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도르기 비라 정벌 (2)
로툰이 삼봉평을 비우고 상류 방향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태건과 제1연대는 두만강 북안을 따라 더욱 빠르게 나아갔다.
급기야 태건과 송찬황은 제1연대와 제1군 사령부 병력의 지휘를 강대구 연대장에게 일임하고 아예 정찰대와 함께 움직였다.
태건은 강 건너편의 삼봉평을 조망할 수 있는 근처 언덕에 올랐다.
“2연대가 도강 중이군.”
남안을 따라 진군 중인 제2연대는 벌써 성천수를 건너고 있었다.
“어휴! 그보다 저 피난 행렬을 좀 보십시오.”
송찬황은 남쪽의 성천수 계곡을 가리켰다.
성천수 연안을 따라 거주 중인 노토 부락민들이 줄을 지어 계곡을 빠져나오고 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피난민들의 다급하고 불안한 심리 상태가 느껴질 정도였다. 말이 있는 자는 행렬을 추월해 내달렸고, 맨발로 뛰는 주민도 꽤 많았다.
피난 행렬의 선두에 선 노토 부락 병력은 벌써 강변 협로를 돌아 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강을 건넌 제2연대 선봉대가 우성으로 향하자, 자연스레 피난 행렬이 끊어졌다.
“결국 저 주민들은 바로 항복하겠군.”
“가시툰 추장을 잡았나 모르겠네요.”
송찬황은 제2연대로 인해 피난길이 막힌 주민들 대부분이 가시툰 추장 휘하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가장 먼저 몸을 뺐겠지.”
“그렇겠지요?”
“음, 우리 1연대와 본대도 삼봉평 맞은편에 이르렀군. 그럼 우린 더 나아가 볼까?”
“예. 대장군.”
태건과 정찰대는 다시 말을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쪽에 자리한 꽤 넓은 들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로툰의 영지 중 하나인 아랫마을이었다.
“아, 여기도 삼봉평이었지? 쓸 만한데?”
“그러게요. 첩첩산중에 이런 넓은 들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있는 이쪽 북안에도 꽤 넓은 벌판이 있지 않습니까?”
아랫마을은 마을우 성이 있는 윗마을과 비슷한 크기의 평야 지대였다. 게다가 강 건너편에 비슷한 넓이의 벌판이 있으니, 이들 세 마을만으로도 꽤 많은 인구를 부양할만했다.
태건은 비로소 그간 품고 있던 의문점이 해소되는 걸 느꼈다.
“로툰이 세력을 키울 만했어. 험준한 산지 한복판이라 위협이 될 적이 없는 데다, 이런 알짜배기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여기서 힘을 키워 마을현과 안출라쿠 지방으로 진출했군.”
또한 태건은 로툰이 왜 해서여진 세력의 위협에 노출되자, 마을현 지방을 버리고 도르기 비라로 들어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미래 시점에 벌어진 일이지만, 이곳에 직접 와 보니 모든 의문점이 풀린 것이다.
태건은 잠시 아랫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머물며 로툰 병력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아니? 목책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데요.”
송찬황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로툰은 아예 도르기 비라를 떠날 생각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태건은 급히 정찰대 소대장을 불렀다.
“1연대로 돌아가 기병대를 불러오게. 서두르라 전하고.”
“예. 대장군.”
태건은 기병을 먼저 전진시켜 로툰 병력이 두만강을 건너지 못하게 할 심산이었다.
“토끼몰이할 생각이군요.”
“그렇네. 내 반드시 로툰을 잡아야겠어. 놓치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것 같아서. 죗값도 받아 내야 하고. 가세!”
태건은 다시 정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달려갔다.
“아, 여기에도 꽤 넓은 벌판이 있습니다.”
송찬황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벌판을 보고 또다시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 평야 지대는 남안이 아닌 북안 쪽에 펼쳐져 있었다. 물론 남안 지역에도 꽤 넓은 평야 지대가 자리했다.
“노토 군 선발대가 여기까지 이르렀군.”
