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7
7화
* * *
“야. 이거 누나가 가져다주래.”
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기 위해 움직이는 길.
한성태를 찾아온 김민석이 쇼핑백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뭔데?”
“너, 저번에 입었던 옷. 누나가 너한테 잘 어울린다고 주란다. 네가 마음에 들기는 했나 봐. 우리 누나가 남자한테 옷 같은 선물 잘 안 해주는데.”
“그때 용돈도 주셨잖아. 이런 걸 받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쇼핑백의 내용물을 살피며 한성태는 눈을 깜빡였다.
한성태는 절대 이런 선물을 받고자 그녀를 찾아간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미소는 촬영이 끝나고 그에게 용돈이라며 십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었다.
그것만 해도 감사한데, 이렇게 옷까지 선물해 줄 줄은 몰랐다.
“이거 비싸지 않아?”
“그렇게 안 비싸. 어차피 네가 입었던 옷이기도 하고, 전시용이라서 팔지도 않는 거라. 신경 안 써도 되니까 그냥 받아. 정 그러면 누나한테 따로 연락이 넣던가.”
“그래야겠다. 잠시만.”
“아니, 지금 전화하는 건 아니었는데.”
쇼핑백을 꽉 붙잡은 그는 김미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에 갔을 때 그녀의 명함을 받았다.
―여보세요.
“누나, 저 성태예요.”
―성태? 어, 성태야. 그래, 무슨 일이야?
“방금 민석이한테 옷 받아서요. 너무 감사하다고 연락드렸어요.”
한성태의 말에 김미소가 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별거 아니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너무 감사해요. 제가 이런 선물을 받은 게 처음이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나도 남자한테 옷 선물한 거 처음이야. 너한테 잘 어울리기도 했고, 고생했는데 해준 것도 없어서 미안하기도 했거든.
“용돈도 주셨는데…….”
―그건 다른 이야기지. 어쨌든 잘 받았다니 다행이네. 너는 잘 입고 다녀야 해. 배우가 꿈이란 애가 옷이 그게 뭐야. 얼굴도 좋으면서. 하여튼, 목요일에 보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검은색이 된 화면을 내려다보며 한성태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전화 끝났냐?”
“어, 방금 끝났어.”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 아침에 빵 쪼가리 먹고 와서 배고프다고.”
“아, 그래.”
어느새 다가와 말하는 김민석의 모습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밥을 먹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혼자 먹는 것보다 둘이서 먹는 게 더 좋겠지.
한성태는 김민석과 함께 가까운 분식집으로 향했다.
달그락.
한국대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분식집.
한성태는 김민석과 함께 여러 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다.
“야. 근데, 이번 연극 때 너 어떻게 할 거야?”
“응?”
“왜, 그 있잖아. 연극영화과 전통. 매년 연극 한다는 거.”
“아…….”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담그고 있던 한성태는 김민석의 말에 멈칫거렸다.
그러고 보니, 매년 열리는 연극을 잊고 있었다.
11월쯤 열리는 연극으로, 연극영화과에서 주도적으로 하는 행사 중 하나.
2, 3학년이 아닌 1학년들로 이루어진 연극으로.
2학년에 진급하기 전,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뽐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너무 정신이 없었던 걸까.
한국대학교 연극영화과의 학생으로서 잊으면 안 되는 걸 잊고 있었다.
연극영화과의 연극은 업계에서도 제법 유명하다.
감독이나 제작사, 혹은 엔터테인먼트에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말이다.
한성태에게 하나의 기회라고 봐도 무방한 연극.
그런 걸 잊고 있었다니.
“안 빠질 거잖아?”
“응.”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 이런 걸 뺄 놈이 아니니까. 내가 문제네.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김민석의 푸념에 한성태는 떡을 하나 물었다.
우물거리기를 잠시, 한숨을 내쉬는 김민석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때문이지?”
“어? 뭐……. 그렇지. 내가 또 안 하겠다고 하면, 엄마가 가만 안 있을 거니까. 잔소리를 듣기는 싫은데 연기도 하기 싫고.”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한성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김민석의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 미래를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의 가정사가 상당히 꼬여 있었으니까.
“그래.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가자, 수업 늦겠다.”
“어.”
“내가 계산할게. 누나가 너 잘 먹이라고 하더라. 살 좀 찌워야 한다고.”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볼을 긁적였다.
* * *
웅성웅성.
수업 시간, 아이들이 내는 소리로 강의실이 매우 시끄러웠다.
“하고 싶은 배역 있으면 지금 말해. 괜히 나중에 하겠다고 난리 치지 말고.”
“그래서 빵집 아줌마는 누가 할 거야!”
