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경무청 (1)
경흥현 조산사 노구동.
이곳은 태건이 처음 훈련소를 설치하고 노구진이라 명명한 곳이다. 그런데 점차 채석장과 화포 시험장 등의 기능이 덧대어진 데다, 가토 기요마사 군의 북상에 맞춰 태건이 아오지보 뒤편에 새로운 훈련소를 설치함에 따라 이 땅은 새로운 용도로 거듭나게 되었다.
태건과 홍은은 노구동을 둘러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큰길가부터 시작해 저 산기슭까지 대지를 계단식으로 깎으면 꽤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지 않겠어요? 채석을 많이 한 덕에 터도 더 넓어져 제격인 것 같은데.”
“조산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을 여기서 모두 수용할 수 있을까?”
조산만 공방촌은 이제 조산 공단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행정구역도 조산사 조산동으로 변경되었다.
“북쪽에도 길을 따라 더 지어야죠. 조산만 앞의 장인 주택가도 확장하고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길 서편은 주택가, 동쪽은 공단이 되도록 배치하면 될 듯한데.”
“흠. 좋네.”
두 사람이 서둘러 노구동으로 온 이유는 이곳의 심각한 주택 문제 때문이다.
조산동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여러 공방은 날이 갈수록 덩치가 커져, 대부분 공장 체제로 전환되었다.
증기기관의 생산도 본궤도에 올랐다. 부품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공방이 생겨났고, 이를 모아 조립하는 공정 또한 고도화되어 생산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장인들의 숙련도도 높아졌고, 장인에게 교육받은 이들의 수도 늘어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병력이 꾸준히 늘다 보니 화포와 소총을 상시 생산하는 체제가 정착되어 무기 생산 시설도 확대일로에 있고, 조산만 조선소도 판옥선과 중첨선을 계속 건조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산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수용할 주택이 턱없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장인 집에서 더부살이라도 하면 형편이 좋은 축에 속하고, 대부분은 노구동과 조산동 산기슭에 움막을 짓거나 동굴을 파서 만든, 그런 임시 숙소에 기거하고 있었다.
더구나 앞으로 태건은 무산현이 설치될 지역, 즉 도르기 비라의 산골 마을에 사는 동해인들을 도시 노동자로 변모시킬 계획을 품었기에, 대단위 주택단지 건설이 시급한 현안이 되었다.
그래서 태건은 이번 기회에 향후 곳곳에 들어설 대단위 도시 주택단지의 모델을 노구동에 구현해 볼 생각이었다. 괜찮은 평가가 나오면 그다음으로 덕산동과 국화동 공업단지에도 적용할 계획이었다. 물론 경흥 시내와 수도가 될 훈춘에서도 여기서 터득한 토목과 건축 기술이 활용될 예정이었다.
홍은은 태건의 주문을 받자마자 즉시 구상해 둔 공동주택 모델 그림을 보여 주었다. 설계도 형태가 아닌 완성된 상태를 그린 상상도였다.
드디어 그림이 펼쳐지자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르던 소동구와 태원이 급격히 관심을 보였다.
“음, 멋진데?”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단층 기와집은 사실 공단 주택단지와 어울리지 않아, 서양식 공동주택을 참고해서 짓기로 했다.
“삼 층짜리네?”
“예. 삼 층이죠.”
“삼 층이나 올라간다니… 놀랍군요.”
태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원과 소동구가 그림에 정신이 팔려 있자, 홍은은 그림을 아예 태원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들과 약간 거리를 둔 다음, 목소리를 낮춰 태건과 밀담을 나누었다.
“요거, 영국의 테라스하우스를 참고했어. 폭발적인 주택 수요를 충족시키려고 거푸집으로 찍어 내듯 세운 그 모델이요. 물론 고급형이 아닌 보급형으로.”
테라스하우스는 18에서 19세기 사이에 영국에서 유행한 도시 주택으로, 측벽을 공유하는 형태의 집합 주택 양식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도 많은 영국인이 이런 건물에 살고 있었다.
“그렇군. 어쩐지 눈에 익더라. 그런데 지붕만큼은 한옥 형태로 설계했네?”
“약간의 변형을 가한 거지 뭐.”
“콘크리트가 없어도 괜찮나?”
