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87
87화
띠띠띠.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하게 방안을 가득 채우는 소리.
“으음…….”
그 소리에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던 김리나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다.
띠띠…….
그녀의 손이 이불에서 빠져나와 알람을 껐다.
방안이 잠시 정적으로 물들었을 무렵.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김리나가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그대로 욕실에 들어가는 그녀는 한 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어떤 게 좋을까.’
장롱 앞에 선 그녀는 시야를 가득 채운 옷들을 뒤적였다.
김리나가 옷을 전부 갈아입고 난 이후의 시간은 오전 7시.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리나야, 오늘도 일찍 일어났네.”
침실에서 내려오는 그녀를 거실에 있던 김철민과 이예은이 웃으며 맞아주었다.
“잘 잤어?”
“네, 아버지는요?”
“나는 이제 자려고. 조금 전에 들어왔거든.”
한국에 넷플렉스가 지부가 생겨난 이후로 김철민은 매우 바쁜 생활을 보내오고 있었다.
이제는 밤을 새우는 게 익숙할 정도.
“고생 많으시네요.”
그녀의 말에 김철민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리나, 너는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힘든 건 없고?”
“네, 힘든 건 딱히 없어요. 친구도 있고요.”
“그래?”
“네, 선배님들도 그렇고, 교수님들도 잘해주세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김리나의 말에 김철민이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외국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온 터라, 김리나가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걱정을 하던 그였다.
“그래도 힘든 일 있으면 바로 말하고.”
“네, 그때 되면 바로 말할게요.”
김리나의 대답을 들은 김철민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대화가 끊기도 침묵이 이어졌다.
김리나가 접시에 담긴 음식을 절반 이상 비웠을 무렵이었다.
“너희 학교에서 한성태라고 있지? 이제 2학년 되었다고 들었는데.”
“성태 선배요?”
“어, 그 학생은 좀 어때?”
그의 물음에 김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의미로 그런 걸 묻는 걸까.
“좋은 선배예요. 주변 사람들도 다 칭찬하기도 하고 모두에게 친절해요. 열심히 하기도 하고요.”
예전, 한성태가 연극할 때 연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뮤지컬 때도 마찬가지.
한성태의 연습량은 주변인들이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났다.
이예은을 따라다니며 뮤지컬 배우들을 많이 만나왔던 그녀조차 감탄할 정도로 엄청난 연습량이었다.
“진짜 열심히 하죠. 그런데 그건 왜요?”
그런데 갑자기 한성태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걸까.
김철민은 배우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배우에 대해 묻는 건 처음인데.
“별건 아니고…….”
김철민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 때였다.
우우웅.
식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에서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주희라: 너, 어디야? 오늘 연습하는 거 잊었어?
그 메시지에 김리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뮤지컬 ‘동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습.
김리나도 연기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 연습을 위해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다.
“저 먼저 가볼게요. 할 게 있어서.”
“어, 그래. 가 봐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를 묘한 표정을 바라보던 김철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배웅해주었다.
김철민이 한성태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연습이 11시라고 했었지.’
그녀는 ‘동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중책을 하나 맡았다.
공연까지 몇 달 남은 상황.
연습 장소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성태야, 5분 뒤에 촬영 들어간데.”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본을 한 장 넘겼다.
‘백년초’를 촬영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아, 형. 저희 방영이 다음 달 맞죠?”
“어, 다음 달 중순으로 알고 있어. 정확한 날짜는 내가 다시 확인해서 알려줄게.”
“네. 언제나 고마워요, 형.”
“고맙기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너는 연기만 열심히 해. 나머지는 내가 받쳐줄 테니까.”
매니저가 있다는 게 이리도 듬직할 수가 있구나.
전생에는 매니저가 있었던 적이 많지 않았다.
애초에 능력 있는 매니저도 아니었고.
그래서 정두식과 같이 능력 있는 매니저가 붙은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천의 얼굴’이 괜찮은 사람이라며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한성태도 연기의 신과 같은 생각이었다.
“성태야, 지금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네. 형, 저 이것 좀.”
“어, 줘. 내가 들고 있을게.”
정두식에 스마트폰과 대본을 건넨 한성태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세트장 앞으로 황결이 대본을 만지고 있는 게 보였다.
카메라 앞, 세트장 위에서 김무철이 천예지와 미리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성태 씨 왔네. 바로 촬영 들어갑시다. 무철 씨를 앵글 잡고. 네 지금 좋습니다.”
카메라에 비치는 모습을 살펴보며 황결이 신호를 보냈다.
“레디, 액션!”
탁!
그의 목소리와 함께 슬레이트가 쳐졌다.
파앗!
환한 조명이 김무철을 비추는 상태에서 ‘백년초’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무철 씨 천천히 달리고. 감정 좋아요!”
황결의 목소리.
김무철이 심각한 얼굴로 달리기 시작했다.
유예나를 찾아 움직이는 백연의 모습.
“지금!”
황결의 신호에 카메라가 유예나를 잡았다.
꺄아아악!
그와 동시에 천예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그 위로 초록색의 천이 휘날렸다.
인간의 몸을 탐하는 악귀들과 백년초로 힘을 얻기를 원하는 요괴들이 유예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예나야!”
백연이 황급히 유예나를 지키기 위해서 움직였지만.
콰아앙!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백년초는 우리의 것이다.
―구미호,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혼자서 우리 전부를 상대할 수 있을까?
그의 앞을 무수히 많은 요괴가 가로막았다.
