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49
49화
* * *
조석정은 ‘레이스 스타트’에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마약 운반책 역을 어떤 배우가 맡을지였다.
‘어중간한 배우들로는 소화할 수 없을 텐데.’
그간 많은 작품을 찍어온 그였기에, 그 배역이 가진 가치를 모를 수가 없었다.
1화밖에 등장하지 않는 적은 비중의 배역이었지만, 그 배역으로 인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배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배우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성태라는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남석대에게 마약 운반책 역이 캐스팅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조석정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가 힘들었다.
한성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뿐더러, 개인적으로 찾아본 결과 이번이 첫 작품인 배우였다.
아직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한 배우.
그런 사람을 데려다 쓴다는 말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한성태를 만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조석정은 그가 얼마나 잘해줄지 걱정하고 있었다.
조석정의 걱정은 촬영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
‘신인은 아무리 잘해도 신인이라도 생각했는데.’
스턴트맨을 대신하여 운전대를 잡은 한성태의 모습에 조석정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고 있던 사람의 연기는, 그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좋았다.
“감독님도 대단하네요. 저런 배우를 어디서 발견한 거야.”
“잘하죠? 저도 처음에 성태 씨 연기보고 많이 놀랐어요.”
조석정의 반응에 남석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첫 작품인 거 맞죠?”
“네.”
“대박이네요. 저도 처음에는 저 정도로 잘하지 못했는데.”
조석정은 핸들을 꺾는 한성태의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괴물이네, 괴물이야.’
괴물 신인의 등장.
조석정은 한성태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한성태라는 사람이, 그라는 배우가 궁금해졌다.
* * *
부와아앙!
차를 몰아 세트장을 질주하는 한성태의 입꼬리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잘 나가네.’
쉬는 시간, 남석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습이라는 명목으로 차를 끌었다.
대현에서 협찬한 스팅어라는 이름의 차로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속도에 만족한다고 말합니다.]끼이익.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적절하게 밟으며 드리프트한 그의 차가 스태프들 앞에서 멈춰 섰다.
“성태 씨. 예전에 이쪽에서 일한 적 있어요? 드리프트가 아주 예술이야.”
“나, 이렇게까지 운전 잘하는 사람 처음 보잖아. 나중에 운전 가르쳐줄 수 있어요?”
한성태의 운전과 연기 실력을 본 이후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차가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었다.
“처음 연기하는 거 맞아요? 대사도 없는 연기보고 몰입하기는 처음인데.”
“솔직하게 말해봐요. 성태 씨, 대학생 아니지? 이게 어딜 봐서 대학생 연기야.”
“얼굴도 잘생겨 운전도 잘하는데, 심지어 연기까지 엄청 잘해. 부럽네요.”
그들의 말에 한성태는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전생에는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들의 반응이 익숙하지 않았다.
항상 비난만 받아온 그였으니까.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앞으로 많은 관심을 받을 건데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운동을 하면 사람들의 관심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낼 수 있다며 촬영 끝나고 운동하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의 반응이 재미있다며 웃음을 흘립니다.]하지만, 언제까지 익숙하지 않은 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적응해야 한다.
“성태 씨, 운전할 때 불편한 부분 없나요? 액션 캠 달고 있어서 운전하기 힘들 텐데.”
“조금 불편하기는 한데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에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혹시라도 문제 있으면 바로 말해줘야 합니다.”
“네, 바로 말할게요.”
남석대의 말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태 씨 덕분에 살았네요. 다른 스턴트맨들도 다 맡은 배역이 있어서 새로 구하기도 힘든데. 이렇게 잘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부탁하는 건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죠. 저. 감독님.”
“네, 말하세요.”
“민폐가 안 된다면 나머지 촬영도 제가 해도 될까요?”
스턴트맨이 온다면 지금의 즐거움도 사라질 터.
한성태는 스턴트맨을 사용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이 연기하고 싶었다.
“음……. 어려울 건 없죠. 아니지, 오히려 제가 부탁해야죠.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네!”
“그럼 성태 씨가 계속 연기하시고, 그 스턴트맨은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네요. 안 그래도 인력 부족해서 고민이었는데. 잘됐죠, 뭐.”
남석대는 큰 고민 없이 흔쾌히 허락해줬고, 한성태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 걱정 없이 즐겁게 연기할 수 있다.
[‘천의 얼굴’이 배우에게 적극적인 자세는 필요한 태도라며 당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인정받는 모습에 미소를 짓습니다.]“자, 바로 다음 촬영 들어갑시다!”
“네!”
남석대의 말에 사람들이 크게 대답했다.
한성태도 그들과 함께 대답하며 세트장 위로 올라갔다.
비중이 적기에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촬영이 진행되지만, 한성태는 그 모든 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삼 일이 지난 시간.
