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사락사락.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성태가 자신에게 온 대본을 살펴보는 소리였다.
민나정은 필요한 말만 하고 회의실을 나간 지 오래.
정두식만이 자리에 남아 대본을 살펴보고 있는 한성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마음에 드는 거 있어?”
한성태가 대본을 내려놓았을 무렵, 정두식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리며 말을 걸었다.
그 말에 한성태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 중에는 마음에 드는 게 없네요.”
“그래? 이번에는 좀 괜찮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게 별로야?”
“작품들은 괜찮은데, 제가 하고 싶은 게 없어서요.”
한성태는 자신에게 들어온 대본들을 살펴보았다.
범죄, 액션, 스릴러 작품의 대본들.
분명, 한성태는 액션 쪽으로 특화되어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었다.
애초에 찍은 작품도 별로 없었고 그마저도 마약 운반책이나 조폭이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들어오는 것도 그와 비슷한 작품뿐이었다.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일단 집에 가서 더 고민해 봐. 혹시 모르잖아. 보다 보면 괜찮은 게 생길지.”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져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이미 그는 대본들에게서 흥미가 완전히 떨어진 후였다.
재미가 없었고 한성태가 원하는 장르의 대본이 아니었다.
범죄, 액션 장르의 작품을 찍어왔기에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의 작품을 찍고 싶었다.
“네, 저 이제 집에 들어가볼게요.”
“알았어. 데려다줄까?”
“아니에요.”
“아니기는, 어차피 나도 나가려고 했어. 네 집이 먼 곳도 아니고. 괜찮아.”
“저 집에 뛰어가려고요. 오늘 운동 할당치를 채워야 하거든요.”
한성태의 말에 정두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질린 듯한 그 표정에 한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너 대단하다고. 나는 너처럼은 못하니까.”
“저야, 익숙해져서요. 형도 운동하다 보면 괜찮아질걸요.”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지금도 워낙 바쁜데 운동하기는 힘들지.”
그 말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리며 가방에 대본을 챙겼다.
정두식의 배웅을 받으며 집까지 달리던 한성태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에 진동이 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확인한 한성태는 화면에 떠오르는 익숙한 이름에 미소를 지었다.
* * *
한성태는 자신의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김무철을 바라보았다.
김무철에게서 온 연락 하나.
그는 한성태에게 시간을 내어달라고 했고, 한성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요즘 뭐 하고 지내? 너 요즘 바빠서 얼굴 보지도 못했잖아.”
“뮤지컬 끝나고 지금은 잠시 쉬면서 다음 작품 어떤 걸 할지 찾아보고 있어요.”
“아, 그래? 뮤지컬은 잘했나? 너라면 뭐, 못하는 게 더 이상하기야 한데.”
“다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래. 네가 하는 건데 누가 싫어하냐. 나라도 좋아하겠다. 대학교에서 하는 거라 티켓비도 적잖아. 그날 본 사람은 노난 거지.”
부럽다는 듯이 말하는 김무철의 모습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
가끔 보면 김무철은 한성태를 과대 포장해주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형은 좀 어때요? 지금 작품 하나 찍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 그거…… 나쁘지 않아. 촬영장 분위기도 좋고. 재미있어.”
“형이 하는 건데 분위기가 나쁜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이게,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쓰네.”
김무철의 말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무슨 작품이에요? 형이라면 범죄? 느와르?”
“아니, 그쪽 아니야.”
“그럼 공포? 스릴러? 이쪽인가요?”
“도대체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다 그쪽으로만 생각하는 거야?”
“액션 잘하는 배우님?”
한성태가 하는 말에 김무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운 듯 웃는 그 모습에 한성태는 그가 어떤 작품을 찍는지 궁금해졌다.
‘지금 시기에 김무철이 찍은 작품이 뭐가 있지?’
한성태는 김무철이 어떤 작품을 찍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떤 작품을 찍는지 알고 있어도 그 시기까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다.
‘워낙 찍은 게 많아서 감이 잘 안 잡히네.’
대충, 이 시기면 몇 가지 있기는 한데.
“나 이번에 로맨스 코미디 찍어.”
“……로코요?”
“어. 정확하게 말하면 로맨스 판타지 코미디인데, 아, 너 나중에 시간 되면 촬영장 한번 와볼래? 구경해봐.”
“그래도 돼요? 괜히 제가 갔다가 민폐 끼칠 것 같은데.”
“네가 이야기를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닐 놈도 아닌데, 뭘. 상관없어. 너만 괜찮으면 오는 거지.”
그 말에 한성태는 김무철이 어떤 작품을 찍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생과 현생을 포함해 김무철이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를 찍은 건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판타지가 들어가는 건 딱 하나였다.
‘백년초구나.’
구미호와 불가살과 같은 요괴들이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반응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팬층도 꽤 두터워서 드라마가 나오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했었다.
나중에는 추억 떠올리기라며 미튜브에 편집한 영상이 올라온 것들도 많았다.
