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63
63화
1학년들 중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성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전생의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학교에 다니면서 봤던 얼굴이 있으니, 익숙함을 느끼는 일에 일일이 반응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생각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째서 이 사람을 잊고 있었지?’
그랬던 그는, 명단에 올라온 이름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김리나.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배우로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인데.
전생의 김리나는 배우로서 대단한 입지로 올라간 사람은 아니었다.
재능은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뮤지컬 배우를 하다 중간에 그만뒀다.
그런데도 그녀의 이름이 유명한 이유는 하나였다.
‘넷플렉스 한국 지부 본부장의 딸이었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김리나는 유명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넷플렉스 본부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숨겼지만, 시간이 지나고 넷플렉스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김리나의 존재도 드러났다.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에 한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워낙 사는 게 바빠서 잠시 잊고 있었어.’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그에게 여유로웠던 순간은 없었다.
그렇기에 김리나에 대해 자세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명단의 이름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단한 사람이고 익숙한 사람이라 멈칫거리기는 했지만.
‘나랑은 상관없지.’
그녀가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한성태가 연기하는 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연기에 집중할 뿐이었다.
* * *
한성태의 하루는 대본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대본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두식: 나, 지방으로 출장 가야 해서 한동안 연락 잘 안 될 수도 있어.
―정두식: 작품 급하게 준비할 필요 없으니까. 천천히 고민해 봐.
회사에서는 한성태에게 바로 작품 찍는 걸 바라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온전히 뮤지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안중근 열사의 이야기. 내가 이분의 감정을 제대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워낙 위대하신 분이고 존경스러운 분위기에, 자신이 그분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천의 얼굴’이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라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당신을 바라봅니다.]걱정에 잡아먹혀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 시간에 대본 한 글자라도 더 읽고 한 마디라도 더 내뱉으며 연습해야 한다.
사락.
대본을 넘겼다.
뮤지컬 무대에 많이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유명한 작품들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 노래가 아직 노래방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네.’
만약 ‘혁명의 시간’에 나오는 노래가 노래방에 등록되었다면, 연습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수월했을 테니까.
우우웅.
“이 시간에 누구지?”
밤이 되어가는 시각.
한성태는 스마트폰이 마구 떨리는 걸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전화를 한 걸까.
“과대?”
안재우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한성태의 얼굴에 더욱 큰 의문이 깃들었다.
‘얘가 나한테 전화할 만한 일이 뭐가 있지?’
한성태는 김민석을 제외하고 친한 사람들이 없었다.
학생들도 굳이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었다.
“여보세요?”
―어, 성태야,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 잠시 시간 돼?
“어, 시간 되기는 한데, 무슨 일이야?”
안재우와 한성태의 나이는 같았다.
배역을 정하고 대본을 받는 과정에서 말을 놓기로 한 상태.
―너 혹시 이번 달 중순에 시간 좀 비워줄 수 있냐?
“시간?”
―응, 1학년들 데리고 연습 좀 하려고 하거든. 네가 와서 도와주면 고마울 것 같아.
안재우의 부탁에 한성태는 볼을 긁적였다.
이런 제안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쁘지 않기는 해.’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있는 게 훨씬 낫다.
“알았어. 시간 비워둘게.”
어차피 뮤지컬 외에 다른 일정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비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 *
‘슬슬 날씨가 더워지네.’
봄도 어느덧 지나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훈훈해진 공기.
이동을 위해 밖으로 나온 한성태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힐끔 내려다봤다.
‘불편해.’
김미소가 준 옷을 입었을 때는 몰랐는데, 한성태의 몸은 상당히 두꺼워져 있었다.
운동하면서 근육의 부피가 커졌고 자연스럽게 전에 입었던 옷들이 꽉 끼는 현상이 발생해 버렸다.
“나중에 옷이라도 몇 벌 사러 가야겠네.”
꽉 끼는 옷을 계속해서 입고 다닐 수는 없었다.
운동을 멈추고 근육을 뺀다면 모를까.
[‘절권도의 창시자’는 바람직한 모습이라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습니다.]연기의 신이 지켜보는 지금, 중간에 운동을 멈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동묘 시장에 언제 갈 것인지 궁금해합니다.]옷을 사러 가겠다고 중얼거렸을 뿐인데.
그로 인해 생겨나는 반응이 상당히 컸다.
“지금은 힘들고, 나중에 시간이 날 때요.”
