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쟤가 왜?’
한성태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리나, 그녀가 한성태의 옆에 서 있었다.
과방 자체는 학년 상관없이 쓸 수 있는 곳이라 상관없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
“저요?”
“네, 선배님.”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한성태는 눈을 깜빡거렸다.
후배가 선배에게 말을 거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조금 당혹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데요?”
“선배님께 따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음…….”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한성태는 이상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옆에서 김민석이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멍하니 있던 것도 잠시 김민석은 한성태의 시선에 묘한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너무 눈치가 없었다. 자리 피해 주면 되지?”
‘야.’
“성태야, 이 형님은 네가 자랑스럽다.”
‘그거 아니야.’
“편하게 이야기해, 편하게. 알았지? 나는 저기 멀리 나가 있을 테니까.”
‘미친놈아, 그거 아니라고!’
김민석이 무언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비킬 리가 없었다.
툭툭.
어깨를 두드리며 나가는 그의 모습에 한성태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
오해를 만들어낸 당사자인 김리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김민석이 왜 자리를 비켜주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
‘연출을 공부하더니 상상력만 풍부해서는. 나중에 어떻게 설명하냐.’
친구를 놀리기 좋아하는 김민석이었기에, 이 일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들었다.
잠시 대본을 툭툭 두드리던 한성태는 김리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요. 다리 아플 텐데.”
“아, 네! 감사합니다!”
같이 쓰는 과방에서 감사는.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저 연기 좀 도와주세요!”
“연기요?”
“네! 선배님이 꼭 도와주셨으면 해요.”
연습을 도와주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성태도 연습하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함께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문제는 내가 점점 바빠지고 있다는 건데.’
‘백년초’의 촬영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촬영하는 날도 있었고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았다.
넷플렉스와의 미팅도 있었다.
미팅하고 나면 촬영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빠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김리나를 촬영장에 데려올 수는 없었다.
촬영본이 유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관계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일 매니저 혹은 견학 느낌으로 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김리나는 아직 배우라고 할 수 없지.’
아직까지는 일반인 신분인 그녀를 촬영장에 데려오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었다.
“연습을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
“문제는 제가 촬영이 있어 많이 도와드릴 수는 없다는 거네요.”
“그거라면 괜찮아요.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무척 감사한 일인걸요.”
김리나가 황급히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한성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한성태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한테 부탁하는 건지 물어도 될까요? 다른 선배들도 있고 교수님도 있잖아요.”
비록 한성태가 촬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연기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
고학년 중에는 한성태보다 연기를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다못해 교수님에게 물으면, 그들은 성심성의껏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 그의 질문에 김리나는 한성태에게 부탁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이 좋아서요.”
“……네?”
한성태가 잠시 멈칫거리고, 뒤늦게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그녀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 그러니까, 이건, 선배님 연기가 좋다고요. 저번에 뮤지컬 하시는 거 보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횡설수설하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귀엽기까지 했다.
한성태는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요. 도와줄게요. 어려운 건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밤밖에 없는데. 밤에 연습해도 상관없습니까?”
“밤이요? 밤에는 왜. 선배님 혹시?”
“…….”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이런 케이스의 사람은 처음이라 생각이 많아진다.
한성태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까지 경멸하며 바라볼 필요는 없잖아요.”
작게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귀여운 아이라며 옅게 웃음을 흘립니다.] [‘영원한 젊음의 배우’는 앞으로 재미있어질 것 같다며 눈을 반짝입니다.]신들의 말처럼 앞으로가 재미있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웅.
―김민석: 나 피곤해서 집 가 있을 테니까. 이야기 끝나면 집으로 와. 밥이나 같이 먹자.
우선, 친구부터 만나러 가야겠다.
* * *
―주희라: 지금 어디야?
과방을 나와 움직이던 김리나는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지금 과방 나왔어.
바로 메시지를 보내고 움직이려던 그녀는 빠르게 답장이 오는 걸 보며 옅게 웃음을 흘렸다.
―주희라: 과방은 왜? 거기 선배님들 있어서 불편하다고 했잖아.
―할 게 있어서.
