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신인의 검 (4)
검룡이 깨어나고, 검룡이 죽고, 그 원령까지 남김없이 소멸했다.
꼬박 하루에 이르도록 크나큰 소란에 휩싸였다.
이는 만검산장만이 아니라 검하현, 더욱 나아가서 복우산 일대를 아우르고도 남을 정도의 일이었다.
고개 든 악룡, 요괴를 제압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탕하였으니.
이는 천운이 크게 따른 바였다.
다만, 남은 것은 깨지고 부서진 검의 파편뿐이었다.
전부가 한때에 이름 날린 바 있는 천하의 온갖 명검, 보검이었건만, 이제는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만검고, 이제는 폐허가 되어 버린 그곳을, 불망은 열린 천장을 통해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옆에 사진초와 양하가 절뚝거리면서 다가섰다.
“허, 일이 이리 되어 버렸군. 이렇게까지 큰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불망은 내내 아래를 보면서 말했다.
잘하면 검룡이 깨어나는 것을 막는 일이고, 아니면 최소한 일대의 백성이 피신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 최선을 뛰어넘지 않았는가.
“확실히 그렇소. 후우, 정말 무서운 일이었어. 동시에 참…… 스스로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았다오.”
사진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운이 쪽 빠진 목소리에는 무엇보다 자책이 짙었다.
검룡을 상대로 변변히 달려들지도 못한 것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양하도 입매를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중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셈이었다.
검룡이라니. 악룡이고, 요괴라니. 솟구치는 검기에 자신은 꼴사납게 당하기까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당한 목덜미가 지끈거리는 통에 어깨를 들썩거렸다.
“흑! 아이고.”
불망은 세상 끝난 사람처럼 낯빛이 어두운 둘을 흘깃 돌아보았다.
“이런 한심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지금이 그렇게 맥 빠져서 자책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본 장 일에 정작 한 일이 없지 않소.”
“예, 초숙 말씀대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선고와 고 소협에게 도움만 받지 않았습니까. 강동오서의 세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우빈이라는 거지 아이조차 그리 활약을 하였다는데.”
“쯧쯧, 자네들이 얼마나 큰일을 하였는데 그런 말을 하는가. 이 숨은 통로를 열지 않았다면 어찌 뛰어들 수 있었겠으며, 위험한 순간에 사 장주가 요결을 외치지 않았다면 과연 ‘만검귀일’이 가능했겠나.”
“으음…….”
“그리고 무엇보다.”
불망은 고개를 돌렸다. 날이 한참 밝았고, 다시 마주한 복우산의 파란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이 바빴다.
부랴부랴 돌아온 검하현 사람들이고, 만검산장의 가솔들이었다.
다들 무사하여서, 그저 뒷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저기 사람들이 모두 무사하네. 그것만도 큰일을 한 것이지.”
불망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둘의 표정이 약간이지만 누그러졌다. 그들 속내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자책하는 마음은 불망도 적지 않았으니까.
“후우.”
부지불식간에 한숨이 가늘게 솟았다. 불망은 몸을 돌려서 높은 곳을 올려다보았다.
산장의 내당을 향해서였다. 일단 시급한 환자들을 그곳에서 살피고 있는데, 그들 중에 고진무가 있었다.
“고 소협이 걱정이군요.”
“음, 아무래도 그렇지. 반발력이 절대 가볍지 않을 터인데.”
“하아, 확실히 그렇습니다.”
사진초와 양하도 고진무가 누워 있을 내당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만검고의 폐허 앞에서 사람들은 분주했다. 이때만큼은 외당 검객이니, 만검당 검객이니 구분할 게 없었다.
사람 손 필요한 곳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런 중에 그림자 하나가 고요하게 스며들었지만,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것보다 다른 소란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어, 어억! 다, 당주! 여기, 여기에!”
뒤에서 울리는 다급한 소리에 양하도 그렇지만 불망과 사진초도 고개를 돌렸다.