태건은 로툰이 먼저 보낸 선봉 부대를 발견했다.
* * *
신첨은 양산에 올라 태건과 똑같이 로툰의 선봉대가 양산 앞 벌판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양산은 벌인 부락 북동쪽에 자리한 산으로, 삼봉평에서 벌인으로 들어오려면 두만강 강변 길로 돌아오거나, 양산 남쪽에 있는 양산현이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어느 경우든 양산이 길목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신첨은 목책에 1개 대대 병력만 남겨두고, 나머지 천여 병력을 모두 양산으로 데려와 산속에 배치했다.
“어떻게 할까요?”
제3연대 소속 대대장 남형소 참령이 물었다. 같은 대대장이나 신첨은 연대장 승진을 코앞에 둔 데다, 계급이 부령으로 한 계단 높았기에 남형소 참령은 신첨을 깍듯이 대했다.
“통과시키는 게 좋겠소. 우린 본대를 노려야 하니까.”
“그럼 목책에 남겨 둔 대대가 처리하겠네요.”
“후후! 충분하지.”
신첨의 예상대로, 노토 군 선발대는 강변길을 통해 양산 앞을 지나쳤다.
“아, 강 건너편 좀 보십시오.”
남형소가 손을 들어 북쪽을 가리켰다.
“오호! 우리 기병대로군. 제1연대 소속이겠지?”
“그럴 겁니다.”
“참으로 철두철미해. 노토 군이 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기병을 먼저 보냈군.”
“맞습니다. 북쪽에 일종의 장벽을 친 셈입니다.”
삼봉평 지방을 흐르는 두만강 상류는 강폭이 매우 좁아 작은 하천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시간을 주면 충분히 강을 건널 수 있기에 태건이 선수를 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산 뒤쪽에서 폭음과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목책을 지키고 있던 신첨의 병력과 노토 군 선봉 부대가 결국 격돌한 것이다.
신첨의 계책에 따라 목책을 지키고 있던 보병들은 노토 군이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일시에 기습했다.
이에 당황한 노토 군은 황급히 본대로 되돌아가려 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잡아라!”
노토 군이 허둥지둥하며 양산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신첨은 즉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숨겨 둔 기병대까지 동원했다. 벌인 부락의 상황이 노토 군 본대에 전달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었다. 결국 신첨의 의도대로 노토 군 선봉대는 피살되거나 포로가 되어,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선봉대 처리가 끝나자 신첨은 다시 자리를 잡았다.
“후후! 내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거라.”
신첨은 통아에 애깃살을 메겨 놓은 채, 북동쪽을 노려보았다.
* * *
로툰과 아로, 가시툰은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강변을 따라 남서쪽으로 나아갔다.
“휴, 여길 버리고 떠나야 한다니…….”
로툰은 눈 앞에 펼쳐진 농토와 마을을 보자 처연한 기분이 들었다.
한여름이라 밭에는 곡식이 한창 자라고 있고, 산과 들이 온통 풀과 나무로 무성해 더욱 풍요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억울하고 아까웠다. 그러나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에 가까웠다.
“적 기병입니다!”
가시툰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제1연대 소속 기병이 북쪽 산모퉁이를 돌아, 강 건너편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이어 후방 상황에 관한 정보도 들어왔다.
“남안을 따라 우리 뒤를 밟으며 오천에 가까운 대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주민들 대부분은 피난을 포기하고 투항했는데, 조선군이 그들을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답니다.”
“제길!”
“어, 어떻게 하지요?”
가시툰이 물었다.
“속도를 올리는 수밖에… 조선군이 주민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니, 일단 주민을 포기하고 병력이라도 보존해야 하지 않겠어?”
“예. 그게 좋겠습니다.”
장남 아로도 찬성했다.
“서둘러라!”
부장 커리가 로툰의 명령을 각 부대에 전달했다.
이제 노토 군은 주민들을 버리고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짝 뒤를 따르던 주민들이 울며불며 데려가 달라고 소리쳤다. 조선군이 민간인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민들 모두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저들은 목숨줄이 경각에 달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로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달렸다. 그러다 보니 이제 보병도 뒤처지고 기병들만 그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때였다.
