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레이스 스타트’의 촬영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인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남석대의 목소리가 촬영장을 가로질렀다.
“석정 씨, 이번 신은 롱 테이크로 진행할게요.”
남석대의 말에 조석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장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반응이 좋았던 예고편 이후로 1화가 방영하고 3.2%를 찍었다.
항상 1, 2%의 드라마만 많이 나오던 방송국이었기에 첫 화부터 3%가 나온 건 매우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1화의 반응도 좋았고 그 이후로도 조금씩이지만, 시청률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4화의 예상 시청률이 3.8%에서 4%이기 때문에 촬영장에 활기가 띠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몸을 크게 사용하면 좋겠네요. 화려한 게 부족한 거 같아요.”
“네!”
배우들의 대답을 들으며 남석대는 팔짱을 낀 채 자리에 앉았다.
액션 감독의 말에 스턴트맨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 모습을 보며 남석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많이 답답해 보이네요.”
“아, 민성 씨. 별거 아닙니다. 그냥 조금 고민이 되는 게 있어서요.”
“무슨 고민인지 알려줄 수 있나요? 서로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야죠.”
이민성의 말에 남석대는 배우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화려한 액션을 보이기 위해 동선을 수정하고 있는 스턴트맨들.
“1화에 힘을 너무 강하게 준 것 같아서 조금 후회가 되네요.”
“음…….”
“처음에 시청자들을 확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힘을 제대로 줬는데. 그 이후로 액션을 봐도 1화만큼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남석대의 말에 이민성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1화의 추격신은 내가 보기에도 대단했으니까.’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신인 배우가 레이서 뺨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사실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촬영장에 있는 모두가 1화를 찍을 때 과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영정을 보였다.
“감독님이 고민 많으시겠네요.”
“어쩔 수 없죠. 이런 상황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푸념 가득한 그 목소리에 이민성은 쓴웃음을 흘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남석대의 고민을 해결해줄 방법이 없었다.
괜히 옆에서 신경을 분산하는 것보다는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더 나았다.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
이민성은 스태프가 마련해준 자리에 앉아 있는 조석정을 향해 다가갔다.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던 조석정이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아, 형, 촬영 끝났어요?”
“방금 끝났어. 뭐 보고 있었던 거야?”
“아, 이거…… 같이 보실래요?”
“뭔데.”
조석정이 자신의 옆자리를 내주며 방금까지 보고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을 공유했다.
그의 옆에 앉은 이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성태 아니야?”
“성태 맞아요, 형. 요즘 차기작 준비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여기 카페 같은데…….”
“신입이잖아요. 아직 이쪽으로는 잘 모르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하긴.”
조석정의 말에 이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 속 한성태의 연기 영상을 살펴봤다.
―이제 내 얼굴을 봤네?
음산한 목소리와 기괴하게 일그러진 한성태의 웃음.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 모습은 베테랑 연기자인 이민성에게 감탄이 나오게 만들었다.
“잘하네.”
“그렇죠? 연습도 열심히 하고. 요즘 애들치고 이렇게 연습하는 애도 드물잖아요.”
“그건 그렇기는 하지. 성실한 건 인정할 수밖에 없지.”
한성태와 함께 촬영하는 시간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 시간 동안 한성태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성실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성태는 쉬는 모습 자체를 보여주지 않았다.
촬영하지 않을 때는 연습하고, 연습하지 않을 때는 스태프들을 도와준다.
심지어 개인적인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바로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촬영장에 남아 도와주지 않았던가.
“이런 애들이 잘돼야지.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얘는 성공할 거예요. 그만한 노력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아, 이번에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네요.”
조석정의 말에 이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만으로도 한성태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었다.
* * *
“연습은 잘되시나요?”
한성태는 서하린과 전화를 하며 웃음을 흘렸다.
그녀와 헤어지고 일주일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서하린의 연기를 본 순간, 김민석은 그녀의 참가를 매우 크게 환영했다.
처음 연기하는 거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서하린의 연기는 괜찮았다.
―조금 어려운 게 있기는 한데. 그것 빼고는 순조로운 것 같아요.
서하린의 말에 한성태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게 있으시면 저한테 바로 말해주세요. 연기와 관련해서는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건 없죠. 앞으로 같이 연기해야 하는데.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주고 싶네요.”
한성태는 진심이었다.
그녀의 연기가 좋아질수록 그만큼 작품의 퀄리티도 좋아진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도와줄 수 있으니까.’
연기한 사람과 연기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다.
경험의 차이는 단순히 재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그녀의 재능이 대단하기는 해도 한성태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확실하게 있었다.
―그러면 다음에 제가 직접 찾아가도 될까요?
“이쪽으로요?”
―네, 제가 배우는 건데, 당연히 제가 직접 찾아가야죠. 편하신 장소 알려주시면 그쪽으로 갈게요.
