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쾅. 콰앙!
한성태가 해머를 높이 들어 땅을 내리쳤다.
땅이 움푹 파이며 그 파편이 사방을 튕겨 나갔다.
몸에 흙이 잔뜩 묻었지만, 한성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협적으로 연장을 휘둘렀다.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의 입가는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서하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의 얼굴’은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표정 변화에 민감하다고 말합니다.] [‘천의 얼굴’은 타인의 표정 속에서 감정 변화를 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한성태는 고개를 들어 서하린을 바라보았다.
대본을 보면서 최덕수는 겁에 질린 윤희연의 모습에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많이 고민했었다.
최덕수는 사이코패스다.
감정에 무디고 그렇기에 타인과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보여주는 감정 변화는 그에게 색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거기서 흥미를 찾았다…… 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대본에는 최덕수가 어째서 살인마가 되었는지 나오지 않았다.
김민석은 어렸을 때부터 사이코패스이고 살인을 해왔다고만 알려줬다.
한성태는 부족한 설정에 살을 붙였다.
최덕수가 어떤 부모의 밑에서 살았고 어떻게 살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천의 얼굴’은 당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이야기를 더했지만,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범죄자였고 서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연기를 하면서도 살인마의 행동과 생각을 경멸하고 부정했다.
‘배역에 잡아먹히지 않게 조심해야지.’
연기하다 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작품 속 배역과 ‘나’라는 사람의 경계가 뒤섞여 현실을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 있다.
살인마와 같은 역을 맡은 배우는 그런 상황을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컷!”
김민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쇠망치를 마구 휘두르던 한성태가 그 소리에 멈칫거렸다.
조금 더 휘두르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그는 김민석의 옆으로 걸어갔다.
“기가 막힌 장면이 나왔어. 한번 봐봐.”
“어.”
배역에 몰입한 후유증이 있어서인지 대답을 하는 한성태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딱딱했다.
―그극. 그그극!
해머를 질질 끌고 움직이는 소리.
그에 이어 서하린의 겁에 질린 소리와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몇 번이고 다시 촬영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다시 찍을 필요도 없네.”
김민석의 말에 정두식이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모습에도 한성태는 신경 쓰지 않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보던 한성태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찍자.”
“……다시 찍자고?”
“어, 여기서 내가 너무 과하게 움직였어. 조금 더 감정을 억누르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한성태의 말에 김민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보기에는 한성태의 연기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기가 힘들었다.
[‘천의 얼굴’이 당신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당신이 연장을 휘두를 때 팔을 너무 높이 든다고 말합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액션신이라고 해서 과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김민석과 다르게 연기의 신들은 한성태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어떤 게 문제인지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한성태가 수정해야 하는 부분을 알려주었다.
그들의 메시지를 살피며 한성태는 걸음을 옮겼다.
“…….”
촬영이 다시 시작되고 정두식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천의 얼굴’은 최덕수라는 인물은 계획적이라며, 움직일 때에도 동선을 미리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촬영하고 또 촬영했다.
한성태는 모니터를 확인하면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게 보이면 바로 재촬영을 요구했다.
김민석은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한성태가 연기에 진심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다시 촬영할 때마다 더 좋은 장면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컷! 성태야, 조금만 쉬었다 가자. 지금 벌써 6시야. 밥은 먹고 해야지.”
“……알았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장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연기하느라 몰랐는데, 오후 1시였던 시간은 어느새 6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후아……. 끝났다.”
다섯 시간을 촬영해서 그런지, 중간에 잠깐잠깐 쉬었는데도 불구하고 서하린은 매우 지쳐 있었다.
“지금 두식이 형님이 먹을 거 사 오신다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하린 씨, 하린 씨도 쉬세요. 고생 많았어요.”
“네…….”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고갯짓에는 힘이 없었다.
서하린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마루에 앉았다.
“…….”
멍하니 주위를 바라보던 그녀는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한성태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 민석 씨.”
“네, 말하세요.”
“성태 씨…… 저렇게 둬도 되는 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김민석은 한성태를 돌아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성태는 쉬고 있는 중에도 대본을 보면서 연습하고 있었다.
도저히 방금까지 촬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쌩쌩한 모습.
“내버려둬요. 성태, 쟤, 한번 집중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으니까.”
“그래요?”
“네,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연습하고 쉴 거예요……. 쉬는 게 맞나? 음. 하여튼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요. 컨디션 관리는 잘하는 놈이니까요.”
“네…….”
그의 말에 서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멍하니 한성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 속에서 한성태의 연습은 계속되었고.
“치킨 사 왔어요. 먹으면서 합시다.”
정두식이 양손 가득 음식을 사 오고 나서야 한성태는 대본을 손에서 떨어뜨릴 수 있었다.
* * *
“오늘 여기서 잔다고?”
