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미래를 위한 포석 (2)
깊은 밤, 태건과 이하륜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태건의 방은 여전히 조사 중이라, 태건은 이하륜과 같이 방을 쓰고 있었다.
그날의 습격 사건 관련 증거와 증언, 범인의 자백을 모두 확보한 후, 조선 측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 암살 교사자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자 화들짝 놀란 일본 측은 대마도주와 더불어 태건의 방을 방문해 조사를 벌였다. 태건의 방 자체가 명확한 증거이다 보니, 그들은 경계를 소홀히 했던 점을 사과하고, 그저 사사로운 원한 정도로 사건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진행된 셈이다.
이하륜은 등에 진 보따리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어이쿠! 무거워라. 그놈들 참 실하네.”
이하륜은 과일 서리에 성공한 동네 악동마냥 능글거리며 보따리를 풀었다.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의 정체는 바로 조총들이었다.
태건은 조총 하나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조잡한데?”
“그러게. 그래도 구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두 사람은 사카타가 가르쳐준 사카이의 공방으로 숨어 들어가 어렵지 않게 조총 세 정을 빼내 올 수 있었다.
공방 측에서 조총의 분실 사실을 알고 당국에 신고하면 당연히 조선통신사 전체도 의심 받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실제 범인인 태건만은 알리바이로 인해 그 의심에서 자유로울 게 분명했다. 공식적으로 태건은 병석에 누워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총을 태건의 개인 짐에 숨길 심산이었다.
“그럼 나갔다 올까?”
“그럽시다.”
두 사람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소통사 현양건을 불러내, 같이 숙소를 나섰다. 이들이 향한 곳은 대로변에 있는 어느 객관. 그 앞에 이르자 미리 나와 있던 사카다가 이들을 맞아주었다. 그는 자신이 묵고 있는 방으로 손님들을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태건은 감사의 뜻을 표한 다음, 어떻게 된 연유인지 물었다.
“태 판관님에 대한 암살 계획이 실행될 거라 확신하고, 밤마다 주변을 돌았답니다.”
소통사 현양건이 사카다의 말을 전해 주었다.
“그걸 확신했다고? 크크! 일본인 속내를 확실히 같은 일본인이라 잘 아는군. 정말 고맙다고 전해 줘요.”
이하륜이 먼저 사의를 표했다.
“큰 빚을 졌군. 은혜를 갚고 싶은데 내게 원하는 게 있는지?”
“절 조선에 데려가 주십시오.”
사카다는 어눌한 조선어로 대답했다.
살짝 놀란 태건이 현양건을 바라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저한테 배운 말입니다.”
“음, 그럼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조선을 좋아한답니다. 그게 다랍니다. 물론 태 판관님의 뛰어난 무예 실력과 당당한 태도도 맘에 들었고요. 그래서 상관으로 모시고 싶다고.”
태건의 짐작과 다름이 없었다. 사카다는 처음부터 조선으로 건너갈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왜란 발발 전에 나온 첫 항왜인 셈이었다.
태건은 미소를 짓더니, 사카다에게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고 했다. 그는 붓을 들어 ‘坂田康次郞(판전강차랑)’이라고 썼다.
태건은 이름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붓을 들어 종이에 ‘전지로(田智路)’라고 썼다.
“전지로? 뭐죠?”
현양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태건이 웃으며 말했다.
“조선식 이름. 부르기 편하라고. 판전강차랑은 좀 그렇잖아?”
“전지로라··· 좋네요.”
태건은 내친 김에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린 다음, 사카타에게 건넸다.
“이건 마령서. 요건 감저라고 하지. 북변에 있을 때, 이들에 대해 들은 바가 있네.”
마령서는 말방울을 닮았다고 하여 감자에 붙여진 중국식 호칭이고, 감저는 단맛이 나는 ‘마’라는 뜻으로 고구마를 뜻한다.
한반도에 감자가 들어온 시기는 19세기이고, 고구마는 18세기 영조 대이다. 그러므로 이들 구황작물이 조선에 들어오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서양 배들을 통해 이미 명나라에 들어와 있었다. 아울러 일본에도 조만간 들어올 예정이었다.
