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으음…….”
코끝을 맴도는 고소한 냄새에 김민석이 몸을 뒤척거렸다.
암막 커튼으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
쉽게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뜬 그는 상체를 일으켜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째서인지 굳게 닫아놓았던 방문이 열려 있었고 그 사이로 고소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성태 왔나 보네.’
침대에서 내려온 김민석은 스마트폰 화면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에 들어왔는데 시간은 어느새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망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너무 오래 자버렸다.
김민석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야, 왔으면 좀 깨우던가.”
방을 나온 그는 집안 어딘가에 있을 한성태를 향해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마, 왜 대답이 없어. 화장실이야?”
이상함을 느낀 김민석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을 열어재꼈다.
그 어디에도 한성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어디 나갔다 오려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향했다.
“……?”
주방 식탁에 처음 보는 봉투가 있었다.
아까부터 나던 고소한 냄새의 근원지.
―자고 있어서 안 깨운다. 치킨 식은 것 같으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고. 나 집에 갈 테니까. 일어나면 연락해.
봉투에는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다.
한성태가 남기고 간 메모를 보며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냥 깨우지.”
식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김민석은 포장을 풀어 다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
우물우물.
한입 베어 문 그는 조용히 입을 오물거렸다.
“눅눅하네.”
언제 사 왔는지 알 수 없는 치킨은 차갑게 식었고 눅눅해져 있었다.
‘맛은 있네.’
눅눅해졌지만, 치킨은 역시 맛있었다.
치킨으로 적당히 배를 채운 김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성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일어났냐?
한성태의 목소리에 김민석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야, 깨우지, 왜 그냥 갔어?”
―곤히 자고 있는 놈을 어떻게 깨우냐.
“다음부터는 그냥 깨워.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아. 치킨 잘 먹었다. 눅눅하긴 한데 맛있더라.”
―그게 치킨 사준 사람한테 할 말이냐?
“그래서 맛있게 먹었다고 했잖아.”
한성태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반응에 김민석은 실실 웃음을 흘렸다.
―됐어. 다음부터 내가 사주나 봐라.
“왜, 삐졌나?”
―안 삐졌다. 이런 걸 가지고 삐지는 게 더 이상하지. 너 이제 뭐 할 거야? 방금 일어나서 잠도 안 올 텐데.
“공부해야지. 나 지금 공부할 거 밀려 있어. 그거 다하려면 밤새도 부족할걸?”
연재훈에게 받은 과제들이 있었다.
대학교의 과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양의 과제들.
그것들을 기한 내에 전부 해내려면 잠을 줄이는 것도 부족하다.
―감독님이 내주신 거 말하는 거지?
“어.”
―잘하고 있네. 연재훈 감독님이 워낙 대단하신 분이라 배울 수 있는 많을 거야. 열심히 해.
“음……. 그래야지.”
김민석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연재훈이 내주는 과제들은 힘들기는 해도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 과제를 다해낸다면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말하면 걱정하지 않나?’
―밤새운다고 에너지 음료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정 힘들면, 껌 씹어 봐. 그게 은근히 도움 되더라.
“응…….”
―나도 연습할 때 껌 같은 거 씹으면서 하거든. 파스나 치약 같은 걸 코 밑에 발라도 잠 깨고. 방법은 많으니까. 정 안 되면 나한테 말해. 좋은 방법 알려줄 테니까.
김민석은 잠시 잊고 있었다.
한성태는 연습에 미쳐 있는 인간이라는 걸.
그에게는 잠을 안 자는 것 정도는 밥 먹듯이 하는 일이었다.
‘하긴, 이러니까 성공할 수 있는 거겠지.’
김민석은 한성태가 작품을 찍는 걸 보았고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같은 시작 선에서 시작했는데 한성태는 이미 저만치 나아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등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한성태와의 전화를 끊으며 김민석은 커피를 한 잔 타 작업대 앞에 앉았다.
김민석은 친구의 등만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뒤가 아닌 옆에서, 함께 나란히 나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우웅.
―연재훈: 넷플렉스 미팅 날짜 잡혔습니다.
한성태와 함께 나아갈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 * *
[‘천의 얼굴’은 오늘이 매우 중요한 촬영이라고 말합니다.]분장하는 한성태의 시야에 신들의 메시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동의하는 한성태의 분장은 평소와는 느낌이 매우 달랐다.
상처로 가득한 모습.
옷이 찢어지고 가짜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지금도 분장팀이 한성태에게 달라붙어 얼굴에 상처를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지연우가 유예나의 수호신이 된 이유를 보여주는 신을 찍어야 하니까.’
지연우를 맡은 한성태에게는 매우 중요한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유예나의 곁에 붙어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
그렇기에 한성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배역에 몰입하고 있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는 요즘 분장 기술은 상당히 좋아졌다며 감탄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가 액션신이 많은 날이니 미리 몸을 풀어두자고 당신을 재촉합니다.]분장이 끝나고 한성태는 촬영 전 미리 몸을 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와이어 점검 다시 한 번 해주세요!”
