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신인의 검 (2)
검이 울었다.
당장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검이 그 몸을 떨어 대면서 울었다.
치솟는 먼지 사이에서 만검고의 모든 검이 일어나서 서서히 맴돌았다. 흐린 빛을 스스로 발하기 시작했다.
한 자루, 한 자루의 빛은 그리 밝지 않았지만, 수십을 넘어서 일만에 가까운 숫자였다.
모인 빛 무리가 환하여서, 검룡이 드러내는 기세를 짓눌렀다.
용의 머리를 한 요괴는 그대로 굳었다. 파랗게 타오르던 큰 눈동자가 쪼그라들었다.
만검의 위용에 에워싸인 꼴이었다. 검룡은 불현듯 눈을 내려서 홀로 나선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고진무였다.
그러나 검룡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였고,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수백 년,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육신을 잃고 여기에 갇혀서 세월을 잊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선명한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천 년의 공을 쌓아서 세상 밖을 뛰쳐나가려는 자신을 막아 세운 하늘의 족쇄, 그것이 다시 나타났다.
-끄, 끄아아아앙!
검룡은 대가리를 치켜들고서 소리 높여서 울었다.
그러나 용의 머리를 지녔으되, 결국 용이 되지 못한 요괴였다.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검린을 바짝 세워서 버티어 내는 것뿐이었다.
일대를 휩쓸었던 검기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고진무는 한없이 차분한 눈으로 검룡의 몸부림을 지켜보고서, 그대로 검을 뻗었다.
점을 찍듯이 한없이 자연스럽게 뻗은 일검이다. 이에 주변에서 맴돌던 일만의 검이 그대로 검룡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쩌저정!
쩌저저정!
검룡은 검린을 잔뜩 세워서 세차게 몸을 흔들었다. 무수한 검린이 연이어 날아드는 만검을 모조리 쳐 내기 시작했다.
요란한 쟁명(錚鳴)이 단숨에 만검고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가까이에서 참아 넘길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허윽!”
불망은 급히 귓가를 움켜쥐고서 화급히 물러섰다.
만검이 돌연 솟구쳐서 고진무의 일검에 반응하는 것도 한없이 놀라운 일이었고, 그것이 검룡을 몰아붙이는 모습 또한 너무도 옛이야기를 목도하는 듯했다.
“이게 만검귀일이란 말인가? 아니, 고 소협이 대체 언제?”
백옥상과 강소는 만검이 몰아치는 광경에 그만 압도되어서는 주춤주춤 물러섰다.
둘은 한참이나 멍한 눈으로 솟아올라서 스스로 몸을 떨어 우는 일만여 자루의 보검, 명검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기에 있는 검룡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대체,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죠?”
“하…… 만검귀일이라잖아…….”
“으어, 이건 사람의 경지가…… 아닌데요.”
“그, 그러게.”
더듬거리면서 겨우 중얼거렸다. 백옥상은 그러다가 홀로 나선 고진무의 뒷모습을 한층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와아…….”
고진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번쩍거리는 만검의 검광 속에서 자신을 지켰다. 만검귀일은 물론이지만 고진무가 그 바탕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마땅히 하나였다.
‘정주일여…… 정주일여…….’
종남의 경구를 거듭 읊조리면서, 고진무는 자신을 단단히 지켰다.
만검의 흔적에서 어렴풋이 갈피를 잡았고, 사운경이 외친 구결 속에서 비로소 틀을 잡았다. 그리고 검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지금 만검귀일이 가능했다.
상응상통, 검중지성.
정한 마음으로 일만의 검과 상통하였기에 가능한 것이 지금의 한 수였다.
만검귀일이라. 그러나 펼치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를 유지하고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고진무는 내력은 물론 심의를 모두 집중했다.
심의는 검에게도 있는 것이니.
귀를 찢을 듯한 쟁명이 만검고를 무너뜨리기라도 할 듯이 끝없이 터졌지만, 고진무의 내부는 그렇게 고요했다.
검룡은 몸을 뒤흔들면서, 쏟아지는 만검귀일 앞에서 몸부림쳤다.
