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447
448화. 종남재견(終南再見) (1)
‘교’가 사라졌다.
암중에서 천하 무림을 크게 뒤흔들었던 자들이었다.
하동을 시산혈해로 만들었고, 도적떼를 준동하게 만들었다. 대내를 문란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강호의 곳곳에서 생겨난 무수한 갈등의 뒤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니, 각지에서 강호의 뜻있는 협객지사가 나서면서 치열하게 싸워 나갔다.
그 선두에는 개방이 있었고, 남천궁이 있었으며, 또한 종남파가 있었다.
끝에, ‘교’는 수뇌를 잃고 스스로 폐쇄하면서 수 년간 무림을 흔들었던 일체의 흉계는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교’의 양대 세력 중 하나, 천외루는 남은 인원을 모두 거두어들였다. 그들은 강호에서 일체의 종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또 다른 한 곳, 성륜교는 본산이 무너지면서 수뇌가 싹 사라졌다. 계통을 크게 잃으면서 남은 자들은 지리멸렬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달리 ‘교’가 무너지면서 덕분에 그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교’가 되었든, 성륜교가 되었든 그런 이들을 잡는 것이 지금의 큰일이었다.
잔당, 특히 성륜교의 잔당이 문제였다.
그들을 일거에 소탕할 수 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그렇게 쉽게 끝을 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해도, 어디에나 구멍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무더운 날이었다.
젊은 승려 한 사람이 녹음이 무성한 그늘에 팔짱 낀 채 서 있었다. 바짝 민머리가 땀방울로 흥건했고, 또 붉게 달아올라 있기까지 했다.
열이 가득 차오른 탓이었다.
“후우, 덥네. 더워. 빌어먹게도 덥다.”
승려는 굵게도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면서 붉은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산세를 타고서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지만, 습하고 더운 바람이어서 지금 열기를 달래주기에는 태부족이었다.
승려가 있는 곳은 남방의 끄트머리, 아득한 산세의 한가운데였다.
사람 발길이 닿을 리가 없다 싶을 만큼이나 깊은 곳이었다.
그는 이내 짙은 눈썹 한쪽을 바짝 치켜들었다. 덥기도 더웠지만, 치뜬 눈가에는 짜증이 뚜렷했다.
“빌어먹을 것들 같으니. 기왕에 숨을 거면 가까운 데에나 있을 것이지. 뭐 이딴 곳까지 숨어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야?”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툴툴거렸다. 열몇이나 되는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서 피를 흘렸다.
승려는 그들이 멀리 숨었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황당하다면 황당한 일이겠지만, 승려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생각한다면 마냥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멀고 먼 하동의 북방, 오대산의 산자락에서 개봉부를 거쳐 여기 남방의 끄트머리에 있는 대산까지 왔다.
광남서로 흠주(欽州)의 십만대산(十萬大山)이다.
말하기를 산중에 일국(一國)을 숨길 수 있다고까지 할 만큼이나 수많은 산봉과 산세가 켜켜이 이어져 끝도 없이 드넓은 산맥이다.
남북으로 자그마치 육천 리에 이르는 길이다.
오대산에서 여기까지 온다는 것만도 대단한 고행일 텐데, 승려는 잔당의 흔적을 추적하기까지 했다. 그 세월이 한두 달 남짓으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승려는 곧 자신 앞에 거꾸로 꽂아 세워둔 붉은 칼, 혈도를 다시 뽑아들었다.
혈사의 혈도승. 아니, 이제는 오대파 혈사자라고도 불리는 우광이었다.
우광이 바로 성륜교의 잔당을 잡기 위해서, 이 먼 곳까지 부지런히 달려온 참이었다.
성륜교는 본산을 중심에 두고, 각지에 분교를 따로 두어서 교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 체계는 상당히 은밀했고, 드러난 것만큼 드러나지 않은 안배와 세력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교’와 함께 성륜교의 본산이 무너지면서 대부분을 소탕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도 남은 안배가 여럿 있었다.
성륜교의 잔당들이 그것을 찾아서 다시 성륜교를 세우겠다고 하니, 그게 문제였다.
무림은 물론이고 황실까지 움직이게 한 ‘교’였고, 성륜교였다. 천외루가 바보라서 일체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종적을 감추었을까.
그런 피해는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우광은 흉터 남은 턱 끝을 치켜들고 말했다.