“나는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너는 좀 어때? 작품 선택한 거 있어?”
“아니요. 아직은 없어요. 마음에 드는 대본이 없어서요.”
“아……. 그럼 너, 범죄 액션 말고 다른 장르 해볼 생각 없어?”
“다른 장르요?”
“어. 나도 처음에는 액션 쪽만을 파고 있기는 했는데. 이게 로맨스 코미디 같은 장르도 상당히 괜찮더라고.”
김무철의 말에 한성태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다른 장르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어떤 장르의 작품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뿐.
‘로맨스 코미디라…….’
제목에 코미디가 들어가는 만큼 상당히 밝은 분위기를 가졌고, 때로는 병맛 같은 분위기도 풍겨서 절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장르였다.
지금까지 무거운 분위기의 장르를 소화했으니, 가벼운 분위기를 소화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한번 와서 봐봐. 말로만 들으면 잘 모를 수 있거든. 어차피 당장 작품 고른 거 없으면 시간은 널널하잖아.”
“네……. 그렇죠. 그럼 나중에 제가 갈 수 있을 때 먼저 연락드릴게요.”
“그러지 말고 이번 주 주말에 같이 가자. 평일에는 학교 가도 주말에는 학교 안 가잖아?”
김무철의 말에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따로 수업을 듣는 게 없었다.
“형, 그, 죄송하지만, 다음에는 안 될까요? 제가 이번 주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서요.”
“아르바이트?”
“네, 아는 친구의 누나가 하는 화보 촬영인데. 제가 꼭 가겠다고 했거든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시간 날 때 연락해줘.”
“네, 형. 신경 써줘서 감사해요.”
한성태는 김무철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밤이 되어 김무철과 헤어지고, 시간이 이틀 지나 김민석이 한성태의 집으로 찾아왔다.
* * *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한성태는 자신의 침대에 앉은 김민석을 향해 말을 걸었다.
김민석은 그의 물음에도 침대에 벌러덩 누우며 기지개를 켰다.
한성태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상체를 일으킨 김민석이 배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배고프다. 밥부터 시켜 먹자.”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밥이야.”
“아. 나 오늘은 혼자 있기 싫어서 그래. 내가 살 거니까, 우리 맛있는 것도 먹자.”
“후우…….”
한성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김민석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한성태는 더 말을 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문했던 밥이 도착하고 나서야 김민석이 입을 열었다.
“야, 나 곧 심사 나온단다.”
“심사?”
“어, 공모전 넣은 거 있잖아. 그거 곧 심사 결과 나올 거야.”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한성태는 김민석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유 단편영화제에 넣었던 ‘하루’의 심사 결과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김민석이었지만, 날이 가까워질수록 긴장하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성태가 그의 상황이었다고 해도 비슷했겠지.
“그래서, 온 거야? 걱정되니까?”
“아니, 뭐, 그런 것도 있고. 그냥 너 얼굴도 보고 싶고. 겸사겸사 온 거지.”
어떻게든 태연하게 말하려는 듯한 김민석의 모습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렸다.
굳이 더 묻지 않은 채, 한성태는 김민석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긴장하냐. 우리 잘했잖아. 너 연출도 좋았고 편집도 괜찮았는데. 두식이 형도 괜찮다고 했잖아.”
“알고 있는데……. 이게 내 첫 작품이라 긴장이 안 될 수가 없네.”
“그래. 긴장될 수 있지. 아, 너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거냐?”
“어, 그러려고 하는데. 괜찮지?”
“자고 가. 이불 깔아줄게.”
하나뿐인 친구의 부탁인데 안 될 리가 있을까.
한성태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롱에서 이불을 꺼냈다.
* * *
[한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혁명의 시간’ 뮤지컬 편집 영상.]미튜브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연극영화과 2학년이 한 ‘혁명의 시간’.
한 달 만에 조회 수 이십만을 찍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붉은실: 와, 요즘 연영과는 뭔 연기를 이렇게 잘하냐. 장난 아니.
―둑근둑근: 저거, 안중근 열사 역 맡은 애, 한성태 아니야? 레이스 스타트의 걔 맞잖아?
―금메달: 어? 그렇네. 한성태 맞잖아. 지금 악전 예고편에서도 나오지 않아?
영상의 댓글창에는 사람들이 단 무수히 많은 댓글을 달았다.
이예은은 그 영상과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
한성태의 연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기에 영상이 나오고 나서 몇 번이고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뭘 그렇게 집중해서 봐요?”
“리나가 한 뮤지컬이요. 같이 볼래요? 저번에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쉬워했잖아요.”
이예은의 옆으로 그녀의 남편, 김민철이 다가와 앉았다.
“여보가 계속 볼 정도면, 많이 괜찮았나 봐요?”
“직접 보면 알 거예요.”
이예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민철은 그녀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한성태가 김리나를 상대로 연기하고 있었다.
―나 이제 가지만. 결코 두렵지 않소.
한성태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게 들려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김민철이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얘, 누구예요? 상당히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