날아드는 검이 깨어지기도 하고 검린이 박살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검룡은 기운을 잃지 않았다.
-크르릉! 으르릉!
연신 효후하면서 요력을 한껏 발휘했다. 검룡의 귀화 어린 두 눈이 다시금 타올랐다.
충돌하고서 깨달았다. 저것은 과거의 그자가 아니었다. 위력이 딴판이다.
검룡은 끝까지 버티어 낼 작정이었다.
귀화 일렁거리는 눈초리가 한층 가늘어졌다.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검룡은 고진무를 노려보았다. 살기와 원한이 이글거렸다.
쩡! 쩌엉!
검린이든 날아든 만검이든 거푸 박살 나자, 파편이 우박 쏟아지듯이 후드득 떨어졌다.
사운경은 마른침을 어렵게 삼켰다.
신인에게서 비롯한 만검귀종이라는 일초의 검식 앞에서 검룡은 굴복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을 겨우 흉내 낸 것이 지금 만검산장에서 전하는 태청검법이었다.
‘그나마도 시조 이후로는 십성을 완성한 자가 따로 없었지.’
사운경은 주저앉아서 만검귀종이 번쩍이는 불빛을 보면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자신도 십성을 목전에 두었을 뿐이었다.
암수에 당하여서 주화입마에 빠지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한들 과연 태청검법을 완성할 수 있을까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한 만검귀일이, 저기 있는 젊은 검객의 손에서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었다.
역대 장주 간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저 웅장한 검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사운경도 그렇고 사진초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만검과 검룡이 뒤엉키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운경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이런!”
생각하니, 이대로 만검귀일 하나만으로는 검룡을 제거할 수 없었다.
만검고가 세워진 것이 무엇 때문이었던가. 과거에 검룡의 육신을 멸하였지만, 원령은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령을 제압한 만검진, 그것을 뒤튼 건…….”
사운경은 말끝을 흐렸다. 그는 땅을 짚고서 후다닥 앞으로 기어갔다.
“으익, 운경!”
사진초가 놀라서 급히 그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사운경은 엉망인 만검고를 급하게 살폈다.
요란한 쟁명이 연이어 울리고, 검광, 검기가 연이어 충돌하여서 이목이 어지럽다. 사운경은 곧 눈을 치떴다.
“저것! 초숙, 저것이 있어야 합니다!”
“뭐, 무슨 소리냐?”
“저 요검이 필요합니다. 만검의 검진을 비틀었다고 하지만, 저 귀요검이 있어야, 고 소협이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있어요.”
“허어, 점점 모를 소리를…….”
사진초는 사운경을 이상하게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렇게 재촉할 리도 없었다.
그는 검룡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다행인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고, 잔뜩 곧추세운 검린이 살벌하게 번뜩이기는 해도 예리한 검기를 더는 쏟아 내지 않고 있었다.
사진초는 곧 사운경의 손끝을 쫓아서 유심히 눈매를 모았다.
무슨 요검을 말하는 건지.
“으음…… 윽!”
사진초는 곧 답답한 한숨을 삼켰다.
유백색의 괴이한 검 한 자루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저런 꼴에도 흐릿한 빛을 발하고 있어서 눈에 쉽게 띄었다.
여기서 보기에도 꺼림칙한 느낌이 강했다.
“저게 사령전, 그놈이 들고 설쳤다는 음풍옥의 요검이냐?”
“예. 내내 만검고의 검기를 비틀어 놓은 놈일 겁니다.”
사운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사진초는 표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산 넘어 산이구나.”
문제는 저것이 있는 자리였다.
검룡이 대가리를 불쑥 내밀고 있는 곳을 거치지 않고는 닿을 수가 없었다.
그곳은 주변을 에워싼 일만의 검이 연신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으으으…….”
제아무리 굉뢰검이라고 하지만 나설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사진초가 맹한 소리를 흘렸다. 처박혀 있던 요검이 스르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라?”
“허, 고 소협이 본능적으로 깨달은 건가?’
사운경이 한숨을 덥석 삼키면서 중얼거렸다.
