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발해의 유산 (2)
제2대대장 오혼이 다급한 표정으로 강경우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우군장님. 이곳으로…….”
강경우가 묻자, 오혼은 손가락을 입에 대더니 오라고 손짓했다.
“아, 알겠네.”
강경우는 진지를 선강에게 맡기고 오혼을 따라갔다. 오혼은 그를 숲속으로 안내했다. 그곳엔 복면한 자가 지수정 중대장과 함께 바위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뉘요?”
강경우를 본 복면인이 일어나 인사했다.
“안변에서 왔소. 이름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럼 임시 함경감영 소속인가?”
복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관찰사 영감이?”
“예. 그분이 보내서 왔습니다.”
“무슨 일로?”
“관찰사 영감은… 귀측이 원하는 게 뭔지 궁금해하시오.”
“우리가 안변을 공격할까 봐?”
“그런 점도 있고.”
“우린 함경도 남부 백성들을 위해 일어섰네. 스스로 지키고자. 그뿐이네. 그러니 우리가 굳이 안변을 공격할 이유가 없지.”
“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럼 내가 묻지. 관찰사 영감이 우리한테 원하는 건 뭔가?”
강경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감영 군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직이 한숨을 토해 냈다.
“휴! 뭐라 얘기해야 할지… 관찰사 영감은 어떤 경우에도 서로 싸우는 걸 원치 않으십니다.”
“조정에서 증원군을 보내 줘도?”
“당연하지요.”
“국왕의 압박은 어떻게 하고?”
“그러니 서로 계책을 짜서 미리 대비하잔 말이지요.”
“음. 그럼 관찰사 영감은 왜 그런 생각을?”
“우리끼리 싸워서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우리가 여민단을 공격하면 북쪽의 태건 장군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럼 조선 전체의 비극으로 비화하게 됩니다. 그러니 큰불로 번지지 않도록 우리 손으로 막잔 말이지요.”
“허허허! 참으로 지혜로운 생각이로고.”
강경우는 원희의 ‘큰불론’에 크게 감탄했다. 아울러 관찰사 원희가 왜 밀사를 보냈는지 능히 이해했다. 그는 사실 태건 군과 정면 대결을 펼치는 게 두려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미리 방지하고자 그를 사자로 보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대립할 때가 아닙니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해야 할 때이지. 관찰사 영감도 귀측이 백성 구제에 열중하고 있단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니겠소?”
“예. 그렇지요.”
“그럼 관찰사 영감은 상인이나 이주민의 통행을 막지 않을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작고하신 전임 관찰사는 계속 통행을 끊으려 했으나, 현 관찰사 영감이 강하게 반대하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요. 그러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좋군. 그럼 앞으로 어떻게 협력할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세.”
이제 강경우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주민을 더 많이 유치하려면 더욱 널리 소문을 내야 하는데, 그런 일에 특화된 이들이 바로 상인이다. 현재 송화상단의 상행 한계선이 이곳 덕원이었다. 남쪽의 상인도 마찬가지였다.
알게 모르게 안변을 국경선처럼 인식하다 보니, 상인들은 안변이란 관문을 넘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생존 문제가 걸려 있는 이주민과 달리, 잃을 게 많은 이들이라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강경우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원희의 밀사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그래서 상인도 조건 없이 통과시키기로 했고,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밀사로 나선 군관이 민망하게 느끼는 사안도 하나 있었다.
“그리고… 관찰사 영감을 비롯해 일부 무관과 병사들이… 그러니까 비상시에 음, 그들이 원한다면…….”
군관이 말을 제대로 잇질 못하자, 강경우가 웃으며 답해 주었다.
“언제든 환영이네.”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를 밖에서 알면 안 되기에…….”
“당연히 신분 감추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야지. 정착할 땅이야 넘쳐나니까 걱정하지 말게.”
“아, 알겠습니다.”