“응, 괜찮아요. 석재와 벽돌, 목재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럼 문제는 상하수도 시설이군.”
“그것도 당연히 계획에 포함되었지.”
“벌써? 놀랍네.”
“하륜 오빠랑 이 문제로 얼마나 고심했다고. 일단 내가 불편하니까.”
“하하! 그렇지. 불편함이 네 열정의 원동력이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예 수세식 화장실까지 도입하려고.”
“뭐? 거기까지 나아갔다고?”
“요업공장도 돌아가고 있겠다, 못할 게 뭐 있어?”
“그렇긴 하군.”
그림을 충분히 감상한 태원과 소동구가 다시 두 사람에게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홍은은 지도를 꺼내 상수도 시설 구축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부도독 오빠랑 내가 선택한 수원지에요. 우린 여길 청수골이라고 부르기로 했지. 능평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골이 꽤 깊은데다 노구산 꼭대기 부분에서 발원한 개울이 거의 일직선으로 쭉 흘러내리고 있어요. 이 개울이 물 공급원인 셈이죠. 그래서 계곡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둑을 쌓으면 물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겨울에 얼지 않을까?”
“수심이 깊으면 괜찮겠지, 뭐. 정수 시설도 지하에 만들 거고.”
“그럼 둑 쌓는 게 일이겠네?”
“포로 많잖아요?”
“맞다, 포로를 최대한 활용해야지. 그럼 상수도관은?”
“주철을 써야죠.”
“주철? 그 많은 철을 어떻게?”
태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치명적인 문제와 맞닥뜨린 것이다.
구한말, 대한제국도 최초로 수도 시설을 만들어 서울 시민에게 보급했는데, 당시 썼던 상수도관 대부분이 주철관이었다.
“그래서 조금 미루려고요. 에휴!”
홍은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래서 주택 건축부터 시작해야지. 몇 년 지나면 상수도관을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주철이든 뭐든 간에.”
“그래, 알았다. 어쨌든 집이 우선이니까. 우물에서 물을 길어 쓰게 하다가 나중에 수돗물을 공급해 주면 되겠네. 근데 난방은?”
“난방도 배관 문제만 해결되면 나중에 얼마든지 보일… 아니, 온돌 시공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
“그리고 하수 시설은…….”
홍은은 하수 시스템 설치와 폐수처리 계획에 대해서도 태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아오지사에 자리한 훈련소 겸, 경흥 병영.
현재 이곳엔 태건이 귀환길에 데려온, 전역이 예정된 장졸들이 머물고 있었다. 군부 장관 최철주가 지휘관 실로 들어서자 제1군 사령관 송찬황이 그를 맞아 주었다.
“이번에 1군이 아주 큰 공을 세웠다 들었네.”
“제가 했나요? 다 도독님이 하셨지.”
“허허! 다들 그런 말을 하더군. 근데 당분간은 친정 나가지 않을 거라고 말씀했으니, 이제 사령관들이 알아서 해야 할 거야.”
“그래야지요. 화살이 빗발치는데도 항상 앞서 달리는 모습을 보면, 이젠 좀 말리고 싶더라고요.”
“어련하실까? 허허!”
최철주는 품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서 송찬황에게 보여 주었다.
“이게 군 개편안 초안이네. 회의 때 나온 얘길 적어 왔지.”
“그렇습니까?”
송찬황은 문서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이제 육군이 3군 체제로 바뀌네요? 역할도 공수가 아니라 지역으로 나누고.”
“무산 지방과 함경도 남부까지 우리 군이 건사해야 하니까.”
“지당한 조치입니다.”
태건은 현재 육진과 경성을 제외한 강외 지역의 여러 현과 무산 이남 지역의 방어와 치안을 군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육진과 경성처럼 안전이 확보된 후방 지역의 치안을 경무청이 담당하는 방식으로 개편할 계획이었다. 그러다 경관 인력이 더 많이 확보되어 강외 지역 치안까지 담당할 정도가 되면, 육군 병력은 오로지 변방만 지키면 된다.
“음, 우리 1군은 서부군이군요?”
“그렇네. 장령현과 가야현, 광명현, 용정현, 아랑현, 마을현을 담당하기로 했지. 모두 이번에 새로 얻은 땅이라, 치안을 유지하는 데 온 신경을 다 써야 할 거야.”