쉬익! 쉭!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화살, 애깃살이 노토 기병들을 향해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급히 서두르다 보니 어느덧 대열의 제일 앞에 서게 된 로툰도 예외가 아니었다.
로툰의 오른쪽 가슴에 애깃살 한 발이 날아와 박혔다.
“커헉!”
로툰은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다음 차례는 가시툰이었다. 가시툰은 옆구리와 복부에 한발씩 맞았고, 그 역시 낙마했다.
“아, 아버지!”
깜짝 놀란 아로는 말을 멈춘 다음, 말에서 뛰어내려 로툰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로툰은 화살에 맞은 데다, 낙마하는 과정에서 더 크게 다쳐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가시툰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아로는 이미 죽은 로툰을 흔들어 깨우려 애썼다.
“헉!”
목 부분에 싸늘한 감촉이 느껴지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느새 조선군 장수 둘이 아로 앞에 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환도를 뽑아 그의 목에 칼끝을 대고 있었다.
신첨과 남형소였다. 둘은 화려한 복장의 로툰과 가시툰이 선두 열에 있는 걸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한눈에 봐도 적장이란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에 두 장수는 재빨리 목표를 정했다. 신첨은 로툰을, 남형소는 가시툰을 노렸다. 둘 다 활 솜씨가 뛰어났으나, 빠르게 움직이는 적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둘은 겨우 두세 발 만에 로툰과 가시툰을 잡았다.
신첨이 손짓하자 아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로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벌써 기병들의 절반은 기습에 당해 땅에 누워 있고, 절반은 항복해 포로가 되었다. 아울러 강 건너편으로 나란히 달려가던 조선군 기병들은 어느새 두만강을 건너왔다. 또한 산속에서 매복해 있던 신첨의 병력도 하산해 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장군!”
태건이 신첨을 향해 다가오자, 신첨은 급히 군례를 올렸다. 태건은 활짝 웃으며 신첨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수고 많았네. 정말 큰 공을 세웠군.”
“대장군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대장군, 적 보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형소가 물었다.
“항복했네. 제2연대와 제3연대도 기병을 보유하고 있지 않나?”
“아, 그렇군요.”
태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로에게 다가가 여진어로 물었다.
“이름?”
아로는 태건을 노려보며 답했다.
“타타라 아로다. 네놈들이 살해한 이분의 아들!”
“이놈이 감히!”
남형소가 칼을 뽑아 아로를 체벌하려 하자, 태건이 손들어 제지했다.
“방금 부친을 잃었잖은가? 비록 전장에서 벌어진 일이나, 원한을 품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지.”
태건은 씁쓸한 표정으로 아로를 보더니 신첨에게 말했다.
“살려 주게. 오늘 생포한 포로들의 우두머리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저들 방식대로 로툰과 가시툰의 장례를 치르게 하라.”
태건은 고개를 들어 전장을 훑어보았다. 어느새 송찬황이 태건 곁에 와 있었다.
“이제 서토 정벌이 얼추 마무리되었군.”
“그런 것 같습니다. 노토까지 잡았으니 완벽하게 끝난 셈입니다.”
“저, 대장군님.”
신첨이 조심스레 태건을 불렀다.
“할 말이 남았나 보군?”
“그렇습니다.”
신첨은 전지로에게 설파했던 자신의 계획을 태건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태건은 크게 기뻐하더니 전지로까지 호출했다.
“신첨 부령. 그대의 계급을 정령으로 올리고, 동시에 제10연대장으로 임명한다. 신첨과 전지로 연대장은 남은 노토 부락을 남김없이 정벌하라.”
태건은 병력을 더 증원해 줄 수가 없어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하게 했다. 그래서 전지로는 3개 대대와 본부대를 합쳐 2천여 병력으로, 신첨은 남형소 참령의 대대를 포함해 3개 대대 1,500여 병력으로 혜산진을 향해 원정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