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54
54화
J, TV의 신작, ‘레이스 스타트’의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방송국에서 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평소였다면 큰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조석정, 호쾌한 액션을 기대해도 좋다.] [레이스 스타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질주를 지켜봐라.] [명품 배우들 출연. 레이스 스타트,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중.]조석정부터 시작해서 공진효, 이민성까지.
사람들에게 연기 잘하기로 알려진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스토리는 어떨지 몰라도, 그들의 연기는 사람들의 기대를 만들어내기 충분하고도 남았다.
사람들의 옅은 기대 속에서 ‘레이스 스타트’의 예고편은 사람들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만 빼돌릴 수 있으면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어.
사납게 웃는 조석정.
―니들이 그러고도 경찰이야? 당장 가서 잡아 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치는 이민성.
―한 번만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실 수 있나요?
굳은 표정의 공진효, 그리고 그녀의 모습 뒤로 하나의 차가 경찰차 여러 대를 피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부아앙!
거친 배기음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스팅어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저 새끼 뭐야!
―당장 쫓아가!
―너무 빨라요. 아무리 밟아도 좁혀지지 않는다고요!
도로에 있는 차들을 추월하며 질주하는 스팅어의 모습을 끝으로, 예고편은 끝이 났다.
예고편이 나온 그 날, 커뮤니티는 떠들썩해졌다.
「[레이스 스타트 예고편 본 사람은 들어와 봐.]
나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거든?
내가 공진효 팬이라서, 팬심으로 본 건데.
예고편에 나온 추격신 봤냐?
내가 한국의 추격신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흥분하기는 처음임.
솔직히 이 정도 퀄리티면 본편도 기대해 볼 만함.
그리고 공진효는 언제나 옳다.」
―레몬은달지않아: 추격신이 좀 치기는 했어. 이번에 작정하고 이를 간 느낌임.
―얼음은뜨거워: 와……. 그런데 공진효, 쟤는 뭘 어떻게 해도 이쁘냐.
―시계는외로워: 그런데 저거 운전 누가 한 거임? 드리프트 하는 거 보면 보통 실력이 아니던데.
예고편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조석정과 같은 사람들이야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배우들이지만, 이번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부분은 그들의 연기가 아니었다.
경찰과 스팅어의 추격신을 보며 사람들은 강한 흥미를 느꼈고 본편을 기대했다.
그러면서 스팅어를 운전한 사람이 누구일지 유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을 때, 대화의 주체가 되는 당사자는 정작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쯤에서 봤던 것 같은데.”
한성태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대신, 소속사 대본 실에 들어가 괜찮은 작품이 없는지 찾아보고 있었다.
* * *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너무 평온해 보인다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대본을 찾아보던 한성태는 시야를 가리는 메시지의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 예고편이 나오고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있는데 어째서 확인조차 하지 않는 건지 묻는 모습.
“본편이 나온 게 아니잖아요.”
그들의 의문에 한성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벌써부터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예고편 가지고 반응하는 것도 이상하지.’
드라마나 영화의 예고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장 재미있는 장면만을 모아 만든다.
그렇다 보니 예고편에서 흥미를 느끼고 온 사람들도 정작 본편을 보고 나서는 실망해 떠나는 경우도 많이 봤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좋은 것이라며 당신의 반응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아직 방심하기는 이르다고 말합니다.]신들의 반응 속에서 대본을 찾아보고 있던 한성태는 등 뒤로 딸랑이는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 있었네?”
“아, 형, 왔어요.”
정두식이 문을 열고 들어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좋은 일이 있는지 정두식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다음 작품 보려고?”
“네, 그런 것도 있고, 가볍게 연습할 게 있으니 찾아보고 있었어요.”
“부지런하네. 너, 예고편 반응 봤어? 지금 분위기가 좋아.”
“아직 안 봤어요. 곧 1화 방영할 텐데, 그때 볼 생각이에요.”
스마트폰을 꺼내 반응을 보여주려는 그의 모습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성태의 말에 스마트폰을 들던 정두식이 멈칫거렸다.
“아……. 그래?”
“네, 신경 써주셔 감사해요.”
“감사할 것까지는 없는데. 지금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다들 분위기가 좋거든. 본편 시청률도 어느 정도 기대해도 될 것 같다는 말도 나오고 있고.”
정두식의 말을 듣는 한성태의 모습은 평온했다.
딱히 기뻐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고 침착하게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지?”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제 반응이 이상한가요?”
“이상한 건 아닌데, 너무 침착해 보여서. 보통 처음 작품을 찍은 배우들은 댓글 하나에 기분이 바뀌니까.”