그들은 지금 연극에서 할 배역을 정하는 중이었다.
배역은 한정되어 있고, 하고 싶은 배역이 겹치다 보니 여러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의견이 좀처럼 통일되지 않는 상황.
11월에 있을 연극을 위해 학생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이혜윤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의 시선 속에서 과대의 주도하에 하나씩 배역이 정해졌다.
‘남은 배역이…….’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배역을 정하고 있을 때.
한성태는 남은 배역들을 살피고 있었다.
연극 배역 중에서 학생들이 기피하는 배역이 있기 마련이었다.
무수히 많은 배역 중, 사람들이 피하는 배역.
그중 하나에는 ‘피에로’라는 배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저건 전생이나 지금이나 항상 마지막까지 남는구나.’
이번에 하는 연극의 주제는 ‘그들의 이야기’다.
그곳에서 피에로는 우스꽝스러우면서 주연들을 연결시키는 징검다리 역을 맡고 있었다.
그것만 놓고 본다면 비중도 높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학생들이 피에로 역을 피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피에로는 누가 하는 거야?”
“몰라. 아무나 하겠지. 나만 아니면 돼.”
“저런 걸 누가 해. 연기하기는 더럽게 어려운데, 하다못해 멋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비웃음당하기 쉽잖아.”
“그다지 좋은 역할도 아닌데, 비중만 높고. 난이도도 좀 높아? 저건 똥이야, 똥.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피에로 역을 향한 아이들의 시선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난이도 있는 역, 하지만 비웃음당하기 쉬운 배역.
그들의 선배들 역시 피에로 역을 기피했다.
피에로 역을 맡아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쉽지 않았으니까.
그 배역은 어디까지나 주연들을 띄어주기 위한 배역일 뿐이었다.
들러리가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학교 전체를 뒤져도 찾기 힘들 것이다.
‘딱 나네.’
하지만, 한성태는 생각이 달랐다.
남들이 피에로 역이 마냥 어렵고 매력 없는 인물이라고 말하지만.
한성태는 그렇기에 더욱 피에로가 끌렸다.
난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연기력이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고, 연기만 잘한다면 강한 인상을 남겨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만.’
[‘천의 얼굴’이 대본을 살펴보며 턱을 긁적입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라며 눈을 반짝입니다.]그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게 있었다.
연기의 신, 그들이 함께하고 있었기에 벌써부터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기의 신들에게 의지한다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도움을 줄 뿐, 결국 연기하는 건 온전히 한성태에게 달려 있었다.
한성태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었고, 그는 연기의 신들에게 마냥 의지할 생각도 없었다.
꿈은 자신의 힘으로 이루는 게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데……. 말을 꺼낼 수가 없네.’
한성태는 피에로 역을 맡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위로 마구 떠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배역을 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옆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혜윤은 그들의 행동을 딱히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배역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저기, 얘들아.”
박창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간단한 손동작과 목소리.
그는 매우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내가 피에로 역에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해도 괜찮을까?”
“피에로 역에?”
“창식이, 네가 추천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건 또 처음인데.”
그의 말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아이들의 시선 속에 박창식은 얌전한 사람이었다.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켜만 보는 인물.
그의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항상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창식이 나서는 모습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성태, 쟤를 추천하고 싶어.”
“한성태를?”
박창식이 한성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한성태에게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눈을 깜빡거렸다.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인데.’
피에로 역을 하려는 건 맞지만, 박창식이 나서는 건 생각에 없던 일이었다.
물론, 대신해서 말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저번에 독백 연기 하는 거 보니까, 상당히 연기가 좋더라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잖아?”
“어? 어……. 뭐, 그렇지.”
“그러네. 한성태, 쟤 연기 좀 쳤었지.”
“그때는 박창식보다 연기를 더 잘하는 것 같기는 했어. 그러면 한성태가 딱이기는 하네!”
어쩐지 분위기가 한성태를 몰아가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 속에서 박창식이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성태는 그의 미소에 담긴 의미가 마냥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성태야, 피에로 역 맡아줄 수 있지? 아, 물론 네가 힘들다면 하지 않아도 돼. 성태 네가 힘들다는데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박창식은 걱정하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괜히 자신이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정작 그의 눈은 한성태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한성태는 볼을 긁적였다.
‘요놈 봐라.’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강의실의 분위기를 보며 한성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네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박창식은 한성태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령, 한다고 해도 그가 제대로 배역을 수행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게 보였다.
‘상당히 고마운걸?’
박창식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한성태는 더 이상 재능도 없으면서 노력만 하는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다 차려진 밥상이라고 말합니다.] [‘천의 얼굴’이 상당히 좋은 놈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그는 혼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