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40
40화
* * *
[‘천의 얼굴’이 당신의 선택을 궁금해합니다.]연기의 신의 메시지를 보며 한성태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PAN 엔터테인먼트로 가는 길.
한성태의 선택에 연기의 신들은 JT가 아닌 PAN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했다.
“제게 가장 먼저 제안을 해준 회사라서요.”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너무 단순한 이유라고 말합니다.]“그리고 당장 PAN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일단, 계약서부터 보고 제게 더 좋은 대우를 해줄 곳으로 갈 생각이니까요.”
이십여 년의 경험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신인 배우에게 불공정하거나, 혹은 좋은 조건의 계약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시절 표준 계약서의 기준은 알고 있으니까.’
많은 정보를 알아야 그만큼 계약할 때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정두식이란 사람은 미래에도 유명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성태가 그를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웃는 얼굴 뒤로 한성태가 모르는 얼굴이 있을 수 있었다.
“적어도 계약서에 있어서는 잘 볼 자신이 있어요.”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는 당신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계약 면에 있어서 자신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그들의 메시지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연기의 신들 모두 배우 계약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는 위인들이었다.
비록 시대는 달라도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들.
“든든하네요.”
한성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정두식이 알려준 주소를 토대로 이동한 끝에, 한성태는 PAN 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의 얼굴’이 요즘 기획사들은 전부 이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냐며 놀라워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이 정도면 좋은 조건을 기대해봐도 될 것 같다고 중얼거립니다.]저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건 아닌데.
굳이 그 사실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한성태는 웃으며 걸음을 옮겼고 마중을 나온 정두식과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성태 씨. 엄청 오랜만이네요.”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저야, 언제나 잘 지내죠.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하시죠.”
한성태를 만난 정두식의 표정은 밝아져 있었고 어딘가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정두식을 보며 옅게 웃음을 흘린 한성태는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리 없이 열리는 자동문 너머로 PAN 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이 보였다.
건물에서도 가장 높은 층을 사용하는 사무실답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대단했다.
“3층과 4층은 다른 곳에 세를 주고 있어서요. 되도록 3, 4층에는 가지 않으시면 좋습니다.”
“네.”
“곧 건물 전체를 이용한다고는 하는데. 언제 그럴지는 모르겠네요.”
정두식은 상당히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굳이 지금 알려줄 필요도 없는 내용까지 전부 말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그저 웃음만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13층의 사무실.
“덕수 씨 왔어요?”
“네, 팀장님은요?”
“팀장님은 지금 회의실이요. 뒤에는?”
“이번에 저희 회사에 들어오실 분이요. 팀장님 지금 혼자 계신 건가요?”
정덕수의 물음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정덕수는 한성태와 함께 회의실로 움직였다.
똑똑.
“네.”
“팀장님, 안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회의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팀장님. 한성태 배우님 데리고 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안녕하세요. 배우 2팀의 팀장, 민나정이라고 합니다.”
“한성태입니다.”
“이쪽에 앉으세요.”
한성태는 그녀의 앞에 앉으며 자신이 들고 온 종이를 내밀었다.
연극과 최예찬의 작품을 했다는 이력이 담긴 프로필.
“음…….”
한성태의 프로필을 보며 민나정의 표정이 묘해졌다.
많고 많은 배우 중에 이 정도로 이력이 적은 배우는 처음 봤겠지.
심지어 기록이 되어있는 두 가지 이력 중 하나는 한국대학교에서 하는 연극이었다.
“악인들의 전쟁은 현재 제작하고 있는 최예찬 감독님의 작품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렇군요.”
한성태의 대답에 민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툭툭.
책상을 두드리는 그녀의 얼굴이 고민에 잠겨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
“준비해오신 연기가 있으신가요?”
“네.”
그녀의 물음에 한성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한성태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연습부터 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엔터테인먼트에서 할 연기도 준비한 상태.
“그럼 그 연기를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우 2팀의 회의실은 직원들끼리 회의를 할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 사용하기도 한다.
“후우…….”
정두식과 민나정의 앞에 서며 한성태는 옅게 숨을 내쉬었다.
오디션에 필요한 연기란 무엇일까.
한성태는 그걸 설득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기를 보는 이들이 만족하고, 어떤 연기인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설득력.
[‘천의 얼굴’은 대본 없는 연기로 상대를 이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자신이 처음 무성극을 할 때 많이 힘들었었다고 중얼거립니다.]한성태가 준비해온 건 강의실에서 독백 연기했던 대본의 내용을 약간 수정한 버전이었다.
대학교에서 했던 독백 연기는 끝내 고백을 하지만, 개량 버전은 고백을 하지 못한다.
아련하고 슬픈 마음, 그리고 상대를 응원하는 한 남자의 모습.
“…….”
“하…….”