“반도가 죽어 있습니다!”
“뭐야!”
반도라고 하면, 다른 누구일 리가 없었다.
만검당주, 그리고 만검산장의 장주가 될 뻔했던 사내, 사우천이다.
한쪽에 결박하여서 처박아둔 채 잊고 있던 그가 시신으로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고진무는 병상에 누워서 어렵게 호흡을 이어 갔다.
일어난 크나큰 소란을 생각하면, 막상 벌어진 인명 피해는 대단히 적었다.
외당과 만검당이 충돌하는 사이에 벌어진 부상자, 그리고 악룡이 마구 몸부림치면서 일어난 검기에 당한 몇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산장의 다른 이들을 피신시킨 덕분이었다.
내당의 드넓은 약당은 병상이 즐비했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딱 그 정도였다.
햇빛이 강하게 비추어 들어오고 있었다.
납빛으로 물들어서 식은땀이 가득한 고진무의 얼굴을 하얀 손이 젖은 수건을 쥐고서 살짝살짝 찍듯이 땀을 닦아냈다.
백옥상이 옆을 지키면서 고진무를 간호하고 있었다.
“이런…….”
그 또한 온전치 않은 상태로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파리했다. 그래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백옥상은 정신 차리지 못하는 고진무를 걱정했다.
“누이.”
문득 강소가 절뚝거리면서 다가왔다. 백옥상은 흘깃 고개를 들었다.
“그래, 강저와 그 꼬마는 어떻더냐?”
“아직 정신은 못 차리고 있지만 위험은 다 넘겼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상태가 더 나은 것 같던데요.”
“하하. 그래?”
백옥상은 강소가 입술 삐죽거리는 모습에 살짝 웃었다. 그도 기운이 없어서 파리한 안색이 위태하게 보였다.
“한데 누이야말로 쉬어야 하는 거 아니요?”
“이 정도면 충분히 쉬는 거 아니겠냐.”
“그래도…….”
강소는 말끝을 흐리면서 고진무를 돌아보았다. 납빛으로 물든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은 얼굴은 얼핏 보기에도 한참 위태하게만 보였다.
호흡마저 가늘었다.
지금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불과 하루 전에 있었던 일이 정말 거짓말 같았다.
검룡이라는 요괴 앞에서 홀로 고고하게 버티고 서서, 정말 만검을 부렸던 위용이 아직도 또렷하건만.
“참 모르겠네요. 지금 상황도 그렇지만, 고 소협도 정말 어떻게 된 사람인지…….”
“훗, 그러게.”
백옥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진무에 대해서 두 사람이 아는 것은 일단 종남파 제자라는 것 정도였다.
강동오서의 대형인 장각서가 인정할 정도의 검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목격한 고진무의 경지는 그런 정도가 전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납빛으로 물들어서 힘겨운 호흡을 이어 가고 있는 고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이, 지금 고 소협 정도면, 정말 비인지경에 이른 게 아닐까요?”
“음, 그러게…… 어디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는 하지만. 비인지경…….”
강소가 넌지시 건넨 말에, 백옥상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태를 벗어나, 전혀 다른 단계에 이른 경지를 뜻하는 비인지경(非人至境)이다.
그런 경지라고 하면, 실로 천하고수의 반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무림 중에서 손꼽는 으뜸이라면 물론 하늘 밖에 있는 칠신이다.
그 아래로 무수한 고수가 즐비하지만, 당대에는 특히 언제고 칠신의 반열에 오를 법한 젊은 고수 여섯을 두고서 신진 육대고수라고 불렀다.
그중 가장 첫째, 둘째로 손꼽는 이가 바로 중여화룡이라 불리는 화룡진인 장사원이다. 그야말로 지금 말하는 비인지경에 이르렀다는 풍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궁금하네요. 과연 어떨까요?”
“뭐가?”
