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39
39화
* * *
쿵쿵쿵.
한성태가 손을 뻗어 현관문을 두드렸다.
감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현관문을 두드리는 그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딩동딩동.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렸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도 걸어봤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김민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이러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을 보입니다.] [‘천의 얼굴’은 당신이 비밀번호를 떠올리는 게 더 빠를 거라고 중얼거립니다.]한성태가 김민석의 집을 찾아온 지 벌써 십 분이 지나 있었다.
바스락.
손에 들고 있는 봉투에 담긴 치킨이 눅눅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띠리릭.
도어록의 잠금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너머로 부스스한 몰골의 김민석이 보였다.
“왔어.”
김민석이 말을 하는데 목이 쉬어 소리가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 일어났냐?”
한성태의 물음에 김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조금 잔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김민석의 모습을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생의 나는 저 모습보다 더 심했겠지.’
머리가 떡지고 퀭한 얼굴을 한 김민석의 모습은 과거 폐인으로 살았던 한성태, 그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
띠리릭, 철컥.
안으로 들어가 식탁에 치킨 봉투를 내려놓았다.
“냄새가 좋네. 치킨이야?”
“어. 치킨 맞고. 일단 가서 씻고 와라. 너 냄새가 많이 난다.”
한성태의 말에 자신의 옷을 들어 냄새를 맡은 김민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자신의 냄새기에, 그 냄새를 제대로 인지 못 하는 것이다.
“그렇게 냄새가 많이 나?”
“어. 엄청 나.”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심각하단 건데. 알았어, 씻고 올게.”
김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성태는 치킨의 포장을 적당히 풀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원룸인 그의 집과 다르게 김민석의 집은 매우 크고 넓었다.
‘혼자 사는 집이 방이 세 개라…….’
전생에도, 그리고 현생에도 한성태는 상상하지 못할 규모의 집.
한성태는 십여 년 만에 찾아온 예전 김민석의 집을 돌아다니며 웃음을 흘렸다.
[‘천의 얼굴’이 연기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지내는 환경도 중요하다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의 집과 너무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며, 당신을 측은하게 바라봅니다.]측은하게 볼 정도는 아닌데.
김민수의 집이 자신이 사는 곳에 비하면 좋은 곳은 맞지만.
‘내가 사는 곳도 나쁘지 않은데.’
연기의 신과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집을 살펴보기를 한참.
한성태는 김민석이 작업실처럼 사용하는 방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암막 커튼을 달아놓은 것처럼 어두운 공간에 PC 모니터와 책상 스탠다드 조명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밑으로 종이를 뭉친 것들과 A4 용지 수십 장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건…….’
한성태는 방문 앞에 있는 종이를 한 장 주워들었다.
익숙한 양식의 지문들.
[‘천의 얼굴’이 관심을 보입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는 당신의 친구가 작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합니다.]영화의 대본이었다.
그것도 시중에 풀리지 않을 김민석이 쓴 작품의 대본.
한성태는 그 대본을 묘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기는 했나 보네.’
전생에 김민석은 영화감독이 된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십 년은 더 넘는 시간이 갈렸다.
그런데 벌써부터 대본을 제작하고 있었던 사실에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뭐 해?”
언제 나온 걸까.
머리가 축축하게 젖은 김민석이 상의를 입으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다 씻었어?”
“어, 간만에 씻어서 그런지 시원하네.”
김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한성태가 대본을 보고 있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
김민석을 힐끔 바라본 한성태는 대본을 방안에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잘 먹을게.”
“어, 잘 먹어라.”
김민석이 닭다리를 드는 게 보였다.
“……뭐 하냐?”
“어?”
“왜 안 먹어?”
“아……. 그냥 생각이 좀 많아서.”
1, 2분가량을 먹지 않고 멍하니 있던 김민석이 한성태의 말에 치킨을 입에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성태야.”
“어.”
“나. 영화 하나 만들어 보려고.”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가 멈칫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민석의 입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말이 나온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집안 사정과 어머니의 반대로 인해 십 년이 넘게 꿈을 접었던 사람이었으니까.
“너 열심히 하는 거 보고. 나도 고민을 많이 했거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
“그래서 전공 살릴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이것저것 찾아봤거든.”
김민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우연히 아는 지인의 독립 영화 촬영을 견학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이 연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김민석은 많은 생각이 들었단다.
“멋있더라고.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어떨지 상상도 해봤고. 한번 해보려고.”
“그래서 그렇게 연락이 안 됐던 거야?”
“그렇긴 한데. 웃기다? 너도 연락 안 했잖아.”