“자자, 당신들이 진짜 마지막이지. 어서, 어서 끝냅니다.”
“…….”
“…….”
무성한 수풀 너머에 남은 한 무리가 있었다.
여기 십만대산에서 성륜교의 안배를 찾고, 다시금 교세를 갖추고자 했던 잔당들이었다. 그들은 크게 당황한 채 우뚝 서 있는 우광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모두가 심상치 않은 마인들이라 할 자들이었지만, 이미 우광의 혈도에 선수를 단단히 빼앗긴 참이었다.
“어쩌지, 어쩌지.”
붉은 칼의 무승.
한참 젊은 모습이라고 하지만, 그를 보고 있는 사내들은 누구 하나 방심할 수가 없었다.
당장 그의 칼날 아래에 부하들 십수 명이 단숨에 죽어 나가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살인도, 그 하나에 집중한 극한의 살예라는 걸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아보았다. 성륜교의 후인으로서 그 정도 소양은 다들 갖추고 있었다.
긴장과 어수선함의 사이에서 잿빛 수염이 무성한 노인이 이를 갈았다. 그는 한 자루의 대도를 움켜쥐었지만, 차마 휘두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으, 으윽! 성륜을 다시 세우고자 하였을 때에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 각오는 했지만…… 혈도승이라니.”
노인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치뜬 눈에 불을 켰다.
그렇다고 순순히 목을 늘어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저기 삐딱하게 서 있는 젊은 무승은 어쨌든 하나니까.
‘뒤로 물러나서 그곳으로 유인하면 분명 방도가 있을 거요.’
‘으음…… 그, 그렇지.’
노인을 필두로 남은 무리는 눈빛과 달싹거리는 입 모양으로 빠르게 뜻을 주고받았다. 어쨌든 이곳에는 성륜교의 안배가 따로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우광은 모여 있는 무리, 성륜교의 잔당을 향해 칼날을 겨누면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흐음, 뭔가 다른 속셈이 있다는 건가?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건가?”
상당히 수상쩍은 기색이었다.
죽자고 달려드는 것도 아니고, 무턱대고 도망하는 것도 아니었다. 부하들을 먼저 등 떠밀고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꼬락서니였다.
“흐음, 분명 뭐가 있는 건데.”
슬금슬금 좌우로 퍼지면서 자세를 낮추는 모습이 역시 이대로 끝내지 않을 모양이었다.
우광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신중하게 손을 쓸 것처럼 자세를 낮추었고, 각자의 도검을 신중하게 겨누었다. 그러나 막상 체중은 한껏 앞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이건 달려들려고 하는 기색이 아니다. 뒤로 물러나겠다는 의중이 가득한 꼴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도검을 뽑아든 기세만큼은 솔직할 뿐만 아니라, 죽기를 각오한 눈빛이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유인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뒤에 뭐 대단한 거라도 준비해 놓고 있나 봐?”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늘어뜨린 혈도를 치켜들고서, 도배(刀背)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저들의 각오는 알겠지만 실실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곧 턱 끝을 치켜들고 경계하는 이들 너머를 향해서 말했다.
“안쪽 정리는 끝났습니까?”
“아주 말끔히 정리했지. 이제 남은 자들은 없어.”
그들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렀다.
“으헛!”
기겁한 이들이 홱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흑색 도관에 흑색 득라를 펄럭이는 도고 한 사람이 차분하게 소로를 따라서 걸어오고 있었다.
한참 고요한 모습으로 흔들림 하나 없었다.
검을 한 자루를 들고 있지 않았다면, 마치 산중에서 소요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성륜교 잔당들에게 놀랄 일은 도고가 걸어오고 있는 방향이었다.
진짜 안배를 찾아놓은 은신처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이들이 궁리한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어, 어찌 저곳에서…… 어찌!”
노인은 속에 있는 말을 저도 모르게 왈칵 터뜨렸다.
놀라는 그들 심정이야 어떻든 모습을 드러낸 흑도고, 바로 종남파의 속가라는 단청이 몇 걸음 다가와서 멈춰 섰다. 그는 자신을 보면서 몸을 떨어대는 몇몇을 둘러보았다.
“자아, 이제 산에 남은 건 이들이 전부인 셈이지. 어쩔까?”
“아이고, 안쪽에서는 누님께서 애쓰셨으니 여기는 제가 마무리하지요.”
“그리하겠다면야.”
