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46
46화
* * *
―지금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사위원 앞에 선 배우가 자신의 가슴을 내리치며 소리치고 있었다.
자신의 연기에 호소력을 더하기 위해서 팔을 크게 휘두르는 것 같은데.
‘너무 과장해서 움직이네.’
한성태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손짓과 몸짓이 대사 전달에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너무 과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행동이었다.
[‘천의 얼굴’이 따분하다며 하품을 내쉽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는 당신의 차례가 오면 깨어 달라고 말하고는 눈을 감습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안타까운 연기라며 한숨을 내쉽니다.]연기의 신들 역시 한성태와 다를 거 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한성태보다 먼저 오디션을 치르는 배우들을 보며 연기의 신들은 고개를 돌렸다.
“네……. 잘 봤습니다.”
그 반응은 심사위원들 역시 다를 게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따분함이 맴돌고 있었다.
“괜찮은 연기였습니다. 그런데 딕션이 조금 부족한 것 같네요. 시옷 발음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데, 연습을 더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너무 과장되게 감정을 표출한 느낌이 들더군요. 9신의 이 부분은 조금 더 감정이 절제되어야 하는데, 배우님의 연기는 활화산처럼 마구 터뜨리더라고요.”
배우의 연기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의 말은 무척이나 냉정했다.
한성태는 그들이 하는 말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에게는 냉혹한 말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들이었다.
잘 듣고 연습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되겠지.
[‘절권도의 창시자’는 그래도 실력이 있는 사람 같다고 중얼거립니다.]연기의 신의 말에 한성태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위원들이 하는 조언들은 전부 실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들이 낸 성과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실력 하나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 부분.
‘하긴, 예전에 봤을 때도 연출이나 스토리면에서 부족한 건 없었으니까.’
배우들의 연기가 따라오지 못했을 뿐.
남석대와 진자림의 실력은 알아줄 수 있었다.
“다음이……. 한성태 씨?”
그렇게 배우들의 연기가 끝이 나고 한성태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심사위원들 앞에 섰다.
한성태를 지나치는 배우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게 보였다.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좋지 않으니, 그만큼 걱정이 되겠지.
“이번 작품이 처음이시네요?”
“네, 그렇습니다.”
남석대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 오디션은 엔터테인먼트와 다르다.
배우의 이력을 보는 엔터테인먼트와 다르게, 드라마는 오직 배우의 연기력만 보고 평가한다.
물론 최예찬과 했던 작품을 쓰면 도움이 안 되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그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지.’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작품을 이력에 올리는 건 좋지 못하다.
대학교에서 한 연극도 마찬가지.
한성태는 오직 자신의 연기만으로 배역을 따낼 생각이었다.
“흠……. 이건 또 처음인데.”
“이력이 뭐가 중요해요. 연기만 잘하면 되죠.”
한성태의 이력을 보며 남석대가 중얼거렸고 그 옆에 있던 스토리 작가, 진자림이 말을 걸었다.
“준비해오신 연기가 있으실까요?”
남석대가 프로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진자림이 입을 열었다.
한성태는 그녀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로비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 스토리 작가일 줄은 몰랐는데.’
전생에는 J, TV와 인연이 없었고 진자림이란 이름도 유명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잘 짜는 것과 다르게 성적이 안 나와 도태된 케이스가 분명하다.
지금 한성태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이미 전생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네, 있습니다.”
한성태는 진자림의 물음에 대답하며 대본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의 손을 따라 진자림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준비되시면 바로 하시면 됩니다.”
한성태의 말을 들은 남석대가 진자림을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성태는 짙게 숨을 내쉬었다.
뚜벅.
한성태가 걸음을 옮긴다.
배우, 한성태가 아닌 마약 운반책으로서.
그의 발걸음이 매우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무성극이란 결국 연출에 그 결과가 나뉜다고 말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는 당신의 작은 손짓이, 눈썹의 꿈틀거림이 보는 이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한성태는 대사를 내뱉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주위를 둘러보았고 두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무언극, 일명 마임이라고 하는 연기를 하며 그는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의 얼굴’이 묘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한성태의 연기를 보며 신들이 묘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메시지 속에서 한성태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연기를 이어갔다.
경찰에게서 도망치는 마약 운반책의 모습.
그의 연기에 어느샌가 오디션장은 조용해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뻗고 몸을 돌리는 그의 모습에도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연기가 끝나고.
짝짝짝.