어느새 한성태의 배역이 가진 시간도 끝이 보였다.
촬영이 시작되고 셋째 날.
진자림이 촬영장을 찾았다.
조용히 찾아온 그녀는 남석대의 옆에 붙어 조용히 촬영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컷! 너무 좋아요! 성태 씨, 잠깐 쉬고 갑시다!”
“네!”
차에서 내린 한성태는 소매로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남석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같은 장면만 십여 번이 넘게 찍어서 그런지 몸이 상당히 힘들었다.
“수고했어요. 성태 씨도 보면 참 대단해. 어떻게 계속 그런 집중력을 유지하는지 모르겠어.”
“감독님께서 잘 지시해주신 덕분이죠. 다른 배우분들도 많이 도와주셨고.”
남석대의 말에 한성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금 한성태는 십여 개의 신을 찍었다.
같은 장면이라도 프레임이 다르고 다른 방향에서 찍으면 그 모든 게 하나의 신이 된다.
그렇게 나온 장면들이 지금 모니터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천의 얼굴’은 집중력이 흔들리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일이라며 당신에게 정신을 단단히 붙들고 있으라고 말합니다.]아무리 노력만 해오며 살아오던 그였지만, 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찍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연기의 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집중력을 계속 유지하는 게 조금 힘들었겠지.
“한번 볼래요? 전부 너무 잘 나왔어요.”
남석대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 옆에서 진자림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가 보는 모니터에는 한성태가 차를 끌고 드리프트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잘 나왔네.’
남석대의 말대로 한성태의 연기는 괜찮게 잘 찍혀 있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좋은 느낌이라며 짧게 감탄사를 흘립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이런 액션도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나중에 당신이 자신이 찍었던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중얼거립니다.]툭툭.
신들의 메시지를 보고 있던 한성태는 자신의 팔뚝을 두드리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작가님?”
“우리, 오랜만이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진자림의 모습이 보였다.
“잘 지내셨나요?”
“네, 작가님은요?”
“저는 뭐……. 잘 지냈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한성태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
잘 지냈으면 잘 지낸 거지, 잘 지냈을 거라는 말은 또 뭐란 말인가.
“성태 씨, 엄청 연기 잘하네요. 저번에도 느낀 거긴 한데, 현장에서 보니까 느낌이 확 달라요. 괜히 감독님이 날마다 칭찬하는 게 아니네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죠. 성태 씨가 안 왔다면 어떻게 했을지 몰라요. 배역에 맞는 배우를 찾기 힘들었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한성태가 웃으며 말하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대화를 주고받기도 잠시, 진자림은 모니터를 보며 팔짱을 끼는 게 보였다.
고민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한성태는 걸음을 돌려 자리를 옮겼다.
시나리오 작가가 와서 그럴까.
한성태의 연기는 평소보다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세 시간이 넘게 촬영한 한성태는 녹초가 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우우웅.
씻고 쉬려는 그를 한 통의 전화가 붙잡았다.
* * *
―집이냐?
한성태는 귓가에 들려온 김민석의 모습에 힘없이 대답했다.
“어, 아까 들어왔어.”
―내가 쉬는데 방해하는 거 아니지?
“아니야. 대본 좀 보고 자려고 했어. 무슨 일인데?”
―장소 섭외했다는 거 알려주려고 전화했지. 우리 할머니 집에서 촬영하기로 했어.
그의 말에 한성태는 눈을 깜빡거렸다.
김민석의 할머니라면 4년 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 나 과거로 돌아온 거지.’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리며 김민석과 통화를 이어갔다.
―우리 할머니 집이 옥천에 있잖아. 장소도 그렇고 딱 스릴러 찍기에 좋거든.
“하긴……. 구음리라고 했지?”
―어. 옥천 구음리. 워낙 시골이라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마을도 작아서 딱이야.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김민석과 함께 찾아간 적이 있었기에 한성태는 그가 어떤 느낌으로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찍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였다.
―장소는 다 구했고. 아, 너네 소속사에 하린 씨 있다고 하지 않았어? 한번 물어봐봐.
“서하린?”
―어, 내가 물어보는 것보다 같은 소속사인 네가 물어보는 게 더 낫지 않겠냐?
“음……. 알았어. 나중에 한번 이야기해 볼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촬영 수고하고. 고생해라.
“어, 너도 고생해.”
김민석과 전화를 끝낸 한성태는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시간은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내일 오전 8시부터 촬영한다고 했는데.’
세트장까지 한 시간은 걸리니, 두 시간 정도 연습할 시간은 있었다.
빠르게 계산을 마친 한성태는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켜 대본을 잡았다.
앞으로 남은 촬영을 위해 한성태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마지막 촬영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