꾸며져 있던 외부와는 다르게, 최예찬의 사무실 내부는 인테리어가 매우 잘 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상당히 감각적이라며 눈을 반짝입니다.]연기의 신 중 하나가 최예찬의 사무실에 관심을 보였다.
“뭐 마실래요? 커피? 녹차?”
“저는 냉수면 됩니다.”
한성태의 말에 최예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예찬이 다과를 준비하고 있을 때, 한성태는 소파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살펴봤다.
연기의 신이 말한 대로 상당히 매력 있는 인테리어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느낌.
‘여기서 화보 찍어도 잘 나올 것 같네.’
사무실을 살펴보던 그는 책장 하나 앞에 멈춰 섰다.
책장에는 지금까지 최예찬이 찍었던 영화의 대본과 CD, 그 외에 여러 추억이 담긴 물품이 전시되듯 놓여 있었다.
“이건 제가 스무 살 때 처음 찍었던 단편 영화예요.”
“아, 감독님.”
“이때 참 재미있었죠. 애들끼리 모여서 일단 찍고 보자고 하면서 움직였었는데.”
CD를 바라보는 최예찬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그리움이란 감정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그럼 가서 이야기할까요? 오늘 할 말이 많아요.”
“네.”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옮겼다.
소파에 앉은 한성태는 최예찬이 건네준 생수를 마셨다.
“일단 이것부터 받으세요. 내년 초에 크랭크인 할 대본인데. 성태 씨도 함께할 수 있으니, 미리 살펴보는 게 좋겠죠.”
“감사합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지금 본 대본의 내용은 어디 가서 발설하면 안 됩니다.”
“물론이죠.”
대본을 유출하는 게 얼마나 멍청하고 위험한 짓인지 아는데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한성태는 절대 그럴 일 없다며 단호하게 말하며 대본을 들었다.
[악인들의 전쟁.]제목을 본 한성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익숙한 제목이었다.
‘아마, 누적 관객 수가 320만이었지.’
호쾌한 액션을 주로 사용하는 영화답게 평가도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반갑다.
팔락.
한 장을 넘기니 인물에 대한 설명이 보였고 그 뒤로 대본의 내용이 보였다.
「1. 골목길(밤)
후드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퇴근하는 여자의 뒤를 쫓아가는…….」
한 장, 두 장 그리고 열 장…….
그의 손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대본을 넘겼다.
“…….”
최예찬은 조용히 한성태가 대본을 읽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본을 읽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입까지 다물고 있는 그의 모습은 배려심까지 느껴졌다.
[‘천의 얼굴’이 흥미로운 시나리오라며 눈을 반짝입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자신이 이런 작품을 했다면 상당히 멋있었을 것 같다며 입맛을 다십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대본을 살핀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체감상, 한 시간 정도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성태는 대본에서 눈을 뗄 수 있었다.
“후우…….”
한성태는 짙게 숨을 내쉬었다.
300만이라는 숫자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듯, 대본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예전에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한성태는 전생에 많은 대본을 보고 연습했었고 그중에는 악인들의 전쟁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상당히…… 재미있네요.”
악인들의 전쟁은 부산 조폭들의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다.
조폭들의 전쟁 그리고 그 속에서 경찰까지 엮이는 이야기.
한성태는 자신이 대본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입에 담았다.
“만약, 성태 씨가 주연이라면 어떤 연기를 보일 것 같나요?”
“저라면…….”
최예찬의 물음에 한성태는 멈칫거렸다.
주연이라면 어떤 연기를 보였을 것 같냐라…….
[‘천의 얼굴’이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시야 한쪽을 가리는 메시지에 웃음을 흘린 그는 바로 입을 열었다.
“제가 주연으로서 연기를 한다면 악인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줄 것 같습니다.”
“악인의 모습 말인가요?”
“네, 저는 주연에게 어떠한 서사도 부여하지 않을 것 같고 의미도 두지 않을 것 같아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악인은 악인으로서 남아야 더 매력이 있으니까요.”
과거, 대본을 보고 연습하면서 생각했던 내용을 입에 담았다.
그의 말에 최예찬이 고민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성태 씨, 액션 할 줄 아십니까?”
“액션이요?”
“네.”
액션이라…….
[‘절권도의 창시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습니다.]“시켜만 주신다면 잘할 자신 있습니다.”
한성태에게는 최고의 코치가 24시간 밀착 마크를 하고 있었다.
* * *
사람들은 말한다.
브루스 리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초인이라고.
세계 정상에 있는 선수들조차 그를 인정했고, 그가 했던 운동 방식은 널리 사용되었다.
초인이라고 불리던 브루스 리의 밑에서 운동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때 액션을 잘하고 싶었던 한성태 역시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허억! 허억!”
[‘절권도의 창시자’가 아직 한 세트도 끝나지 않았다며 당신을 향해 호통칩니다.]그게 이런 결과를 만들어낼 줄은 몰랐으니까.
[‘절권도의 창시자’는 시대가 발전하면서 좋은 운동 기구들이 많이 나왔다며 미소짓습니다.]“허억! 허억……. 모, 못 해!”
메시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한성태는 지쳐 있었다.
절권도의 창시자에게 운동을 배우기를 삼 일.
매번 운동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체감하게 되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그 정도면 충분히 쉬었다며, 더 쉬면 근손실 나니 당장 일어나라고 소리칩니다.]못 일어나, 절대 죽어도 못 일어난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폐와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천의 얼굴’이 이딴 무식한 운동은 몸을 망가뜨리기만 할 거라며 혀를 찹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무식한 운동을 하는 당신을 걱정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자신은 여기에서 나가야겠다며 창문에서 뛰어내립니다.]‘이런 노력이 있어 그런 좋은 액션을 보일 수 있었던 거구나.’
생각도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연기의 신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재능을 넘어선 노력.
연기의 신들은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는 노력 끝에 모두가 인정하는 연기를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도 노력해야지.’
지금까지 했던 노력보다 더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노력해야지.
[‘절권도의 창시자’는 당신이 세 세트를 더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지금은 힘들 것 같았다.
“저, 전화 왔어요! 전화는 받아야죠!”
타이밍 좋게도 전화가 왔으니까.
[‘절권도의 창시자’가 눈살을 찌푸립니다.]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