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9
9화
* * *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길.
한성태는 에어컨에서 느껴지는 냉기를 만끽하며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너도 징하다. 택시에서 그러고 있으면 안 어지러워?”
“응. 적당히 볼만해.”
“어후. 나는 모르겠다. 나는 조금만 고개를 내려도 멀미가 나는데.”
“적응하면 돼.”
김민석의 말에 한성태는 웃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이메일로 받은 대본을 저장해 보는 중이었다.
비록, 종이 대본처럼 페이지를 넘기는 맛이 없기는 하지만.
적어도 편리함과 간편성에 있어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대본을 보는 게 훨씬 좋다.
물에 젖을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야. 우리, 여름 가기 전에 바다 한번 갔다 와야 하지 않겠냐? 작년에는 물 한번 들어가지 못했잖아.”
“음…….”
“반응이 시원찮다? 왜, 너는 가기 싫어?”
“싫은 건 아닌데. 굳이 물 한번 들어가겠다고 바다까지 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 동네 수영장도 있잖아.”
그는 회귀하면서까지 얻은 시간을 놀러 다닌다고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김민석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그는 그 시간에 연습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었다.
“너는 그렇게까지 연기가 하고 싶냐?”
“연기 안 할 거였으면 연극영화과에 들어오지도 않았지.”
“하긴…….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대화하기 위해 한성태를 향해 몸을 돌렸던 김민석이 자세를 바로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아무리 설득을 한다고 해도 한성태에게 통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작게 불평을 중얼거리는 김민석의 모습에 한성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극영화과의 학생은 한성태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민석 역시 연극영화과였지만, 정작 그가 하는 행동은 연기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김민석은 다른 꿈이 있으니까.’
한성태는 김민석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연기가 아닌 다른 꿈을 품고 있는 김민석은, 너무 늦게 자신의 꿈을 찾아 움직였다.
전생과는 다르게 김민석이 더 빠르게 자신의 꿈을 위해 움직인다면 어떨까.
“민석아.”
“엉?”
“너는 연기 왜 하냐?”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한성태의 말에 김민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기를 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들어온 사람에게 연기를 왜 하냐니.
순간적으로 멈칫거린 김민석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나야 뭐……. 너는 왜 하는데?”
“꿈이니까. 내가 어릴 적부터 가져온 꿈.”
“나도 비슷해.”
“그래? 그런데 나는 왜 네가 연기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한성태는 자신이 느끼는 있는 그대로 기분을 말했다.
그 말에 김민석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연기가 재미있지는 않으니까.”
“그럼 다른 걸 해보는 게 어때?”
“다른 거?”
“어, 연기가 하기 싫은데, 계속 연기를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음……. 너 카메라 들어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감독 쪽으로 일해보는 건 어때?”
김민석의 어릴 적 꿈이자, 뒤늦게 찾게 된 꿈을 입에 담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김민석이 자신의 길을 갔으면 하는 마음에 말했지만.
정작 돌아오는 건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는 한숨이었다.
“그게 가능하겠냐? 내가 카메라를 들기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시는 분이 계신데. 됐어.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해. 곧 있으면 화보도 찍어야 하는 애가 누굴 걱정하냐.”
김민석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한성태도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결국 선택은 김민석의 몫이었고 이번 한 번 이야기했다고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김민석이 감독을 꿈꾸지 못하는 이유에는 가정사도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내 일에나 집중하자.’
다른 사람에게 과하게 참견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한성태는 더 신경 쓰지 않고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 그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침묵 속에서 택시는 사무실을 향해 계속해서 이동했다.
* * *
‘Smile’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토요일과는 다르게 김미소와 직원들은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옷을 정리하고 포장을 하는 등.
너무 바쁜 그들의 모습에 선뜻 말을 걸기도 힘들 정도였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그리운 느낌이라며 미소를 짓습니다.]한성태가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김미소가 일을 처리하고 그가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그녀는 한성태를 보며 매우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왔구나. 오는 데 불편한 건 없었지?”
“네, 민석이랑 편하게 택시 타고 왔어요.”
“잘했네. 아, 그렇지. 사진작가님 인사시켜 줄게 같이 가자.”
한성태는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포토존에는 이미 사진작가가 와 있는 상태였다.
자신의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는 사진작가를 향해 김미소가 다가갔다.
“선빈아.”
“아……. 응.”
그녀의 부름에 사진작가가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
“여기는 우리 화보를 찍어줄 사진작가인 유선빈. 참고로 나랑 같은 대학교에 나온 동창이야. 그리고 여기는 한국대학교 연극영화과의 한성태. 오늘 하루 모델이 되어 줄 거야.”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유선빈이 내미는 손을 붙잡으며 한성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개를 든 한성태는 유선빈의 눈이 자신을 빠르게 훑어보는 걸 볼 수 있었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한성태를 훑어본 유선빈이 이내 고개를 돌려 김미소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네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기는 하네.”
“그렇지? 애가 엄청 잘 생겼어. 지금 이렇게 후줄근하게 입고 있어서 그렇지, 제대로 꾸미면 장난 없어.”