태건은 사카타에게 말했다.
“부탁 좀 하나 합시다. 나가사키로 건너가서, 일본 상인을 통해 남만인과 접촉해 보시오. 일이 잘 풀려 그들과 만나게 되면 이 그림을 보여 주고 거래를 제안하시지요. 만약 배에 보관하고 있다면 그걸 바로 구입해 오고.”
태건은 사카타를 통해 감자와 고구마를 조선에 들여올 심산이었다. 태건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이하륜은 그 의도를 확실히 이해했다. 사카타가 군말없이 태건의 심부름을 따른다면 그는 앞으로 ‘전지로’가 될 것이다.
사카이항에 정박해 있던 포르투갈 상선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나가사키는 달랐다. 마카오를 오가는 정규 항로까지 개설되어 있어 서양 상선들이 자주 드나들고 있었다.
사카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제 본격적인 문답이 시작되자 현양건이 바빠졌다.
“조선통신사 사행단이 언제 떠날지 모르지 않습니까?”
“우린 앞으로 서너 달 이상 여기서 기다려야 할 운명이오. 그러니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태건은 그 이유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이왕 나가사키로 간 김에 일본 상인들과 친분을 좀 쌓아 두세요. 가급적 믿을만한 자를 가려 사귀는 게 좋겠지만, 그건 힘들 테니 최소 노략질만 안 하는 상인이라면 충분합니다.”
해적과 대외 무역을 하는 상인을 구분 짓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래서 해적질 여부가 태건의 최소 조건이었다.
사카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하륜이 챙겨온 은괴를 사카타에게 건넸다.
“마령서와 감저 구입 대금, 그리고 노잣돈으로 쓰시오.”
“이렇게나 많이?”
현양건이 깜짝 놀라, 태건을 바라보았다.
사카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돈과 함께 잠적하면 태건이 자신을 잡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태건은 자신을 믿고 거액을 맡겼다. 그는 태건의 배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돈의 일부는 태건과 이하륜이 조선을 떠나올 때 노잣돈으로 챙겨 온 것이다. 아울러 그간 대련에서 승리할 때마다 정사와 부사가 예산의 일부를 챙겨 상으로 내려 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태건은 그 재물들을 일본에서 통용되는 은괴로 바꿔 보관해 왔고, 그 대부분을 사카타에게 내어준 것이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어느새 계절도 바뀌었다.
그날의 자객 사건 이후, 별다른 문제없이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무관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무료함과 싸워야 했다.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 탓에 무관들의 무예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태건과 이하륜은 거의 매일 밤 토론을 벌이며 미래를 준비해 나갔다. 태건의 기록도 계속 쌓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사카타가 돌아와 태건을 찾았다. 사카타는 결국 신의를 지킨 것이다.
“당장 사카이항으로 가야 합니다. 남만 상인이 태 판관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사카타는 이렇게 운을 뗀 뒤, 그간 나가사키에서 겪은 일을 빠르게 설명해 나갔다.
처음 일본 상인과 안면을 트는 일이 몹시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조선통신사 얘기를 꺼냈더니, 그 때부터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나타났단다. 특히 하카다 출신 상인이 그랬다. 조선통신사 사행단이 하카다에 들른 덕분이었다. 그래서 뇌물도 쥐어 주고 해서 어렵지 않게 남만 상인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 역시 말로만 듣던 조선이란 나라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태건이 부탁한 감자와 고구마를 다음 항해 때 구해서 돌아올 테니, 태건을 만나게 해 달라고 오히려 부탁했다고 한다. 나가사키에서 마카오까지 포르투갈 범선으로 대략 15~20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저들이 다녀올 시간은 충분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사카타는 포르투갈 배를 타고 사카이 항까지 동행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남은 돈입니다.”
사카타는 양심적으로 돈을 되돌려 주었다. 아직 감자와 고구마에 대한 값을 치르지 않은 상태라 많이 남아 있었다.
“수고했어요. 그럼 바로 가 봅시다.”