정두식의 물음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가는 서하린과 정두식과 다르게 한성태와 김민석은 주말 동안 시골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갈아입을 옷과 생필품까지 챙겨왔기에 지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알았어.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내일 보자.”
“네, 형,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린 씨도 내일 봐요.”
“네, 내일 봐요.”
서하린이 지친 몸을 이끌며 차에 올라탔다.
정두식과 그녀가 떠나가고 한성태는 그들을 배웅해주었다.
“들어가자. 시골이라 그런지 벌써 춥네.”
“먼저 들어가. 나는 운동 좀 하고 갈게.”
“그래? 알았어. 들어올 때 대문 잠그고 와라.”
“어.”
김민석이 안으로 들어가고 한성태는 관절을 풀며 스트레칭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모래주머니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며 입맛을 다십니다.]‘두식이 형한테 올 때 가져와 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야겠네.’
신의 메시지를 보며 웃음을 흘린 한성태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물고 근처에는 편의점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척이나 외진 곳이었지만.
그런 곳에도 장점이 있었다.
“후욱…… 후욱!”
한성태가 괴성을 지른다고 해서 따지러 올 사람이 없다는 것.
땅이 넓고 산이 많아 운동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사실이었다.
‘금방 어두워지지만 않았으면 진짜 베스트일 텐데.’
밥을 먹고 7시쯤 되니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밤에 산을 타는 것만큼 위험한 행동은 없었기 때문에 한성태는 산 옆으로 만들어진 길을 뛰어다녔다.
높은 오르막길이 많았기에 그걸로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었다.
“후우…….”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운동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 한성태는 노트북을 붙잡고 있는 김민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편집해?”
“어, 조금씩이라도 미리 해놔야지.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와서 버릴 게 별로 없다.”
“다행이네. 나 씻는다?”
“욕조에 물 받아놨어. 뜨거우면 차가운 물 섞어서 씻어.”
“오케이, 고맙다.”
김민석 할머니의 집에는 욕조가 하나 있었다.
씻고 나서 하는 반신욕이라니.
“좋다…….”
지친 몸의 피로를 제대로 회복하는 기분이었다.
적당히 씻고 나오니 김민석이 잠자리를 정돈하는 게 보였다.
“아, 맞다. 두식이 형님이 오늘 찍은 거 보내 달라고 해서 몇 개 보내줬어.”
“그래도 괜찮아?”
“어, 공모전에 올리기 전까지 외부 유출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셨거든. 여기까지 태워주셨는데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 속에 들어갔다.
푹신하고 따뜻한 게 금방 졸음이 밀려왔다.
“잘 자.”
“너도.”
한성태는 눈을 감았다.
“야.”
“…….”
“자냐?”
순식간에 잠을 자는 한성태의 모습을 보며 김민석이 헛웃음을 흘렸다.
* * *
툭. 투욱.
PAN 엔터테인먼트 배우 2팀의 회의실.
민나정이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녀는 정두식이 가져온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 안에 있다고 해서 네가 언제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한성태가 서하린을 향해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민나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두식 씨가 그렇게까지 말한 이유를 알겠네요. 이게 상업 영화가 아닌 게 아쉬울 정도예요.”
그녀의 말에 정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의 촬영 영상.
편집이 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긴장을 만들어내는 음악도 필요 없었다.
한성태의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했다.
‘배역에게 빙의된 것 같네.’
단순히 몰입을 떠나 배역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한 한성태의 연기에 민나정은 헛웃음을 흘렸다.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다음 작품은 언제 한다고 했죠?”
“영화 끝나고 바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작품을 찾아보는 중이고요.”
“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포, 스릴러 작품을 밀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두식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도 팀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정두식은 그녀의 말에 크게 동의하고 있었다.
한성태의 살인마 연기는 단편 영화로 하나만 찍기에 너무 아쉬웠다.
“성태의 결정에 달린 일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설득해 볼 생각입니다.”
“네, 두식 씨가 고생해주세요. 이런 연기를 썩히는 것도 아깝잖아요.”
그녀의 말에 정두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태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정두식은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 * *
주말 촬영이 끝나고 한성태는 시골에서 나와 수업을 들었다.
평일이 끝나면 영화 촬영을 했고, 영화 촬영이 끝나면 다시 수업을 듣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하루’의 촬영도 끝을 보일 때였다.
“우리 뮤지컬 ‘혁명의 시간’으로 하기로 했어. 다수결로 결정한 거니까. 다들 의견 없지?”
‘혁명의 시간’.
프랑스의 혁명을 모티프로 만든 뮤지컬.
한성태는 뮤지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노래를 잘 부를 자신도 없었고 뮤지컬을 많이 해보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다 선택하고 남은 배역을 하려고 했는데.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의 주위를 기웃거립니다.]상황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