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68
68화
한성태는 김민석과 전화를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연습이 많이 남기는 했지만, 전화하는 그에게 연습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더 쉬고 싶었고 쉬기 위해서는 한성태가 쉬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성태가 연습하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움직여야 했으니까.
―주변이 많이 시끄러운데. 지금 어디야?
“강당. 연습하고 있었어.”
―어, 뭐야. 내가 바쁜데 전화한 거 아니지?
“괜찮아. 쉬는 시간이야.”
한성태는 주변을 슬쩍, 살피고는 고개를 저었다.
편하게 쉬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조금 더 쉬고 싶다는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공모전 심사 넣었다고 했잖아. 그거 좀 제대로 설명해 봐.”
―아. 그거. 자유 단편영화제라는 곳에 넣었어. 내가 링크 보내줄 테니까, 한번 살펴봐봐.
“알았어.”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김민석에게서 온 링크 하나.
―최우수상 상금이 500만 원이었나. 그럴 거야. 우수상이 200만 원이고.
“어, 그렇네.”
―솔직히 최우수상까지는 바라지 않거든? 우수상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왜 이리 자신감이 사라졌어? 저번만 해도 1등 자신 있다며.”
링크로 받은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원래 자신 있기는 했는데. 심사 넣는 작품 수가 이, 삼백 개가 넘는다잖아.
“음…….”
무거워진 김민석의 목소리에 한성태는 볼을 긁적였다.
이미 10년이 넘는 배우 생활을 해서 그럴까.
김민석이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잃는다는 게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가편집본을 제출해도 최소 3등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생의 한성태는 연기는 못했어도 좋은 작품을 골라낼 수 있는 눈은 있었다.
적어도 김민석의 영화가 3등 밑으로 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편집해서 보냈으니까. 적어도 후회는 없다. 재미있었잖아.
“그래. 확실히 재미있었다.”
한성태는 김민석을 위로하거나 잘될 거라는 격려의 말을 보내지 않았다.
“나중에 밥이나 먹자.”
―네가 웬일이냐? 먼저 밥을 먹자고 다하고.
“그래서 싫어?”
―아니, 싫을 리가 있냐? 언제야. 바로 날 잡아.
김민석의 반응에 한성태는 웃을 흘렸다.
역시 전화를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나았으니까.
―연습은 잘 되고 있냐? 내가 뮤지컬 참여하지 않아서. 뭐 어떤지를 모르겠네.
“잘하고 있어. 다들 열심히 하고 있고. 좀 귀찮은 사람이 있기는 한데……. 뭐, 괜찮아.”
―귀찮은 사람? 누가 건드리냐?
“아니야. 신경 쓸 거 없어. 연습 잘되고 있어서.”
단편영화제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김민석에게 신경 쓸 만한 일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단편영화제와 뮤지컬이 끝나고 말해도 충분하다.
“성태야, 연습 시작한대!”
“아, 알았어. 금방 갈게. 야, 나 연습 가야겠다.”
―그래. 수고해라.
전화를 끊은 한성태는 연습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연습해야 할 신이…….’
대본을 빠르게 훑은 한성태는 무대 위를 올려다봤고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본을 든 채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
“바로 시작하는 거지?”
“어, 너 올라가면 바로 시작될 거야.”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성태는 바로 무대 위로 향했다.
그의 걸음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무대 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향했다.
“이걸 그들에게 가져다주게.”
한성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에게 들고 있던 쪽지를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안중근으로서 동지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
“네, 제가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확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그의 앞에서 김리니가 다부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김리나가 맡은 배역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 * *
김리나는 한성태에게서 쪽지를 받아들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열사들에게 밀서 전달을 담당하는 배역을 맡았다.
“저희가 이길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공공부하고 또 공부해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립운동가를 도우면서 느끼는 두려움.
그녀는 그 마음을 솔직하게 내보였다.
저는 아직도 두렵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이 의미 없게 끝나는 것은 아닌지.
그녀의 생각이 노래로 안중근에게 전달되었다.
안중근을 맡은 한성태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김리나의 앞에 있는 사람은 한성태가 아닌 안중근이었다.
두려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나 역시 언제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성태의 입이 열리고 그의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이걸 어떻게 대학생의 연기라고 할 수 있을까.’