고진무는 불현듯 뒤로 돌렸던 왼손을 활짝 펼쳤다. 그 손으로 유독 떨어져 있던 한 자루 검이 딸려 들어왔다. 음풍옥의 법검, 북방도천현세음백지검이다.
누대 동안 정혈을 빨아들이고 요력을 쌓아 온 일대의 귀요검이라고 하겠지만, 지금은 그 요력을 전부 검룡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 북방도천현세음백지검은 그저 인골로 만든 요사한 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 검이 지금 필요했다.
힘을 잃은 귀요검은 고진무의 뜻에 그대로 반응했다. 탁한 유백색의 검은 쌓인 먼지를 흩어 내면서 휘익, 맴돌았다.
“귀요검이 파고들 곳은 바로 저기…….”
고진무는 뻗은 손을 비틀어서 다시 내질렀다. 검결지를 맺은 왼손이 검룡의 한구석을 향했다.
만검귀일에 호응한 귀요검은 급격하게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울었다.
히이이이! 이히히이이!
다른 검이 몸을 떨어서 검명을 내었다면, 귀요검은 귀곡성을 토해 냈다.
귀요검이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차분하게 날았다.
요란하게 휘감고 쏟아지는 만검귀일과 다른 흐름이었다.
귀요검이 노리는 일점은 검린 사이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강저의 금동 고리였다.
완전치 못한 한 점, 강저가 노리고 손을 쓴 건 아니었지만, 저것은 분명 검룡이 이룬 육신에 남은 균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곳으로 귀요검은 아주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
-크륵! 크아아아앙!
검린을 세운 채, 몰아치는 만검의 물결을 받아 내던 검룡이 순간 온몸을 뒤틀었다. 이것은 감당할 수 있는 충격이 아니었다.
귀요검은 흐린 빛을 서서히 일으키면서 부르르 몸을 흔들었다. 검룡에게 빼앗긴 요력을 다시금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흠!”
고진무는 뻗은 검결지를 더욱 비틀어 뻗었다.
이에 귀요검도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검자루가 아예 파묻힐 정도였다.
왈칵!
붉은 피가 그 자리에서 치솟았다.
검린이 거푸 깨어지기만 했을 뿐 검룡은 피 한 방울이 흐르지 않았는데, 그 불파(不破)의 몸이 깨어지고 만 것이다.
검룡이 몸을 거칠게 뒤틀자, 이제껏 만검을 쳐 내던 검린이 뒤틀렸다. 그 사이로 수많은 검이 연이어 틀어박혔다.
퍼퍼퍽! 퍼퍼퍽!
둔탁한 소리가 거푸 울렸다.
검룡은 하늘 향해 아가리를 한껏 벌렸다. 한껏 울어 젖혔지만, 더는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이제 끝나는 것인가.
다들 아연한 와중에 덜컥 숨을 삼켰다. 연이어 파고드는 만검, 검룡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이, 이걸로 끝인가?”
“이게 만검산장의 진짜 비기…….”
그러나 고진무는 더욱 눈빛이 가라앉았다. 순간, 귀요검을 떠올려서 요력을 빨아들인다는 생각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아니다. 이대로면 수백 년 전 일을 다시 되풀이할 뿐이다.’
악룡의 육신은 멸할지언정, 남은 원령을 제어하지는 못할 터였다.
원령만 남은 악룡을 그렇게 오래도록 짓눌렀건만, 지금 보는 바와 같이 다시 육신을 갖추지 않았던가.
“흐읍!”
고진무는 덜컥 숨을 삼켰다.
검룡이라는 요괴, 그 원령을 봉인할 방도도 뾰족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 다시 만검을 갖출 수가 있을까.
지금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어찌.
고진무는 서서히 창백해지는 와중에도 눈을 번뜩였다. 다음의 방도가 간절했다.
-심의로 검을 부렸으면, 다음은 심의로 베어야 한다.
막막한 그때, 한 줄기 가르침이 불현듯 뇌리를 때렸다.
검오의 가르침에 고진무는 순간 눈앞이 확 밝아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