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마을우평을 얻다 (2)
음력 6월, 경상도 진주성 부근.
상주 전투에서 왜군을 상대로 승리한 충청병사 황진은 700여 병력을 거느리고 진주로 향하다, 진주 부근에서 의병장 곽재우와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왜란이 배출한 영웅이었다. 특히 곽재우는 경상우도, 즉 경상도 서부를 지켜 내고 여러 전투에서 승리해 백성의 희망으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이들이 진주성 부근으로 모인 이유는 바로 왜군이 진주성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성과 행주, 안성 등지에서 연달아 대패하는 바람에 일본군은 결국 부산포로 총퇴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조선이 배제된 상태로, 명나라와 화의 협상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전쟁이 곧 고착화할 조짐이 보이자 왜장들은 진주성이라도 함락해 위신을 세우길 원했다.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대패한 데 대한 원한을 갚는다는 의미도 있었다.
물론 조선군 진영은 왜군의 이런 움직임에 몹시 놀랐다. 진주성을 잃으면 또 호남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의병장과 무장이 의병과 관군을 이끌고 진주로 향했고, 이런 흐름에 황진과 곽재우도 당연히 합류한 것이다.
그러나 왜군에 대한 정보가 속속 들어오자 조선군 진영에 두 가지 경향성이 나타났다. 하나는 진주성을 포기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수하자는 주장이었다.
“아군 병력을 모두 모아 봐야 일만도 되지 못하는데, 왜병은 무려 10만입니다. 명군도 전력의 차이가 극심하다며 포기했고, 심지어 진주성을 포기하라고 권고까지 하지 않았소? 권율 도원수와 선거이 부원수, 홍계남 장군도 진주성에 들어가면 전멸을 면치 못할 거라며 발을 뺄 모양이던데, 나 또한 그게 옳은 결정이라 봅니다. 진주성에서 병력을 모두 잃으면 앞으로 어떻게 왜적과 싸워 나가겠소? 그러니 병사 영감도 진주성을 포기하시지요. 황 병사는 충청병사이므로 충청 지방을 굳건히 지키셔야지.”
곽재우는 황진의 진주성 수성 의지를 읽고, 온갖 논리를 동원해 말리고 있었다.
“이미 약속한 바가 있는데 어찌 어기겠소?”
“지금은 판단을 명민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명분이나 의리보다 중요한 게 실리입니다. 그래야 왜적을 몰아내지요.”
“명분이나 의리보다?”
“명나라 심유경이 화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왜군에 진주성을 공격하지 말라고 경고했답니다. 그러자 소서행장이 이렇게 답했다오. 이번 공격은 보복전 성격이 커서 중단할 수 없다고. 또 태합의 명령이란 말도 덧붙였답니다. 그러면서 잠시 점유했다가 물러날 테니, 차라리 진주성을 비워 주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했소.”
“그 말을 믿소?”
“그건 아니지요. 어찌 왜적의 말을 믿겠소. 하지만 저들의 이번 진주성 공격이 실리와 무관하다는 점 하나만큼은 명확하지 않습니까? 그저 위신을 세우려는 행위일 뿐이오.”
“호남까지 노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흠. 어쨌든 붙으면 일만 대 십만이란 말인데.”
“우린 일만도 못될 겁니다.”
곽재우가 황진의 생각을 정정해 주었다.
“들어가면 모두 몰살당합니다. 먼저 장졸들이 전멸하고, 그다음은 백성이지요. 저 흉포한 왜적들이 과연 진주성의 백성들을 살려 두겠습니까?”
“백성들?”
백성이란 말을 듣자, 황진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참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눈빛도 아련해졌다. 이윽고 황진은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진주성에 들어가야 할 것 같소.”
“장군…….”
곽재우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황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곽재우는 황진을 설득하길 포기하고 술상을 내오라고 지시했다.
“웬 술이오?”
“이별주입니다.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마지막으로 영감과 한잔 나누고 싶소.”
“허허! 이제 날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게요?”
“장군과 같은 인재는 살아서 왜적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결심하셨다니 어찌 그 뜻을 제가 꺾겠습니까? 그러니 한잔하고 가시지요.”