단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살짝 묘한 기색으로 기겁한 이들을 향해서 말했다.
“그래도 제법 상당한 한 수를 준비해두셨더군.”
“아이, 아이들마저 베어버린 거냐?”
“아이? 무슨 아이?”
단청이 빙긋 웃으면서 말하자, 대도의 노인이 원독 어린 듯이 푸른 눈을 일렁거리면서 물었다. 노인은 단청이 의아한 듯이 되묻자 으득 이를 악물었다.
“네년이 나온 곳에는 아직 아이들만 있을 뿐이었다!”
“하하, 실혼살동(失魂殺童)을 두고서 설마 아이라고 말하는 거요? 참 대단한 심기시로군, 그래.”
“그, 그건!”
살짝 기대를 품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교’의 실혼살동 십여 구, 그것이 믿고 있던 한 수였다.
‘교’ 이전에 천산에서부터 전해지는 살인마병 중 하나, 살동. 그것을 비틀어서 펼치는 것이 ‘교’의 실혼살동이었다.
실혼의 상태로 두려움을 모르며, 육신은 금강석에 비견할 만하고, 마교의 살법을 극한으로 연마하였으니. 진정한 살인병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만 있어도 강호의 절정 고수 열에 비견할 만한데, 그런 살동을 자그마치 열 구나 비장하고 있었다. 그것을 찾아내서 다시 일깨우고 얼마 지나지 않은 참이었다.
그런데 지금 여인은 그 열 구를 모조리 처리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아이의 모습을 한 게 껄끄럽기는 했지만, 사람을 먹는 꼴을 보면서 손에 사정을 둘 리도 없지 않은가. 그런 괴물을 두고서 아이 운운이라니. 참 대단도 하군.”
“으, 으윽!”
단청은 짐짓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말 꺼낸 노인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마지막 수단이 어그러졌을 뿐만 아니라, 체면 또한 끝도 없는 바닥에 처박힌 꼴이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단청이나, 우광이나 그들은 잔당의 면면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우광은 입술을 한껏 삐죽거렸다.
“흐음, 하여튼 진짜배기는 전부 종남파에서 상대한다니까. 뭐, 그래서 나름 편하기는 하지만.”
우광은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저들을 두고서 잔챙이라고 하기에는 좀 과하겠지만, 어떻든 남은 자들은 자신의 몫이었다.
“자자, 후딱후딱 처리합시다. 물론 당신들의 목으로 말이지.”
우광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깨에 걸친 붉은 칼을 사선으로 늘어뜨렸다.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순간, 신형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붉은 칼날이 연이어 그려 내는 궤적뿐이었다.
“헉! 으헉!”
“마, 막아!”
“아니, 피해! 피해! 막으면, 켁!”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이제는 오대파라고 불리지만, 도신일체에 이른 혈사의 살도였다.
단청은 우광이 그려 내는 혈도의 궤적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도 이제는 애송이라는 말을 할 수 없겠네.”
우광도 무공의 성취라면 진즉에 절정을 뛰어넘었다. 몇 년 전에 종남산에서 대들던 어설픈 녀석이 아니다. 그러나 단청이 보는 것은 손속의 절제였다.
우광이 그려내는 혈도의 붉은 궤적에는 과함이 없고, 부족함이 없었다. 살기가 과하면 칼날은 속절없이 튀어 오르고, 부족하면 베지 못한다.
우광은 칼과 한 몸이 되어서 물 흐르듯이 차분하게 나아갔다. 잔당이라고 하는 자들도 어찌 저항했지만, 일도, 일도를 전혀 감당하지 못했다.
단청이 보기에도 우광의 살도는 온전하게 성취를 이루어 낸 것이 분명했다.
“후우, 이제야 종남산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참 길었다. 길었어.”
단청은 한숨을 삼켰다. 입가에는 쓴웃음이 역력했다.
교의 뿌리는 뽑았지만, 잔가지가 얼마나 무성하였는지 꼬박 삼 년 동안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을 정도였다.
종남산 풍경이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그래도 불평만 할 수 없는 것이, 종남파 제자 모두가 자신만큼이나 천하 곳곳에서 잔당을 일소한다고 정처 없이 떠도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혈사도 마찬가지였다.
“으핫! 으하하핫! 이제 집에 좀 가자!”
우광이 서러움과 광기가 뒤엉킨 웃음을 터뜨리면서 거침없이 붉은 칼을 흔들어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