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6
6화
* * *
살면서 이렇게 많은 조명을 받아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한성태는 자신을 비추고 있는 조명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보이는 조명만 네 개가 넘어갔다.
‘사진을 찍을 때 조명을 이용한다고 하더니, 확실히 조명이 많기는 하네.’
예전에 피팅 모델을 했을 때도 조명은 적지 않았다.
사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조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산만하게 있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합니다.]한성태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고 있으니, 연기의 신이 그의 행동을 지적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김미소가 카메라를 든 채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명은 저거하고 저거, 그리고 정면에 있는 거 이렇게 세 개만 키면 될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김미소가 일하는 모습은 예전에 몇 번 본 걸 제외한다면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상당히 멋있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는 한성태를 돌아보았다.
“성태야, 간단하게 사진 찍어 보려고 하는데……. 음, 너 옷이 그거밖에 없니?”
“많이 이상한가요?”
“이상한 거 아닌데…….”
생각에 잠긴 그녀의 모습에 한성태는 의문이 들었다.
‘내 패션이 그렇게 이상한가?’
한성태는 검은색 바탕에 낫을 든 곰돌이가 뛰어다니는 듯한 문양의 티셔츠와 갈색의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러 일을 하느라 헤지고 찢어진 옷 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것으로 골라 입고 나왔는데.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와는 다르게, 주변에서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미영 씨, 저기 제가 따로 빼놓은 옷 중에서 몇 벌 골라서 한번 입혀보시겠어요?”
“네!”
“성태야, 여기 미영 씨 따라가서 옷 좀 갈아입고 올래?”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인 채 이미영을 따라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미소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본판은 좋은데, 저걸 제대로 활용할 줄을 모르네.”
조용히 혀를 찬 그녀가 몸을 돌렸다.
한성태가 옷을 갈아입고 오기 전에 적당히 준비할 생각이었다.
김미소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때, 한성태는 이미영과 함께 옷을 고르고 있었다.
“여기서 옷을 고르면 되는데. 음, 이건 어때요? 성태 씨가 키도 크고 해서 상당히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그것보다는 저 청색의 맨투맨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이 코트를 입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가을 남자의 느낌을 물씬 풍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뭘까, 이 상황은.
사람과 신이 옷을 골라주고 있었다.
의견이 통일된다면 훨씬 좋을 텐데, 두 존재의 의견은 무척이나 달랐다.
“성태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대답을 요구합니다.]선택을 강요하는 두 존재의 모습에 한성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이 골라준 옷 모두 상당히 괜찮게 느껴졌다.
패션을 잘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상당히 좋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고르기 어려운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역시 그래도 선택한다면. 이게 맞겠지.’
그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선택을 내렸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한 선택을 보며 만족스러워합니다.]“아…….”
만족스러워하는 신과 탄식을 흘리는 사람.
“저기서 옷을 갈아입고 오면 되는 거죠?”
“네…….”
묘하게 아쉬워하는 이미영을 뒤로한 채 한성태는 옷을 챙겨 탈의실에 들어갔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알려준 방식대로 옷을 입었다.
항상 편함을 중시하던 그에게 상당히 복잡한 방식이었지만.
그래도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의 모습을 보며 작게 감탄사를 흘립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당신이 운동을 한다면 훨씬 멋있어질 것 같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에게 바지 하단을 두 번 접으라고 말합니다.]연기의 신이 알려주는 대로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신들이 좋게 본 만큼, 확실히 괜찮은 것 같다.
적어도 사무실에 왔을 때 입고 있던 옷보다는 훨씬 나았다.
“와……. 성태 씨 진짜 모델 같으세요. 엄청 잘 어울려요!”
“감사합니다.”
이미영의 말에 한성태는 웃어 보였다.
사무실이 좀 더운 걸까.
한성태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아주 조금 붉어져 있었다.
“와……. 성태, 너. 꾸미니까 장난 없다. 좀 진작에 꾸미고 다니지.”
“괜찮은 건가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이 정도면, 당장 화보 찍어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옷 잘 입을 거면서 아까는 왜 그렇게 온 거야?”
“하하하.”
김미소의 말에 한성태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연기의 신이 알려준 대로 입었을 뿐인데, 너무 반응이 좋았다.
괜히 신이 아닌 것이다.
“바로 촬영 들어가자.”
“네.”
김미소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토존으로 들어갔다.
‘대충 이렇게 하면 되려나.’