“아…….”
이어지는 정두식의 설명에 한성태는 눈을 깜빡거렸다.
확실히 그 말을 들으니 자신이 너무 침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건 신경 쓰지 못했네.’
전생의 그는 베테랑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경력의 소유자였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들 반응에 연연하지 않는 건 좋은 거지. 악플 하나 보고 망가지는 배우도 있는데. 너는 그런 쪽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하하.”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어색하게 웃었다.
잘못한 건 아니지만, 괜스레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렇지. 너, 민석이라는 애랑 영화 제작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어떻게 되고 있어?”
“지금 장소까지 찾아놓은 상태에요. 곧 촬영 들어가지 않을까 싶네요.”
“공모전에 제출하는 영화라고 했지?”
“네.”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공모전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한성태는 그 부분에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돈 벌려고 찍는 것도 아니고. 민석이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는 김민석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이상 바라는 것도 이상하다.
“고생하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해.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네, 형.”
다시 대본에 시선을 돌리던 한성태는 문득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더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김민석의 할머니 집에서 연기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강한 확신.
그 확신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성태가 직접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형. 혹시, 서하린 씨 뭐 하고 있는지 아세요?”
한성태의 물음에 정두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음악이 들려왔다.
탁. 타닥.
그 소리와 함께 발을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거울을 앞에 두고 춤을 추는 사람들.
짝짝.
“잠깐 쉬었다 가자.”
한 사람의 말에 음악이 꺼지고 춤을 추던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그들 속에는 서하린도 함께 하고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그녀는 옷을 잡아 이마의 땀을 닦아내었다.
“30분 뒤에 다시 연습 시작할 거니까, 그 전까지 모여.”
“네!”
춤을 가르쳐주는 사람의 말에 연습생들이 크게 대답하고는 연습실을 나선다.
그런 그녀들을 따라 서하린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린아, 너도 그만 연습하고 가서 물이라도 마시고 와.”
“……네.”
강사의 말에 서하린은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더 연습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그녀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휴게실로 향한 그녀의 발걸음이 휴게실의 문을 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니까요. 5년이 넘게 데뷔 못 했으면 포기할 줄 알아야지.”
안에서 같이 연습하던 동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듯한 목소리에 서하린은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를 보이지 못했다.
“서하린, 걔도 진짜 독한 애야.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평가도 최하위잖아요. 그 정도면 회사에서 내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얼굴이 좀 되니까, 아직 데리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곧 떨어질 거야. 재능이 없는데, 뭐, 어떻게 데뷔하겠어.”
동기들은 그녀를 뒷담화하고 있었다.
자신을 욕하는 동기들의 목소리에 서하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주변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싫어할 줄은 몰랐었다.
연습생들은 서로가 경쟁 상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욕할 정도는 아닌데.
딸랑.
계속되는 그녀들의 뒷담화에 서하린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문에 달린 종소리에 말이 멈추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본다.
“아, 하린이 왔어?”
“언니, 수고하셨어요.”
“물 드시러 오신 거예요?”
방금까지 욕을 하던 이들이 그녀가 안에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그 모습에 서하린은 애써 미소를 지은 채 걸음을 옮겼다.
물만 마시고 돌아가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온몸이 무겁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지?’
스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돌 연습생으로서 PAN 엔터테인먼트에 들어왔고 데뷔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했다.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팀장의 말과 동기들의 조롱이었다.
처음에는 그 모든 걸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힘들었다.
이 길이 맞는지 의문마저 들어 한숨을 내쉬었고.
“어? 저 사람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새로 들어온 연습생인 거 아니야?”
“와……. 그런데 엄청 잘생겼다. 옷도 엄청 잘 입었어!”
휴게실이 시끄러워졌고,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 서하린의 몸이 굳어졌다.
“하린 씨, 찾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얼굴이 미소를 지은 채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 * *
한성태는 서하린이 뒷담화를 듣고 안에 들어가는 것까지.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하린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그녀는 한성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휴게실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원래 잘난 사람은 타인의 질투를 받는 법이라고 말합니다.]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하린이 처한 상황이 마냥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저랬으니까.’
재능이 없었고,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았다.
포기하라고, 너는 해도 안 된다고.
네 길은 이 길이 아니라고.
한때는 포기하는 게 맞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랬던 적이 있었기에 서하린의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성태 씨?”
“네, 우리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서하린이 힐끔 옆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겠지.
한성태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용건을 꺼냈다.
“하린 씨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저한테 부탁이요?”
“네, 저랑 영화 하나 찍어보지 않으실래요?”
그의 말에 서하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서하린의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