관찰사 원희 또한 이미 조정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그도 유사시 몸을 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희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무장과 일부 병사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현재 남부군에 함경도 출신 병사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부방 나왔다 계속 남게 된, 타지 출신 병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들조차 유사시 북쪽으로 넘어갈 뜻을 품은 것이다.
* * *
태건은 서해란평을 직접 살피기 위해 측근들과 더불어 길을 나섰다. 그러자 이 기회를 빌려 태건과 친분을 돈독히 할 심산으로, 김도을 대추장과 야탄 추장도 태건의 순행에 동행했다.
일행은 해란강을 건넌 다음, 서남쪽 이응거 부락 집단 거주지로 향했다.
“저, 그런데 이라대와 니탕가는 어찌 되었습니까? 전장에서 붙잡혔단 얘기까진 들었는데요.”
김도을이 조심스런 태도로 물어보았다. 주변 풍경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 태건의 표정을 보자 용기를 내어 질문한 것이다.
“둘 다 공개 처형했소.”
“아, 그랬군요.”
“대적한 수장을 잡으면 모두 처형합니까?”
야탄이 물었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니마차의 뇨후트 추장은 놓아주지 않았습니까? 도르기 비라의 추장 왕이누도 그렇고. 왕이누는 지금 일반 포로와 똑같이 노역하고 있지요.”
송찬황이 태건을 대신해 대답했고, 이를 경현호가 통역해 주었다.
“허, 놀랍군요.”
김도을은 나직이 탄성을 터트렸다. 뇨후트와 왕이누, 이라대 등은 모두 자신과 동급의 대추장들이었다.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자 갑자기 등에 소름이 돋았다.
“전쟁은 전사끼리, 군인 간에 하는 것이오. 그러나 그 두 놈은 민간인을 방패로 쓰고, 민간인을 해하거나 잡아다 거래했소. 난 그런 자들을 사람이 아닌 악귀로 봅니다. 그런 놈들은 역병과 같아서 죽여 없애야 후유증이 남지 않지요.”
태건이 담담히 그 이유에 대해 밝히자 두 추장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이 사실을 주변에 널리 알려 주시오. 그래야 나중에 우리와 전쟁하더라도, 후환이 두려워 민간인을 건드리진 않을 겁니다.”
“음,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김도을은 태건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사실 대추장이나 추장처럼 가진 게 많은 이들일수록 몸을 사리기 마련이다. 전쟁이야 피치 못하게 일어난다 해도, 공연히 민간인을 건드려 더 큰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역시 정말 놀라운 곳이요. 그래서 발해가 이곳에…….”
태건은 서해란평의 풍요로움에 거듭 놀랐다. 그래서 불현듯 발해를 떠올렸다.
“예?”
발해 이야기에 야탄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부근에 커다란 고성이 있지 않습니까?”
“있고말고요. 거기가 바로 우리 이응거 부락이 자리한 곳입니다. 저쪽입니다. 외벽을 개수한 다음, 우리 부락민들이 성내에 거주하고 있지요.”
야탄이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외성이 있다면 내성도 있단 말입니까?”
송찬황이 살짝 놀라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거기에 제 거처가 있소.”
“허허! 그래요?”
태건에게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거기가 발해의 어디였습니까?”
송찬황은 태건의 표정을 보고 뭔가를 알아차렸다.
“중경현덕부로 추정되는 성이 있단 말을 들었는데, 그곳 같군.”
“중경현덕부요?”
“발해의 다섯 수도 중 하나였지. 그중 또 다른 하나가 훈춘현의 팔련사에 있는 동경용원부인데… 그 역시 확실하진 않네.”
“놀랍군요. 그럼 우리 세력권에 발해의 수도가 두 군데나 있는 셈이네요. 훈춘도 그렇지만 이곳 역시 저 벌판을 보니 능히 이해가 갑니다. 충분히 수도가 들어설 만한 곳입니다.”
송찬황도 서해란평의 풍요로움에 반해 있는 상태였다.
“다 왔습니다. 저기가 바로 우리 이응거 부락입니다.”