태건은 사카이 항에 다녀오겠다고 허성에게 통보했고,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았다. 무료한 나날이 계속되다 보니 사카이항에 다녀오는 이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인 안내인들도 예전처럼 빡빡하게 굴지 않아 다들 자유롭게 외출하곤 했다.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도 지친 것이다.
태건과 이하륜은 곧바로 하인들의 옷으로 갈아입고 얼굴까지 변장했다. 아울러 포르투갈 인과 만났을 때 입을 옷도 준비해 갔다.
사카이 항에 도착하자, 사카타는 이들을 일본 상인이 운영하는 건물로 안내했다.
태건과 이하륜은 곧바로 평소의 무관 복장으로 환복했다. 나라의 명예가 걸려 있으니 하인의 복장으로 이들을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포르투갈인 둘과 일본 상인, 통역 등이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처음 보는 조선인의 모습이 신기한지, 한참동안 태건과 이하륜을 훑어보았다. 서로 간단한 소개가 오고 갔다. 포르투갈 인은 예수회 신부와 이번 상행을 책임진 이였다. 사카타는 태건을 조선에서 지위가 꽤 높은 무장이라 소개했다.
포르투갈인이 조선 땅을 최초로 밟은 건 8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마리이’란 이가 난파해 조선에 표류했다가 명나라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 일 이외에 조선과 포르투갈이 접촉한 적은 없었기에, 오늘 이 만남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만했다.
먼저 예수회 신부가 나서서 대화를 주도했다. 그는 가급적 많은 정보를 얻고자 했다. 태건은 가감 없이 그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특히 그는 조선의 개항 여부에 관심을 보였는데, 태건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얘기 말미에 여지를 남겨 두었다.
태건 자신이 포르투갈에 문호를 개방하도록 조선 국왕을 설득하고, 그게 성사되면 나가사키로 연락하겠다고 얘기했다. 예수회 신부는 그 답을 얻은 것만으로도 크게 기뻐했다. 사카타와 포르투갈 상인을 연결해 준 일본 상인도 덩달아 기대감을 품었다. 이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태건이 둘 수 있는 포석은 이게 다였다. 그의 현재 직위나 전쟁을 앞두고 있는 조선의 현실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태건 자신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 마령서와 감저를······.”
태건의 눈치를 보던 이하륜이 본안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포르투갈 상인이 일어나더니 자루를 두 개 들고 와 탁자에 올려놓았다.
태건은 자루를 열어 보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틀림없는 고구마와 감자였다.
“자, 이제 어떻게 셈을 치러야 할까요?”
이하륜이 물었다.
그러자 포르투갈 상인은 태건의 환도를 가리켰다.
“저··· 외람되게도 저 남만인이 환도와 태 판관님의 옷을 원하네요.”
포르투갈어 통역과 일본어 역관인 현양건을 통해 저들의 의사가 전달되었다.
“은괴는?”
“괜찮답니다. 어차피 거래차 이곳으로 항해한 거라서요.”
조선 무관의 옷차림은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색 또한 조화로워 태건이 방에 들어설 때부터 포르투갈 상인은 복장에 욕심을 냈다.
태건이 환도를 들어 탁자에 올려놓자, 포르투갈 상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태건의 환도는 저들이 충분히 탐낼 만큼 고급스러워 보였다. 유려하게 굽은 칼날의 곡선미는 물론이거니와, 검집 또한 화려하게 장식되어 눈길을 끌만 했다.
태건이 검을 뽑아 보여 주자 포르투갈인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태건은 다른 방으로 들어가 옷까지 갈아입고 나왔다.
그렇게 태건과 포르투갈 측의 거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포르투갈 상인과 태건이 앞으로 좋은 관계로 다시 만날지는 미지수였다. 왜란 와중에 포르투갈 상인들도 악역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거래로 조선은 실제 역사보다 훨씬 일찍 감자와 고구마를 얻게 되었으니, 태건의 환도와 의복 정도면 헐값으로 구입한 셈이었다. 대기근이 들었을 때, 감자와 고구마가 구하게 될 수많은 인명을 생각하면 억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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