“그래, 그럴 것 같다. 성태 씨. 뭐, 모델 해본 적 있어요? 피팅 같은 거요.”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유선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김미소를 향해 입을 연다.
“야, 아무리 외모가 좋아도 그렇지. 모델 해본 적도 없는 애를 데려다 쓰는 게 맞냐?”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네가 걱정할 그런 애가 아니야. 촬영 시작하면 너도 놀랄걸?”
“음…….”
“일단 한번 찍어 봐. 너, 나 잘 알잖아. 내가 아무나 데려다 쓰지 않는다는 거.”
김미소는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유선빈이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그는 한성태를 힐끔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래. 뭐, 망해도 네가 망하는 거니까. 성태 씨, 옷 갈아입혀야지.”
“너…….”
유선빈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던 김미소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한성태의 옆에 다가왔다.
“성태야, 이쪽으로 와.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네.”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그는 슬쩍 유선빈을 돌아보았다.
초보라며 한성태를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던 유선빈.
한성태는 그 말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초보인 것도 사실이고, 유선빈이 못 미더워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변명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에게 오늘 하루는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굳이 말을 할 이유도 없겠지.
사람을 이해시키는데 가장 쉬운 건 결국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성태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와!”
탈의실에서 나온 한성태의 모습에 사방에서 감탄이 들려왔다.
회색 반팔 티셔츠와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그는, 갈색 바탕의 바지와 하얀색 셔츠, 청회색의 코트를 입고 있었다.
가을의 느낌을 물씬 느끼게 만드는 모습.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여기서 간단하게 얼굴에 터치만 화면 완벽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한성태가 옷을 잘 입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 역할이 컸다.
연기의 신은 그가 알지 못하는 포인트를 집어 주었다.
덕분에 옷을 입어도 훨씬 멋있게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성태야, 가볍게 화장만 하자.”
“화장이요?”
“어, 크게 복잡한 건 없어. 그냥 간단하게 볼터치 같은 거나 할 거니까.”
한성태는 어느새 김미소에게 끌려가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직원들이 붙어 그의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어색함을 느꼈다.
‘저게 나라고?’
붓이 몇 번 얼굴을 건드렸을 뿐인데.
평소에 볼 수 있었던 한성태의 모습이 완벽하게 사라져 있었다.
괜히 화장을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정도면 완벽하지. 이제 사진 찍으러 가자.”
“네.”
“선빈이가 실력 하나는 진짜니까, 긴장 가질 필요 없이 편하게 있으면 돼. 네가 정말 이상한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니면 선빈이가 다 감당할 수 있거든.”
그녀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번처럼만 하면 돼.”
“열심히 할게요.”
한성태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포토존에 섰다.
실전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조금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긴장 풀고요. 차분하게 가 보실게요.”
유선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한성태는 몸에 힘을 풀었다.
잡생각을 비우고 화보에 집중했다.
찰칵.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찰칵.
사무실이 사진을 찍는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유선빈은 한성태에게 여러 자세를 시켰고, 한성태는 그의 요구에 맞춰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찍었을까.
“음……. 좋아요. 조금만 쉬었다 가실게요.”
예상과는 다르게 촬영장의 분위기는 마냥 밝지 않았다.
적당히 잘 찍고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가만히 당신을 바라봅니다.]한성태는 연기의 신의 도움 없이 화보를 찍고 있었다.
처음 테스트를 했을 때의 감각이 남아 있어 전처럼 사진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한성태의 자세를 보는 김미소와 유선빈의 표정이 묘했다.
“미소야. 쟤, 자세가 나쁘지 않기는 한데. 그렇다고 좋지도 않아. 이거 맞냐?”
“음……. 성태가 지금 긴장하고 있는 것 같네. 저번에도 처음 한 시간은 그랬거든. 조금만 더 찍어 보자.”
“……그래, 뭐. 나야 고용된 입장이라 할 수 있는 말이 없기는 한데……. 하, 모르겠다.”
유선빈과 김미소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성태는 그 대화를 들으며 물을 마셨다.
그다지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모델을 전공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게 더 이상했다.
무엇보다 연기의 신이 가만히 있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가볍게 자세 하나를 취해 보자고 말합니다.]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연기의 신이 나서기 시작한 이상, 그는 어중간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당신에게 깍지를 끼고 앞으로 살짝 내밀라고 말합니다.]연기의 신의 조언.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이 고개를 살짝 들기를 원합니다.]한성태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연기의 신이기에, 당연히 의심 없이 바로 움직였던 것.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오른쪽 다리를 살짝 들어보라고 말합니다.]그래, 비록 요구가 조금 이상하기는 해도.
한성태는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다리를 들었다.
연기의 신을 믿는다면 독이 될 리가 없으니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턱을 든 그가 오른쪽 다리를 살짝 들었다.
여기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뿌듯한 미소를 짓습니다.]“아…….”
연기의 신이 보여주는 메시지와 함께, 한성태는 자신의 자세가 무슨 자세인지를 깨달아버렸다.
한성태의 믿음이 아주 조금 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