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70
70화
“저희 어머니세요.”
김리나의 말에 한성태는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앞에 있는 한 사람.
‘이예은이잖아!’
뮤지컬 배우, 이예은.
그녀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리베카 등…….
해외 뮤지컬에서 그녀가 선보인 무대는 먼 미래까지도 두고두고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바로 앞에 있다니.
“한성태입니다. 이예은 선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 아세요?”
“네! 선배님께서 공연하신 뮤지컬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시작해서 호두까기 인형, 리베카…….”
“알았어요. 알았어. 이 친구 재미있는 사람이네.”
이예은이 손을 뻗어 한성태의 입을 막았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침착하게 심호흡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볼 줄은 몰랐네. 은퇴한 지 꽤 되었는데.”
“아무리 은퇴를 하셨어도. 선배님께서 공연하신 무대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래요. 듣던 대로 많이 부지런한 것 같네. 우리 리나가 성태 씨, 연습을 엄청 열심히 한다고 했거든.”
“아…….”
그녀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리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김리나가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무대 잘 봤어요. 정말 좋은 무대더라고요. 성태 씨 연기도 좋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그런데 물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무슨 질문을 하려고 망설이는 걸까.
“혹시 성태 씨 따로 뮤지컬을 배운 적이 있나요?”
“네?”
“좀 나이가 있으신 분 같은데. 누구한테 배우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이게 무슨 소리지.
한성태는 그녀의 물음에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배웠나?’
연기의 신들을 따진다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독학했습니다.”
그들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던 한성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천의 얼굴’이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끔뻑입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손을 들어 입을 가립니다.]그의 말에 연기의 신들이 여러 반응을 보였지만, 한성태는 그들에게 속으로 미안함을 전하며 이예은을 바라보았다.
“독학…… 했다고요?”
“네, 주로 미튜브를 통해 공부했습니다. 여러 작품의 배우분들 연기를 많이 참고했거든요.”
“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한성태의 말에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연기를 너무 잘해서요. 그래서 연기를 알려준 사람이 있을 줄 알았네요.”
“아…….”
“독학으로 그 정도라니. 나이가 21살? 맞죠?”
“네, 맞습니다.”
“앞날이 창창하네요. 우리 리나 잘 부탁해요. 성태 씨 같은 사람이 챙겨주면 안심이 될 것 같네요.”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한성태도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김리나와 친하게 지내는 건 한성태도 바라는 일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이후 일정이 있어서. 리나야, 집에서 보자.”
“네, 들어가세요.”
“응.”
이예은이 떠나가고, 한성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갑작스럽게 그녀와 만나서 그런지 긴장해서 등이 뻣뻣해진 느낌이었다.
“그럼 돌아가서 무대 정리할까?”
“네.”
한성태의 말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국대학교 연영과 뮤지컬, ‘혁명의 시간’.] [일단 한번 들어와서 봐라. 재미있다.]한국대학교 커뮤니티.
하나의 글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글들은 전부 2학년들이 무대를 보인 뮤지컬, ‘혁명의 시간’을 담고 있었다.
「[연영과 애들이 또 일 저질렀다.]
이번에 2학년 애들이 뮤지컬 한 거 본 사람 있냐?
1학년도 몇 명 끼어서 했는데.
‘혁명의 시간’ 이걸 가지고 제대로 하더라.
진짜 보는 내내 감탄만 나왔음.
그런데 한성태, 얘는 진짜 뭐냐?
난 독립운동가가 살아서 돌아온 줄 알았다니까?
뭔 연기가 그렇게 처절한지.
그냥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옴.
끝나고 인기투표도 했는데 한성태가 그냥 압도적이더라.」
―익명41: 나 여자친구가 같이 보자고 해서 봤는데. 좀 지리기는 했어. 연출도 연출인데, 연기가, 와…….
―익명77: 한성태, 쟤는 어떻게 못 하는 게 없냐? 얼굴도 잘생겨, 연기도 잘해. 심지어 이제는 노래까지 잘하네. 진짜 인생 혼자 산다, 혼자 살아.
―익명16: 연기 진짜 잘하긴 해. 괜히 데뷔한 게 아니라니까? 한성태, 쟤는 난 놈이야.
‘혁명의 시간’의 이야기로 가득한 커뮤니티.
직접 뮤지컬을 본 사람의 목격담이 더해져 상당히 시끄러웠다.
그들은 뮤지컬의 퀄리티가 상당히 좋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성태, 얘 뭐 하는 놈이냐.]
나 19학번인데. 내 살면서 까마득한 후배 연기보고 감탄하기는 처음이네.
이게 괜히 데뷔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번에 뮤지컬 하는 거 보고 된 놈은 된 놈이구나 생각도 들더라.