“안 그래도 도독님이 제1군 사령부를 광명현에 둬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노토를 토멸했으니 이제 북부의 니마차로 주의를 돌려야 하니까. 그리고 당분간 원정 나갈 일은 없을 테니, 치안 유지에 힘쓰면서 변경의 골짜기를 꼼꼼히 정찰하고, 아직 복속시키지 못한 여진 마을을 마저 다 정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부루강과 해란강, 가야하 지류를 따라 북상하거나 서진하란 지시였다. 즉 평야 지대만 정벌한 상태이므로, 세력이 미치는 범위를 더 확대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2군은 북부군인 셈이네요. 남둘루와 수이푼을 상대해야 하고.”
“2군도 바쁠 거네. 안춘과 마진, 하다, 훈춘현의 북부 골짜기들을 점령하란 명령이 떨어질 테니까. 여산과 연추, 악양현과 같은 콜칸 지방의 치안도 신경 써야 하고.”
아울러 3군은 남부군으로, 신첨의 제10연대와 전지로의 제3연대, 갑산과 단천 등 남부 고을을 지키고 있는 김성의 제9연대로 구성되어, 무산과 그 동남쪽 지방을 담당하게 되었다.
“저 전역을 앞둔 병력으로 인해 이빨이 잔뜩 빠져 문제입니다. 현재까지 그 대상자가 무려 육천이나 나왔는데, 이번에 그 절반인 삼천이 빠져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두 달 후에 나머지 삼천, 또 두 달 후에 새로 천이 빠져나갈 예정이지요. 그럼 반년 내에 칠천이 군문을 나간다는 말인데, 이 공백을 어찌 메울지 걱정입니다. 더구나 우리 1군의 경우, 제3연대까지 3군에 내주었으니 도대체 언제나 정상화될지 모르겠네요.”
“걱정하지 말게나. 돌아가서 광명현에 훈련소부터 세우라고. 빠진 수만큼 바로 보내 줄 테니, 그들을 교육해 쓰도록 하게.”
“아, 그럼 각 군 사령부 차원에서 훈련소를 운영하기로 한 겁니까?”
“그렇네.”
“잘 됐군요. 그럼 우리 1군에 서해란평 출신 동해인 병사들도 합류하는 겁니까?”
송찬황은 이미 원정군과 함께 움직인 아치랑귀와 이응거 부락 출신 장정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현재 적대적 관계에 있던 마을현 곳곳에 주둔하며, 치안 유지에 힘쓰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고 들었네. 번호 출신 간부들은 물론 신병도 보내 줄 테니, 같이 협력해서 조선어와 한글도 가르치게. 훈련을 마치고 나면 저들을 각지로 흩어 놓아야 하네.”
“당연히 그래야지요. 다른 민족 출신 동료와 지내며 근무하는 게 근본 원칙이니까요.”
군 개편안과 관련한 대화가 끝나갈 무렵, 훈련소장이 안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장관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요? 그럼 나갈까?”
최철주가 연병장으로 나와 보니 전역을 앞둔 장졸들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그가 단에 오르자 전역식이 시작되었다.
오늘 전역할 이들의 수는 무려 삼천. 이들 중 갑사와 장교의 수는 약 오백 정도였다. 평화로운 시기의 군 복무가 아닌 전란의 시기에 끊임없이 움직이며 전투를 치르다 보니, 전도가 유망한 장교라도 군 생활에 신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간부가 전역을 신청했던 것. 병졸들도 같은 이유로 갑사로 승급하지 않고 전역을 선택했다.
이들은 마지막 순서로 군표를 받았다. 군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지폐인데, 태건은 월급으로 군표를 지급했다. 그래서 언제든지 각지에 있는 군 보급품 창고로 가서 장병들이 이걸 제출하면 쌀이나 잡곡으로 바꿔 주게 했다.
장병들은 군표를 모아 두었다가 휴가를 받으면, 일부를 바꿔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곡식을 들고 갈 수가 없으니, 남는 군표도 가족에게 건네주어 언제든 써먹게 했다. 이 군표가 일종의 종이 화폐 기능을 담당한 것이다. 즉 곡식 본위제 화폐인 셈이었다.
군표 증정 절차를 마치자, 최철주가 다시 단상에 올라 경관을 모집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시작했다.