서하린의 말에 한성태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한성태는 괜찮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반대로 그녀는 자신이 직접 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여기서 더 반대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럼 제가 밥이라도 한 끼 사겠습니다.”
―그걸 바란 건 아닌데. 그럼 제가 커피 사겠습니다!
순식간에 약속이 잡혔다.
전화를 끊은 한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대본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다음 주는…….”
대본을 툭툭 두드리며 일정을 살피고 있을 때, 한성태의 스마트폰이 다시 한번 울렸다.
―정두식: 성태야, 밖에서 연기한 적 있어?
정두식에게서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밖에서 연기했냐는 의문 가득한 물음.
‘어떻게 안 거지?’
정두식의 문자에 한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하린과 만났다는 사실을 아직 알리지도 않았고, 카페에서 연기했다는 걸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정두식: 일단 이것부터 봐봐. 너 맞는지 확인하고 다시 연락 줘.
정두식이 보내오는 링크 하나.
한성태는 그가 보내온 링크를 통해 커뮤니티에 올라온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아……. 그때 찍힌 거구나.’
서하린과 연기할 때 그 모습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영상이 올라왔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연기한 거 가지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건 처음인데.’
드라마의 장면도 아니고, 그저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한 연기였다.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영상을 뿌리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전생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했으니까.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거라 확신을 보입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이제 익숙해질 때라고 말합니다.]신들의 메시지를 보며 웃음을 흘린 한성태는 바로 정두식에게 답장을 보냈다.
―저 맞네요.
―정두식: 이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다음부터 조심하자.
―네, 조심할게요.
카페에서 보여줬던 연기는 김민석의 단편 영화라 큰 문제가 생기는 않겠지만.
나중에 상업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때는 지금 같은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정두식: 조심만 하면 문제는 없을 거야. 그리고 너한테 대본 들어온 거 있는데, 나중에 회사 한번 와봐.
―네, 갈 때 연락드릴게요.
정두식과의 문자를 주고받으며 한성태는 옅게 숨을 내쉬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대본을 살펴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부아앙!
차의 엔진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사무실 안.
소파에 앉은 한 남자가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가 보는 영상은 ‘레이스 스타트’의 1화였다.
―저 새끼 잡아!
―도대체 뭔데 저렇게 빠른 거야!
―저 새끼 차에는 뭐, 부스터라도 달아났어?
경찰들과 조직원들, 마피아와 야쿠자들이 하나의 차를 쫓는다.
스팅어는 그들의 추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냈다.
“협찬사가 좋아하겠네.”
다른 건 몰라도 화려한 추격신 덕분에 차 광고는 제대로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차에 별 관심이 없는 그조차 추격신을 보며 무슨 차인지 궁금해질 정도였으니까.
“괜찮네.”
다 떠나서 차에 탄 배우의 연기가 매우 괜찮았다.
이름이 한성태라고 했던가.
신인이면서 이 정도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은데.
“이 정도면 같이 해도 괜찮을 것 같네.”
한성태라는 배우에게 관심이 생겼다.
저 배우가 자신과 함께한다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고 해야 할까.
똑똑똑.
영상을 보던 그는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그를 향해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 * *
오후 네 시.
한성태는 자신에게 온 대본을 보기 위해 소속사를 찾았다.
“성태 왔어?”
“네, 형, 대본은요?”
“여기. 이거 세 갠데,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살펴봐 봐.”
“네, 지금 살펴볼게요. 어떻게 할지 바로 말해드려야 하나요?”
한성태의 물음에 정두식이 고개를 저었다.
“급한 거 아니니까. 너 편한 대로 해.”
“네, 저기 앉아서 봐도 돼죠?”
“어.”
한성태는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대본을 살펴봤다.
익숙한 이름의 대본들이 보였다.
‘성적이 나쁜 것들인데.’
스토리나 배우들의 연기가 좋지 않아 망해버린 작품들.
한성태는 그 대본들을 살피며 슬쩍 정두식을 돌아봤다.
정두식은 한성태의 옆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한 시간.
그가 대본을 보는 데 걸린 시간이다.
“형, 간단하게 다 살펴봤는데요.”
“어, 어때?”
“솔직하게 말해서 마음에 드는 건 없네요. 대본 자체가 재미없어서.”
“그래?”
한성태의 말에도 정두식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기는 했어. 나도 가볍게 살펴보기는 했는데. 재미가 있지는 않았거든.”
“아…….”
“뭐, 알았어. 작품이야 다른 건 해도 되니까. 천천히 결정해.”
“네.”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촬영도 해야 하니까. 일단 바로 앞에 있는 것부터 해결해야지.’
바로 작품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급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대본을 내려다보며 한성태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천천히 한 계단씩 오르는 게 중요했다.
연기의 신들의 메시지를 보며 힌성태는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