황진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웃으며 말했다.
“살아서 한잔합시다. 곽 장군과 같은 분과 함께 술 마신다면 정신줄을 놓을 때까지 마실 자신이 있소.”
황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 * *
봉산 계곡을 넘어가자 또다시 넓은 평원과 함께 해란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태건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이 마을우평의 풍경을 한눈에 담았다.
평원 서쪽 산지에 자리한, 증봉령 산맥 최고봉인 베개봉 계곡 ― 이 베개봉 북쪽에서 그 유명한 청산리전투가 벌어짐 ― 에서 발원한 해란강은 청산리를 거쳐 동쪽으로 흐르다 마을우평에 접어들면, 물줄기 방향이 북쪽으로 급격히 휘어져, 봉산 계곡으로 흘러들게 된다.
“이곳 또한 참으로 복 받은 땅 같지 않습니까? 논농사가 가능한 강변 평야도 널찍하니 좋지만, 주변 구릉지 또한 나직해서 마을을 여럿 들여앉히고 밭도 넓게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송찬황 사령관이 마을우평에 대한 첫인상을 밝혔다.
“좋은 땅이지. 특히 배산임수 지형이 많아 조선인이 좋아할 땅이야. 나직한 구릉지까지 포함하면 남북으로 40리, 동서로 약 15리 정도니까, 땅도 꽤 넓은 편이고.”
태건이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해 주었다.
“오랑캐령 이북에 이렇게 좋은 땅이 많은지 정말 몰랐습니다. 광명벌을 위시해 동서 해란벌에, 이곳 마을우평까지.”
오랑캐령이란 두만강과 이들 여러 평원 사이에 있는 산지를 통칭하는 말로, 후세에 흑산령, 혹은 남강 산맥이란 이름이 붙게 된다. 현시대의 조선인들은 오랑캐들이 사는 산줄기라 하여, 오랑캐령이라 불렀다.
“아, 저쪽에 안충가가 마중 나와 있군요.”
송찬황은 남쪽 전방에 일군의 무리가 나와 있는 걸 보고 바로 안충가임을 알아차렸다. 저들 뒤로 거대한 목책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안충가는 빠르게 다가오더니 태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을우시배 부락을 필두로 주변의 모든 일족은 동해부에 항복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니 그간 저희가 저지른 과오를 용서해 주시고, 항복을 받아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안충가는 그간 끊임없이 조선 국경을 침탈한 노토 부락의 일원이므로, 아무런 은원 관계가 없는 서해란평의 김도을이나 야탄 추장과 다른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받아들이지.”
태건의 굵고 짧은 답변에 안충가는 어안이 벙벙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어나시오.”
“아, 알겠습니다.”
“내가 그대들 장정을 포로로 잡지 않는 대신, 노토 정벌이 마무리될 때까지 당분간 무장을 해제하겠다. 이의 있나?”
태건이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건의 뒤에는 봉산 계곡에 포진해 있던 2천여 노토 군이 무장이 해제된 채, 동해부 군에 둘러싸여 있었다.
“없습니다.”
“아울러 안충가 암반을 포함해 다른 추장과 촌장들 모두 아치랑귀로 간 다음, 김도을 암반과 동행해 경흥으로 가시오. 가서 남은 절차를 진행하시오. 아울러 이곳에서 새롭게 구현될 행정체계도 익히고.”
“예. 명에 따르겠습니다.”
태건은 아랑현과 마을우평에 동해부 군을 배치할 여력이 없는 데다, 각 추장과 촌장들이 동해부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 이들을 경흥으로 보내기로 했다. 마을우평의 경우, 이들 자체가 인질이기도 했다.
이후 태건의 마을우평 장악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쪽에 자리한, 로툰이 다스리던 노토 부락 본거지 역시 태건 군의 손에 들어왔다. 노토 부락 본거지는 아예 주민들까지 남쪽 도르기 비라 지방으로 들어가, 텅텅 비어 있었다.
