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진짜 왔네.”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던 한성태는 묘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김무철의 매니저, 이선우에게서 온 메일 하나.
그 메일에는 ‘백년초’의 대본이 들어 있었다.
―김무철: 메일 받았지? 대본 한번 살펴 봐봐.
―네. 형,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김무철: 그래. 수고해라.
김무철과 문자를 주고받고 난 이후 한성태는 대본을 살펴보았다.
[51신. 산신, 지연우. 유예나를 바라본다.]‘백년초’의 배역 중 하나인 ‘지연우’의 내용이 담겨 있는 대본이었다.
그 대본을 보는 순간, 한성태는 자신이 어떤 배역을 맡아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백년초’의 대본을 보며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합니다.] [‘천의 얼굴’이 ‘백년초’의 감독이 어떤 연출을 할지 궁금해합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당신의 연기가 기대된다며 미소를 짓습니다.]신들과 함께 대본을 살펴보던 한성태는 마지막 내용까지 훑어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스마트폰을 들더니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민석아, 지금 바쁘냐?”
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한성태는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민석이 집에서 자야겠네.’
잠옷과 대본을 챙긴 한성태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집을 나섰다.
딩동딩동.
김민석의 집 앞에 도착한 한성태는 초인종을 누르며 급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얼마나 초인종을 눌렀을까.
띠리릭.
도어록의 잠금이 풀리며 문이 열렸다.
“아. 쫌. 그냥 비번 치고 들어오면 되잖아!”
“에이. 그래도 다른 사람 집에서 오는 건데 어떻게 그러냐.”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가끔 보면 너 진짜 이상한 거 알지?”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어깨를 으쓱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의 자취방에 들어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런 데 살면 안 외롭냐?”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자취방이었다.
무슨 혼자 사는 집에 방이 세 개가 있단 말인가.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곳이었기에 더 놀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좀 그렇기는 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졌어.”
김민석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소파에 걸터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네가 아무 이유도 없이 오겠다고 할 놈도 아니고. 하룻밤 자고 가겠다며.”
“아, 별건 아니고. 같이 드라마나 보자.”
“……드라마?”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민석의 모습에 한성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김민석의 집을 찾은 이유.
‘백년초’의 대본을 보며 연습하기 전, 미리 시즌 1의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기 위해서였다.
‘10년 전 드라마의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 건 말이 안 되지.’
한성태는 많은 드라마를 봐왔고 그렇기에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드라마란 성장을 위한 참고용일 뿐이었으니까.
“무슨 드라만데?”
“‘백년초’라고. 무철이 형이 촬영하는 거 있어.”
“……너, 내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작품 들어왔냐?”
김민석의 물음에 한성태는 대답 대신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을 본 김민석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평소 연습한다고 전화조차 하지 않던 놈이 우리 집에서 잔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어. 다 목적이 있었구만.”
“그래서 싫어? 싫으면 돌아가고.”
“누가 싫다고 했냐? 평소에도 연락 좀 하고 살자는 거지. 1화부터 볼 거지? 간만에 밤 한번 제대로 새우겠네.”
리모컨을 들며 말하는 김민석의 모습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리며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 *
―내가 누구냐고? 보면 몰라? 구미호잖아.
TV 화면 속, 김무철이 자존감 넘치는 얼굴로 말하는 게 보였다.
―내가 이래서 구전동화를 안 좋아해. 내 이야기가 너무 미화됐잖아. 나, 생간 안 먹어. 야만스럽게 누가 그런 걸 먹냐. 여기 이런 맛있는 것도 있는데.
김무철이 손에 든 딸기 맛 아이스크림을 흔들며 말한다.
구미호, 백연의 모습.
“확실히 베테랑은 연기가 다르기는 해? 어떻게 저런 능청스러운 연기를 저렇게까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거지?”
옆에서 김민석이 김무철을 보며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한성태는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확실히 괜찮은 연기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신들도 괜찮다며 감탄하는 가운데, 김민석이 한성태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야, 그런데 언제 잘 거야?”
“……?”
“진짜 안 자고 쭉 볼 건 아니잖아. 지금 벌써 새벽 네 시가 넘었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한성태는 기지개를 쭉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김민석의 얼굴이 밝아졌다.
“자려고?”
“아니, 스쾃이라도 하면서 보려고.”