“제터레이터 좀 올려주세요!”
“미믹 끝났나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촬영을 위해 촬영 장비들을 점검하는 모습.
“성태야, 이거 다음 촬영 의상인데. 한번 미리 확인해 볼래?”
“네, 형.”
스트레칭을 하던 한성태는 바로 옆까지 다가온 정두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걸음을 옮겼다.
학창 시절, 유예나와 함께 하기 위해 지연우가 입었던 옷.
‘내가 교복을 다시 입게 될 줄 몰랐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동안만이 입을 수 있다는 교복인데.
젊어지니 참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그렇게 아련하게 보냐?”
“졸업하고 교복을 다시 입을 줄 몰라서요.”
“졸업한 지 이제 2년밖에 안 됐잖아.”
“그냥 시간 빨리 지나간 느낌이라서요. 이거 105 사이즈 맞죠?”
“어, 아까 확인했어.”
순간적으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한성태는 웃음을 흘리며 화제를 돌렸다.
정두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교복 사이즈를 확인하는 게 보였다.
교복을 한쪽에 돌려놓고는 정두식이 한성태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야, 근데 분장 진짜 리얼하네. 이거 다 가짜 피지?”
“네.”
“요즘 분장 보면 장난 아니네. 이게 어디 봐서 가짜야.”
감탄하는 정두식과 함께 한성태는 촬영장 한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언제 촬영을 시작할지 몰랐기에 대본을 꺼내 들어 오늘 있을 신들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대본을 보았을까.
“성태야, 촬영 시작한다.”
정두식의 말에 대본에서 시선을 뗀 한성태는 어느샌가 세트장 위로 올라간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유예나와 단역 배우들.
학창 시절의 모습을 담은 채 촬영하고 있는 그 모습에 한성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태 씨, 지금 올라가시면 돼요.”
“네.”
그렇게 한성태의 차례가 되었다.
‘백년초’ 속 지연우는 지리산의 산신이었다.
산신 중에서도 가장 강한 최강의 산신.
요괴들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그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약한 시절이 있었다.
삽살개이지 미약한 신력을 가지고 있었던 시절.
산신이 되기 위해 수양을 하던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영물의 간을 먹으면 나도 강해질 수 있어!
―다리 한 짝만 내놔라!
강해지기를 바라는 요괴들의 습격.
아무리 강한 그라고 해도 다수를 상대로 이기기는 힘들었다.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저거 봐봐. 개가 다쳤어!
―지지야, 지지. 다가가지 마. 그러다 병 옮는다.
인간들을 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다친 그를 치료해주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더럽게 뭐야.
―재수 없게, 왜 저런 게 돌아다니는 거야.
지연우는 인간들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생명일 진데, 그들은 어찌 저런 경멸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단 말인가.
실망이 쌓여가면 갈수록 그의 발걸음은 인간들이 없는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왜 이렇게 다쳤어?
체력이 한계까지 다다랐을 때 어둠 속 한줄기 빛과도 같이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럽다며 침을 뱉는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품에 안는 한 소녀.
―의사 선생님! 나을 수 있겠죠?
병원까지 데려다주었고 바로 옆에 붙어 간호를 해주었다.
그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지연우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그녀와 있는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하고 싶고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수호신이 되었다.
산신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포기하고 그녀에게 붙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어.’
비록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를 지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으니까.
“연우 씨?”
과거의 기억에 잠겨 있던 지연우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유예나가 있었다.
은인이자, 그가 사랑하는 여인.
그녀를 바라보는 한성태의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행복해.’
지연우는 그녀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컷!”
황결의 목소리와 함께 한성태의 집중도 깨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성태 씨도 수고 많으셨어요.”
천예지와 인사를 주고받은 한성태는 세트장에서 내려와 정두식에게 다가갔다.
정두식이 웃으며 수고했다가 말을 걸어왔다.
한성태는 그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힘드네.’
액션 신이 워낙 많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가 수고 많았다며 당신의 어깨를 토닥입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좋은 연기였다며 당신에게 엄지를 치켜듭니다.]“성태야, 고생 많았다.”
신들의 메시지를 보고 있던 그에게 김무철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 촬영도 일찍 끝났는데. 저녁에 약속 없으면 같이 움직이자.”
평소 같았으면 그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선약이 있어서요. 다음에 제가 사겠습니다!”
“아니야. 약속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무철의 모습을 보며 한성태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한성태에는 약속이 하나 있었다.
후배의 부탁.
김리나의 연습을 도와주어야 한다.
* * *
쿵.
위에서 들려온 커다란 소리에 이예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딸이 있는 방.
그곳에서 김리나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리나야.”
“네?”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던 김리나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밤인데, 어디 가려고?”
“아…….”
어머니의 물음에 그녀는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는 입을 열었다.
“약속 있어서요.”
“누굴 만나길래, 우리 리나가 이렇게까지 예쁘게 꾸몄을까. 남자니?”
남자냐는 그 물음에 김리나가 멈칫거렸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