정적 속에서 진자림의 박수 소리가 오디션장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어디서 이런 배우가 나타난 거지?’
두 번째 연기하는 한성태를 보며 남석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성태는 마임 연기를 하고 있었다.
대사 없이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앞서 연기했던 다른 배우들과 달랐다.
배우들에게 대사가 있는 이유는 상황의 전달과 설득력 때문인데.
한성태는 그런 대사 없이 보는 이를 이해시키고 몰입시켰다.
‘미쳤군.’
베테랑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고, 과거 무성극의 유명한 배우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톡, 토옥.
그의 손가락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생각이 많아질 때 나오는 습관 중 하나다.
탁, 타다닥.
그의 앞에서 한성태가 긴박하게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피해 도망치는 그의 모습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했다.
저 배우를 꼭 데려와야 한다.
오디션에 참여한 배우를 보며 이런 생각을 가진 게 얼마 만이던가.
한성태를 보는 남석대의 생각이 단단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작가님도 나랑 같은 생각인 것 같네.’
그는 고개를 돌려 진자림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꽉 쥔 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한성태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표정이 그녀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성태를 데려오고 싶다는 열망.
남석대는 그녀의 눈빛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툭.
책상을 두드리던 남석대의 손가락이 멈추고, 그와 동시에 진자림의 고개도 돌아갔다.
“…….”
“음.”
남석대와 진자림이 한동안 눈을 마주쳤다.
조용히 눈빛만 오고 가던 것도 잠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한성태의 연기도 끝이 났다.
“너무 잘 봤습니다.”
“아무런 대사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성태 씨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표현력이나 행동 묘사. 무엇하나 부족한 게 없었습니다.”
남석대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디션을 통해 일곱 명의 배우를 봤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의 마음에 드는 연기를 하지 못했다.
포기할 때쯤 나타난 게 바로 한성태였다.
남석대와 진자림, 그 두 사람은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
“성태 씨, 운전은 좀 하실 줄 아세요?”
* * *
―지하 3층. 문이 닫힙니다.
엘리베이터 안.
한성태는 정두식이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디션이 끝나고 엘리베이터에 타기까지.
정두식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방송국에 올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기에, 한성태는 자신이 오디션을 보는 사이 문제라도 생긴 것인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점점 낮아지고 ‘B1’이라는 글자가 떠올랐을 무렵 줄곧 조용히 있던 정두식이 입을 열었다.
“성태 씨.”
“네, 매니저님.”
“성태 씨, 도대체 뭐 하는 사람입니까?”
“……네?”
갑작스러운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멈칫거렸다.
의문에 찬 한성태의 눈이 정두식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연기 보면서 이렇게까지 충격 먹은 건 오랜만인데. 성태 씨, 연기는 그냥 미쳤더군요. 보면서 감탄밖에 안 나왔네요.”
“아……. 감사합니다.”
조용한 사람 같았는데.
한번 말하기 시작한 정두식의 입은 쉽게 닫힐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천의 얼굴’이 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정두식의 반응이 재미있다며 옅게 웃음을 흘립니다.]정두식과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지하 주차장.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차를 끌고 오겠습니다.”
그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귀찮게 움직일 필요가 있나 싶기는 했지만, 정두식이 앞으로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타세요.”
“네.”
한성태가 뒷좌석에 올라타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두식이 천천히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바로 집에 가시나요?”
“네, 내일 학교에 가야 해서요.”
“아……. 성태 씨 대학생이었죠. 연기하는 것만 보면 십 년은 업계에서 구른 사람 같은데.”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미소를 지었다.
그와 대화 나누기를 한참.
“매니저님, 편하게 말 놓으셔도 돼요.”
“그래도 되나요?”
“네, 편하게 말하세요.”
전생이 있기는 하지만, 현생의 한성태는 이제 막 21살이 되었다.
그에 반해 정두식의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앞으로 오랫동안 얼굴을 보게 될 텐데, 계속 불편하게 존댓말을 주고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 편하게 말할게.”
“네. 매니저님.”.
“매니저님이 뭐야. 너도 편하게 말해. 아, 그렇지. 형이라고 불러보는 건 어때? 이건 조금 너무 멀리 나갔나?”
한성태의 말에 정두식은 기회를 잡은 사람처럼 말을 걸어왔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오디션 결과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그때까지 뭐할 거야?”
집에 도착했을 때, 정두식이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의 물음에 한성태는 미소를 지었다.
“연습해야죠.”
오디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성태가 하는 일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연습과 노력.
한성태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