“나는 촬영하고 있었잖아.”
태연하게 말하는 한성태의 모습에 김민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말 나온 김에 대본 한번 봐줘.”
“대본?”
“어. 너, 그래도 최예찬 감독님이랑 작품 하나 했었잖아. 괜찮은지만 좀 봐주면 돼.”
“알았어.”
김민석이 제안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대본을 봤던가.
직접 연기하지는 못해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좋은 작품을 볼 눈은 있었다.
“이거거든? 아직 미완성이긴 한데. 대충 스토리는 확실하게 나와 있어.”
“볼게.”
어느새 치킨은 뒷전으로 밀린 채 두 사람은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성태는 김민석에게 받아든 대본을 살폈다.
‘살인마에게서 살아남아라.’
제목에서부터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물씬 풍겼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야. 좋은 제목을 못 찾아서.”
“알았어.”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본을 살폈다.
사락.
한성태는 김민석의 앞에서 대본을 넘겼다.
처음에는 적당한 내용이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김민석은 아직 스무 살이었고 재능은 있었지만, 경험이 적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포장지를 풀어보니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상당히 흥미로운 스토리라며 눈을 반짝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긴장감을 잘 조성할 수 있으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 말합니다.] [‘천의 얼굴’이 대본의 내용을 살피며 입맛을 다십니다.]한성태와 함께 대본을 살피는 연기의 신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거 스토리까지 네가 생각한 거야?”
“어, 참고한 게 몇 개 있기는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썼지.”
“대박이네.”
한성태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대본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외딴 시골집을 찾은 한 여성, 그를 죽이러 온 살인마에게서 하루 동안 살아남아야 한다.⌟
대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어떻게 보면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였지만, 그 소재를 김민석이 너무 잘 살렸다.
연출만 잘한다면 매우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출연자가 세 명밖에 없는 것도 독특하고.’
대본의 내용만 살펴보면 제작비도 얼마 들 것 같지도 않았다.
“재미있네.”
“그래?”
“어, 시골에 가는 개연성도 확보가 잘 된 것 같고. 약간 걸리는 건 살인마가 왜 여기 있냐는 건데. 이것도 개연성 맞추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다행이네.”
한성태의 말에 김민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게 아직 미완성이긴 한데. 완성되면 도와줄 거지?”
“당연하지. 얼마든지 불러.”
“오케이. 그럼 이건 됐고. 넌, 좀 어땠어? 촬영 끝났다며.”
대본에 대해 더 말하고 싶었는데.
한성태는 아쉬운 얼굴로 대본을 힐끔 바라보고는 촬영장에 있었던 일들을 입에 담았다.
“이야. 네 말이 사실이라면 연기 잘하긴 했나 보네.”
“좋게 봐주신 거지.”
촬영장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꽤 지났을 무렵.
“촬영도 끝났는데, 이제 뭐 하려고?”
“나?”
김민석의 물음에 한성태는 스마트폰을 돌아봤다.
이제 무엇을 할지 그는 정해놓았다.
* * *
“진짜 너무 탐나는데.”
정두식은 서하린이 알려준 한성태의 온스타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성태의 온스터 게시물을 살펴보며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운동하는 모습을 담은 게시물부터 시작해서.
동묘시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찍은 화보까지.
‘이런 사람이 우리랑 함께해야 하는데.’
벌써 삼 주가 넘게 한성태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한성태라는 원석은 자신과 같은 매니저가 옆에 있어줘야 빛이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툭툭.
책상을 두드리며 한성태의 온스타를 살피기를 한참.
우웅.
화면이 검게 물들더니 처음 보는 번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지?’
‘010’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 스팸은 아닌 것 같은데.
정두식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고.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멈칫거렸다.
―한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한성태입니다.
정두식이 계속 기다리던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
“아, 안녕하세요, 한성태 씨.”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에 응답했다.
―제가 너무 늦게 연락을 드린 게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연락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일찍 전화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늦게 전화를 했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한성태가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정두식은 그가 쌓였던 아쉬움이 한순간에 지워낼 수 있었다.
―제가 부족한 게 많지만. 배우로서 PAN 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하고 싶어서요.
‘배우로서?’
한성태는 아직 작품을 한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배우 지망생을 잘못 말한 것은 아닐까.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앞으로 자신들과 작품을 하게 될 텐데, 배우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성태 씨가 편하신 시간대를 말해주신다면, 최대한 그 시간에 맞춰보겠습니다.”
한성태와 약속을 잡은 정두식은 전화가 끝나고 나서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걸려온 전화는 그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잠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정두식이 팀장이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