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성태야, 너, 일 하나 해볼 생각 없어?
집에서 대본을 보고 있던 한성태는 갑작스럽게 걸려온 정두식의 전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화를 건 것까지는 좋은데, 갑자기 일을 하나 해볼 생각이 없냐니.
‘광고 같은데.’
지금 한성태의 상황에 일을 추가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었다.
드라마는 현재 찍고 있는 게 있었고 넷플렉스와도 계약을 한 상태였다.
한 가지에만 집중해도 부족한 그에게 새로운 드라마를 제안할 리는 거의 없고.
“형, 저 생각해 주셔셔 하신 말에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한데. 저 광고를 더 찍을 생각 없어요.”
―어?
“애견용품 광고를 찍은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하다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드라마에 집중하고 싶네요.”
한성태는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보였다.
더 광고를 찍을 생각이 없고 연기에만 집중하겠다고.
원래 그는 애견용품 광고를 찍을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광고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단가가 높지 않았다면, 나도 하지 않았을 텐데.’
애견용품 광고는 어찌어찌 수락했을지 몰라도 다른 광고는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했으면 정두식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니. 성태야, 지금 네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너한테 광고를 더 찍자고 하는 게 아니야.
“……네?”
―네가 그때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내가 광고를 더 찍자고 하면 나쁜 놈이지. 나는 그런 놈이 아니야.
‘광고가 아니었다고?’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광고가 아니면, 무슨 일을 더 하자고 하는 걸까.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럼 무슨 일로?”
한성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소리에 정두식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예능 찍지 않을래?
광고가 아닌 예능이었다.
둘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지만, 한성태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형, 저는 지금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당장 ‘백년초’의 촬영 마무리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리가 없었다.
광고를 찍겠다고 한 부분부터 한성태는 많은 양보를 한 상태였다.
―그래, 네 말 잘 알지. 네가 연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아는 입장에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지는 않기는 한데.
정두식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반응에 한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어떤 예능이길래 이런 반응을 보여준단 말인가.
―성태야. 너, 유퀴즈라고 알아?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한창 뜨고 있는 예능인데.
“알죠. 저도 자주 보는 건데. 그거 미튜브에도 채널 있잖아요.”
한성태가 아무리 연기에 미쳐 있다고 해도 세상이 돌아가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유퀴즈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제법 유명했다.
‘게스트에게 집중된 예능이니까.’
유퀴즈는 연예인들을 게스트로 데려와 퀴즈를 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크게 이상한 부분이 없을 수 있었다.
연예인들을 데려와 퀴즈 프로그램을 하는 건 많지 않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유퀴즈는 개념부터가 달랐다.
퀴즈부터가 게스트에 대한 것이었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 자체가 게스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배우나 가수들이 노래 홍보나 작품 홍보를 하기 위해서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 섭외 순위 중 1, 2위를 다투는 곳이었다.
―거기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어. 자신들이 제대로 홍보해줄 테니, 얼굴 비추는 게 어떻냐고 하더라.
“유퀴즈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는 거죠?”
―어, 다른 곳이면 나도 알아서 쳐냈을 텐데.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가 없거든. 안 나가는 게 손해인 예능이니까.
안다.
유퀴즈가 어떤 예능 프로그램인지 알기에 정두식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성태의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되는 일이 아니었다.
작품 홍보도 할 수 있고 한성태, 개인적으로도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확실히 이건, 무조건 해야지.’
더군다나 유퀴즈의 MC를 맡은 사람은 국민 MC라고 불리는 유재혁이었다.
―어떻게 할래?
거절하기에, 유퀴즈라는 이름은 너무 컸다.
* * *
‘백년초’의 마지막 촬영날이 다가왔다.
‘이 시간이 오기는 하는구나.’
처음 작품을 하게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한성태는 끝이 오기는 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16부작 드라마에서 한성태의 배역은 마지막 화까지 나왔으니까.
석 달이 넘게 걸릴 촬영은 길게만 느껴졌었다.
“마지막 촬영이네.”
“그러게요.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에요.”
“조금 멍해 보인다?”
“아무래도 마지막 촬영이잖아요. 기분이 조금 묘하기는 하네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멍하니 촬영장을 돌아보았다.
촬영장은 평소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배우들이 촬영에 앞서 미리 연습하고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분위기가 묘하네.’
촬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분위기가 조금 더 뜨거웠고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자, 마지막까지 힘냅시다! 성태 씨, 분장 끝났나요?”
“네.”
“그럼 바로 촬영 들어가죠.”
황결의 말에 한성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트장에 올라섰다.
이번 세트장은 결혼식장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백연과 유예나의 결혼식.
그곳에서 한성태는 유예나를 보내주는 지연우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레디, 액션!”
황결의 신호와 함께 한성태가 심호흡했고.
단다다단!
결혼식 소리에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한성태가 아닌 지연우로서의 마지막 연기.