혼자 인생 다 살던데. 부러워 죽겠네.」
―익명17: 나도 19학번인데. 한성태면, 레이스 스타트에 나온 걔 맞지? 지금 보니까 ‘악전’ 예고편에도 나오더만. 대단하긴 대단해. 이제 막 2학년 된 놈이 우리보다 더 빨리 데뷔했잖아.
―익명66: 가만 보면, 한성태 걔는 우리랑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아. 옷 입는 것만 봐도 무슨 모델 보는 것 같았어. 저번에 한번 식당에서 봤는데. 걔네 학번은 노난 거지, 뭐.
―익명76: 내가 알기로 걔, 서울액션스쿨에도 다닌다고 하던데. 진짜 뭐 뒤에 빽이라도 있어? 고아로 알고 있는데, 하는 거 보면 그렇지가 않아.
뮤지컬에 참여했던 학생 중 유독 한성태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녔다.
워낙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고 데뷔를 해서 좋은 성과를 낸 몇 안 된 배우이기도 했으니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로서 한성태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반응이 너무 좋다 못해, 이건 과한 수준인데.”
다만, 당사자인 한성태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반응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누구나 열심히만 한다면 자신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자신이 연기를 잘한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자신이 뛰어나다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것도 결국 연기의 신들 덕분이니까.’
그렇기에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우웅.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던 한성태는 스마트폰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고개를 돌렸다.
―안재우(과대): 커뮤니티 봤어? 지금 반응이 너무 좋아. 다들 우리가 한 뮤지컬 이야기만 하더라.
―최혜림: 어, 나도 그거 봤어. 우리 칭찬 엄청 하던데? 특히 성태 이야기가 엄청 많음.
―류대현: 그러니까. 한성태 연기 잘한다고 다른 과에서도 엄청 말 많던데. 여기 한성태 초대 안 되어 있나?
―안재우(과대): 모르겠네. 성태, 바쁘지 않을까? 걔가 뮤지컬 하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작품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지석우: 하긴. 걔 보면 엄청 바쁘게 지내기는 하더라. ‘악연’도 다음 달에 개봉하지 않아?
―최혜림: 나도 다음 달에 개봉하는 걸로 알고 있음.
한성태는 단체 채팅방에 올라오는 아이들의 채팅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친구들은 한성태의 연기를 칭찬했고 이내 악인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는 말에는 한성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웅.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타자기를 두드리던 것도 잠시.
화면이 검게 물들더니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성태야, 슬슬 작품 해야지?
그 말에 한성태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어, 왔어.”
회사 로비로 들어오는 한성태를 향해 정두식이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 오랜만이지. 잘 지냈어?”
“네, 저는 잘 지냈죠. 형 지방 갔다 오신 건 어떻게 됐어요?”
“아, 그거? 간단한 행사였는데. 잘 끝내고 왔다.”
“고생하셨네요.”
한성태의 말에 정두식이 옅게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올라가자. 팀장님이 기다리고 계셔.”
그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두식에게 전화 온 그날.
그는 한성태에게 팀장과 함께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을 했었다.
“너한테 들어온 작품들이 있는데. 가서 한번 봐봐. 괜찮아 보이는 것도 몇 개 있더라.”
“그래요?”
“어, 네가 또 액션 잘하잖아. 그쪽으로도 괜찮은 거 있기도 해서. 네가 직접 보면 알 거야.”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두식의 눈을 못 믿는 게 아니었지만, 역시 직접 보는 건 만큼 좋은 건 없었다.
[‘천의 얼굴’이 새로운 작품 소식에 고개를 기웃거립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에게 이번에는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궁금해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는 당신이 어떤 작품을 하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무엇보다 그에게는 대본을 잘 골라줄 수 있는 연기의 신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한다면 좋은 작품을 많이 골라낼 수 있으리라.
“성태 씨, 어서 와요.”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잘 지냈죠. 성태 씨 영화하고 뮤지컬 한 거 봤습니다. 엄청 잘하더라고요. 두식 씨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민나정은 ‘하루’와 ‘혁명의 시간’을 입에 담으며 한성태의 연기를 칭찬했다.
그녀의 칭찬에 한성태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이게 성태 씨한테 들어온 작품입니다. 공중파에서도 성태 씨를 원하더군요. 레이스 스타트 찍은 게 크긴 했나 봐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죠.”
그녀가 건네주는 대본을 받아들며 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
한성태에게 들어온 대본은 네 개였다.
하나같이 액션과 관련된 작품들.
그것들을 보면서 한성태는 눈매를 살짝 좁혔다.
‘전부 다 액션이네. 스릴러거나.’
한성태가 액션에 특화되어있는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다른 장르 역시 소화해낼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르의 작품을 하고 싶은데.
‘여기에는 없네.’
한성태가 대본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어떤 작품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천천히 고민해도 돼요. 급한 것도 아니고. 성태 씨라면 뭘 하든 잘할 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
한성태 역시 그녀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한성태도 자신의 앞날이 기대되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그의 미래는 언제나 혼자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