벌써 여섯 시간이 넘게 한 자리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아직 다섯 편이 넘게 남아 있는데, 운동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매우 바람직한 자세라며 당신에게 엄지를 치켜듭니다.]기마자세로 앉아 있는 한성태의 모습에 김민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피곤하지도 않아? 진짜 밤샘 줄은 몰랐는데.”
“뭐, 아직까지는 버틸 만해서.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서 자.”
“어……. 난 그래야겠다. 수고해라.”
“알았어. 잘자.”
김민석이 방에 들어가고 한성태는 여전히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기마자세를 하면서 다리가 떨려왔지만, 한성태의 집중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 끝났다.’
‘백년초’ 시즌 1을 전부 다 보고 나서야 한성태는 TV를 끌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 자면 두 시간은 잘 수 있겠지.
씻고 나온 한성태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채로 자기 위해서 움직였고.
우우웅.
정두식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잠을 청하던 것도 잠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네. 형, 무슨 일이세요?”
―너, 회사 좀 와라.
“회사요?”
―어.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인지 정두식은 서하린의 이름을 입에 담고 있었다.
* * *
“…….”
주변을 살펴보는 한성태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정두식의 전화로 오게 된 회사.
별생각 없이 오게 된 그곳에서 한성태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한성태의 앞에 정두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서하린과 강민영이 있었다.
서하린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수 1팀 팀장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아니,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갑작스럽게 불려와 제대로 상황 설명을 듣지 못했던 한성태는 현재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이해가 되지 않은 건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강민영과 다르게 서하린의 표정은 매우 밝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저는 할 말 다 한 것 같아서요. 먼저 일어나볼게요.”
“아, 네. 들어가세요.”
강민영은 한성태를 훑어보더니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눈을 깜빡거리며 정두식을 바라보았다.
한성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린이가 강 팀장님한테 아이돌 관두고 배우 하겠다고 말했데.”
“…….”
정두식의 설명을 듣자마자 한성태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연습생으로서 매우 잘하고 있던 서하린이 갑자기 관두겠다며 배우를 하겠다고 하니, 강민영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겠지.
‘서하린도 참…… 황당하네.’
배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엄연히 절차가 있고 밟아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서하린은 그 모든 걸 무시한 채 배우를 하겠다며 고집을 부린 것이다.
‘나를 못마땅하게 보던 것도 이해가 되네.’
강민영이 자신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한성태가 서하린을 물들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루’에 출연해 달라고 제안한 게 그였으니까.
억울하지만 어쩔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물론 서하린이 재능이 있는 건 맞지만.’
고개를 돌려 서하린을 돌아본 한성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답답해하고 한숨을 내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서하린은 후련해 보였다.
자신이 한 일에 아무런 후회도 없는 모습.
“둘이서 이야기 해봐. 나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와야겠다.”
정두식이 회의실을 나가고 한성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아직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벌써 머리가 아파 왔다.
* * *
“연기하신다고요?”
한성태의 물음에 서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성태는 잠시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한성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서하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 그때 연기하면서 엄청 즐거웠어요.”
“그때라면. 하루 찍었을 때요?”
“네, 처음 연기하는 건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고. 재미있고. 제가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하린이 웃으며 하는 말에 한성태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속이 시원해 보였으니까.
“제가 꿈이 스타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아이돌이 되기로 했던 거고.”
“네, 저번에 이야기 해주셔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무리 연습해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예전에는 연습하는 게,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마냥 좋았는데. 지금은 그게 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괴로웠거든요.”
“아…….”
한성태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정체기가 찾아오면 재미가 없어진다.
평소에는 즐겁게 하던 연습이 힘들어지고 지루해졌고.
지금 자신이 이런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의문마저 들었다.
한성태 역시 배우로서 살아가다 막히던 적이 무척이나 많았다.
‘나도 포기하려고 할 때가 있었지.’
물론, 결국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연기할 때는 다르더라고요. 매 순간이 즐겁고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배우가 되겠다고 하신 거네요.”
“네! 고민하다가 팀장님한테 바로 이야기했어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배우를 하고 싶다고. 그런데 설마 성태 씨한테까지 피해를 갈 줄은 몰랐네요. 죄송해요.”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걸요.”
한성태는 서하린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의 몇 안 되는 지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이었으니까.
“저는 하린 씨 응원합니다.”
한성태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이후로도 한성태는 그녀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헤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백년초’의 미팅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