그만큼 한성태는 자신의 모든 집중을 쏟아낼 생각이었다.
“백연은 유예나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어느 때, 어디서, 어떤 일 곧,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결혼 서약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
지연우는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예나의 옆이 아닌 하객 자리에서, 그들의 지인으로서 자리를 하나 채우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유예나와 이어지는 게 자신이 아니지만, 지연우의 얼굴에는 후회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 시간 동안 유예나의 마음을 볼 수 있었고 그녀와 함께할 존재가 어떤 이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구미호가 아니라 사람인가.”
신의 변덕으로 인해 구미호에서 인간이 된 백연.
지연우는 인간이 된 백연이 자신보다 더 유예나에게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산신인 자신은 영원히 살겠지만, 백연은 인간이기에 수명이 정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면서 함께 행복하게 늙어가겠지.
‘나는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어.’
지연우는 분명 유예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사랑하기에 그녀의 사랑을 축복해주고 그녀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녀가 행복한 것이 곧 그의 행복이었다.
“약속도 받아냈고.”
무엇보다 백연에게서 받아낸 약속은 조금이나마 그에게 위안을 주었다.
“진실한 아내로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굳게 지키기로 서약합니다.”
“진실한 남편으로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굳게 지키기로 서약합니다.”
와아아아!
짝짝짝.
두 사람의 서언에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는 지연우도 있었다.
“자, 사진 찍겠습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도 지연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백연과 사이가 괜찮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에 자신이 먹물을 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야. 뭐 해! 안 올라오고.”
“맞아요. 연우 씨 어서 올라와요!”
두 사람이 그를 불러냈다.
당장 올라와서 옆에 서라고.
그들의 말에 지연우는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 나한테 올라오라고 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
비슷한 이름의 사람이 있겠지.
“지연우! 너 말이야, 너!”
“……나?”
“그래! 뭘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어! 지금 옆에 자리 비워놓은 거 안 보여? 빨리 올라와!”
백연의 말에 지연우가 황급히 계단을 올라갔다.
“이쪽으로 와!”
백연이 지연우의 위치를 정해주었다.
유예나와 백연이 팔짱을 끼고 있다.
그 뒤로 지연우가 있었다.
그들의 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웃어. 이 좋은 날 괜히 죽상으로 있다가 망치지 말고.”
“그런 말 안 해도 내가 알아서 잘할 수 있어.”
백연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한 지연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미소보다 가장 부드러웠다.
―컷!
확성기를 통해 황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
그 목소리에 김무철의 뒤에 서 있던 한성태가 짙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의 얼굴’이 촬영 하느라 고생 많았다며 미소를 짓습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완벽한 마무리였다며 당신의 어깨를 두드립니다.]신들의 메시지를 보며 웃음을 흘린 한성태는 김무철과 함께 세트장을 내려왔다.
“고생 많으셨어요!”
“성태 씨, 오늘도 연기 진짜 좋았어요! 다음에도 또 같이 촬영하면 좋겠네요.”
“오늘 마지막인데 사인 해주실 수 있죠? 저 성태 씨 항상 응원할게요.”
사람들이 다가와 한성태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성태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백년초’를 연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쉬웠지만, 그런데도 만족스러운 마무리였다.
“성태 씨, 다음에 연락해요.”
“네, 예은 씨. 촬영하는 동안 수고 많았어요. 신경 써줘서 고맙고요.”
“저야말로 고맙죠. 성태 씨 덕분에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우리 앞으로도 종종 만나요.”
“네.”
박예은과 인사를 나눴다.
사람들과 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리는 그에게 김무철이 다가왔다.
“수고 많았고. 회식 올 거지?”
“네, 가야죠.”
“그래. 아, 너 모임 날짜 받았지?”
“네, 석정이 형이 문자로 알려주셨어요.”
“오케이, 그럼 그때 또 얼굴 보겠네.”
김무철이 웃으며 한성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한성태의 두 번째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 * *
“선배님, 저녁 드시고 가실 거죠?”
김리나의 말에 한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연습도 어느새 끝을 보이는 상황.
9월 말에 그녀의 뮤지컬이 열린다.
촬영도 끝난 지금, 한성태는 그녀의 연습을 더 열심히 도와주고 있었다.
―김민석: 성태야, 대본 나왔다. 한번 봐줘.
―ㅇㅋㅇㅋ. 지금 볼게.
잠시 길을 이동하는 길.
한성태는 김민석이 메일로 보낸 대본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시리즈로 나뉜 대본.
1화 분량의 대본이 와 있었다.
대본을 살펴보는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야. 재미있다. 이거 엄청 재미있네.
―김민석: 그래? 다행이다.
김민석의 답장을 보며 한성태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대본이라면 전보다 더 재미있는 ‘하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기존에 있던 무대의 막이 내리고, 새로운 막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