예전, 피팅 모델 했을 때를 떠올리며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를 보였다.
나름 멋있어 보일 것 같은 자세를 취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자세를 보여줬을까.
“그. 성태야, 너무 그렇게 어깨를 올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내려볼래? 표정이 너무 딱딱하다. 편하게 웃어봐. 편하게.”
한성태를 향해 김미소가 말을 걸어왔다.
어색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는 곤혹스러움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역시 모델 일은 좀 힘든가.’
한성태는 그녀의 반응을 보며 쓰게 웃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김미소가 아니더라도, 한성태를 향해 비슷한 반응을 보인 사진작가들이 있었으니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은 있는 것이었다.
한성태가 입을 열어 김미소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였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댑니다.]연기의 신의 손이 그의 어깨에 닿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 * *
김미소는 쇼핑몰을 하면서 화보를 보는 눈이 생겨났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쪽으로 재능이 있었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런 그녀가 보기에 한성태는 모델에 재능이 없었다.
그저 자신을 찍는 일에 재능이 뭐 필요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화보를 찍는 것도 결국 재능이니까. 한성태, 쟤는 재능이 없어.’
화보에도 재능이 필요했다.
외모도 외모지만, 사진을 더 잘 나오게 찍힐 수 있게 만드는 재능이 필요했다.
그건 노력으로 얻기 힘든 감각적인 부분이었고, 단시간에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한성태를 보는 그녀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외모는 합격인데. 역시 모델 일을 해보지 않은 애를 데려다 쓰기는 무리였나 보네.’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한성태의 모습은 합격 그 이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포토존에 들어선 그는 화보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성…….”
그녀는 더 이상 사진을 찍는 걸 멈추려 했었다.
쓰지도 않은 아이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민폐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
그런데 어째서일까.
한성태가 벽에 등을 기댄 모습을 본 그녀의 몸이 멈칫거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성태의 자세는 형편없었다.
손을 드는 것조차 어색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살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형편없는 실력, 한성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겨우 그 정도였는데.
‘뭔데, 자세가 좋냐.’
한성태가 벽을 기댄 순간.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실력이 형편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진을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하……. 미쳤네, 진짜.”
단순히 감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모습.
김미소는 전에 느낄 수 없었던 한 가지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성태야, 너무 좋다! 한 바퀴 돌아볼래? 어, 그렇게 아주 좋아요!”
그저 테스트하기로 했던 촬영이, 어느 순간 본격적으로 촬영하게 되었다.
한 시간이 두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네 시간이 될 때까지.
촬영에 참여하는 그 누구도 지금 하는 게 테스트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 못했다.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실의 분위기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에 살짝 상체를 앞으로 숙여 봐. 너무 좋다!”
한성태를 바라보는 김미소의 입가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 *
“후우…….”
소파에 앉은 한성태는 지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네 시간이 넘게 이어진 촬영은 체력이 좋은 한성태도 지치게 만들었다.
다행인 점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다는 거였다.
‘모델들도 진짜 존경해야 해. 이렇게 힘든 걸 어떻게 하는 거야.’
한성태는 짙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김미소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방금 찍은 사진들을 보는 것 같은데, 한성태는 저기까지 가서 대화에 참여할 자신이 없었다.
“야, 수고 많았다. 여기 물.”
“감사.”
김민석이 가져다주는 생수를 마시며 한성태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래도 물을 마셔서일까.
체력이 조금씩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너, 그런데 예전에 모델 해본 적 있냐?”
“아니, 없는데.”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생을 제외한 이번 생에서는 모델 일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긴, 네가 나한테 숨길 리가 없지. 너 모델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힘들게 연기하지 말고 이쪽으로 오는 게 어때?”
“헛소리하지 마. 내가 연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면서.”
“알지. 그냥 한번 해본 말이야. 누나가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보거든. 네가 난 놈이기는 한가 봐. 누나 눈에 드는 거 쉽지 않은데.”
“그냥 운이 좋았지.”
한성태는 픽 하고 웃음을 흘리며 옆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천의 얼굴’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재미있었다며 웃음을 흘립니다.]연기의 신들이 주는 의미를 화보를 찍으면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여러 의미에서 한성태에게 영향을 준다.
화보도 어떻게 보면 연기의 연장선.
한성태는 연기하게 되는 순간이 매우 기다려졌다.
‘정말 기대가 되네.’
그는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빨리 연기가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