옷이 당장 못 입을 정도도 아니고, 한성태는 지금 당장 옷을 사러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시간에 조금 여유가 생기고 자금적으로도 여유가 생길 때.
그때야말로 제대로 옷을 사러 가는 날이 되겠지.
우우웅.
한창 이동 중이던 한성태는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 감독님.”
―성태야, 뭐 하고 있어?
최예찬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안부를 묻는 그의 목소리에 한성태는 자신이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 그럼 빨리 용건만 말하고 전화 끊어야겠네. 예고편 올라온 거 봤어?
“예고편이요?”
―응, 오늘 영화 예고편 올라오는 날이라고 말했잖아. 잊고 있었어.
“아…….”
최예찬의 말에 한성태는 날짜를 확인했다.
예고편 공개 날짜가 불과 어제였다.
“제가 연습한다고 정신이 너무 없었던 것 같아요. 먼저 보고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서 어떡하죠.”
―그런 거 가지고 뭘 신경 써. 한번 봐봐. 제대로 뽑혔으니까.
“네! 지금 바로 볼게요.”
최예찬과의 연락을 끊고 한성태는 인터넷에 들어갔다.
‘악인들의 전쟁’의 1차 예고편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나를 건드린 놈을 절대 놓지 않아.
―그 형님이 불곰이라고 불린지 알아?
―저 새끼다, 잡아!
웅장한 음악 소리.
여러 배우가 등장하는 가운데.
‘나다.’
한성태는 그들 사이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리치는 그는 딱 2초 등장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2초 동안 매우 강한 임팩트를 보였다.
―방금 봤습니다. 대박이던데요?
―최예찬: 괜찮지? 힘 좀 썼다.
최예찬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걸어가던 한성태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이쪽이었는데.”
안재우가 문자로 보내준 위치를 찾아 움직였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꽃집 옆에 있는 저곳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아……. 찾았다. 감사합니다.”
연기의 신 덕분에 한성태는 무사히 약속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최예찬: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하자. 고생해.
―네,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한성태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카페.
안재우의 앞으로 여럿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1학년들.
그들 사이에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말 김리나네.’
김리나를 앞에서 본 순간 한성태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왔어? 여기 앉아. 인사시켜 줄게.”
안재우의 옆에 앉으며 한성태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1학년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 깃들었다.
* * *
식당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운 한성태 일행은 한국대학교 강당으로 모였다.
“간단하게 연습 시작해볼까?”
안재우가 그렇게 말하며 한성태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한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바라는 걸까.
“애들이 뮤지컬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네가 시범 좀 보여줄 수 있어?”
“내가?”
“어, 여기서 네가 가장 연기 잘하잖아.”
그의 말에 한성태는 볼을 긁적였다.
김리나를 두고 자신이 가장 연기 잘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도 뮤지컬을 할 때 좋은 연기를 보여준 사람이었으니까.
“…….”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는 그들의 시선에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렸다.
안재우에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그를 바라보는 1학년들의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해 보였다.
“알았어. 그럼 간단하게 해볼게.”
미리 연습했기에 당장 연습하는 건 조금의 문제도 없었다.
대본을 빠르게 살펴본 한성태는 그들의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의 성대를 건드립니다.]연기의 신의 메시지.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목을 매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찰나의 감각이었기에 한성태는 잘못 느낀 거라 생각하며 연기에 몰입했다.
‘안 열사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혁명의 시간.
일본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담고 있는 뮤지컬.
“나는 알고 있다네. 그들이 어떠한 죄를 지었는지.”
한성태의 표정이 다부졌다.
결의에 찬 모습.
대사를 내뱉던 그는 옅게 숨을 내쉬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대한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그의 목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그는 강당에 있었지만, 그가 보는 건 일본의 재판관이 있는 재판장이었다.
정권을 폭력으로 찬탈하고.
대한의 독립을 파괴한 죄.
자신이 이토를 살해한 죄를 인정하고 일본의 죄를 말한다.
그들의 부정한 행동한 행동을 입에 담는 그의 모습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진실을 알리리라.’
일본이 숨기려고 하는 진실을 입에 담았다.
주변의 분위기가 험악해진다고 해도 겁을 먹지 않았다.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안중근은 하지 못할 게 없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힘이 느껴진다고 말합니다.]연기하면서 한성태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연습할 때보다 더 호소력이 짙어졌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보여주기로 한 장면을 전부 연기한 후였다.
“……와.”
“대박이다.”
“이게 기성인가?”
그를 바라보는 1학년들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