“음, 정말 고쳐 쌓았군요.”
고성의 외벽에 개수한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혹시 이 주변에 철주란 곳이 있소?”
“철주라면…….”
“철광산이 있는 곳. 거기에 성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 위성을 말하는군요. 여기서 서남쪽으로 대략 20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성이 바로 위성인데, 거기에 철광산 유지가 있습니다.”
“그럼 거기부터 가 볼까요?”
“아, 예.”
태건이 중경현덕부 고성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더니, 철주란 곳부터 보자고 하자 야탄과 김도을은 의외란 표정으로 따라갔다.
사실 태건은 눈앞에 있는 고성이 발해의 다섯 수도 중 하나란 설을 어느 정도 지지하고 있었다. 이 부근에서 발해 문왕의 두 딸인 정효공주와 정혜공주 묘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중경현덕부가 바로 문왕 시기의 수도였기에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중경현덕부 부근에 철이 나는 동네, 즉 철주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양질의 철이 생산된다는 기록을 본 기억이 있어 태건은 그곳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 * *
2군 사령부로부터 서토 정벌 결과를 통보받은 이하륜은 소스라칠 정도로 놀랐다.
“뭐야, 포로가 삼천을 넘어 사천에 달한다고?”
“허허허! 이거 기뻐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네.”
허균 역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비암산에서 또다시 7백 명의 포로가 나와, 기존 삼천에 더해 사천에 가까운 포로를 새로 얻은 셈이었다.
“포로가 사천이면 감시병도 꽤 많이 필요할 텐데요?”
법부 장관 조경린이 군부 장관 최철주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그러니 앞으로 늘어날 병력을 죄다 감시병으로 돌려야지요. 당분간… 에구, 당분간도 아니군. 또 늘어날 게 빤하니.”
“하여간에 말이야, 너무 잘 싸워도 문제라니까.”
이하륜은 여전히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허허! 그것도 말이 되네요.”
공상부 장관 태원은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원래 니탕가와 이라대 땅을 토벌하고 나면 회령 수비대를 양영만동보로 보내 도르기 비라를 조금씩 점령해 나갈 계획이었는데, 이제 회령 수비대는 포로 감시병 노릇 하기도 버겁게 되었으니.”
“그래서 도독께서 제2군은 수비만 하게 될 거라 하지 않으셨소?”
최철주가 이하륜에게 태건의 발언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게요. 내 생각이 짧았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포로 관리할 병력이 확보되는 대로 미뤄뒀던 광산 개발 사업에 투입하는 게 좋겠어요.”
현재 아오지 탄광에서 일할 포로는 이미 확보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하륜은 다른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디에 투입할까요?”
공상부장관 태원이 물었다.
“단천과 갑산, 그리고 또 다른 곳들.”
이하륜의 대답에 허균이 바로 반응했다.
“아, 단천이야말로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거기에 금점과 동점, 은점은 물론 철광산까지 여럿 있으니. 더구나 단천에는 감시 병력도 이미 배치되어 있고. 갑산도 품위가 좋은 은혈과 동점이 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캐기 시작해야겠소.”
갑산의 은혈, 즉 은광과 구리 광산은 과거에 채굴한 적이 있어, 단천처럼 인력만 투입하면 바로 생산이 가능한 곳이다.
이하륜은 내심 또다른 곳도 염두에 두었다. 그곳은 후세에 천보산이란 이름이 붙게 될 광산으로 노천광산이었다.
광명현의 서부 산지에 있는 광산으로 훗날 은과 구리의 산지로 유명해지는데, 청의 관리가 여기서 채굴한 은을 제련해 서태후에게 바치자 크게 기뻐하며 천보산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천보산은 은 이외에 구리와 아연, 납 등 주요 금속 광물자원이 대량 매장되어 있어 단천만큼이나 중요한 곳이었다.
태건은 서토를 정벌하고 나면 바로 이 천보산 광산부터 개발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