―주희라: 갑자기 무슨 할 거. 네가 거기서 할 게 뭐가 있다고. 그럼 지금 본관이란 거네?
―어, 본관이야.
김리나의 문자를 끝으로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친구가 위치를 묻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나야,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어느샌가 다가와 팔짱을 끼며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 김리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먹으러 갈까?”
“저기 앞에 이번에 새로 생긴 파스타 집 있거든? 인테리어가 상당히 괜찮아.”
“알았어. 거기로 가자.”
“오케이!”
김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주희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도착한 파스타 집.
주희나의 말대로 인테리어가 상당히 예쁘게 되어 있었다.
연인끼리 오기 좋은 느낌.
“맛있네.”
“그렇지?”
맛도 상당히 좋았다.
이 정도면 일주일에 한 번은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와줄 만하다.
김리나가 파스타를 먹으며 스마트폰을 힐끔 살펴보았다.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 스마트폰의 화면은 어둡기만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너, 과방에는 왜 간 거야? 요즘 애들 연습한다고 과방 가지도 않는데.”
“아, 그거…….”
“별거 아니라며 얼버무리지 말고. 뭔데. 너처럼 낯 심하게 가리는 사람이 혼자서 과방에 갈 이유가 없잖아.”
주희라의 물음에 김리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잡았다.
과방에 간 이유.
“연기 잘하고 싶어서.”
“……뭐?”
“도움을 받고 싶었거든.”
김리나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주희라의 고개가 점점 옆으로 기울어졌다.
“좋은 멘토를 얻었어.”
환하게 켜진 스마트폰.
그곳에는 한성태의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뭔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좋은 일이라는 거지?”
“응.”
“그럼 됐지. 뭐. 우리 밥 먹고 노래방이나 갈까?”
“아니, 나 오늘 연습해야 해.”
친구의 제안에 김리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멘토가 생겼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게 아니었다.
한성태의 연기를 직접 본 적이 있었기에, 김리나는 그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 * *
딸랑.
문이 열리고 한성태가 밖으로 나왔다.
건물을 나와 걸음을 옮기는 그의 손에는 유명 브랜드의 치킨이 담긴 봉투가 들려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자고 있나 보네.’
김민석의 집으로 가는 길.
한성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소리에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국대학교에서 김민석 집과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
한성태는 바로 김민석의 집으로 들어갔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치고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집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끼이익.
김민석이 있는 침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위 이불이 불룩해져 있는 게 보였다.
‘치킨 식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한성태는 문을 닫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많이 피곤해 보였기에 조금이라도 더 재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본 가져올걸.’
한성태는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방안을 기웃거리던 그는 김민석이 작업실로 사용하는 방에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모니터 화면.
그곳에 편집하고 있는 영상이 하나 보였다.
“하루잖아?”
익숙한 영상에 한성태는 바로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상식 이후로 보지 않았던 영상이었기에 상당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저번부터 붙잡고 있던 게 이거였구나.’
학교에 올 때면 김민석은 매일 같이 노트북을 붙들고 있었다.
영상을 편집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소재가 ‘하루’라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천의 얼굴’이 한번 보는 게 어떤지 묻습니다.]메시지가 떠오르기도 전에 한성태는 이미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김민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고 싶었다.
전생의 자신이 알고 있는 기억대로라면 김민석은 꽤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재능은 오랫동안 썩혀 버렸다.
한창 재능이 꽃피우기 시작할 지금 김민석은 어떨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휘오오오.
음산한 바람 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들려왔다.
“……!”
그저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지만, 한성태의 눈은 매우 커져 있었다.
영상이 이어지고 끝이 날 때까지.
한성태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
[‘천의 얼굴’이 상당히 많이 발전했다며 감탄합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김민석이 재능이 있다고 말합니다.]상당히 좋았다.
예전의 ‘하루’와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은 좋아졌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효과음부터 신을 끼어맞추는 그 모든 것들이.
예전의 김민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열심히 한다고 하더니.”
모니터 앞으로 널브러져 있는 연습의 흔적들을 보며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가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듯이, 그의 주변 사람들 역시 인생이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