한성태와 함께 연기하며 그녀는 속으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울 게 무척이나 많은 연기.
그녀는 같은 대학생에게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지금 이렇게 밀서를 전달하는 것도 두려운데. 당신처럼 독립운동가가 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용기만 있으면, 조국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안중근의 말에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어떻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걸까.’
김리나는 한성태를 바라보았다.
학생의 연기라고 볼 수 없는 제대로 된 뮤지컬의 보여주는 한성태.
마치, 배역에 빙의라도 된 것 같은 그 모습은 김리나에게도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그녀에게 한성태는 여러 의미로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이 사람이라면 성공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아.’
한성태와 그녀의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워나갔다.
* * *
“이제는 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죄수복으로 갈아입은 한성태는 감옥의 배경 앞에서 무릎을 꿇고 중얼거렸다.
일본 경찰들에게 붙잡혀 재판을 받으러 가기 하루 전.
안중근은 독방에서 조용히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신이시여, 두렵습니다.
내 이 행동이 조국의 독립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미래를 모르기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신에게 기도하며 조국의 미래를 부탁한다.
“326번, 재판이다.”
날이 밟았다.
교도관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안중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도관과 함께 재판장으로 향하는 안중근.
그의 모습은 엄숙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습니다.]연기의 신들이 보내오는 시선이 느껴졌다.
한성태의 연기는 혼자가 아니었다.
연기의 신들이 함께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한성태는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연기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연기는 혼자서 하는 것과 너무 달라.’
한성태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면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다.
다만, 한성태는 자신이 그들에게 점점 의지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이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연기의 신들에게 의지하게 된다면, 그들이 사라지는 일이 생겼을 때 방황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한성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나약한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신들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좋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
“성태야, 조금만 쉬고 바로 이어가자.”
밑에서 들려온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를 내려갔다.
대본을 살펴보는 그의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그들이 함께할 때의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어.’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영원한 젊음의 배우’와 함께 한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잘 살릴 수 있다면, 연기의 신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좋은 연기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연기의 신들과 함께하면서 보고 들은 게 많았으니까.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 감을 잡았으니까.
‘만약 그들의 모든 걸 내 것으로 만든다면. 성장한 상태에서 그들의 연기가 더해진다면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성태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한성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대에 올라가는 그의 발걸음에 힘이 담겨 있었다.
* * *
터벅터벅.
한성태의 무거운 발걸음이 재판관 앞에서 멈춰섰다.
근엄하게 앉아 있는 재판관 역을 맡은 학생의 모습을 보는 한성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피고, 안중근! 사형!”
땅땅땅.
안중근을 향해 내려진 재판.
재판관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웅성거렸다.
기자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마구 눌렀다.
“피고, 안중근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는가.”
사형 전.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시간.
안중근은 모두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장부로 태어나 나 결심했나니.
나의 동지들이여, 눈물을 흘리지 마시고.
한성태의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신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하는 연기.
연기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배역에 몰입하게 되었다.
나 이제 죽지만.
내 영혼은 언제나 조국과 함께합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었다.
수천번 대본을 읽고 수백 번 연습하면서, 배역 그 자체가 되는 순간.
지금의 한성태가 그랬다.
신들이 함께 하지 않았지만, 그의 연기는 절정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천의 얼굴’이 당신의 연기를 보며 헛웃음을 흘립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배역에 몰입한 당신의 모습을 보며 크게 놀라워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의 연기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짓습니다.]그의 연기를 본 연기의 신들이 놀라 메시지를 마구 보냈다.
그들의 메시지가 시야에 떠올랐지만, 한성태는 그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강당의 무대가 아닌, 일본 재판관이 있는 재판장을 보고 있었고.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와 검사들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하고 있었다.
“히로를 죽인 죄를 인정하지만, 당신들 역시 죄를 저질렀소.”
안중근의 말에 일본인들이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언제까지 저딴 말을 듣고 있어야 합니까!”
“당장 사형시킵시다!”
그들은 안중근을 향해 닥치고 꺼지라 소리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안중근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들이 흥분하며 소리칠수록 안중근은 자신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의 목을 매만집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과 함께하고 있습니다.]한성태의 연기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