“뭐긴 뭐예요. 당대에 비인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는 중여화룡 장 진인이 아닙니까. 과연 장 진인과 고 소협이 손을 나누면 어떻게 될지…….”
“당연히 제가 부족하지요. 장 진인의 태극검의는 그 자체로 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
장난스럽게 묻는 말에, 기운 없지만 차분한 목소리가 답했다.
흠칫 고개를 돌리자, 고진무가 눈을 뜨고서 둘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기운이 쏙 빠져 있었지만, 그래도 초점은 잃지 않았다.
“고, 고 소협!”
“의원! 여기! 여기!”
두 사람은 당장 놀라서는 소리를 높였다. 허둥거리는 두 사람의 소란에 고진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진정하시지요.”
“괜찮기는요. 다 죽은 얼굴인데요!”
“아니, 그런 정도까지는…….”
거의 다그치다시피 하는 말이다. 고진무는 살짝 상처 받아서, 다급한 두 사람을 물끄러미 보았다.
“크흠, 크흠…….”
고진무는 어렵게 일어나 앉았다. 의원이 급히 다가와서 그를 살폈다.
그의 상태는 정말 최악이었다. 몸의 안팎으로 가벼운 부상이 하나도 없었다.
만검산장에서 오래도록 무림인의 상세를 돌보아 온 의원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정도였다.
굳이 말하자면, 고진무는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검기에 스치면서 생긴 크고 작은 외상도 그렇지만, 내상은 더욱 심각했다. 진기가 크게 상하여서, 기맥이 마르고 기혈이 꼬였다.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하지만, 지금 고진무에게는 요양 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진기가 상하였으니, 당장은 백약이 무효였다.
자칫 무공을 모두 잃을지도 모르련만. 고진무는 지금 자신의 상태는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약간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어찌 그러십니까?”
자리를 지키는 백옥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살짝 얼이 빠져 있는 듯한 고진무였다. 그 모습이 의원의 심각한 말 때문은 아닌 듯했다.
고진무는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큰 것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가슴 한구석이 텅텅 빈 듯하군요.”
“가슴이…… 아, 검을. 그렇지요. 그때에 검을 잃으셨지요.”
“예, 그리고…….”
고진무는 붕대 감은 손을 눈앞에 들었다.
“만검의 비의는 품기가 무섭게 사그라졌습니다. 언제 다시 마주할지 알 수가 없군요.”
“예에?”
백옥상은 입을 꾹 다물고 눈만 크게 떴다. 강소가 놀란 소리를 길게 흘렸다.
지난밤에 그들이 목격한 만검의 폭풍, 쏟아지는 검기, 검광, 진정 신위(神威)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비인의 경지가 그렇게 사라진단 말인가.
고진무가 흐린 미소를 그리면서 말했다.
“만검귀일을 남긴 신인께서는 혹시 모를 상황을 준비하였던 듯합니다. 만검고에 남긴 검진도 그것을 위한 안배였던 셈이지요.”
“그게 무슨 뜻인지요?”
강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퍼뜩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검고에서 검진을 이루었던 일만여 자루의 검, 그 검기가 만검귀일에 따라 주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힘들지요.”
“그, 그렇군요.”
두 사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진무의 신위는 만검고의 검이 있어서 가능했다.
아무리 많은 검을 눈앞에 쌓아 놓더라도, 같은 신위를 보일 수는 없을 터였다.
백옥상도, 강소도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몸만 상한 것은 아니니까요. 검도의 새로운 경지를 직접 겪어 보지 않았겠습니까. 만검까지는 몰라도, 언젠가 일검은 이룰 수 있겠지요.”
고진무는 흐린 미소를 그렸다.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병상 옆에 얌전히 정리해 둔 옷가지와 짐, 그 위에는 귀동이 스며들어 있는 단검이 올라가 있었다.
단검이 퍼뜩 들썩거리는걸, 고진무는 놓치지 않았다.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