태건은 어느 정도 점령 작전이 마무리되자 다시 장수들을 마을우시배로 불러들여 다음 행보에 들어갔다. 이들 중엔 아랑현 서해란평 소속 병력 천명을 이끌고 온 김어소라도 있었다. 태건은 아랑현 군을 제1연대에 붙여 같이 움직이게 했다.
“이 지역 전체를 마을현이라 고쳐 부르는 게 좋겠군. 그리고 동북쪽 봉산 계곡 서남쪽에 있는 작은 분지를 봉산사로, 우리가 있는 이곳, 목책이 있는 곳을 마을진으로, 남쪽 노토 본진을 태평사로 이름하겠네. 어떤가?”
“좋습니다. 마을현이라니, 부르기도 좋군요.”
송찬황이 밝게 웃으며 반응했다.
“자, 모두 지도를 봐주게.”
태건은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보며 자신의 전략을 밝히기 시작했다. 안충가 측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새로 제작된 것으로 꽤 정확한 지도였다.
“2연대장!”
“예, 대장군.”
제2연대장 진태종 정령이 대답했다.
“길잡이를 붙여 줄 테니, 병력을 이끌고 동남쪽 계곡 길을 통해 두만강까지 나아가라. 그 중간에 자리한 헐연평과 두만강 변에 있는 화상가사란 노토 부락을 정벌하게. 화상가사 부락이 바로 회령의 보을하보와 도르기 비라의 삼봉평 중간 지점이니, 다시 거기부터 두만강 상류 쪽으로 전진하며 노토 계열 부락들을 모조리 점령하도록.”
태건이 제시한 진격로는 다소 험한 산길이었다. 마을진 동남쪽 산지에 자리한 고개 하나를 넘으면 훗날 복동하로 불리게 될 하천의 상류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더 나아가면 또 다른 분수령을 넘게 된다. 그러면 비로소 두만강의 지류인 고령하가 나온다.
이 두 고갯길만 제외하면 길이 그다지 험하지 않아, 여진족의 주요 이동로로 활용되는 노선이었다. 아울러 고령하 중류 지역에 헐연평이란 꽤 넓은 평원이 있고, 이곳에 소규모의 노토 부락 하나가 자리해 있었다.
“화상가사 부락을 점령하면 노토 부락의 두만강 이동로가 완전히 끊기겠네요.”
송찬황의 말에 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회령 수비대 병력 일부를 서쪽 보을하보로 이동 배치하란 명령을 내렸지. 그래서 제2연대가 화상가사를 점령하는 즉시, 보을하보 병력이 두만강을 따라 서진하며 그 중간에 있는 군소 부락들을 모두 정벌해 보급로를 열어 줄 거네.”
“허허! 알겠습니다. 듣기만 해도 피가 끓습니다.”
진태종 연대장이 크게 기뻐했다. 제2연대의 임무는 안출라쿠 지방에 남은 마지막 노토 세력의 숨통을 끊는 일이었다. 그들의 임무가 마무리되면 안출라쿠 전체가 동해부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난 제1연대와 함께 갈 것이다. 우린 태평사를 거쳐 쭉 남쪽으로 나아간 다음, 곡강 계곡 길을 타고 동진해 이곳 보이하 부락을 친다. 그 다음은 당연히 삼봉평이지. 로툰은 아마 도르기 비라의 본진인 삼봉평에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장군.”
제1연대장 강대구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노토 본진을 치는 임무를 맡았기에 그는 내심 크게 기뻐했다.
태건은 8천에 달하는 제1군을 한꺼번에 움직이지 않고 연대별로 작전 구획을 할당해, 더 빠르게 노토 부락을 정벌할 생각이었다.
“그때가 되면 우리 제3연대도 차유령에서 치고 나오겠지요?”
송찬황이 묻자 태건이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당연하지.”
현재 제3연대는 별동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태건은 처음부터 제3연대를 데려오지 않고, 아예 봉산에서 회령 방향으로 회군시켰다. 그래서 부령의 양영만동보까지 나아간 다음, 거기서 신첨 휘하 병력과 함께 삼봉평 방향으로 치고 올라오라 지시했다. 그래서 두만강을 따라 진군하는 제2연대와 함께 삼면으로 삼봉평을 공략할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