유예나를 노리고 온 요괴들.
붉은 달이 뜨고 음기가 강해진 지금, 강해진 요괴들을 상대로 백연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쿵, 콰앙!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요괴들과 악귀들은 유예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녀가 놈들을 상대로도 여지껏 버티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젠장! 이건 뭐야!
―어째서 그 개새끼의 힘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거냐고!
―그놈이 오기 전에 죽여야 한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지연우가 남기고 간 부적이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쩍, 쩌억!
―금이 갔다!
―부셔! 계속 때리면 부서진다!
―다리, 나는 다리가 좋아! 내가 다리 먹을 거야!
―나는 목!
그녀를 둘러싼 보호막에 금이 갈수록 놈들은 더욱 흥분하며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결국, 부서지고 만 보호막.
부적도 불에 탄 듯 재만이 남아 있었다.
―내 거다!
―손가락, 손가락 하나라도 먹자!
요괴들이 그녀에게 달려들고.
“꺄아아악!”
유예나가 비명을 질렀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눈을 뜬 그녀는 볼 수 있었다.
“배, 백연!”
요괴들이 든 무기가 이빨이 백연의 온몸을 난자하고 있다는 걸.
백연은 온몸이 찢겨 나가는 와중에도 유예나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괜…… 찮아?”
“지, 지금 그걸 걱정할 때야? 백연, 네 몸이……!”
“나는 괜찮아. 너만 괜찮으면…….”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구미호라고 하더라도 음기가 강한 날의 요괴들 앞에서 무사할 수는 없었다.
항상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의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 피를 요괴들이 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발 도망…….”
말을 잇지 못한 채 의식을 잃은 백연.
유예나는 그의 몸을 끌고 어떻게든 도망치려 기어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요괴들이 비웃으며 낄낄거렸다.
―눈알은 내가 꼭꼭 씹어먹을 거야.
―나는 폐. 인간의 폐만큼 별미는 없지.
요괴들이 입맛을 다시며 다가왔고 그녀도 최후를 각오한 채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크허허헝!
어디선가 들려온 울음소리.
―이놈들!
천지를 개벽하는 목소리와 함께 요괴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콰르르릉!
그런 요괴들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한순간에 소탕된 요괴들.
유예나는 그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한 모습.
“무사하면 되었다. 네가 무사하면 그걸 된 것이야.”
익숙한 목소리.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듯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그를 바라보며.
“저번에 그 사람 맞죠?”
유예나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사내가 멈칫거렸다.
“예전에 저 구해주신 그분 맞잖아요.”
유예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 사실을 사내의, 지연우의 눈이 떨려왔다.
“고마워요. 저를 구해주셔서.”
그녀의 말에 지연우가 몸을 돌렸다.
처음 보는 그의 환한 미소.
“와……!
“미쳤네, 진짜.”
한성태의 연기를 보며 스태프들이 감탄한다.
“컷!”
그와 동시에 황결의 목소리가 촬영장을 가득 채웠다.
한성태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뭔 연기를 저렇게 잘하냐?”
“그러니까요. 이제는 한성태가 아닌 지연우는 상상도 안 된다니까요?”
“악전이랑 느낌 다른 거 봐라. 저게 어디 봐서 박해준이야.”
“한성태 뽑은 건 진짜 신의 한 수라니까요. 엄청나서. 연기 진짜 잘하는 거 같아요.”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성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뜨거웠다.
“수고 많았다. 여기 물.”
“고마워요. 형.”
정두식이 건네 준 생수를 받아들며 한성태는 빠르게 숨을 골랐다.
액션신이 많아서 그런지 촬영을 마치고 나니까 몸이 상당히 힘들었다.
‘씻고 싶다.’
날도 더워서 그런지 땀을 너무 많이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촬영은 방금 걸로 끝이야. 바로 돌아갈 거야?”
“그러고 싶기는 한데. 일단 상황 좀 보고요. 형 힘드시면 먼저 들어가셔도 돼요.”
“야, 내가 배우 놔두고 어딜 가냐.”
정두식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며 한성태의 어깨를 툭 쳤다.
그 모습에 한성태는 웃음을 흘리며 촬영장을 살펴보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스태프와 배우들의 모습.
방금 촬영했던 후유증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바로 잘 수 있는 자신도 있었다.
“성태 씨!”
“아, 네. 예은 씨, 무슨 일이세요?”
뛰어왔는지 숨이 차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한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길래 뛰어온 걸까.
“이따가 회식 있다고 하는데. 참석하실 건가요?”
“회식이요?”
“네, 감독님이 성태 씨 꼭 나와야 하신다고 말씀하시기는 하는데. 성태 씨 편하신 대로 하시면 돼요.”
정말 편하게 해도 되는 걸까.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참석할게요.”
“참석하신다고요?”
“네. 예은 씨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 맞다. 예은 씨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셔야 한다고 하셨죠?”
“아니요. 저도 갈 거예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분명 집에 일이 있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성태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 급한 건 아니라서 충분히 회식에 참석할 수 있어요. 참석해야 할 이유가 생겼거든요.”
회식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늘 액션신이 많아서 힘들 텐데.’
한성태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기는 하지만,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한다.
무슨 이유로 회식에 참석해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럼 남은 촬영 파이팅이에요!”
“네, 예은 씨도 파이팅입니다.”
하지만, 한성태는 자신의 의문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다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할 뿐.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과 박예은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짓습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가 청춘이라며 웃음을 흘립니다.]이분들은 또 왜 이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