한성태의 연기를 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들이 보는 한성태의 연기는 단순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좋군요. 짝사랑하는 사람의 아련한 감정을 너무 잘 표현했어요. 보는 제가 다 가슴이 아파 올 정도더군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죠. 한성태 배우님과 같은 분이 저희 회사에 와주셨는데. 두식 씨와 왜 그리 한성태 배우님을 데려와야 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아요.”
한성태의 연기를 본 민나정의 칭찬이 이어지고, 그 말을 듣는 정두식이 흐뭇해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네.”
민나정은 회의실에서 나가더니 이내,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표준 계약서입니다. 한번 살펴보시겠습니까.”
“네.”
그것은 계약서였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표준 계약서.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그는 큰 조건을 기대할 수 없었다.
‘7년 계약에 비율은 5대5.’
모난 곳 없이 평범한 계약서.
예상했던 내용의 계약서였고 아무런 문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에 이어 민나정이 보인 행동은 조금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건, 저희 회사의 계약서입니다.”
“팀장님? 그건…….”
민나정이 새롭게 꺼내 내민 계약서를 보며 정두식이 당황했다.
마치, 여기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을 본 듯한 모습.
‘이건…… 표준 계약서가 아닌데.’
계약서를 살펴보는 한성태의 눈이 미미하게 떨렸다.
민나정이 새롭게 제시한 계약서는 전에 봤던 계약서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5년 계약에 6대4.’
계약 기간이 2년이나 줄었고 비율도 한성태가 6을 먹고 들어갔다.
그 외에도 한성태에게 유리한 조항들이 매우 많았다.
지망생이라고도 불 수 있는 그에게 줄 만한 계약서는 아니었다.
“저는 제가 이런 계약서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한성태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봤다.
앞으로 계속해서 연기할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 찍은 작품들이 성공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민나정이 내민 계약서는 한성태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로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좋은 대우를 받은 만큼 그만한 성과를 내야 했으니까.
“그만큼 한성태 배우님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너무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계약서를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배우님을 강제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천천히 고민해 보세요.”
이걸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천의 얼굴’은 자신을 믿어주는 기획사와 함께하는 것은 큰 행운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지금 당신의 수준에 이만한 대우를 받기 힘들다고 조언합니다.]연기의 신들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계약하겠습니다.”
한성태가 결정을 내리고 나서 계약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사인을 하고 지장을 찍고 나서 계약서가 담긴 봉투를 받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성태 배우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배우님은 저희 2팀에서 담당할 겁니다. 매니저는 회의를 통해 결정이 나면 바로 배정해드리겠습니다.”
매니저라는 부분에서 민나정이 정두식을 힐끔 바라보았다.
“회사 구경을 해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두식 씨가 안내해드려요.”
“네.”
민나정과 인사를 나누고 정두식과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를 한참.
“어……. 성태 씨?”
서하린이 시야에 들어왔다.
* * *
“여기서 성태 씨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서하린이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말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PAN 엔터테인먼트에 오신 거군요. 그럼 앞으로 종종 만날 수 있겠네요?”
“네. 시간이 된다면요.”
서하린과의 대화는 무척이나 짧았다.
그녀는 할 일이 있었고 한성태 역시 딱히 할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아, 민석이가 제작하는 영화에 하린 씨가 나와주면 딱이기는 한데.’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확실히 이미지가 맞는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천의 얼굴’이 괜찮은 생각 같다고 중얼거립니다.]미래에 서하린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다.
한성태와 달리 성공한 배우였고, 그녀가 찍었던 작품의 배역들을 알고 있었다.
그중에는 스릴러, 추리 장르의 영화 역시 존재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한성태는 미련도 없이 서하린과 헤어졌다.
아직 작품이 나온 것도 아니고 김민석이 배우를 찾아달라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 한성태는 그녀에게 영화 출연을 제안할 생각이 없었다.
서하린과 헤어지고 도착한 PAN 엔터테인먼트의 대본실.
“대본 다 살펴보시고 저한테 연락을 주시면, 그때 제가 데리러 오겠습니다.”
“네.”
정두식이 잠시 자리를 떠나고 한성태는 대본 실에 들어 있는 대본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업계에서 나름 입지를 다져놓은 회사답게 대본실에 들어있는 대본 역시 무수히 많았다.
당장 대본 실의 크기만 하더라도 이십 평이 넘었으니까.
그 정도로 많은 대본이 쌓이고 있었다.
‘심지어 여기 있는 것들도 추리고 추린 것들이라고 하니.’
연극부터 시작해 영화까지.
한성태에게 있어서 PAN 엔터테인먼트의 대본실은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와……. 이게 여기 있네?”
눈에 익은 대본들을 살펴보는 한성태의 얼굴에 행복이 깃들었다.
제작된 대본과 제작되지 않은 대본.
한성태는 자신이 출연할 수 있는 대본을 구분했고, 그중에서 자신이 어떤 배역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본을 살피고 있을 무렵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번에 들어온 매니저인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